• 최종편집 2024-04-27(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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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우 가족행복학교 대표, 평택성결교회 원로목사

결혼을 앞두고 주례를 부탁하기 위해 찾아오는 예비 신랑과 신부에게 들려주는 말이 있다. 연애는 사랑이라는 감정에만 충실하면 된다. 하지만 결혼은 사랑만으로 안 된다. 사랑과 책임이 함께 가야 한다고.


사랑은 감정이라서 언젠가는 식을 수도 있다. 그때마다 결혼생활을 포기하려 한다면 제대로 결혼을 유지하는 사람은 없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자유결혼 시대이다. 유교문화권 속에 살았던 과거에는 부모가 결혼할 상대를 찾아주거나 중매를 통해 혼사가 이루어졌다. 또한 결혼 관계를 포기하는 것도 당사자 의견만으로 가능하지 않았다.


지금은 결혼 자체를 의무로 생각하지 않는다. 비혼주의를 선택하는 사람들이 차츰 늘어가고 있으며, 자유결혼이라는 개념은 확대되어 결혼은 필수가 아니며 선택이라고 보는 개념으로 발전했다.


결혼 관계 속에 자녀 출산 역시 필수라고 보지 않는다. 선택일뿐만 아니라 포기할 수도 있다. 왜 이런 풍토가 확산해 갈까? 사랑을 단순히 감정으로만 인식해서 그런지도 모른다. 일인 세대가 국민 전체 세대수의 50%를 넘는다고 한다. 자기만의 삶을 책임지겠다는 생각이 팽배해 가고 있음이다.


가정을 이루는 것은 책임적 관계로 들어가는 것이다. 진정한 사랑도 책임이 수반될 때 빛을 발한다. 그래서 결혼이라는 결실을 보게 된다. 이런 책임적 기반이 형성될 때 사랑의 결실로 자녀 출생도 자연스럽게 얻게 된다. 그 책임이 사랑을 더 견고하게 한다. 자녀를 양육하면서 절실하게 느끼게 된다.


필자는 일찍 결혼할 생각을 처음부터 가졌다. 부모를 의존하는 결혼이 아니라 결혼해 독립적으로 부부가 함께 경제를 일으켜 가기를 원했다. 그 당시 연인이었던 아내는 흔쾌히 동의해 주어서 우린 결혼했다. 만으로 남편 25세, 아내 23세에.


책임적 관계인 가족은 세상을 살아갈 이유를 준다. 이것이 옳다거나 그르다고 말할 수는 없다. 가족은 조물주가 만든 자연의 섭리요, 피조된 세계를 유지하는 방법이다. 동식물의 세계가 다르지 않다. 이 책임적 관계를 포기한다면 세상의 종말은 어김없이 찾아올 것이다.


가족을 위해 일하는 가족 구성원의 노력은 경이롭다. 얼마나 헌신적인지 모른다. 누가 강요한 것도 아니다. 자연스럽게 책임을 다하며 행복해한다. 그 행복이 찾아오는 통로가 책임이다. 책임을 다할 때 가족은 서로 행복을 느끼며 행복한 삶을 누리게 된다.


재활병원에 가보라. 한 해, 혹은 두 해 이상 재활치료를 받기 위해 장기 투병하는 그들과 수발드는 가족의 모습은 애처롭지만 경이롭다. 누가 그 일을 억지로 하겠는가? 부모, 형제, 부부, 자녀 관계일 때 자연스레 책임을 감당한다. 홀로가 아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재활하면서 싱글이라면 어떤 심정이 들까?


필자의 아내는 70대에 들어서면서 척수경색이라는 희귀병이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와 쓰러졌다. 하반신을 쓸 수 없게 되었다. 서울 대학병원에서 모든 검사를 마친 결론은 치료 방법은 재활훈련으로 어린아이처럼 걸음마를 배우듯이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당사자는 말할 수도 없이 낭패감에 빠졌으나 가족이 함께하겠다고 해서 용기를 얻어 재활을 시작했다.


2년여 시간이 지났다. 처음 1년 동안은 재활병원에 입원해 재활을 했다. 지금은 퇴원해 집에서 재활하고 있다. 아직 실내에선 워커를 사용해야 움직일 수 있고 외출 시에는 휠체어를 의지해야 한다. 그래도 의사의 진단은 이만큼의 회복도 기적에 가깝다고 말한다.


책임적 관계를 맺는 일은 세상을 살아가는 너무나 소중한 일이다. 어찌 웃는 날만 찾아오겠는가? 슬퍼하거나 고통을 맞이하기도 한다. 그럴 때 누군가 내 곁을 지켜줄 가족, 책임져 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삶의 힘이다. 그래서 책임도 사랑임을 실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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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우 칼럼] ‘책임도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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