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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사는 이야기] 효과적 독서의 요건 ‘과학의 세계로 빠지기’ (10회)
    어려운 과학책을 어찌 독파할 수 있을까? 이필렬 교수에 따르면, 과학이란 근대에 들어 형성되고 발달해온 순수 학문으로써, 과학적 지식뿐만 아니라 자연을 이용하기 위한 기술까지 포함한다. 과학책의 유형은 과학 해설서, 과학 역사서, 과학의 사회학적 접근서, 과학 비판서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책들을 읽는 방법이 따로 있지는 않다. 특별히 관심이 가는 책 가운데 과학의 이해에 도움을 주는 것이면 된다. 다만 과학책은 정독을 통해 접근하는 것이 좋다. 현대사회를 알기 위해서는 과학 전반에 대한 소양과 실생활에 유용한 기술 지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실은 우리가 접하는 과학이란 학문은 17세기 무렵 서양에서 형성되었다. 가설이나 이론을 증명하기 위하여 실험을 거쳤고, 자연을 대상화했으며, 자연법칙의 탐구를 위해 도구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예컨대 아리스토텔레스의 가르침이 옳은 것인지를 피사의 사탑에서 실험했거니와 베이컨이 말한 아는 게 힘이라는 기치를 걸고 망원경이며 기압계가 등장한 터였다. 다종다양한 양상으로 인간사회의 변화를 주도한 것이 과학이다. 현대과학 이전에 있었던 과학의 형태는 어떠했을까? 지금처럼 정리된 책자는 없었으나 그래도 천체의 움직임에 따른 궁금증은 실로 대단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과학원리에 관한 해설서가 필요한 건 그래서다. 일반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을 안 다음에는 과학의 발달 과정을 역사적으로 서술한 과학 역사서를 읽어야 한다. 그다음은 과학기술이 사회적으로 어떻게 작용하고 얼마큼 영향을 미쳤는지를 살펴보기 위한 과학의 사회학적 접근이 있어야 하며, 여태껏 과학이 일으킨 문제점들을 규명한 과학 비판서까지 두루 살펴보라는 것이 저자의 권고다. 그중에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와 같이 대중의 인기를 모은 책도 있고, 스티븐 호킹의 『짧은 시간의 역사』와 같이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오른 책도 있지만, 정작 중요한 바는 과학기술에 대한 안목을 길러 독자 나름대로 비판적 시각을 갖추는 일이다.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접하며 원자력발전의 기본원리를 아는 것과 모르는 건 천양지차의 반응을 보일 수 있어서다. 다만 필자는 과학 자체를 두고 기계적·환원주의적으로 비판하는 접근 방식에는 동조하지 않는다. ▲ 평택시 중앙동 일대에 피어난 만수국 꽃무리 문외한의 입장에서 보아도 그동안 과학계에서 이룬 성과물은 학자들의 엄청난 업적인 동시에 인류문화의 산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원칙적으로 인간사회의 비과학적 요소들을 근원적으로 파고드는 데는 찬동하지만, 과학적으로 설득하지도 못하면서 우주의 원리 자체를 부정하는 시도에는 단호히 선을 긋는다. 현대인의 기초적 소양에 필요한 내용일수록 분야와는 무관하게 세심한 주의를 요한다는 생각에서다. 비근한 예로써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를 대충 읽어서도 이해할 영재는 극히 드물 터일진대, 빛의 속도는 일정한데 시간의 길이가 움직이는 물체의 속도에 따라 다르고, 길이는 줄어들 수 있으며, 질량과 에너지가 등가라는 특수상대성 원리에 덧붙여, 중력장, 중력과 가속도의 등가성, 휘어진 공간 등을 설명하는 일반상대성 원리까지 버무려 다룬다면 설렁설렁 읽어서 이해할 수 있겠느냐는 반문이다. 그러므로 추천할 책이라면 찰스 길리스피의 『객관성의 칼날: 과학사상의 역사에 관한 에세이』와 더불어 하이젠베르크의 자서전 『부분과 전체』에 더해, 레이철 가슨이 과학기술 결과를 비판한 『침묵의 봄』을 권한다. 그 외에는 저마다의 취향에 따르되, 아래 소개하는 지은이의 회고담 ‘나의 과학책 읽기’는 참조할 만하다. 독일 유학을 다녀온 저자가 과학책을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한 때는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였다. 처음에는 주로 과학 역사서와 과학자 전기를 읽다가 과학 해설서와 비판서로 넘어갔는데, 기억에 남는 저서는 조지 가모프의 『물리학을 뒤흔든 30년』, 허버트 버터필드의 『근대과학의 기원』, 제레미 번스타인의 『이인슈타인-학문·생애·사상-』 등이었다. 첫 책은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의 형성기를 서술했고, 둘째는 17세기 근대과학의 혁명을 역사적으로 기술했으며, 셋째는 저자가 처음 접한 인물평전이어서 기록해 두었다는 얘기다. 필자의 눈에 들어온 구절은 하이젠베르크가 플라톤의 대화편에서 ‘티마이오스’의 영향을 깊게 받은 대목이다. 이후 지은이는 과학자들의 전기를 꽤 찾아 읽어가며 그들의 고뇌에 찬 탐구 과정을 통해 과학자의 지평을 여는 데 적잖을 도움을 받게 된다. 과학 비판서 중에는 프리초프 카프라의 『현대물리학과 동양사상』이 인상적이었으나, 여전히 과학도에게도 과학 세계는 무거운 과제다. ■ 프로필 - 고교생에게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퇴임 후 기고활동을 이어가면서 기독교 철학박사(Ph.D.) 학위를 받았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을 운영합니다. - 정론지 <평택자치신문>에 “세상사는 이야기”를 15년째 연재하는 중입니다. ※ 다음호(725호)에는 ‘효과적 독서의 요건 - 사회운동 콕 짚어내기’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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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하식의 이야기
    2024-05-18
  • [세상사는 이야기] 효과적 독서의 요건 ‘사회과학 똑바로 하기’ (9회)
    사회과학책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백영경 교수에 따르면, 사회과학이란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사회 현상과 인간의 사회적 행동을 연구하는 분야로써, 근대의 분과 학문체계이자 통치 권력의 기반이 되는 중층적인 성격이 존재한다고 덧붙인다. 다시 말해 사회과학에서는 사회 현상들의 원인이나 영향을 받는 관계에 대해 체계적으로 접근하여 미처 일반인의 생각이 닿지 않는 이면적 측면까지 다루고 있다는 설명이다. 단, 특정 관점에 국한해서는 사회를 올바로 들여다볼 수 없다는 데 유의해야 한다. 고로 사회과학책을 읽을 때는 해설에 타당성이 있는지, 새로운 지점에 대한 성찰이 있는지, 서술을 통해 빠뜨린 대목은 없는지, 배제된 사람들에 대하여 배려했는지를 문답을 통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것이 나의 경험칙상 객관성을 확보하면서 검증된 이론과 개념이라는 도구를 이용한 사회 현상에 관하여 총체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길목이라는 지침이다. 그렇다면 막상 읽고 싶은 사회과학책을 어떻게 고를 참인가? 아무래도 초심자는 나의 관심사를 위주로 살펴보는 것이 무난한 선택지가 될 것이다. 필자는 사회과학 과목의 보고서를 쓰면서 관련 용어는 어려워도 전체 흐름을 놓치지는 않았다. 평소 시사성 있는 화제나 날마다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무관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의점은 사회과학 저술은 유사한 주제의 언론 보도나 자기계발서의 유형과는 달리 그저 알려주기 위한 소개서가 아니라는 점이다. 사회과학자들은 일정한 개념을 통해 자신의 관점을 드러내고 체계화된 이론을 동원하여 흐트러진 사실들을 일목요연하게 조직하는 일들을 떠맡는다. 즉, 언뜻 엇비슷해 보이는 현상일지라도 특정 시점과 공간에 얼마큼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따져 묻는 역을 감당한다. 그러므로 ‘사회과학하기’라는 작업은 저자의 서술에다가 독자의 참여를 끌어내는 쌍방향 과정이 된다. 이러한 접근법이 처음에는 어떤 훈련된 눈을 통해야 한다는 면에서 다소 생소할 수도 있으나, 차츰 이전에 볼 수 없었던 것과의 연관성을 발견하면서부터는 나름은 흥미도 있고 보람을 느낄 것이다. 그렇다고 사회과학책 모두가 비판적 사고를 고양해주지는 않는다. 행정적 기능을 다루거나 현실의 합리화에 급급한 경우도 있다. ▲ 평택시 중앙동 일대에 피어난 맨드라미 꽃무리 사회과학의 종류에는 인류학, 사회학, 정치학, 경제학, 법학, 지리학, 국제관계학, 교육학 등 인간 생활의 사회적 측면을 조명한 학문을 포함한다. 그러나 인문학의 핵심인 역사학을 두고는 광의에서 사회과학의 일부로 보기도 하며, 심지어 자연과학과 의료 등의 영역까지 사회과학의 연구대상으로 삼는 것이 최근의 경향이기는 하다. 서구에 기원을 둔 근대 학문체계를 소환하면 ‘사회’를 주목하며 탐구할 대상으로 여긴 때는 18세기 중반이었다. 그 직전인 17세기가 되어서야 인간의 감정과 행동을 주시하며 ‘사회적’(social)이라는 형용사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사회라는 낱말은 가족이라는 사적 영역도 아니요, 공적 영역인 국가도 아닌 소규모 결사체에서나 적용하던 용어였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사회라는 개념이 정치적 자유주의 이념에 부합하면서 중요성이 부각되었고, 정상적 질서유지의 차원에서 통치자들이 개입하지 않으면 안 되는 지점으로 정당성을 얻게 되었다. 요컨대, 사회과학적 시각으로 세상을 관찰하면 기존의 ‘바라보기 방식’에서 벗어나 몰각한 정치권력과 부당한 통치수단에 대한 안목이 생길 것이다. 저자는 사회라는 현상은 어떤 실체가 있는 게 아니라 특정한 시기 이래 인간들 사이의 집합적 삶을 이해하는 하나의 방식이라고 정의한다. 실제 생활하는 터전이 있기에 손에 잡힌다고들 생각하지만, 실은 사회의 기본을 만인 대 만인의 투쟁으로 볼 참인지 아니면 상생의 공동체로 여기냐에 따라 매우 다른 전개 양상이 전개된다는 시각이다. 요체는 사회학자의 근본적 세계관에 달렸으므로 굳이 편협한 틀에 갇혀 다양한 세계를 놓칠 이유는 없다는 게 저자의 권고다. 하지만 지은이는 현재의 삶을 분석하여 미래를 예측하는 일은 주의할 지점이라고 충고한다. 미래 예측이란 본질적으로 불가능한 영역이거니와 누군가의 현실 자체에 개입하려는 의도가 있어 깊은 성찰을 전제하더라도 미지의 시간에 대한 변수가 존재할 수 있다는 진단이다. 가령 지금의 출산율을 기준으로 민족 소멸을 장담하고 아파트 수요를 예단하는 행위는 사회과학이 아니라고 단정한다. 실체는 누구의 시선이냐에 대한 맥락이다. 현상 자체의 시공을 따라 뿌리와 줄기를 파헤치면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파악하면서 사안을 꿰뚫어 볼 수 있을 것이다. ■ 프로필 - 고교생에게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퇴임 후 기고활동을 이어가면서 기독교 철학박사(Ph.D.) 학위를 받았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을 운영합니다. - 정론지 <평택자치신문>에 “세상사는 이야기”를 15년째 연재하는 중입니다. ※ 다음호(724호)에는 ‘효과적 독서의 요건 - 과학의 세계로 빠지기’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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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하식의 이야기
    2024-05-14
  • [세상사는 이야기] 효과적 독서의 요건 ‘서양사 바로 톺아보기’ (8회)
    서양사를 바로 톺아보는 길은 있을까? 이혜령 교수는 오늘을 사는 우리는 수천 년간의 역사과정에 빚을 지고 있으므로 서양사 읽기를 통해 나를 알기 위한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고 말한다. 즉, 지나간 시공을 뒤돌아봄으로써 당면한 문제들의 해답을 찾아야 한다는 조언이다. 현재에 대한 비판적 인목이야말로 미래를 설계할 합리적이고 종합적인 전망을 모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책을 읽을 때는 먼저 다양한 질문을 던지며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와 더불어 기존의 역사서술에서 제시된 입장을 살피며 자신의 위치를 설정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서양사에서 주의할 요소는 서구중심주의와 부르주아 및 남성 중심의 편견들이다. 그것들이 불러올 사실관계 왜곡은 물론 시비와 공정을 흐리는 지점을 바로 잡기 위해서는 양자 비교와 종합분석의 자세를 견지할 필요가 있다. 역사는 기본소양을 바탕으로 자유로운 사유에서 오는 판단력을 기름으로써 다른 학문을 연구하는 데 긴요한 분야로 널리 인정받은 셈이다. 여기서는 좁아진 지구촌에서 이질적 문화를 공유하며 상생하는 방안을 여러모로 제시할 것이다. 문제의 초점은 서양 역사는 팽창 지향적이라는 데 있다. 다시 말해 국제적으로 치열한 경쟁 구도를 타파하려면 치밀한 전략이 필요하다. 예컨대 그리스는 기원전 8세기부터, 알렉산더는 기원전 4세기부터, 로마인들은 기원전 1세기 말부터, 중세 유럽인들은 기원전 1세기 말부터 영토전쟁에 돌입했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 어디 그뿐인가? 그들은 중세사회가 붕괴된 15세기 이후 아시아와 아프리카로 진출하여 자원을 약탈하고 자본주의를 수립함으로써 세계사를 주도하는 면모를 보여왔다. 급기야 19세기 말에 이르러서는 양차 대전을 일으키며 세계를 초토화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그 대가는 극한적 대결의 냉전체제였다. 그렇다면 나의 관심사와 연결된 주제의 선택과 집중이 요구된다. 영화감상 후 흥미로운 영역을 찾아보는 것도 괜찮고, 시사성 있는 사태를 보고 자료를 탐색해볼 수도 있다. 요체는 개인적, 사회적 전망이 어두울수록 유사한 역사를 돌아보며 사안별 대처능력을 키워야 하거니와 현실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가운데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과거사를 분석하는 일은 시간의 확장을 뜻하기 때문이다. ▲ 평택시 중앙동 일대에 피어난 설악초 꽃무리 그러나 학자들과 독자들 사이에는 시각의 괴리가 존재한다. 일반인들의 성향은 통상 역사의 거시적 흐름을 생각하는 반면에 전문가들은 특정 사실에 대한 정립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어, 이왕지사 양자의 거리를 단박에 좁히기 어렵다면 역사의 저변을 확충하기 위해 때로는 독자의 편에 서서 소구력을 높이는 방안을 꾸준히 모색할 필요는 있다고 본다. 물론 주제를 넓게 잡고 동서양사의 도도한 흐름을 크게 잡아주는 거시적 서적이 아주 없지는 않다. 이때 요긴한 기능을 담당하는 것이 요약과 질문이므로 그 둘을 진지하게 접합한다면 독서의 흥미를 배가시킬 수 있다. 극히 경계할 요소는 특정 집단의 이해관계에 휘둘려 견강부회하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다만 설령 역사가의 정치적 입장에 따라 사건을 해석하고 평가하는 기준은 시대와 사회의 여건에 의해 좌우될 수는 있어 이마저 흔들리지 않는 푯대가 최선이겠으나 인간이 하는 일에서 절대선을 추구할 수 없다. 권력자와 지배자, 심지어는 약탈자의 눈으로 역사를 기록하고 유포하는 과정에서 거대한 은폐와 폭력성을 수반하는 사례도 있어서다. 최근 들어 서구중심주의를 비롯해 가부장주의에 대한 반추, 모성신화에 대한 분석, 여성성과 남성성이라는 고정관념의 해체 등이 도마 위에 올라온 건 고무적이다. 하지만 민족적 우월주의와 성인식만으로 학계를 급격히 변화시킬 수는 없다. 그렇다면 독자들은 다양한 연구 방향성 앞에서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비록 전문가는 아닐지라도 공정하고 주도적인 자세를 견지하라는 권유다. 독서를 통해 쟁점을 놓고 자신의 입장을 옹호하는 경험만으로도 이미 소기의 성과를 올렸다는 칭찬이다. 기억해둘 지적 활동의 중심은 성찰에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 역사학자인 마르크 블로그의 지적처럼 역사의 대상은 어디까지나 인간이기에 그렇거니와 저자가 권하는 공동의 독서와 반성적 작업이 무엇보다 중요해서다. 함께 독서노트를 만들고 요약집을 분담해보는 것도 유익하다. 물론 메모는 각자의 몫이다. 발제자의 내용을 비교하며 보완하는 일도 권장할 만하다. 그렇게 생긴 정교한 비판의식이야말로 인류의 정신사를 살찌워왔다. 깊은 문제의식은 숱한 현실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자유와 권리를 신장한 지름길이었다. ■ 프로필 - 고교생에게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퇴임 후 기고활동을 이어가면서 기독교 철학박사(Ph.D.) 학위를 받았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을 운영합니다. - 정론지 <평택자치신문>에 “세상사는 이야기”를 15년째 연재하는 중입니다. ※ 다음호(723호)에는 ‘효과적 독서의 요건 -사회과학 똑바로 하기’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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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하식의 이야기
    2024-04-26
  • [세상사는 이야기] 효과적 독서의 요건 ‘한국사 제대로 꿰뚫기’ (7회)
    한국사를 제대로 꿰뚫어 보기 위해서는 어떤 시각이 필요할까? 송찬섭 교수에 의하면, 역사를 읽는 목적은 단순히 흥미를 충족하기 위한 수단일 수도 있지만, 시대적 흐름과 구체적 현실을 알려고 하거나 역사 속에서 희망을 찾아 실천 의지를 다지려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역사책의 종류를 보면 통사, 시대사, 왕조사 등과 같은 과거사의 기록물, 유적지를 통해 역사적 안목을 길러주는 답사기, 전기류와 유사한 인물평전이나 회고록, 생활문화를 탐구하는 일상사, 역사소설이나 사극 등에서 상상력을 자극하는 책도 있다. 유의점은 각 책에 담긴 사관은 물론 저자가 지향한 가치요 사상이다. 다만 사실(史實)과 허구는 엄연히 다른 영역이다. 다산 정약용이 아들에게 제시한 도서류 가운데 『삼국사기』와 『고려사』 등이 들어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의 향취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걸핏하면 중국의 일을 인용하는 것을 두고 비루한 품격”이라고 꼬집은 대목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고 흥미로운 주제에 관심을 둔다며 나무랄 수는 없다. 각종 문제를 파헤치려는 노력 또한 다양한 시각의 하나로 볼 수 있다. 중요한 지점은 과거와 기록에 대한 관심이다. 기나긴 역사를 통해 말 없는 다수의 실상이 전면에 나선 소수로 대치될 수는 없잖은가? 예컨대 서구 열강의 침략사에 얽힌 일제 강점기를 무심코 지나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사방에서 국운을 옥죄어오던 구한말로 되돌아가 근대화를 선제적으로 추동할 수는 없었는지 문제를 제기하는 대목도 역사책에서 고리를 풀어야 한다. 다만 역사의 기술상에 남아있는 객관성의 확보 여부는 별개 사안이다. 이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관점에서 그 한계치를 어디까지 설정할 것이냐에 대한 논쟁과 합의가 이뤄져야 할 부분이다. 최근 사학계에서는 사가의 기호나 욕망, 편견과 이념, 지방이나 민족과 같은 집단의식, 현재라는 시점 등을 넘어서서 역사를 기록하는 일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회의론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역사란 무엇인가에 대한 개념 정리는 필요하되 누구를 위한 역사인가에 대한 초점이 더 절실하다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정작 어떠한 역사적 사실에 보다 주안점을 두고 선조의 기록을 대할 것인가를 늘 고민해야 한다는 점을 간과하면 곤란하다. ▲ 평택시 중앙동 일대에 피어난 천수국 꽃무리 역사 고전에 해당하는 사서의 대표적 예로는 시대별 정사(正史)를 들 수 있다. 이는 연대기 형태로 고정돼있어 매우 건조하긴 하지만 분야별로 정리한 지(誌) 또는 열전은 이야기 구조여서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조선왕조의 『실록』과 『일성록』은 편년체로 정리했다는 특징이 있다. 실은 전근대에 들어와서도 사찬(私撰)에 의한 사서는 흔했다. 민중의 의식이 깨어나던 조선 후기만 해도 서술방식이 다른 역사책이 다수 만들어졌다. 눈여겨볼 책은 『동사강목』이나 『연려실기술』, 『해동역사』와 같은 역사 담당자 전체를 주체로 한 서술이나 인과관계에 의한 사회 발전을 규명한 일련의 움직임이다. 『대동야승』처럼 민간설화, 사건일지, 기행문 등을 실은 야사류도 있다. 근대에 와서는 학교를 통해 역사교육이 이뤄진 만큼 접근성은 좋아졌으나 역사학의 독립성과 민족사학으로서의 정체성은 여전히 해묵은 숙제로 남아있다. 이에 대항한 신채호의 민족사관에도 불구하고 식민지근대화론의 확산을 막아내려면, 1980년대 들어 부쩍 민주화의 열풍을 일으켰던 기층민의 항쟁사 및 변혁운동사에도 애정 어린 눈길을 줘야 한다. 역사현장을 직간접적으로 그려보는 재미를 무엇에 비할까? 반만년을 일궈온 이 땅에서 지나간 현재를 음미하며 미래를 설계해보는 사실만큼 설레는 일은 없을 터이기 때문이다. 거기서 만나는 역사적 인물은 한국 사회를 만든 지난한 족적이자 수많은 논쟁을 거쳐온 시대의 산물이었다. 각별히 주시하는 민중사를 놓고 인류사의 거대한 흐름 속으로 들어가면 우리 시대의 보편적 가치를 안다는 즐거움만으로도 훈훈한 감동을 안겨주기에 충분하다. 가령 민초들의 생존사를 비롯한 이순신의 『난중일기』, 이병기의 『가람일기』, 김성칠의 『역사 앞에서』가 그 전형이다. 또 하나의 흐름은 생활문화, 곧 공동체적 일상사를 탐구하는 쪽이다. 기본적으로 의식주 외 부업이나 부식, 신앙생활, 여가문화 등속까지 낱낱이 기록해 두었다. 그러한 맥락에서 살펴본 근현대는 대내외적으로 성장과 수용을 용해한 과도기적 상황이었다. 역사소설이나 드라마를 통해서도 역사를 배울 수 있다. 다만 작가의 역사이해 부족과 과도한 상업성의 개입은 경계할 요소다. 상상력이라는 틀 안에서 실체적 진실을 이해하려는 슬기로움은 필수라고 본다. ■ 프로필 - 고교생에게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퇴임 후 기고활동을 이어가면서 기독교 철학박사(Ph.D.) 학위를 받았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을 운영합니다. - 정론지 <평택자치신문>에 “세상사는 이야기”를 15년째 연재하는 중입니다. ※ 다음호(722호)에는 ‘효과적 독서의 요건 - 서양사 바로 톺아보기’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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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하식의 이야기
    2024-04-22
  • ‘2024 제14회 평택 전국밴드경연대회’ 참가자 모집 공고
    2024년 6월 15일(토) 평택대학교 대운동장에서 개최되는 「제14회 평택 전국밴드경연대회」 참가 팀을 모집합니다. 뮤지션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 바랍니다. 1. 주최/주관 : 평택시 / 평택시문화재단, 평택자치신문 2. 참가 자격 ○ 나이, 성별 구분 없이 누구나 참여 가능 3. 접수 일시 ○ 2024년 4월 22일(월) 오전 9시 ~ 6월 7일(금) 오후 6시까지 ※ 심사위원 전원이 예선 심사 시간 연장(1일→2일)을 요청함에 따라 접수 일시를 기존 6월 11일에서 6월 7일로 단축합니다. 많은 양해 바랍니다. ▲ 10회 대상팀 ‘동이혼’ 경연 모습 4. 예선 안내 ○ 예선 : UCC동영상 및 음원 예선을 통과한 참가 팀에 한해서 본선 진출권을 얻게 됩니다. 본선 진출 밴드는 6월 10일(월) 오후 2시까지 개별 통보합니다. ○ 제출서류 : 참가신청서(첨부파일, http://www.ptlnews.kr), 연주 동영상, 단체 사진(언론 보도용) ▲ 11회 대상팀 ‘터치드’ 경연 모습 5. 본선 안내 ○ 장소 : 평택대학교 대운동장(경기 평택시 서동대로 3825) ○ 일시 : 2024년 6월 15일(토) 오전 11시 ~ 오후 4시 ※ 참가팀당 세팅 및 경연곡 포함 20분 배정, 경연순서는 당일 추첨에 의해 진행됩니다. ※ 본선 진출 밴드는 리허설 관계로 오전 11시까지 도착해야 하고, 점심 도시락이 지급됩니다. ○ 심사위원 : 5명(예선 심사 종료 후 공개) ○ 본선 무대 세팅(악기 spec) - 기타앰프: Marshall JCM2000 2대 - 베이스앰프: Ampeg svt 4 pro 1대 - 키보드: Nord Electro3 1대, YAMAHA S90 1대, YAMAHA motif xs7 1대 - 드럼: dw 콜렉터 1대 또는 YAMAHA 1대 ▲ 12회 대상팀 ‘퍼지퍼그’ 경연 모습 6. 참가 접수 안내 ○ e-mail 접수 : ptlnews@hanmail.net ○ 문의 : 평택전국밴드경연대회 조직위원회(☎ 031-663-5959 / 010-4071-7458 / Fax : 031-663-5961) 7. 시상 내역 ○ 대상 1팀 : 상금 500만원 및 트로피 ○ 금상 1팀 : 상금 300만원 및 트로피 ○ 은상 1팀 : 상금 200만원 및 트로피 ○ 동상 1팀 : 상금 150만원 및 트로피 ○ 최우수 보컬상(개인) 1명 : 상금 100만원 및 트로피 ○ 최우수 연주상(개인) 1명 : 상금 100만원 및 트로피 ※ 본선에 진출한 참가 팀에게는 팀별 100만 원의 본선진출상이 지급됩니다. (총 10팀 가운데 수상팀 4팀 제외) ※ 대상 수상팀은 오후 6시 30분부터 진행되는 공개방송에 출연합니다. ▲ 13회 대상팀 ‘먼데이필링’ 경연 모습 8. 기타 사항 ○ 예선 참가곡은 1곡이며, 본선에서도 동일해야 합니다.(기존 곡 / 창작곡, 가요 / 외국곡 등 장르 제한 없음) ○ 드럼, 키보드, 앰프를 제외한 개인 악기는 참가팀에서 준비해야 합니다. ○ 본선 진출팀은 시상금 및 본선 진출비 수령 관계로 당일 신분을 확인할 수 있는 신분증을 지참해야 하며, 시상금은 입상팀 계좌로 일괄 입금됩니다. ○ 이전 대회 본선 진출 참가 팀도 입상하지 못한 경우에는 3회에 한하여 대회에 참가할 수 있습니다. ○ 태풍 및 기상 이변 시에는 평택시 서부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에서 대회가 진행됩니다. ※ 붙임 제14회 평택 전국밴드경연대회 참가신청서 1부. 끝. ■ 주최 : 평택시, 주관 : 평택시문화재단/평택자치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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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22
  • [세상사는 이야기] 효과적 독서의 요건 ‘한국철학을 읽는 방법’ (6회)
    한국철학을 읽는 방법은 따로 있을까? 진보성 교수에 따르면, 철학책이 어려운 까닭은 철학을 위한 책으로만 읽는 데 있다고 진단한다.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문제의식을 지닌 채 선인들의 사유와 발자취를 따라간다면 자연스러운 지적 여행이 될 수 있다는 조언이다. 저자가 제시한 선행과제는 근현대사의 부침 속에서 생소해진 한국철학의 정체를 파악하는 일이다. 한국철학서는 고유의 전통사상과 근대 이후 현대사상의 영역으로 나누어 읽어야 한다. 예컨대 비록 전래 경로를 밟았으나 토착화된 유교, 불교, 도교 사상은 한국화라는 측면에서 접근해야만 원류와는 다른 우리만의 특징을 찾아낼 수 있다. 시대와 인물별로 한국철학을 섭렵하는 길도 있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각 시대를 관통하는 사상과 정신을 알아야 우리네 현주소를 해석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아울러 한국철학의 논쟁사를 중심으로 살펴보면 철학이 어떻게 체계적인 이론으로 발전해 왔는지를 알 수 있으며, 역사적 관점에서 시대 배경을 통해 당대 사건을 조명하면 좀 더 입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다. 한국철학의 주요저작도 눈여겨볼 만하다. 지은이는 한사코 색다른 시각으로 한국철학을 보라고 하지만 실생활에 소용이 되는 시사상식조차 소홀한 마당에 이른바 문사철(文史哲)로 불리는 인문학, 그중에서도 철학의 지명도는 현저히 낮아 시중에 철학의 대중화를 위한 기치만 내걸려도 다행이라고 여기는 데 따른 고언이다. 거두절미하고 일단 철학책은 쉽게 써야 읽힌다. 인간의 보편적인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룸으로써 사람다움의 가치를 찾고 공동체적 삶을 주체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이 철학을 공부하는 연유이거니와 힘들어도 기어코 넘어야 할 지점이 곧바로 철학이 가진 심오한 지적 활동의 영역이어서다. 즉, 오랜 세월 사유하며 축적한 학문의 지속성을 바탕으로 흘러온 지성사의 물길이 지표나 지하를 통하여 면면히 이어져 내려왔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를 두고 ‘한국철학사의 지도’라는 이름을 붙였다. 철학책을 대할 때는 사상의 연결점을 퍼즐에 맞추듯이 읽으라는 지침이다. 보편적인 사실이 지엽적인 것의 총체이듯이 철학 일반의 대전제에서 한국철학의 실체를 거론하기 위해서는 면밀한 검토와 심층적인 접근이 요구된다는 주문이다. ▲ 평택시 중앙동 일대에 피어난 천일홍 꽃무리 한국철학이라는 명칭은 근대 이후 서양철학과 동양철학을 나누는 과정에서 나타났다. ‘지혜(sophia)를 사랑(philos)한다’는 합성어의 원의(原義)를 보면 애초에 일본이 애(愛)철학이나 희(希)철학으로 번역한 사유를 알 듯하다. 우리 역시 예전에는 도학(道學)이나 이학(理學)이라는 이름을 썼다. 성리학이 바로 그것인데 이는 성명의리지학(性命義理之學)의 준말로써, 인간이 심성을 철저히 수양하여 도덕규범과 자연법칙에 맞는 사람의 도리를 연구하는 학문을 뜻한다. 곧 직관과 체득을 중시한 동양철학은 실험과 실증을 내세운 서양철학과는 구별된다. 다만 근대와 전근대의 틀에서 동양철학을 뒤떨어진 대상으로 인식하는 건 명백한 잘못이다. 한국철학은 격변기의 시대적 조류를 거슬러 올랐으나 창조적 수용을 통한 재창출의 가치를 지켜왔다는 점에 착안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논지다. 크게는 한국전통철학과 한국현대철학으로 나눌 수 있고, 유가철학, 도가철학, 노장철학, 불교철학이라는 면에서 한중일이 공유하는 측면도 강하다. 조선 후기에 대두한 실학에 대해서는 지적 패러다임의 전환이라는 평가를 내릴 수 있다. 한국철학을 사상별로 살펴보면 유교의 영향력이 지대했다. 정교일치 사회에서 통치 이데올로기 성격을 지녔기에 학문적으로는 유학이라고 불렀다. 2,500년의 유학사(儒學史)를 집대성한 사서삼경을 비롯해 불교 경전을 권하는 것은 거기에 한반도의 역사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도교의 경우는 역사상 교단을 두지 않아 수련과 의술로 여기는 풍조가 있으나 중국 민간신앙을 기반으로 음양오행설에 의거해 점성술로 발전한 문화적 복합체로 볼 수 있다. 한국철학을 시대별로 분류하는 것도 가능하겠으나 그보다는 인물별로 들여다보는 것이 외려 구체적일 것이다. 유불도의 균형감을 이뤘던 삼국의 상황에는 원효가 지향한 일심(一心)과 화쟁(和諍)의 공이 컸다. 고려시대에는 정치, 경제, 문화 등 사회 전반을 불교적 요소로 채웠고, 조선시대에는 성리학으로 대표되는 유학이 흥왕했다. 이황과 이이가 주도한 주자학도 같은 범주에 속한다. 조선 후기에 들어서는 북학파가 학맥을 이루면서 개화사상으로 이어지다가 구한말 동학사상, 시천주사상, 양명학까지 나서서 개혁을 주도했으나 동력이 떨어져 식민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 프로필 - 고교생에게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퇴임 후 기고활동을 이어가면서 기독교 철학박사(Ph.D.) 학위를 받았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을 운영합니다. - 정론지 <평택자치신문>에 “세상사는 이야기”를 15년째 연재하는 중입니다. ※ 다음호(721호)에는 ‘효과적 독서의 요건 - 한국사 제대로 꿰뚫기’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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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12
  • [세상사는 이야기] 효과적 독서의 요건 ‘무슨 철학책이 좋을까’ (5회)
    얘기만 꺼내도 골치 아픈 철학서는 무슨 책부터 읽어야 할까? 이준석 교수에 의하면, 철학은 나를 지탱해주는 튼튼한 밧줄이자 삶의 부조리와 허무에 정면으로 맞서 이겨내는 일이어서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길이라고 규정한다. 그래서일까? 꽤나 무겁게도 철학에 입문하는 학생들을 위해 몇 가지 책들을 시대별 난이도별로 소개하겠다는 약속과 함께, 철학은 홀로 수련하기는 어려우므로 반드시 도움을 받아야 하며, 우리말로 된 철학서 중에서 좋은 책을 찾는 데는 안목이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런데 초장부터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만나도록 구성한 바는 색다르다. “이 초월적 이념들에 관해서는 본래, 우리가 범주들에 관해서 제공할 수 있었던 것과 같은 객관적 연역이 가능하지 않다.”라는 말에 이어서 헤겔의 『대 논리학 2권』을 통해, “삶에서 우리는 삶이 이념이지만 동시에 삶은 아직 이념의 현존재의 진정한 서술이나 방식이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나는 것을 보았다.”라고 진술하고 있으나 무슨 뜻인지는 아리송하다. 생략해버린 들레즈/기다리의 천 개의 고원을 보면 정신적 혼란이 일어날 지경이다. 저자의 말마따나 “독서백편의자현”이란 옛말은 거짓말임이 드러난 셈이다. 거듭해 읽어봐야 철학에서 멀어질 따름이다. 바로 그것이 좌절할 수 있는 이유로되 다만 쉬이 포기하지는 말고 긴 호흡을 갖고 시나브로 철학의 맛에 길들이기를 소망한다는 발언에 고무된 건 적실하다. 응당 철학 공부를 위한 주춧돌을 놓으라는 말이다. 그래야 철학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단다. 대상을 모른 채 호불호를 가릴 수는 없잖은가? 철학 서적을 펼치자마자 난해하다 못해 난삽하기조차 하다면 초심자들은 이내 책장을 덮을지도 모른다는 진단이다. 스티븐 로의 『철학학교 1,2』를 권한 건 그래서다. 문제 상황을 벌여놓고 다양한 접근법을 통해 철학하기를 보여주며, 나이절 워버튼의 『철학의 근본문제에 관한 10가지 성찰』 역시 비슷한 취지의 입문서이긴 해도, 그보다 가벼운 책은 오가와 히토시의 『철학의 교실』이란다. 그러나 주요 개념과 친해지지 않고서는 철학의 빗장을 풀기 어렵다. 다른 맥락에서 말하는 존재, 실체, 무한 인식, 진리, 필연과 같은 전문용어를 역사적으로 접근하면 서서히 철학의 집에 입주할 날이 다가올 테니까. ▲ 평택시 중앙동 일대에 피어난 만수국 꽃무리 예컨대 고대철학에서는 그리스의 소크라테스를 빼놓고 논의를 계속할 수 없다. 그는 한 권의 책도 남기지 않았으나 제자인 플라톤의 대화편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주로 일상어로 대화를 이어간 플라톤을 읽고 난 뒤 여력이 있으면 다음 행위를 전개하라는 주문인데, 『소크라테스의 변명』, 『에우튀프론』, 『크리톤』이 그것이다. 이상 세 권의 저서를 소화했다면 『향연』, 『파이돈』, 『메논』을 읽은 다음 『국가』까지는 독파하기를 권한다. 그의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는 여러 가지 주제에 걸쳐 수많은 저작을 남겼으나 번역서가 많지 않은 게 걸림돌이다. 고대와 중세를 잇는 철학자로는 플로티노스와 보에티우스를 들 수 있다. 중세의 경우, 교부철학의 후기를 대표하는 아우구스티누스는, 『고백록』, 『자유의지론』, 『신국론』, 『영혼의 위대함』, 『삼위일체론』, 『그리스도교 교양』, 『참된 종교』, 『선의 본성』, 『영혼 불멸』, 『독백』 등을 남겼다. 스콜라 철학의 중심에 서 있는 토마스 아퀴나스는 『신학대전』, 『지성단일성』, 『신앙의 근거들』, 『진리론』 등을 남겼고, 아베로에스의 『결정론 논고』는 중세철학의 깊이를 더해주었다. 근대로 넘어오면서 인간의 이성은 신으로부터 독립했다. 중세철학은 신학을 위한 도구로써 학문적 근간이 되지 못한 데 대한 반작용이었다. 17세기에 이르면 유럽 대륙은 수학적 합리주의를, 영국 철학은 관찰에 의한 경험주의를 따라갔다. 근대철학의 시조로 간주되는 데카르트 이후로는 스피노자를 꼽는데 스토아철학을 익힌 독자라면 무난하게 읽어낼 수 있다. 18세기 후반에는 철학의 흐름이 임마누엘 칸트에게로 집중되었다. 그 이후의 거목으로는 관념론에 천착한 헤겔이 있으며, 19세기 후반에 태동한 사회주의는 철학적으로는 다듬어지지 않았다. 현대철학 세계는 관념적이고 사변적인 틀에서 벗어났다. 20세기 영국에서는 전통적인 철학과는 단절하고 논리실증주의에 중점을 두는 경향이 나타났다. 이는 결국 20세기에 들어 영미권에서 분석철학으로 이어지며, 유럽에서는 실존주의와 같은 철학이 발전하고 있었다. 그 시점에서 철학 사조의 변질을 우려하며 철학의 본령을 지키려던 학구파도 생겨났다. 현대철학의 진보 내지는 논란의 여지를 남긴 인물로는 삶의 철학(생철학)을 우주로 확장한 앙리 베르그송이 있다. ■ 프로필 - 고교생에게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퇴임 후 기고활동을 이어가면서 기독교 철학박사(Ph.D.) 학위를 받았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을 운영합니다. - 정론지 <평택자치신문>에 “세상사는 이야기”를 15년째 연재하는 중입니다. ※ 다음호(720호)에는 ‘효과적 독서의 요건 - 한국철학을 읽는 방법’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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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09
  • [세상사는 이야기] 효과적 독서의 요건 ‘읽어본 서책 활용하기’ (4회)
    읽은 책을 어떻게 활용할 참인가? 이권우 평론가에 따르면, 첫째는 에세이 쓰기로 책 내용을 요약하며 인상적인 구절이나 글쓴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글로 남기는 것이다. 둘째는 독후감 쓰기로 책을 읽고 느낀 점을 단상으로 정리하는 일이다. 셋째는 서평 쓰기로 객관적인 근거를 들어 조목조목 비판하는 작업이다. 이처럼 독서 후 글쓰기를 통해 얻을 수 있는 효과는 무엇일까? 앞서 언급한 지행합일의 길을 앞당길 수 있다. 그런데 왜 여태껏 실행하지 못했나? 우선은 다매체에 시달리는 환경적 요인을 들 수 있다. 그중에 핸드폰이나 인터넷은 생각의 기반을 좀먹는 주범이다. 기껏 공들여 읽은 내용이 단 며칠 만에 백지장이 된 원인을 이제야 찾아낸 셈이다. 집안 살림에 양육을 담당하는 주부라면 더 집중하기 힘들 것이다. 이를 해결할 방안으로 저자는 사전에 사유의 공간을 비워놓고 정성껏 읽으라고 권한다. 곧 읽는 행위는 수동적이므로 능동적으로 창조적 글쓰기를 가미하라는 주문이다. 이랬을 때라야 우리네 독서문화의 맹점을 스스로 고쳐 단지 이해하기로 끝나지 않고 행동으로 옮아간다는 역제안이다. 글쓰기에 자신이 없다면 신문에 나는 칼럼을 꼼꼼히 읽으란다. 이미 지난 일이지만 과거 프랑스처럼 전교생을 알짜, 예비, 잉여로 나누는 반인간적 횡포에도 분노할 줄 모르는 의식이 아직도 우리 사회에 비일비재하지는 않은지 살펴보라는 경고다. 기실 교실이 붕괴된 이면에는 학교 현장이 더불어 사는 법을 가르치기보다는 인격체를 두고 점수로 줄을 세웠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선택과 집중이라는 교육방식을 빙자해 아이들을 성적으로 차별한다는 것은 지독한 지적 인종주의라는 질타로도 모자라 저자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지를 소환했고, ‘이것은 교육이 아니다’라는 특집을 소개하며 프리모 레비에게 “이게 인간인가?”라고 캐묻게 한 나치즘까지 전선을 넓히고 있다. 경쟁 만능주의를 고수하려는 교육정책이 가져온 폐해를 적나라하게 파헤치지 못하는 세태를 향하여 제발 공분이라도 일으켜야 하지 않느냐는 울분이요 포효에 가깝다. 급기야 홍세화의 편집을 내세워 스테판 에셀이 제기한 『분노하라!』를 일컬어, “창조하는 것, 그것은 곧 저항이며, 저항하는 것, 그것이 곧 창조다.”라는 인용으로 끝을 맺는 이유였다. ▲ 평택시 중앙동 일대에 피어난 벌개미취 꽃무리 우리는 방금 깨어있는 시민들의 각성을 실제 참여로 이끌려는 일련의 시도를 접했다. 아무리 글쓴이의 통렬한 비판이 진정성 있게 전달되어도 설득력이 증명되는 길은 실천하는 양심뿐이라는 일갈이다. 그런 면에서 지행합일은 언행일치와 상통하는 가치라고 볼 수 있다. 저자는 오에 겐자부로가 겪은 아픈 가족사의 독후감을 일례로 든다. 지적장애아인 자식으로 인해 우러나온 『개인적인 체험』이 흡인력 있게 다가온 연유를 담담히 밝힌 참이다. 원문에서 보여준 파격적 속도감마저 번역문의 장광설로 인해 손상을 입긴 했으나 그 일부분을 소개하면, 자식의 심각한 장애 앞에서 멈춘 부모의 일상을 문득 몽환적이라 쓰고 끔찍한 비상이라고 읽는다는 고백이다. 일테면 코앞에 놓인 현실이 무섭도록 싫은 나머지 진저리 나는 비현실로 느껴지더라는 토로다. 그러니 광적 유희로 돌파구를 삼은들 살기만 감돌 뿐이다. 다행히 사지를 넘나든 안달이 혈육을 향한 온기로 바뀌긴 했으되 인간의 속성적 이중성이 줄곧 개관천선으로 굳어진 양상은 아니다. 결국 상징적 역설은 형벌의 고통을 대신하지 못한다는 교훈일 따름이다. 저자가 일러준 서평은 요령껏 내용을 정리하면서 책의 장단점과 그 위상까지 짚어주라는 주문이다. 커뮤니케이션 전문가인 김호와 뇌과학자인 정재승의 『쿨하게 사과하라』의 경우, 제 때 사과하지 않아 여론의 뭇매를 자초한 사례도 시각을 달리하면 재판에 유리한 국면은 무죄 추정의 원칙이 살아있을 때까지는 최대한 안면을 몰수하는 편이 유리하다는 분석이다. 그러고 보니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 막지 못한 건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탓인 게다. 다만 사과할 때는 단번에 구체적으로 책임을 인정하며 개선 의지와 보상까지 묶어 용서를 구하라고 권한다. 한국처럼 체면을 중시하는 사회에서 잘잘못을 주고받기는 쉽지 않되 일단 실행하면 리더십이 강화되는 등 서로에게 유익이 된다는 취지다. 곧 미디어가 발달한 시대에 진실을 호도해서는 사태 악화를 불러온다는 지점을 간과하지 말라는 충고다. 고로 추상적이고 고답적인 주제의 접근도 주저하지 말며, 까다로운 논제일수록 더 분석적이어야 한다. 뒤에서 언급한 서평의 요지는 조선조에서 출사한 뒤 퇴로를 막은 정치적 구조가 사화를 발화시킨 원인이라는 진단이다. ■ 프로필 - 고교생에게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퇴임 후 기고활동을 이어가면서 기독교 철학박사(Ph.D.) 학위를 받았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을 운영합니다. - 정론지 <평택자치신문>에 “세상사는 이야기”를 15년째 연재하는 중입니다. ※ 다음호(719호)에는 ‘효과적 독서의 요건 - 무슨 철학책이 좋을까’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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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30
  • [세상사는 이야기] 효과적 독서의 요건 ‘평자가 말하는 독서법’ (3회)
    어려운 책을 어떻게 읽을 것이냐에 대한 비법만큼 궁금증을 유발하는 이슈가 있을까? 이권우 평론가는 독서는 기본적인 문해력을 바탕으로 단계별 독서법을 권면한다. 통상 리터러시(literacy) 능력은 실용문을 이해하는 수준을 가리키므로 그 이상의 내용을 해독하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저 심심풀이라면 모를까 굳이 읽을 필요성을 느끼지 않으면서까지 책을 손에 잡을 이유가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러기에 저자의 눈은 시종 청소년들을 주시하고 있다. 안타까운 건 그들의 관심이 유난히 독서의 기술에 쏠려있다는 점이다. 자칫 젊은이 특유의 도전정신마저 퇴색하는 게 아닌지 내심 근심스럽다는 말이다. 필자의 경험에 따르면 이런 경우도 보았다. 제출한 독후감에다가 지은이더러 잘난 척하더라는 표현이었다. 좀 쉽게 쓰지 뭐가 이토록 현학적이냐는 어투는 그나마 정화된 표출에 속한다. 급기야 저자를 겨냥한 원망은 자신을 향한 책망으로 이어지고 만다. 이는 응당 공들일 사안을 외면하는 풍조와 관련되어 있다. 상책은 내게 너무 난해한 책은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자각이다. 물러섬이 때로는 다가섬이다. 또래에게서 지혜를 구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고민의 공감대를 서로 나누라는 조언이다. 예로부터 공부란 늘 새롭고 약간은 버거운 것을 깨달아가는 과정이어서 그렇다. 앎의 영역을 늘려가기 위해서는 개척자적 정신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 존재하는 만병통치약은 없다. 무슨 일이든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나가야 동티가 나지 않는 법이다. 알고 보면 전문서적의 세계도 수능시험의 영역과 별반 다르지 않다. 목차를 보고 전체주제를 알아차리듯이 지문을 읽고 소주제를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저자가 개념어 사전을 준비하라는 권고와 맥이 닿아있는 대목이다. 복잡한 글월을 읽어내려면 취지를 뒷받침하는 논리를 꿰뚫고 있어야 하니까 말이다. 문제는 행간의 뜻을 놓치다 보면 자꾸만 포기하고픈 유혹이 생긴다는 점이다. 글쓴이는 이를 두고 악마의 소리라고 단정한다. 퍽 버겁더라도 참을성 있게 끝까지 읽어내는 뚝심이 성취감의 요체라는 격려다. 고로 바람직한 독서는 속독이 아니라고 나무란다. 5분 안에 승부를 보는 영화와는 다르다는 타이름이다. 책이란 집을 짓는 일과 쏙 빼닮았으므로. ▲ 평택시 중앙동 일대에 피어난 마가렛 꽃무리 그렇다면 대중이 선호하는 실용서와 인문서를 대하는 태도는 어떻게 달라야 할까? 다소 불친절한 서두보다는 중간쯤에서 해답을 찾으라고 권유한다. 책을 읽는 도중에 간간이 목차를 확인하는 요령도 일러둔다. 논의의 현주소가 어디쯤인지 그 위상을 확인하는 일이 뜻밖의 도움이 되어서다. 아예 결론 쪽으로 눈을 돌려도 괜찮다. 역으로 추적하다가 의외라 싶게 의문점이 풀리는 수도 있다. 그래서 저자가 제시하는 이른바 책벌레표 ‘독서법 십계명’은 참고할 만하다. 첫째, 책을 무턱대고 읽지 말고 천천히 살펴보라. 둘째, 연필을 들고 읽으라. 셋째, 접속어에 주의하라. 넷째, 같은 주제의 책을 동시에 읽어보라. 다섯째, 그 주제와는 다르게 주장하는 책도 함께 읽어보라. 여섯째, 골라 읽는 재미를 들여놓으라. 일곱째, 어쨌든 천천히 읽으라. 여덟째, 자투리 시간을 십분 활용하라. 아홉째, 100권 읽기에 도전해보라. 열째, 독서토론을 기록하라. 구태여 주제를 삶과 사회에 발맞춰 재검토하라는 건 그동안 실천하지 못했을 뿐 몰라서가 아니어서다. 아시다시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역사가 퇴행하는 주범은 늘 게으름이었다. 요컨대, 지은이의 학력이 아닌 실질적인 이력, 추천서나 요약문, 고갱이를 모은 머리말, 설계도인 목차, 독서 중 가치평가를 남기는 습관은 부연과 예시의 주목도를 높이고, 요약과 각주는 주춧돌에 해당한다. 그렇지만 내용에 몰입은 하되 비판 정신을 놓치지는 말란다. 저자가 명명한 ‘이크의 책읽기’야말로 인식의 지평을 넓혀주는 미덕이기에 발췌독의 효능감, 즉 음미-회상-성찰-전망 순으로 소화하라는 주문이다. 눈길을 돌려 이이(李珥)의 『격몽요결』(擊蒙要訣)을 되새겨보는 일은 선인들이 필사를 겸한 독서법의 달인들이어서다. 고인들 가운데 유독 공부를 위한 독서론에 중점을 둔 이유일 텐데, 몽매한 이들을 가르치는 비결이라는 제목에서 보듯이 자녀교육의 초점을 정독에 두었다는 점은 과거시험, 곧 입신양명이라는 시대 상황을 감안하더라도 유의미한 채근이다. 선조들은 인간의 도리를 깨우쳐주려는 방편으로 교학상장의 장을 마련했고, 거기서 사서삼경을 비롯한 동양철학의 경지를 섭렵하도록 종용한 참이다. 지적 포만감은 무게를 안고 전열을 가다듬어 지행합일(知行合一)의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 프로필 - 고교생에게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퇴임 후 기고활동을 이어가면서 기독교 철학박사(Ph.D.) 학위를 받았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을 운영합니다. - 정론지 <평택자치신문>에 “세상사는 이야기”를 15년째 연재하는 중입니다. ※ 다음호(718호)에는 ‘효과적 독서의 요건 - 읽어본 서책 활용하기’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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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하식의 이야기
    2024-03-25
  • [세상사는 이야기] 효과적 독서의 요건 ‘어떠한 책을 선택할까’ (2회)
    어떤 책을 읽을 것이냐에 대한 화두는 선뜻 해묵은 숙제 보따리를 떠올리게 한다. 이권우 평론가에 의하면, 인문학이야말로 지금 당장의 효용성을 떠나 삶의 원리를 알려줌으로써 생활의 동력을 길러주는 길이라고 일러준다. 각계에서 선별한 고전들은 인류의 지성사를 지탱해온 정신적 자양분이기 때문이다. 관건은 관련 서적에 대해 어느 정도는 관심을 두어야 한다는 전제다. 그렇다고 해서 인문학 열풍이라는 시류에 영합하거나 일시적으로 편승하는 건 곤란하다. 입문자일수록 다소 더디더라도 한 걸음씩 전진하려는 의지가 중요하므로 무한경쟁을 부추겨 승자독식을 옹호하는 의식구조는 타파해야 한다. 인문학에서는 돈을 매개로 각 분야의 인사들을 동원해 무자비하게 줄을 세우는 방식의 신자유주의를 철저히 배격한다. 미래공동체의 가치는 늘 신명에 성실성을 동반하는 곳에서 싹을 틔워 왔다. 다들 까다롭다고 여기는 동서양 철학의 기본 성격을 파악한 다음 유사성과 차이점을 간추려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 요체는 수단이 목적을 앞지를 수 없고, 진정한 목표가 없이는 지속성을 갖기 어렵다는 점이다. 기업 혁신을 주제로 저자와의 대화를 시도하며 부가가치를 창출하려는 일련의 움직임도 있었다. 이는 한때나마 독서경영이라는 과제를 떠안겼으나 사회 전반의 흐름을 주도하지는 못했다. 각자에게 필요한 지적 포만감을 제공하기에는 여러모로 미흡해서였다. ‘군자불기(君子不器)’라는 논어의 한 구절이 가슴에 와 닿는 건 그래서다. 군자는 변형 가능한 그릇이어야지 잠재력을 제한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작금의 상황은 어떠한가? 여전히 학벌을 중시하고 성과지상주의를 공고히 하는 방향으로 치닫고 있지는 않은지 우려를 낳게 한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어찌할 참인가? 공자는 모름지기 전문가들이 그 분야의 기술만을 익혀서는 안 된다고 가르친다. 아울러 그는 인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위정자의 행동거지부터 하늘의 뜻에 어긋나지 않나 돌아보라고 일침을 놓는다. 하지만 그릇이란 이미 그 쓰임새가 정해져 있는 만큼 요지부동이어서 눈앞의 이익만을 좇는 것이라는 주장에 일리는 있으나, 속담을 풀어 그릇(뒤웅박)마다 무엇을 담느냐는 각자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 평택시 중앙동 일대에 피어난 꽃무리 논지는 코앞의 영리를 위해 필요한 책만 골라 읽는 행위는 곤란하다는 일갈이다. 요동을 치는 국제시장환경의 변화에 적응하기 위하여 책에서 획기적 아이디어를 찾겠다는 발상이야 가상하되, 과연 대증요법으로 경영 패러다임이 바뀔지는 미지수이므로 동양고전을 읽어보라는 권유다. 기업경영은 전쟁이나 다름없기에 인문학에서 시사하는 관계설정이 가족경영에서 출발하여 기업으로 옮겨가고 국가경영이 세계로 뻗어간다는 논리 전개다. 이른바 상동성(相同性)을 발견할 수 있다는 주장인데, 상동성이란 같은 종이나 다른 종 개체들 사이에 존재하는 유전자 및 단백질의 유사한 성질을 말한다. 즉 공통의 형태를 계승한 종들은 대응하는 부분에서 형태학적으로 같다는 뜻의 전문용어다. 논지는 아픈 속살을 들춰 세상을 바로 알고 더 나은 미래를 꿈꾸려거든 고전을 펼치라는 게 저자의 처방이다. 이를테면 자동차에 기름을 넣기 위해 그때마다 주유소에 가지 말고 대륙붕을 찾으라는 충고다. 곧 독서의 본령은 궁극적으로 진리를 발견하는 데 있으니 책 읽는 자에게는 덤처럼 지식과 교양의 축복이 임한다는 덕담 수준이다. 따라서 저자는 필독도서목록에 의한 독후감에 대해서는 부작용을 경계한다. 개개인의 형편을 도외시한 일방적 강요는 일종의 폭력이라는 진단이다. 예상한 바와 같이 출발점은 흥미를 느낄 만큼의 관심사에 달려있다. 남의 눈을 의식하지 말고 내 수준에 맞는 상황별 도서를 추천한다는 취지다. 무릇 본인에게 좋은 영향이 있다 싶으면 머뭇거리지 말고 각개격파하라는 조언이다. 소위 사회적 양서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제아무리 명작이라도 본인이 싫어하면 도리가 없다는 말이다. 누구에게든 걸음마 시절은 있는 법이다. 다만 거의 모든 입문서는 만만히 볼 수 없다고 진단한다. 일정 부분 통과의례를 치를 각오를 다지라는 통보다. 실은 실속도 없이 젠체하는 사람치고 제대로 된 걸 보기 어렵다는 경험칙인 동시에 그만치 재밌는 입문서 자체를 만나기 쉽지 않다는 현실론이기도 하다. 즉 서양철학의 경우는 역사성에 주목하고 동양철학은 동시성을 강조한다. 전자의 통시적 철학사와 후자의 공시적 핵심사상이 중요하다. 내친김에 저자는 적합한 책들을 나열해놓았다. 자세한 목록은 용어사전과 교재를 참조하기 바란다. ■ 프로필 - 고교생에게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퇴임 후 기고활동을 이어가면서 기독교 철학박사(Ph.D.) 학위를 받았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을 운영합니다. - 정론지 <평택자치신문>에 “세상사는 이야기”를 15년째 연재하는 중입니다. ※ 다음호(717호)에는 ‘효과적 독서의 요건 - 평자가 말하는 독서법’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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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하식의 이야기
    2024-03-20
  • [세상사는 이야기] 효과적 독서의 요건 ‘유용한 독서의 중요성’ (1회)
    이 글은 기본적으로 방송대 교재인 『독서의 즐거움』의 요약이로되, 필자의 의견도 얼마큼은 첨가할 것이다. 제1강을 집필한 정준영 교수에 따르면, 여기서는 초보자들의 독서에 유용한 방법론을 제시하였다. 기존의 관련서와는 달리 지나친 체계화를 지양하고 평이한 문장으로 접근했거니와 전공 분야에 들어가서도 관심사를 이어갈 수 있도록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선택한 책을 펴는 순간 모르던 사실을 알게 되고 사고의 지평을 확장시키는 일이야말로 희열에 속하겠지만, 까다로운 글자들의 조합이 단지 기호의 나열로 다가온다면 또 하나의 짐을 얹은 격이라는 지적이다. 다만 효과적 독서를 위한 조건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나날이 다양화, 전문화, 세분화하는 학문을 죄다 따라잡는 데는 한도가 있을 것이다. 그 지점은 저마다의 노력을 경주해 도서관에서 해결하기를 바란다. 부디 이 연재물을 통해 평소 독서행위에 부담감을 느끼는 이들에게 일종의 길잡이가 되었으면 좋겠고, 처음 학습안내에 나온 말처럼 흐트러진 머릿속을 정리해주고 행복한 상상의 세계로 인도한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다. 독서의 중요성에 대해 부인하는 사람이 있을까? 하지만 요즘 주위에서 흔히 접하는 풍경은 책 대신 핸드폰이 대세인 걸 인정할 수밖에 없다. 각 분야의 저술가는 물론 출판업계가 극심한 불황에 허덕인다는 하소연은 차치하고라도 논리력에 비판적 사고를 키워야 창의력이 함양된다는 설득력이 무색할 지경이니 말이다. 차라리 취미가 독서였다는 시절이 그립고 옆구리에 책 한 권쯤은 끼고 다녀야 교양인 축에 낄 때가 나았다는 푸념이 흘러나올 정도라면 현대인들은 몰입의 기쁨을 어디서 얻을까? 그나마 전자책이었으면 다행일 테지만 거리를 오가며 만나는 사람들이 즐기는 창구는 게임인 경우가 많다. 우스개로 독서나 오락이 선을 따라가는 행동이긴 마찬가지나 닐 포스트먼의 주장처럼 인쇄술 보급 이후 책을 읽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의 구분이 생겨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단적인 예로써 선거철만 되면 집단 지성보다는 군중심리가 기승을 부리는 양상도 이 점에 기인하는 것으로 판단한다. 이는 마셜 맥루언의 말마따나 서책을 통해 내면적인 개인주의를 함양하는 기회마저 놓쳐버린 결과는 아닌가 한다. ▲ 평택시 중앙동 일대에 피어난 꽃무리 그도 그럴 것이 저자가 꼬집은 내용 중에는 책과 권력의 상관관계를 파헤친 대목이 눈길을 끈다. 예나 지금이나 독재자들은 정보를 독점함으로써 통치권을 공고히 했다는 이야기다. 분서갱유의 폭력성은 말할 것도 없고 버젓이 금서목록을 강요한 한국의 과거사도 씁쓸하다. 기실 종이책의 역사는 105년경 후한의 채윤에 의해서인데, 종이는 습기에 취약한 파피루스나 생산이 힘든 죽간, 양피지, 비단 등의 약점을 극복한 획기적 발명품이었다. 그로부터 751년 무렵 중앙아시아로, 793년 무렵에는 바그다드로 전파되었으나, 유럽인들이 제한적으로 종이를 사용한 때는 12~13세기였다. 이윽고 17세기에 들어서야 독서인구가 늘어나기 시작했고 도서 양산이 가능해진 건 19세기 이후의 일이었다. 놀랍게도 11세기만 하더라도 책 한 권 만드는 비용이 무려 1만 달러(한화 1,300만 원 상당)에 달했다니 믿거나 말거나 아니랴. 그 밖에 필사자나 구연자의 위상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을 수 있겠으나 하여간 일반인들이 책자를 접하기는 무척이나 힘들었다. 주목할 대목은 낭독과 음독에서 점진적이나마 묵독으로 전환했다는 지점이다. 저자는 소수의 양서보다는 다독을 강조하고 있다. 글 쓰는 능력을 배양하는 데도 도리어 광범위한 독서가 도움이 되거니와 비판적 사고를 기르기 위해서는 다양한 책을 접하는 편이 더 효과적이라는 제안이다. 아닌 게 아니라 전공에 관련된 내용을 본격적으로 섭렵하는 곳을 대학이라고 볼 때, 기억력에 한계가 있는 사람으로서 기록물이 없이는 심층적인 연구가 어려울뿐더러 전문가들이 집대성해놓은 포괄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논증력을 키우는 길이 학문을 닦는 기본기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면에서 표준어의 제정은 근대시민국가를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감당했다. 영어의 경우 1755년 존슨 박사(명예)가 주도하여 사전이 편찬되고 문법서들을 출간하면서부터 세계 공용어의 기틀을 다졌다고 하면 무리수일까? 물론 독서라는 행위가 반드시 학자적 자질을 담보하기 위한 지름길은 아니겠지만, 비록 실용성은 좀 떨어지더라도 단편적 즐거움이나 교양을 쌓으려는 독서 또한 몰입을 위한 전 단계로는 의미가 있을 수 있어서다. 명백한 바는 독서를 통해 느끼는 뿌듯함이야말로 즐거운 인생의 동반자라는 점이다. ■ 프로필 - 고교생에게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퇴임 후 기고활동을 이어가면서 기독교 철학박사(Ph.D.) 학위를 받았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을 운영합니다. - 정론지 <평택자치신문>에 “세상사는 이야기”를 15년째 연재하는 중입니다. ※ 다음호(716호)에는 ‘효과적 독서의 요건 - 어떠한 책을 선택할까’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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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하식의 이야기
    2024-03-08
  • [세상사는 이야기] 북유럽 기행 ‘리투아니아의 독자적 행보’ (7회)
    이윽고 북유럽 7개국을 돌아보는 마지막 나라에 접어들었다. 한때는 한 나라처럼 지내기도 했을 텐데 국가명이 바뀌었다고 풍광마저 이토록 차이가 나는 데는 차분히 역사적 맥락을 짚어보아야 하리라. 농사만 해도 아까까지는 귀리 재배에 중점을 두었다면 이제부터는 보리, 유채, 밀밭이 골고루 지나간다. 심심찮게 보았던 나무 전봇대는 바로 곁에서 베어낸 반듯한 소나무인 듯. 게다가 놀리는 땅이 거의 없는 걸 보면 국가운영은 일단 합격점을 주어도 될 참이다. 그럴 만한 것이 리투아니아(Republic of Lithuania, 면적: 한국의 65%)는 상주인구 약 270여 만에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달러를 넘겨 먹고사는 데는 지장은 없는 상태. 다만 현지 가이드에 따르면 대놓고 우크라이나를 응원하고 민감한 대만 문제에서도 중국과 척지는 등 눈치 없이 강대국의 심기를 건드리는 정책을 밀어붙여 걱정이란다. 그렇다고 해서 현실적으로 겁이 없는 건 아니라는 부연에 헛웃음보다는 향후 어떤 허허실실의 처세를 취해나갈지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는 말로 포문을 갈음하고자 한다. 인구 56만의 빌뉴스는 이 나라의 수도. 붉은 벽돌로 지은 트라카이성으로 가는 데는 약 40분이 걸린단다. 일식 셰프가 직업이라는 가이드는 말재주는 없어도 우직한 사람이었다. 마디가 끊어지는 걸 보니 투박한 대구 사나이. 일행이 요트를 타는 동안 나는 몸이 아픈 아내의 손을 잡고 천천히 성으로 향했다. 갈베호수 위에 비친 성곽은 한 폭의 그림이라는 평이 아깝지 않다. 다만 유람선에 올라 사방에서 감상할 만한 경치인지는 각자가 분별할 몫이로되 미리 돌아본 바로는 오히려 성내 입장료에 선택지를 부여하는 편이 더 합리적일 듯싶었다. 체력에 한계를 느낀 아내가 앉아 쉬는 동안 그리 멀지 않은 성 둘레를 돌아보니 적의 공격에도 쉬이 무너지지 않을 만큼 탄탄히 지은 도피성인 건 맞다. 발트해에서 흑해에 이르는 넓은 영토를 호령하던 비타우타스 공작이 거주하다가 사망한 곳이라는데, 14~16세기에는 동유럽 전역을 지배하던 제국이었으나 이후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일부가 되고, 1944년 소련의 위성국으로 전락했다가 1990년 3월에야 국제 정세에 따라 독립할 수 있었다. 일부 정보에서는 독립과 동시에 한국과 외교 관계를 수립한 게 아니라 조만간 대사급 수교를 약속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리투아니아의 빌뉴스를 지탱한 대성당의 위용 중세사의 한쪽 이면일지언정 아예 접하지 못한 채 돌아선 건 못내 아쉬운 대목. 일세를 풍미하던 비타우타스 목상을 뒤로하고 일행과 함께 향한 곳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빌뉴스의 구시가지다. 타타르인들이 남긴 나무집들이 하나둘씩 멀어지는 가운데 가이드는 때마침 막혔던 말문이 터진 듯 코로나 기간의 곤고함을 주저 없이 털어놓았다. 사업 진단차 잠시 들른 이국땅에서 반려자를 만나고 애써 이룬 가정을 지키는 일에 최선을 다한 모습이 돋보이는 순간이었다. 새벽의 문을 지나 바실리우스 수도원 구역에 들어서니 카시미르 교회를 비롯해 나폴레옹이 탐냈다는 테레사 성당과 경건한 러시아정교회가 나왔다. 구시가지의 전경을 감상할 수 있다는 게디미나스성에도 의미는 있겠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국회의사당 건물이나 리투아니아 속의 작은 국가라고 지칭하는 우주피스공화국에 더 무게의 중심이 실린다. 그에 앞서 잊지 말아야 할 가치는 원형을 보존한 성문이요, 아르누보의 건축양식을 지닌 콘서트홀이 더 조명을 받아야 한다. 그밖에도 미카엘성당이나 안나성당에 대해서는 하도 많은 곳을 소개하는 바람에 순서마저 헷갈리기 일쑤여서 하나하나 거론하기에도 벅차다. 그러나 인문학도의 두 눈을 사로잡은 곳은 문학의 거리. 일련번호를 따라 일일이 설명을 곁들이는 깊이를 대하자니 생각보다 가이드의 내공이 쌓인 듯하다. 지형지물을 찾아 해설하는 틈틈이 앉아 있기는 하지만 아내가 힘겨워하는 모습이 안쓰러워 그만 자리를 피해 쉼터를 찾으려 해도 쉽지 않았다. 서둘러 택시를 잡아타고 호텔에 들어갈까 고민하다가 버스에 놔둔 짐들이 있거니와 내일 아침 공항으로 가는 공지사항을 따로 전달받기도 싫어 그대로 두어 시간을 버티기로 했다. 아내와 더불어 시간을 보낸 곳은 광장과 공원을 끼고 있는 빌뉴스 대성당의 뒤꼍. 기둥의 크기에 기대어도 그 옛날 영화를 재현하려는 의도를 알아차릴 것 같았으나 현지 가이드의 입을 빌리면 리투아니아 정치인들은 아마도 강심장을 달고 사는 거 같아 불안하기 그지없다는 말에도 이해가 간다. 어쨌거나 인천공항에서 지레 체험한 이상 조짐에도 불구하고 여정을 무사히 마친 것은 온전히 주님의 은혜였다. ■ 프로필 - 고교생에게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퇴임 후 기고활동을 이어가면서 기독교 철학박사(Ph.D.) 학위를 받았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을 운영합니다. - 정론지 <평택자치신문>에 “세상사는 이야기”를 15년째 연재하는 중입니다. ※ 다음호(715호)에는 ‘효과적 독서의 요건 - 유용한 독서의 중요성’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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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하식의 이야기
    2024-03-04
  • [세상사는 이야기] 북유럽 기행 ‘라트비아에서 감지한 활기’ (6회)
    일행이 남쪽을 향해 달려가는 곳은 라트비아(Republic of Latvia, 면적: 한국의 약 64%). 갈수록 굵고 얇은 소나무 군락이며 자작나무 숲이 속속 나타나는 등 수종의 다변화를 시시각각 실감할 수 있었다. 드넓은 경작지에서 보듯이 산자락은 거의 없고 평평한 들판이 펼쳐진 가운데 당도한 수도 리가는 총인구 180여만 중 약 60여만 명이 모여 사는 도시. 예술미는 현저히 떨어졌으나 거리에서 활기를 감지할 수 있었다. 재밌는 건 코로나 기간 이곳에서도 Bolt를 이용한 배달문화가 상당 부분 자리를 잡았다는 후문. 이른바 발트 3국의 한가운데 위치했다는 연유로 한국과는 1991년 독립과 동시에 수교를 맺었으며, 곧이어 투자보장 및 비자 면제 협정을 체결하였고, 이후 이중과세방지협정에 가서명한 데 힘입어 삼성과 엘지 등의 대기업 상사원이 상당수 주재하고 있단다. 1인당 GDP는 아직 2만 불에도 못 미치나 수심이 깊은 연안을 끼고 있어 크루즈가 드나드는 등 관광사업에도 역점을 두고 있는데 다행히 구시가지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니 앞날을 기대할 만하다. 차창 밖에 비친 거리의 색상은 좀 우중충한 편. 수더분하게 꾸민 화단에서 수줍게 웃는 꽃들처럼 사람들의 표정도 무덤덤하다. 획일적인 연립주택이나 단독주택의 면모도 어제 보던 풍경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현지 가이드를 따라 골목으로 들어가니 세기별 건축양식을 대비해준다는 삼형제 건물이나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큰 돔성당이나 감동이 없는 건 매한가지. 그나마 리가성에 자리한 대통령 관저의 앞뜰을 거거는 게 피터성당이나 검은 머리 전당을 보는 것보다는 나았다. 그 옛날 군대막사였다는 화약탑을 뒤로하고 접한 정보는 채 50명이 안 되는 교민의 1/3은 교환학생이라는 전언. 에라스무스 장학제도가 있다기에 해설자에게 구체안을 물어도 시원한 대답은 없다. 나중에 알아보니 1987년부터 EU에서 채택한 교환학생 프로그램. 교차로에서 물끄러미 오가는 사람을 응시하는 데이지꽃 장식품처럼 전할 말을 잊은 듯 일행을 태운 리무진은 룬달레궁을 향해 치달았다. 장황한 설명을 집약하면 18세기 봉건 영주의 자기과시용 호화주택. 하지만 제아무리 고상하게 치장하고 유식한 척 떠벌여도 냄새나는 페인트칠을 해대는 바람에 전시공간을 둘러보는 내내 역겨운 느낌이었다. 나오며 보니 흙먼지 날리는 뒤편보다는 그래도 정성껏 꾸민 앞뜰을 기대했는데 웬일인지 그냥 지나쳐버리는 처사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 라트비아의 샤울레이 언덕에 세운 십자가 무덤 몇 차례 TV를 통해 십자가 언덕으로 알려진 곳은 필자가 영상에서 확인한 것보다 훨씬 대규모에 기하학적이었다. 그 숫자만 해도 수만 개를 헤아린다더니 정녕 그럴 법하다고 시인할 정도. 한마디로 온갖 형상의 십자가 모형이 죄다 꽂혀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그리 높지 않은 꼭대기에 올라 사방을 바라보니 들판 가운데 우뚝 솟은 동산을 순례지로 택한 듯하다. 좀 떨어진 북쪽에서 학생들이 나오기에 내친김에 그곳까지 가봤더니 미사를 드리는 공간을 마련한 외에는 박물관을 준비하는 게 아닌가 했는데 거기에 왜 천하대장군을 빼닮은 말뚝을 세워 놓았을까? 영어가 유창한 관리인은 내게 출신지를 물으며 북한의 실상을 풍자했고 남한의 기독교인 숫자까지 관심을 보였다. 대략 20%가 신자라는 답변에 놀랍다는 반응을 보인 데 대해서는 두고두고 부담감으로 남아 있을 테니까. 구원의 방주와 십자가의 길이 어디쯤 있는지조차 모를 만치 영적 무지를 가감 없이 드러낸 현장. 저마다 갖가지 모습으로 십자가 우상을 만들어 품속에 안고 돌아간들 참 평안이 깃들 리 만무다. 실로 놀라운 일은 그 뒤에 일어났다. 구소련 시절 민족 저항의 상징이었던 샤울레이의 묘지산을 뒤로하고 얼마 가지 않아 마주한 광경은 시커먼 연기를 내뿜는 교통사고 현장. 영리한 기사는 잠시 기다리다가 차를 뒤로 돌려 흙먼지 날리는 농로로 차를 몰았다. 금세 본 도로에 진입하는 소로가 나 있다는 사실도 고무적이지만 만약을 위해 안전한 길을 택한 그의 판단력에 찬탄을 금치 못하는 분위기. 문제의 근원은 눈에 뵈는 현상에서 멈출 수 없다는 지점에 도사리고 있다. 우리 부부의 영적 감지는 하나님은 이 사건을 왜 주셨을까에 대해 초점을 맞췄다. 지상인지라 그 이상의 서술은 끝내 자제하겠으나 훗날 복음과는 상관없는 일들을 벌인 그곳에서 무슨 변고가 발생할지는 미리 발설하지 않기로 다짐하련다. 예수께서 공관복음서를 통해 이르시기를 “너희 보는 이것들이 날이 이르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마 24:2, 막 13:2, 눅 21:6)라고 일갈하셨으므로……. ■ 프로필 - 고교생에게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퇴임 후 기고활동을 이어가면서 기독교 철학박사(Ph.D.) 학위를 받았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을 운영합니다. - 정론지 <평택자치신문>에 “세상사는 이야기”를 15년째 연재하는 중입니다. ※ 다음호(714호)에는 ‘북유럽 기행 - 리투아니아의 독자적 행보’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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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2-22
  • [세상사는 이야기] 북유럽 기행 ‘에스토니아 건축의 재발견’ (5회)
    이번 여행에서 필자가 거둔 괄목할 만한 성과라면 에스토니아(Republic of Estonia, 면적: 한국의 43%)에서 발견한 건축미를 들 수 있다. 언뜻 가지런한 시가지는 이미 영상을 통해 주황색 지붕의 아름다움에 익숙한 바로되 이처럼 예술미를 더한 건조물들을 연달아 만나볼 수 있으리라고는 거의 예상치 못했다. 그 중심에 한자동맹의 한 축인 수도 탈린(약 45만 명) 구시가지가 있었다. 인구라야 고작 130만에 1인당 국민소득이 4만 달러를 상회하는 까닭 중 으뜸은 일단 IT분야의 초강국.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과 수위 다툼을 벌일 정도다. 다소 길게 이어진 현지 가이드의 설명을 정리해보니 워낙 여러 나라의 침략을 거치는 동안 각국의 건축양식이 바람직하게 가미된 결과일 거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하지만 어느 곳엘 가든지 자연스러운 동선과 함께 매끄러운 노면 상태를 부드러운 보행로의 편리함으로 연결시켜 보는 필자로서는 남다른 시각을 갖고 있다. 그래서 주목한 지점이 창문의 크기와 모양새. 에스토니아 건축물에서는 단순한 획일성을 지양하며 최대한 옆 건물들과의 어울림을 지향한다. 이는 건물의 전체적 조화로움을 돋보이게 하는 데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한다는 게 나의 주장이자 색다른 안목이다. 대략 현재 라트비아를 포함한 남부지역(당대 명칭은 리보니아)에 영향을 미친 나라들만 꼽아보아도 9세기부터 바이킹의 침범을 당한 이후 덴마크, 스웨덴, 러시아의 괴롭힘을 받다가 14세기 덴마크 왕실에 의해 게르만족의 소유로 넘어간다. 16세기 중엽에는 남북이 양분되어 스웨덴과 폴란드에 장악되고 18세기 초 스웨덴에 승리한 러시아가 지배권을 행사하는 가운데 구소련의 연방으로 전락해 2차대전 중 잠시 독일로 이양됐다가 1991년 8월 국제적으로 독립을 인정받기에 이르렀다. 바로 여기에 그들이 추구한 건축술의 지혜가 숨어있다. 톰페아 언덕에서 바라본 전경을 통해 별미를 느끼는 건 그래서다. 최근에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오로라 현상까지 관측되는 바람에 새로운 관광지로 부상하고 있다니 다수가 꼭 재방문을 고려할 만하다고 여길 정도란다. 아직 한국 교민이라야 25명에 불과하지만 K-Pop의 열기는 이곳에도 전해져 현지인들과 교분은 정교히 다듬은 골목길처럼 계속 순탄할 것으로 기대한다는 전언이다. ▲ 에스토니아의 탈린 톰페아 언덕에서 바라본 전경 저녁 식사를 겸한 자유시간에 아내와 발품을 판 곳은 현지 가이드에게 설명을 들은 유적지를 피해 다니는 행보였다. 한껏 반경을 넓혀 주로 신시가지를 돌아보니 조금은 밋밋하지만 걷기 여행의 또 다른 묘미를 느낄 수 있었다. 곳곳에 걸린 삼색기의 의미는 파란색은 하늘, 검은색은 나무, 하얀색은 땅을 상징한다는데 한글 모음의 제자원리인 천지인과 닮아있었다. 그중에 나무는 자신들의 근원을 나타낸다는 말에 우리 둘은 대뜸 선악과를 소환했다. 국립 오페라 하우스를 지나 그리 높지 않은 중앙공원에 앉아 쉬면서 전방을 바라보니 비록 구시가지 전체를 조망할 수는 없었으나 600년의 역사를 지닌 톰페아성을 비롯해 큰 덩치의 넵스키 대성당, 적군을 퇴치하려고 만들었다는 두툼한 마가렛 성탑, 표트르 대제가 바로크식으로 지었다는 카드리오궁, 뱃사람의 수호신을 숭배하는 니굴리스테 교회를 보고 14세기 건립한 비루게이트를 빠져나오던 동선이 어렴풋이나마 떠올랐다. 하지만 제아무리 경건의 모양을 고수한 채 서서 경배의 형식을 취한들 토속신들과 결합한 잡신을 믿는 행위는 한낱 미신에 지나지 않는다. 이제 다음 행선지는 여름 휴양지인 파르뉴. 탁 트인 녹지를 가로질러 세 시간 이상이 소요된다는 말을 듣고 필자는 푸르른 발트해변보다는 고풍스러운 구시가지에 더 관심이 쏠렸다. 햇볕이 내리쬐는 가운데 차에서 내리니 멋진 리조트와 함께 기다란 모래사장이 한눈에 들어왔다. 모래도 양질이지만 유난히 길에서 바닷물까지 길게 뻗은 해안선. 우리 같은 관람객을 맞기 위해 나무데크를 설치할 정도로 일삼아 걸어야 했다. 한두 장 사진을 남기고 아름드리나무들로 가득한 공원의 맞은편으로 건너가니 코끼리 상들이 예쁘게 서 있는 놀이터. 나중에 옆자리를 지킨 부부에게 앨범을 보여주니 그냥 지나친 것들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했다. 아니나 다를까 여기 역시 다른 데보다는 다양한 건축미를 보여주었다. 이들은 창문의 크기에 따라 좌우를 달리하고 아래위 층을 번갈아 가며 배치를 달리하는 비결을 터득한 듯하다. 그러니 요모조모 가옥을 세심하게 들여다보는 입장에서는 여러모로 참고할 부분이 많을 수밖에. 자, 주택의 디자인을 연구하는 자들이여, 부디 에스토니아의 건축미를 눈여겨보시라! ■ 프로필 - 고교생에게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퇴임 후 기고활동을 이어가면서 기독교 철학박사(Ph.D.) 학위를 받았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을 운영합니다. - 정론지 <평택자치신문>에 “세상사는 이야기”를 15년째 연재하는 중입니다. ※ 다음호(713호)에는 ‘북유럽 기행 - 라트비아에서 감지한 활기’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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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2-22
  • [세상사는 이야기] 북유럽 기행 ‘핀란드라는 나라의 확대경’ (4회)
    VIKING LINE은 여태껏 필자가 승선한 배 가운데 최고의 크루즈. 하지만 우리 한국 조선기술의 금자탑을 만끽하며 도착한 핀란드(Republic of Finland, 면적: 한국의 3.3배)는 몹시 실망스러웠다. 도로에서 조심스럽게 자른 바윗돌의 절단면을 볼 때까지만 해도 배경 지식(1인당 소득 약 4만 달러, 인구 550만가량)에 준한 예상치는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걸 송두리째 깨뜨린 곳은 시벨리우스공원. 국민 작곡가를 기리는 흉상이나 파이프오르간의 조형물이야 평균작이라 치더라도 거기서 발걸음을 떼는 순간 눈살을 찌푸리게 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아니 산책로에 짜증스러울 만큼 개똥이 널려있다니 이 나라의 주민의식은 반려견의 배설물조차 처리하지 못하는 수준이란 말인가? 게다가 벤치 주위에 널브러진 담배꽁초나 전동 킥보드가 여기저기 방치된 한국을 연상케 했다. 스칸디나비아반도를 벗어나자마자 마주친 노점상은 도리어 인간적이었다. 조잡하게 꾸민 카페도 그렇거니와 카누를 띄운 물이 오염되었다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연못에 고인 물마저 바싹 말라비틀어진 채 방치돼있었다. 이런 곳을 두고 수도 헬싱키(약 130만 명) 시민들이 가장 사랑하는 공원이라는 해설도 우스운 마당에 공원 가득 웬 꽃가루는 그리도 흩날리는지 도무지 눈을 뜰 수 없을 지경. 알레르기에 취약한 아내는 결국 자유시간 40분을 그 잘난 공원 구석에서 버티고 견디다가 급기야 몸에 이상증세를 느끼기에 이르렀다. 이런 경우는 손해배상이라도 청구해야 하는 거 아닌감? 엎친 데 덮친다더니 우스꽝스러운 일은 곧바로 이어졌다. 일정에 따라 이른바 템플리아우키오 암석교회라는 데를 데리고 가기에 따라갔더니 첫눈에 천연암석의 기운은커녕 위쪽은 바위를 깨뜨리고 남은 돌덩이들로 벽돌을 삼아 철제 지붕을 덮은 건조물에 불과했다. 암석교회라는 이름으로 입장료를 받으려면 지하로 얼마큼은 내려가 폴란드 소금광산에 조성한 성당이나 요르단 페트라에서 본 무덤처럼 상하좌우 사방이 온전히 바위로만 이루어져 있어야 하거늘 어찌 이런 장소를 두고 감히 암석교회라고 선전하며 장사를 감행하는지 한참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이토록 청십자기에 나타난 청정 이미지는 물론 최소한의 신뢰마저 깨진 마당에 어디를 간들 그 가치를 느끼겠는가?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핀란드 하면 숲과 호수의 나라였는데 그 심상이 이렇게 일순간에 무너져버리리라고는 상상하지도 못했다. ▲ 핀란드의 헬싱키에서 발견한 철제 지붕의 건축미 우스펜스키 대성당에서 내려다본 대통령 집무실 겸 관저는 허술할 만큼 평범했다. 다만 그 뒤편 건물의 벽에 붙은 휘장이 남다르기에 인솔자에게 물으니 대뜸 정부청사라고 답했다. 하지만 이는 원로원 광장에서 만난 건축물 중에 정부청사가 있어 명백한 거짓말로 밝혀졌다. 이로 인해 그러잖아도 결정적인 대목(가령 양쪽 귀가 멍멍한 상태에서 물어본 해발 고지를 대충 800m라고 얼버무린다든지 사람 구경하기 힘든 고을에서 제법 밀집한 동네 이름을 물으니 마지못해 툭 반말투의 외마디 소리로 대응한다든지)에서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만들었는데 차 안에서 설명한 각종 내용이 대체적으로는 해박하다고 수긍한 부분까지 흔들리고 말았다. 내부를 공개하지 않은 헬싱키 대성당의 대안이 애초에 없었다는 것도 문제점. 차라리 실속 없는 사우나 시설을 대충 훑어볼 게 아니라 런던아이를 닮은 원형 관람차를 타보는 것이 훨씬 나을 뻔했다는 것이 중론. 걸어서 한 뼘 거리인 마켓광장을 무슨 과일(대부분이 수입품) 시장의 명소인 양 시간을 끌면서 빙빙 돌아가는 행태 또한 지양되어야 하리라. 그나마 건진 것은 국립도서관 겉핥기. 그 서가까지 깊숙이 들여볼 수는 없었으되 석고조형물이 놓인 복도를 빠짐없이 돌아본 것만으로도 한 시간이 넘는 자유시간을 채웠다는 포만감이 있었다. 또 하나 주행 중에 들른 휴게소를 빼놓을 순 없다. 유럽이 아닌 한국식에 가깝다더니 가게가 드문 현지 실정상 아울렛을 겸했으나 적어도 화장실 문화만큼은 진일보한 것으로 평가한다. 최악의 사례는 현지 가이드의 무성의한 관광지 해설을 꼽을 수 있다. 불쾌하기 짝이 없는 건 시종 자일리톨을 개량한 상품 홍보에만 열을 올리는 행태. 마치 가이드 둘이서 공조라도 한 듯이 보여 불합리한 일정 진행에 관해서는 귀국 후 본사에 강력히 항의하며 개선책을 제시한 바 있다. 해외여행객에게는 최적화한 세 가지의 주요소가 맞아떨어져야 나들이에 나설 수 있다. 첫째 건강을 담보로, 둘째 시간을 내서, 셋째 비용을 마련할 때라야 가능한 것이 장기나들이이기 때문이다. ■ 프로필 - 고교생에게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퇴임 후 기고활동을 이어가면서 기독교 철학박사(Ph.D.) 학위를 받았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을 운영합니다. - <평택자치신문>에 “세상사는 이야기”를 14년째 연재하는 중입니다. ※ 다음호(712호)에는 ‘북유럽 기행 - 에스토니아 건축의 재발견’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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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2-02
  • [세상사는 이야기] 북유럽 기행 ‘스웨덴이 구축한 시공문화’ (3회)
    차창에 비친 풍경이 확 바뀌었다. 막 국경을 통과했다고는 하나 지형을 금세 갈아치울 수는 없는 노릇이니 더욱 신기한 장면의 연속극. 산악지대에서 갑자기 평원지대로 변신한 까닭은 조물주만이 그 비밀을 아실 터이로되 여행객으로서는 즐거운 눈요깃거리가 아닐 수 없다. 좀 더 거들자면 뚜렷한 차선에 도로의 경계선마다 설치한 차단봉마저 예사롭지 않다. 스웨덴(Kingdom of Sweden, 면적: 한국의 4.5배)이란 나라는 한눈에 세기(detail)에 강할뿐더러 상주인구 천만이 넘는 면모(1인당 국민소득 약 5만 달러)를 유감없이 보여주는 참이다. 바로 옆 나라처럼 야트막한 관목에 이끼류가 기생하는 바위지대와는 판이한 풍경화. 냉큼 차에서 내려 잘 가꾼 숲속을 실컷 거닐어보고픈 마음이 들었다. 이를테면 그 옛날 스웨덴 왕국의 일면식을 두고 지레 유럽 일대의 도시들 사이에 맺었던 무역공동체, 즉 ‘한자동맹(the Hansa)’의 한 축에 들어선 기분을 애써 소환하는 중이랄까? 그도 그럴 것이 나타난 간판이 ‘IKEA’에 이어 ‘VOLVO’까지 선뵈고 있다면 수도 스톡홀름(약 165만 명)의 첫인상은 일자리 산업이 꿈틀거리는 현대도시의 현주소를 체감하기에 부족함이 없으리라. 도심에 자리한 호텔에 봇짐을 풀자마자 폭주족이 내는 굉음을 접한 건 꽤나 뜻밖의 일. 하지만 이마저 스웨덴이 허용한 자유의 발산이라고 이해한 건 이튿날 아침이었다. 아내와 나선 산책길에서 젊은이들을 위한 거리와 더불어 대자연을 학습하기에 알맞은 어린이놀이터를 마주했기 때문이다. 친환경 소재를 이용해 아기자기하게 꾸민 시설들을 돌아보며 흙모래를 매만지며 맘껏 즐길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주는 어른들의 양육방식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어 부럽고 흐뭇했다. 특히 내 눈을 사로잡은 건 안전한 그네의 생김새. 자동차 시트처럼 폭 들어가 앉도록 만들어 위험도를 낮추었으니 당장 수입목록에 올릴 만하다. 유사시에 대비한다고 마냥 모험 자체를 차단한 품도 아니다. 미끄럼틀을 타고 올라가는 구부러진 사다리는 훈련용 계단을 연상케 했다. 주위는 흡사 해자처럼 형성된 강줄기. 잔잔히 흐르는 강변을 따라 한 바퀴 돌아보고 싶었으나 정돈된 상가, 가지런한 주택가, 정갈한 교회당, 직장인들이 이용하는 대중교통을 서둘러 살펴본 다음 정해진 식사 시간에 맞출 수밖에 없었다. ▲ 스웨덴의 스톡홀름 시청 내부 중 계단의 예술미 스웨덴이 한때 자긍하던 조선업의 모태는 바사박물관에서 찾을 수 있다. 역사의 현장을 확인해보니 그 위용을 짐작하기에 충분했다. 현지 가이드의 목소리에 담긴 줄거리를 요약하면 바사호는 현존하는 17세기 유일한 목재 전함. 바사왕국 구스타프 2세의 지시로 1625년에 건조를 시작하여 1628년 8월 항해에 나서자마자 침몰한 범선이었다. 450명이나 태운 돛단배를 단 2년여 만에 건조한 치열함도 놀랍거니와 과다적체로 인해 가라앉은 배를 급기야 333년 만에 발견하여 1961년 인양해낸 집요함은 더 경이로웠다. 줄줄이 쏟아놓는 해설을 듣자니 생생한 녹화화면이 아니더라도 당대 만천하에 국력을 과시하기 위해 호화롭게 장식한 사자 왕의 허영심은 사전에 대전함의 종말을 배태하고 있었다. 총길이 69m, 최대폭 약 11.7m, 높이 52.2m의 선박에 실었던 대포나 각종 기구류를 보아하니 아닌 게 아니라 타이태닉 거대유람선의 예고편을 접한 듯했다. 그러나 인간의 교만은 매번 그 지혜의 원천이 신의 섭리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리곤 한다. 영어 낱말인 present가 지닌 뜻처럼 내게 주어진 현재야말로 감사할 선물임을 망각한 채 잘난 척 날뛰다가는 치르는 대가가 혹독하다는 기시감(deja-vu)을 말함이다. 스토크라는 통나무와 홀름이라는 섬을 합쳐 스톡홀름이 되었다는 가이드의 해설. 그중 시청은 당시 건축술의 모든 요소를 가미한 역작이었다. 비잔틴 양식을 비롯해 바로크, 로코코, 고딕, 르네상스 등 받아적기에도 벅찰 만치 혼합미의 총망라. 다만 그 목적이 국민의 파티장으로 사용할 의도였다면 서사는 달라진다. 멀리 갈 거 없이 눈앞의 호수(식수)에 띄운 민심의 배는 왕가를 태우고 순항할 수도 있으나 정반대로 뒤집어엎을 수도 있다는 진리를 일찌감치 알아차린 셈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뗏목섬에 구축한 스웨덴왕궁은 어떨까? 보존된 가구들의 평균치는 기본이 300년. 높낮이를 안정감 있게 설계한 계단은 우리 부부가 가장 높게 평가한 지점이다. 최상층부에서 근검절약을 몸소 실천하지 않고는 그 영화를 누릴 자격에 미달할 수밖에 없다는 교훈을 다시 한번 되새긴 시공이랄까. 세심하게 꾸민 곳마다 고품격을 갖춘 시민공원도 그 연장선에 있었다. ■ 프로필 - 고교생에게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퇴임 후 기고활동을 이어가면서 기독교 철학박사(Ph.D.) 학위를 받았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을 운영합니다. - <평택자치신문>에 “세상사는 이야기”를 14년째 연재하는 중입니다. ※ 다음호(711호)에는 ‘북유럽 기행 - 핀란드라는 나라의 확대경’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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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1-26
  • [인터뷰] 임윤경 평택시·의정모니터링센터 공동대표에게 듣는다!
    “평택시 정책 방향이 올바른지, 예산 적정하게 사용하는지 시민의 눈으로 지켜볼 것” “시의원이 주민의 대표자로서 부여받은 역할·기능 올바로 수행하는지 점검하겠습니다” ▲ 임윤경 평택시·의정모니터링센터 공동대표 지난 11일 평택평화센터 센터장과 평택시·의정모니터링센터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임윤경 센터장·공동대표를 만나 평택시·의정모니터링센터의 목표와 향후 일정을 들었다. 임윤경 공동대표는 “평택시와 평택시의회는 주민 직접 참여에 대해 보수적이었던 것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일례로 평택시의회 행정사무감사 모니터링을 위해 시민참여단이 시의회 휴게실을 이용하고 있는데 조례를 내세워 쫓겨난 적이 있었듯이 의정 모니터링 활동에 대해 의원을 ‘감시’하고 있다는 편견을 가지고 모니터링단을 배척하는 경우도 있었다. 또한 평택시도 보수적인 입장으로 시민의 참여를 불편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임 공동대표는 “앞으로 의정모니터단은 시의회가 주민의 대표자로서 부여받은 역할과 기능을 올바로 수행하는지 점검하고, 피감기관인 평택시가 정책 방향을 제대로 수립하고 예산을 적정하게 사용하고 있는지를 시민의 눈과 귀로 지켜볼 것”이라고 강조했다. 본지는 임윤경 공동대표의 인터뷰를 2회(① 평택평화센터, ② 평택시·의정모니터링센터)에 걸쳐 보도한다. <편집자 말> ■ “시민들의 직접 참여, 시민들의 다양한 의견이 의정·시정에 반영돼야” - 2020년 ‘평택시민시의회모니터링단’이 발족되어 시민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지난해부터 ‘평택시·의정모니터링센터’로 이름을 바꿔 재출범해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데, 올해 시·의정모니터링센터 일정을 설명해 주십시오. 평택평화센터는 창립부터 시의회 의정모니터링 활동을 해왔습니다. 특히 ‘한미국제교류과’를 중심으로 미군과 관련한 사안들을 모니터링해 왔습니다. 모니터링을 하면서 평택시 사업에 시민들이 꼭 알아야 할 사항들이나 몇몇 의문점들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시민들과 함께 공유하고 싶고 평택이 좀 더 살기 좋은 곳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직접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하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시민들을 모았고 그 필요성을 절감한 시민들이 모이게 되었습니다. 기존에 활동 경험이 있는 사람들과 새롭게 활동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함께 있어 이해의 폭이 다르기도 했고, 부족한 점도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활동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2019년 11월, 의정감시단 준비모임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보고있수다’라는 이름으로 매월 1회 1년 동안 준비모임을 가졌고 그 과정에서 ‘평택시민시의회모니터단’의 틀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관심 있는 청년들을 만날 수 있었고, 80대의 지역 어르신께서도 참여해 다양한 세대가 한자리에 모이게 되었습니다. 좀 더 많은 시민이 관심을 두기를 바라는 마음에 지역신문에 기고 글을 내기도 했고, 그때 연결된 시민들이 지금도 꾸준히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평택시민시의회모니터단은 ‘좋은 시의회, 참여하는 좋은 시민이 만듭니다!’라는 구호로 2020년 11월 발족하게 되었고, 3년 동안 ‘시의원 간담회’, ‘행정사무감사 모니터링 활동’, ‘행감 결과보고서 발표’, ‘의정활동 모니터링 결과보고 발표’, ‘내부교육’, ‘행감 모니터링 시민참여 교육’ 등을 진행하며 내실을 다졌습니다. 모니터링단 운영은 참여 시민들이 자발적인 재능기부와 재정기부로 이루어졌습니다. ▲ 지난해 11월 발족한 ‘평택시·의정모니터링센터’ 2023년 행정사무감사 모니터링단 참여자는 연인원 95명(직접참여 83명, 온라인 참여 12명)으로 현장 참여자만 83명이었습니다. 행감 모니터링에 참여한 83명의 점심 비용은 모니터링단원 개개인의 자발적 기부로 이루어졌습니다. 그 후 1년여의 준비 과정을 거쳐 2023년 11월 14일, 창립총회를 통해 임의단체 설립을 결의했으며, 11월 29일 기자회견을 거쳐 단체설립을 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모니터링단이 뭔가 정치력을 발휘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냐는 의견을 주시기도 합니다. 하지만 평택시·의정모니터링센터는 시민들의 시정 직접 참여, 시민들의 더 다양한 의견이 시정에 반영될 수 있는 지방자치제도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올해 평택시·의정모니터링센터는 시정·의정 모니터링 활동(행정사무감사, 예결산, 조례 제개정, 질의, 주민수렴 등과 피감기관인 행정기관)을 계속 진행합니다. 또한 교육사업으로 행정사무감사에 참여해 주시는 시민참여단에게 ‘행정사무감사 모니터링 방법 교육’과 ‘단원 내부교육’을 진행하고, 시민참여사업으로 ‘정책학교 2기’를 진행합니다. 올해는 평택시·의정모니터링 관련 제도 수립 활동을 새롭게 계획했습니다. 모니터링 활동은 선거 다음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직접 정치 참여의 한 방법이므로 평택시 차원에서 제도가 수립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조례제정을 최종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 지난해 평택시의회 행정사무감사 모니터링 결과를 말씀해주십시오. 지난해 행정사무감사는 그동안 11월에 시행하던 것을 6월로 일정을 변경했으며, 1월 1일부터 4월 30일까지 처리된 사무가 감사 대상이어서 반쪽의 행정사무감사였습니다. 반쪽 행감임을 감안하여 지난해와 달리 우수의원은 선정하지 않았고 단, 행감의 전체 형식과 과정을 면밀히 분석하는 동시에 전체 평가와 위원회별 평가를 중점으로 하였습니다. 개인 의원 평가는 시민들의 의견을 반영해 의원들의 장단점을 기술하는 방식으로 서술하였으며, 평가는 행정사무감사 시민참여의견서(40%)와 행정사무감사 최종 평가 회의(40%), 단원 평가(20%)를 합산하여 반영하였습니다. 잘된 점은 2022년에 비해 준비된 모습으로 질의가 차분하게 진행되었고, 개회 시간과 휴식 시간 재개 등 형식적인 회의 절차가 잘 지켜졌다는 점과 지난 행정사무감사에 비해 PPT, 사진 자료 등 시각 자료를 준비한 의원이 많아 감사의 목적과 방향을 알 수 있었다는 시민들의 평가가 많았습니다. 대부분의 의원들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의욕이 넘치는 모습이 좋았다는 시민들의 평가가 있었습니다. 잘못된 점을 꼽으라면 모니터링 참여자 80% 이상이 ‘질의 시간’에 대한 부정평가를 내렸습니다. ‘시간제한이 없어 한 명의 의원이 너무 많은 시간을 쓰고 있다’, ‘1분 질의할 내용을 10분 질의한다’, ‘자기 시간 채우려 자기 자랑만 한다’, ‘시간 배분 부족’, ‘쓸데없는 질문이 많다’, ‘연설 식으로 진행’ 등의 평가가 많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질의가 겹치고 중복질의, 중복 답변이 많다는 지적이었습니다. 아쉬운 점은 집행부의 확실한 답변을 이끌어 내지 못했으며 효율적인 행정사무감사 운영을 위해 과장(팀장)급 실무 공무원을 답변대로 세울 수 있으나 그런 융통성을 발휘하는 의원은 없었다는 점입니다. 덧붙여 하고 싶은 이야기는 집행부 관련 평가입니다. 시민참여 모니터링단 대다수가 ‘집행부의 성의 없는 응답과 답변 태도’를 지적했습니다. 또한 ‘책임회피(도시공사)’와 ‘자료 제출 거부(사업이 진행 중이다, 자료취합이 어렵다, 해당 회의록이 없다, 개인정보보호법 관계로 어렵다)’ 사례도 있었습니다. ‘회의록이 없다’는 것은 관리상의 부실을 스스로 고백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 시민모니터링단 교육을 진행하고 있는 임윤경 공동대표 - 시민 삶의 질 향상과 알 권리를 위해 평택시·의정모니터링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평택시·의정모니터링센터의 역할을 말씀해 주십시오. 의정모니터단은 의회가 주민의 대표자로서 부여받은 역할과 기능을 올바로 수행하는지 점검하고 또한 피감기관인 행정기관이 정책 방향을 제대로 수립하고 예산을 적정하게 사용하고 있는지를 시민의 눈과 귀로 지켜볼 것입니다. - 시민에게 하고 싶은 말과 평택시, 평택시의회에 하고 싶은 말은? 올해 평택시는 행정안정부에서 실시한 정보공개제도 평가 등급에서 550개 기관 중 ‘최저 등급’을 받았습니다. 경기도 내에서도 꼴찌입니다. 이것은 평택시가 정보공개 청구 처리 및 원문정보 공개, 관리 운영에서 옛날 방식 그대로 처리했다는 의미이며, 시민들에게 알권리를 보장하지 못하고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정보공개청구는 시민의 직접 참여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항목입니다. 평택시가 민주주의 사회를 위해 필요한 행정력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는 현실적 지표이기도 합니다. 평택시가 주민 직접 참여에 대해 시의회와 행정기관이 모두 보수적이었던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한 예로 행정사무감사 모니터링을 위해 시민 참여단 10여 명이 시의회 휴게실을 이용하고 있는데 조례를 들어 쫓겨난 적이 있습니다. 그 당시 모니터링 활동에 대해 의원을 ‘감시’하고 있다는 편견을 가지고 모니터링단을 배척하는 분위기였습니다. 또한 여전히 평택시는 보수적인 입장으로 시민의 참여를 불편해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의정모니터링단 활동이 중요하고 필요하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시민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가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김다솔 기자 ptl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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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1-24
  • [세상사는 이야기] 북유럽 기행 ‘노르웨이 자산은 평등사상’ (2회)
    밤새 크루즈를 타고 입성한 인구 550만가량(면적: 한국의 3.2배)의 노르웨이(Kingdom of Norway). 수도 오슬로(약 70만 명)에서의 일정은 문 닫힌 시청 뜰을 잠시 들렀다 왕궁을 둘러보는 것으로 이어졌다. 이 나라가 12년째 민주주의 지수 1위를 고수하는 비결은 무엇일까? 현지에서 두 아이를 키우는 해설자는 이곳 초등학교는 주로 노는 법을 가르친다고 귀띔한다. 설령 눈비가 내린다 해도 굳이 맞아가면서 자연스레 참을성을 기른다는 것. 경작 가능한 지역이 3%에 지나지 않아도 어업이나 해운업으로 상쇄한다는 말속에는 1975년부터 영국과 공동 개발한 북해유전에서 생산하는 원유와 천연가스의 힘이 작동하고 있단다. 문제는 1인당 8만 달러가 넘는 소득의 45%가 세금이라는 점. 여기 역시 불투명한 미래보장책으로 인해 고민이 크다는 전언이다. 다소 길게 진술한 역사의 물줄기는 왠지 들을 때뿐이고 기억에 남은 건 왕실의 대가 끊어져 영국도 아닌 덴마크에서 방계 왕자를 빌려왔다는 얘기였다. 그거야 당사자들이 결정할 사안이로되 고대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각자 소견대로 행하였다는 구약 사사기(21:25)의 말씀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백성들은 과연 사사(士師)를 따랐을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통치가 순탄한 적은 길지 않았다. 시청이나 왕궁에서 눈에 띈 지점은 국가권력이 시민들 가까이서 소통을 꾀한다는 것. 실용적으로 꾸민 화단을 보며 들어선 입구에서 시를 상징하는 백조상을 떠받친 분수대가 눈길을 끈다. 행사 진행으로 인해 노벨평화상을 시상하는 중앙홀이나 내부에 전시한 유명 예술가들의 헌정 작품을 관람하지 못한 건 부득이한 상황이로되 사전에 좀 더 치밀하게 동선을 짤 수는 없었는지 캐묻고 싶다. 도심을 감싸고 도는 공원 안에 자리한 왕궁의 겉모양은 매우 소박했다. 아내와 뒤뜰을 거닐며 얻은 덤은 진정한 권위는 형식적 의전이나 화려한 치장에서 나오지 않는다는 교훈. 에덴동산을 패러디한 나무 신화는 선악과에서 파생한 아담과 하와의 후손임을 인정하는 설화로 이해한다. 길거리에 위치한 건조물이 곧 대학 강의실인 유럽의 풍경은 오슬로대학교도 예외는 아니었다. ▲ 노르웨이의 오슬로 비겔란공원에 있는 모노리탄 처음 본 노란 아카시아꽃이 만발한 가운데 아이들의 버스킹을 들으며 향한 곳은 비겔란 조각공원. 널따란 부지에 안치한 그의 조각품들은 거의 인간군상을 주제로 한 작품들이다. 전시품 200여 개 중 압권은 단연 17m 높이의 모노리텐. 이는 121명이 뒤엉킨 채 하늘을 향해 몸부림치는 기둥으로 숙련공 세 명이 14년간을 매달린 결과란다. 올려다보노라니 파란만장한 인생의 굴레. 그런데 등장인물들은 죄다 나체이거늘 작가 자신의 형상에만 옷을 입힌 의도는 무얼까? 햇볕이 따갑게 내리쬐는 날씨에도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뒤꼍까지 살펴본 뒤 돌아서려는데 새삼 뭇 인생의 희로애락이 한꺼번에 느껴지는 듯했다. 그나저나 이만한 전시공간을 반영구적으로 확보한 데는 비겔란의 수완이 한몫했다는 후문. 말하자면 기증을 조건으로 당국과의 줄다리기에서 많은 걸 얻어낸 셈이다. 하지만 멀리서 공원의 정면을 가린다는 구실로 교회당을 옮기라는 요구는 지나쳤다. 그에 비해 노르웨이가 낳은 불세출의 화가인 뭉크는 미적거리다가 사후 한 세대가 지난 1970년대에 와서야 작품을 박물관에 보관할 수 있었다니 튀는 걸 꺼리는 게 고유한 민족성이라고는 해도 실속을 챙길 기회는 스스로 잡아야 하는 법이렷다. 1년에 한 번씩 전 국민 댄스 타임이 있다는 현지 가이드의 소개에 귀가 솔깃했다. 그 또한 평등사상의 발로요 민주시민의식의 표출이리라. 태생과 직업에 따라 차별이란 있을 수 없다는 게 이네들의 최대 자산. 실시간 행복지수는 높을 수밖에 없다. 유감스럽게도 잔뜩 허세를 부린 플롬열차만 아니었다면 수목의 한계선을 말해주는 장엄한 산세는 더욱 빛날 뻔했다. 푸르른 대지야말로 설산에서 하얀 시냇물이 흘러내리기에 가능한 풍광. 온난화로 인해 지레 녹아내린 듯 산정호수의 물빛에는 에메랄드 색감이 감돈다. 유람선에 올라 빙하가 깎아내린 게이랑에르-헬레슐트 구간 피요르드를 따라 쏟아지는 일곱 자매 폭포수는 구혼자 폭포와 더불어 그야말로 장관. 게다가 피얼란드 영상관에서 본 설경처럼 겨울스포츠의 강국답게 평소 즐기는 크로스컨트리 종목에 강세를 보이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중에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1994)을 치르고 향후 유휴시설을 남기지 않은 슬기는 두고두고 화젯거리. 사람답게 살아가는 길을 알려주는 것이 교육정책의 본질이라면 노르웨이는 분명 성공한 사례다. ■ 프로필 - 고교생에게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퇴임 후 기고활동을 이어가면서 기독교 철학박사(Ph.D.) 학위를 받았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을 운영합니다. - <평택자치신문>에 “세상사는 이야기”를 14년째 연재하는 중입니다. ※ 다음호(710호)에는 ‘북유럽 기행 - 스웨덴이 구축한 시공문화’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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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1-19
  • [인터뷰] 임윤경 평택평화센터 센터장에게 듣는다! ①
    “미군기지로 인한 환경오염 문제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하겠습니다” “기지 환경오염 문제와 사건·사고로 인한 주민 피해에 평택시민 무관심해” ▲ 임윤경 평택평화센터 센터장 지난 11일 평택평화센터에서 임윤경 센터장을 만나 평택평화센터의 올해 활동 계획과 중점 목표를 들었다. 또한 평택시·의정모니터링센터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임윤경 센터장에게 지난 2020년 ‘평택시민시의회모니터링단’으로 발족해 지난해 ‘평택시·의정모니터링센터’로 이름을 바꿔 재출범한 시·의정모니터링센터의 향후 일정도 함께 들었다. 임윤경 센터장은 “앞으로도 미군기지 환경감시와 미군범죄 피해상담, 미군기지 사건사고 대응 및 제도를 개선하기 위해 평택평화센터 회원들과 함께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의정모니터단은 의회가 주민의 대표자로서 부여받은 역할과 기능을 올바로 수행하는지 점검하고, 피감기관인 행정기관이 정책 방향을 제대로 수립하고 예산을 적정하게 사용하고 있는지를 시민의 눈과 귀로 지켜볼 것”이라고 강조했다. 본지는 임윤경 센터장의 인터뷰를 2회(① 평택평화센터, ② 평택시·의정모니터링센터)에 걸쳐 보도한다. <편집자 말> ■ “평택 미군기지 두 곳 모두 심각한 토양과 지하수 오염 확인돼” - 평택평화센터는 그동안 평택지역의 미군 문제에 관심을 갖고 활동해 온 평화 운동 단체로 시민들에게 잘 알려져 있습니다. 아직도 평택평화센터를 잘 모르는 시민들을 위해 평택평화센터를 자세히 소개해 주십시오. 평택평화센터는 2000년대 평택미군기지 확장을 막아내기 위해 노력해 온 분들의 마음과 정성으로 2007년 10월 20일 설립된 단체입니다. 2002년 평택미군기지 확장계획이 발표되자 평택시민들은 ‘미군기지확장반대 평택대책위원회’를 결성하였습니다. 주일미군기지 반대운동의 일환으로 진행되었던 일본의 ‘한평(一坪)지주운동’을 우리도 해보자는 의견이 모아졌고, 오산공군기지 인근 평택시 서탄면 금각리에 위치한 기지확장 대상이 되는 논 605평을 한 평씩 구입하여 기지 확장을 막아내는 605명의 평화지주를 모집하였습니다. 605명의 ‘한평 평화지주’라고도 합니다. 하지만 대추리와 도두리 등 일방적인 미군기지 확장으로부터 고향 땅을 지키겠다는 주민들의 소망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토지 강제수용으로 주민들은 고향에서 쫓겨났습니다. 금각리 605명의 평화지주들은 정부의 강제수용으로 법원에 공탁된 토지보상금을 평택 미군기지 문제를 공론화하는 활동에 사용하기로 하고 평택평화센터를 설립하게 되었습니다. 평택평화센터는 미군 주둔으로 인해 발생하는 사건·사고와 다양한 문제를 시민의 시각으로 풀어가는 풀뿌리 평화운동 단체입니다. 현재 미군기지 환경감시와 미군범죄 피해상담, 미군기지 사건사고 대응 및 제도 개선 활동을 회원들과 함께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 평택평화센터 운영위원들 - 지역에서 활동을 하면서 어려웠던 점들은 무엇이고, 현재 미군과 관련해 가장 문제가 있는 부분과 해결 방안은 무엇인지? 2007년부터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한반도 주변 4대국 중 미국을 ‘가장 가깝게 느끼는 국가’라고 시민들은 답했고 그 비율은 매해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현 정부가 강력한 ‘친미 정책’을 펼치면서 ‘미국’에 대한 과도한 친근함을 보여주기 때문에, 대부분 시민은 주한미군에 대해 높은 신뢰도를 갖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또한 한국에서는 ‘극우부터 온건 좌파’까지 모든 대통령선거 후보들이 하나 같이 ’안보’를 최우선 국정과제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사회에 공기와 같이 미국중심주의를 퍼트리고 있는 현상의 주범이기도 합니다. 그렇다 보니 정치권에서 ‘우파’든 ‘좌파’든 ‘반미’를 이야기하는 정당은 찾아보기 힘든 것이 현실입니다. 이런 이유로 미국의 무리한 파병 요구나 무기 강매, 엄청난 방위비 분담금 요구와 미군기지로 인한 환경오염 문제, 사건·사고로 인한 주민 피해에도 “우리는 미국의 동맹국이라서 어쩔 수 없다”는 무비판적 신뢰가 최고위층과 해당 지자체, 해당 행정기관 사이에 흐르고 있습니다. 이것이 가장 큰 어려움입니다. 미군기지로 인한 환경오염 문제나 사건·사고로 인한 주민 피해는 미국에 대한 신뢰와는 다른 차원의 문제인데도 같은 결에서 해석하려고 합니다. 그것이 미군기지 문제해결에 평택시가 보수적으로 대응하는 이유이기도 하고 어려움이기도 합니다. 또한 평택시민의 무관심도 어려움의 하나입니다. 평택미군기지로 인한 군소음이나 환경오염 문제, 사건·사고를 나의 문제로 인식하지 못합니다. 미군(기지) 문제는 ‘안보’ 사안으로 나와 무관한 것으로 해석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렇듯이 지자체의 보수적 대응과 시민들의 무관심은 피해 주민에 대한 제도를 만들기 힘들게 합니다. 미군기지로 인한 주민의 피해, 지자체의 피해에 대한 법과 제도가 전무한 상태입니다. 현재 법제도는 실제 현장에서 실효성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이유로 평택평화센터는 미군기지로 인한 주민 피해, 지자체 피해에 대한 법제도 개선 작업을 하고 있으며, 법제도 개선 작업을 통해 시민들의 참여와 관심을 높이려고 합니다. ▲ 평택평화센터 회원들 - 평택평화센터의 올해 활동 계획과 중점 목표가 있다면? 평택평화센터 활동은 현장활동과 연구활동으로 구분됩니다. 현장활동으로는 반군사주의, 법제도 개선, 피해주민지원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반군사주의 활동은 전쟁 반대, 세균무기 실험 반대, 한미연합전쟁훈련 반대와 같은 캠페인, 일인시위 등 직접행동으로 진행됩니다. 또한 평화기행을 통해 평택 미군기지 문제를 알리는 활동도 진행됩니다. 두 번째 법제도 개선 활동은 미군(기지)으로 발생하는 사회적 문제(미군의 사건사고 포함)에 대한 법제도 개선 작업, SOFA(미군지위를 보장하는 협정) 개정 작업, 환경오염 제도 개선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피해 주민 지원은 ‘미군범죄피해상담센터’ 운영을 통해 피해 주민 상담 등 적극적인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연구활동은 법제도 개선을 위해 ‘미군 관련 사건사고 실태조사’, ‘현장기록’ 등을 통해 ‘연구보고서’를 매년 작성하고 있습니다. 올해 평택평화센터는 위에서 설명한 현장활동과 연구활동을 기본으로 세 가지 중점 목표가 있습니다. 그 첫째는 ‘평택 미군기지로 인한 환경오염문제’ 해결입니다. 환경부는 ‘주한미군기지 이전에 따른 평택시등의 지원등에 관한 특별법’ 제29조 2항에 따라 평택 미군기지 주변지역에 대한 환경기초조사를 정기적으로 실시하고 있습니다. 평택 미군기지 주변지역은 2013년과 2018년에 캠프 험프리스 주변 지역을, 2014년과 2019년에는 오산공군기지 주변 지역에 대해 환경기초조사를 실시했습니다. 그 결과 평택 미군기지 두 곳 모두 심각한 토양과 지하수 오염이 확인되었습니다. ▲ 평택미군기지를 견학하는 임윤경(오른쪽 세 번째) 센터장 평택시는 오염된 기지 주변 지역을 평택시 예산으로 우선 정화한 후 한국정부에게 소송을 통해 비용을 청구하여 돌려받고 있습니다. 오염은 미군기지가, 관리는 국방부가, 환경조사는 환경부가, 정화는 평택시가 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평택시는 미군기지에 들어가 오염원을 확인할 수 있는 법적 근거나 권한이 없어 수동적으로 정화작업만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듯 환경오염에 따른 관리 따로, 조사 따로, 정화작업 따로 하다 보니 오염원을 제거하고 책임을 지겠다고 나서는 정부기관이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것은 평택시가 밑 빠진 독에 계속 물만 붓는 것과 같습니다. 현재 기지 내부 오염원이 특정되었지만 미군은 현장 출입을 허용하지 않고 기지 내부의 기초적인 정보조차 공유하지 않고 있는 현실은 평택시가 겪는 큰 어려움입니다. 이에 평택평화센터는 미군기지 환경오염이나 사고와 관련하여 2021년 평택시 생태하천과와 함께 <평택시 주한미군 공여구역주변지역 등 환경오염 정화를 위한 시민참여위원회 설치 및 운영 조례 (2021.5.28. 제정, 이하 시민참여위원회)>를 제정하였습니다. ‘시민참여위원회’는 미군기지 환경오염 문제점을 담은 ‘의견서’를 ‘환경부’, ‘국방부’에 보내려고 합니다. 이 ‘의견서’에는 미군기지로 인한 환경오염 문제를 관리부터 환경조사, 정화작업까지 정부기관(국방부와 환경부)이 모두 책임지고 해결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깁니다. 평택평화센터는 미군기지로 인한 환경오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하려고 합니다. 두 번째는 미군(기지)으로 인한 사건·사고 ‘실태조사’와 ‘주한미군피해지원위원회’ 활동입니다. 평택평화센터의 몇 년간의 노력으로 <평택시 주한미군 주둔 등으로 인한 피해지역 및 피해주민 지원 조례(2023.08)>가 제정되었습니다. 이 조례에는 미군으로 인한 사건·사고 ‘실태조사’와 ‘주한미군피해지원위원회’가 명시되어 있습니다. 미군기지와 70여 년을 함께 이웃하며 살아왔지만 지자체 차원에서 미군 관련 사건·사고를 정확하게 ‘실태조사’한 적이 한번도 없습니다. 올해 하반기에는 추경을 통해 ‘실태조사’를 실시할 수 있도록 하는 것과 ‘주한미군피해지원위원회’ 활동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주요 활동 목표입니다. 마지막으로 지자체장, 시의회, 행정기관의 미군기지와 관련한 사회적 문제에 대해 인식개선을 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장기적인 목표이지만 올해는 좀 더 세밀하게 계획하여 좀 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언어로 만들어 가려고 합니다.<다음호에는 임윤경 평택평화센터장이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평택시·의정모니터링센터’에 관한 인터뷰 이어집니다> 김다솔 기자 ptl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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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1-17
  • [세상사는 이야기] 북유럽 기행 ‘덴마크는 미래지향적 국가’ (1회)
    무려 열다섯 시간에 이르는 비행에는 감내가 따르기 마련이다. 그 시공을 어떻게 메우느냐도 각양각색일 터, 필자의 경우는 일단 핸드폰과 절연한 채 방문지의 자료를 뒤적이는 일 외에는 심신을 푹 쉬게 하는 데 집중하는 편이다. 어렵사리 당도한 덴마크(Kingdom of Denmark)의 수도 코펜하겐(인구: 약 140만 명). 첫눈에 초지가 대부분인 국토는 유순했다. 거꾸로 돌린 7시간의 시차로 인해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뒤 곧바로 나선 뉘하운 운하(17세기경 개통) 투어에서 만난 현지 가이드의 일성은 585만 정도 인구(면적: 한국의 43%)의 나라에서 이룩한 자랑거리 일색이다. 그럴 만한 것이 그녀의 말마따나 1인당 63,000달러에 이르는 국민소득이야 고물가를 연동한 구매력 지수를 따져봐야 하겠으나 거리 질서가 확 잡힌 사회상. 무엇보다 자전거도로의 원활한 흐름이 시야에 들어온다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보행자가 자전거 통행을 방해하면 배상책임을 지운단다.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무단횡단하는 가운데 벌어진 교통사고에도 운전자의 과실 여부부터 따지고 드니 거드는 말이다. 우리 부부가 놓치지 않는 해외여행 포인트는 아침 식사 전 둘러보는 산책로. 정갈한 골목과 보행로를 걸어보니 역시나 강소국답게 발바닥이 부드럽다. 노면 상태는 장인정신과 맥을 같이한다고 누차 강조하는 이유다. 응당 이들에게서 발견하는 한결같은 가치는 투철한 직업의식. 쾌활한 안내자나 듬직한 선장이나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자부심이 남다르다. 그러고 보니 유람선을 이끄는 이들은 여인 천하. 수로를 따라 펼쳐지는 시가지 풍경도 동화에 곁들인 그림처럼 싱그럽지만 맛깔스럽게 이어지는 현지 가이드의 입담 또한 쏠쏠하다. 현대와 고전을 아우르는 건축양식은 덴마크인들이 창출한 지혜로움. 수로에서 스치는 안데르센의 거주 지역이 세 군데라더니 정수리에 닿을 듯 아슬아슬 빠져나오는 낮은 다리도 아랑곳하지 않고 카메라 렌즈들은 연신 명장면을 놓칠세라 주위 풍경을 담기에 여념이 없다. 눈앞에 즐비한 자전거 행렬을 뒤로하고 왼쪽으로 블랙다이아몬드라고 즐겨 부르는 왕립도서관에 이어 오른편으로는 독특한 디자인의 박물관이 지나간다. 원형과 사각형을 조합한 해군병영은 흡사 바다를 제압하려는 듯한 기세. 코펜하겐이 상업 운하도시라는 뜻을 담고 있는 것하고 결코 무관해 뵈지 않는다. ▲ 덴마크의 코펜하겐 뉘하운 운하에서 본 시가지 이른바 비만세(Fat Tax)를 처음 도입한 나라도 덴마크. 2011년 10월 지방이나 설탕, 소금 함유량이 높은 식품에 부과하는 소비세를 전격 시행한 과단성이야말로 돋보이는 대목이다. 흥미로운 지점은 덴마크는 이듬해 비만세 항목을 폐지했으나 이후 헝가리를 비롯해 프랑스, 핀란드, 멕시코 등에서 이와 유사한 형태의 조세를 징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만큼 생활 의학 분야가 발달했다는 설명을 듣자니 유난히 유제품의 품질이 뛰어난 건 당연지사. 서해대교를 설계한 이가 덴마크인이라는 점도 놀랍거니와 물밑 주차장, 정교한 잠수함, 다들 꺼리는 소각장 등과 여왕의 거처가 멀지 않다는 점도 고무적이다. 고급아파트의 일정 지분(8%)을 빈자에게 할애하는 사회적 합의라면 수상가옥이면 어떻고 바다 버스 옆에 자리한 포장마차인들 어찌 정겹지 않으랴. 한국인 시민권자가 300여 명인 데 비해 입양아 숫자가 9,000명에 달하는 현실을 보면 이네들의 수준 높은 의식구조를 95%나 차지하는 복음루터교 교인들이 묵묵히 대변하는 참이다. 상생에 기반한 자발적 출산율이 부러운 건 이 나라가 국가 경쟁력 1위에다 일개인을 영웅시하지 않는 풍조에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하리라. 수많은 계단을 딛고 ‘우리 구세주 교회’의 첨탑에 올라간다고 해도 구원은 이신칭의에 근거한 신행일치를 이루지 않는 한 절대 임하지 않는 법. 평범한 목수가 창안한 레고 장난감이 지구촌 시장을 휩쓸고, 지은 지 수백 년이 지나도 건물의 원형을 보존하려는 안목이 없다면 어릴 적부터 쓰레기를 줍도록 가르치겠는가? 다만 세계 최초로 타투를 고안해 유행시킨 공치사에 대해서는 견해를 달리한다. 이는 신체를 훼손하는 일이 불효라는 유교적 이념 이전의 성경적 가치이기 때문이다. 내 차가 떠날 시각을 예고하는 ‘주차시계’야말로 당장 도입할 만한 혜안. 새로 선출된 수상의 얼굴을 보는 절차로 취임식을 대신하는 여왕마저 필요할 때마다 박물관에서 보석을 빌려 쓸 만치 모든 사물의 박물화를 꾀하는 나라. 투명하게 상시 개방하는 시청사에서 풍기는 고품격을 감안하면 게피온 분수 아래 인어공주는 엑스트라에 불과하다. 덴마크에서는 만날 때 ‘하이’, 헤어질 땐 ‘하이하이’를 거듭하는 인사말도 실용적이다. ■ 프로필 - 고교생에게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퇴임 후 기고활동을 이어가면서 기독교 철학박사(Ph.D.) 학위를 받았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을 운영합니다. - <평택자치신문>에 “세상사는 이야기”를 14년째 연재하는 중입니다. ※ 다음호(709호)에는 ‘북유럽 기행 - 노르웨이 자산은 평등사상’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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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하식의 이야기
    2024-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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