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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사는 이야기] 고통받는 인간의 한계 ‘고통의 의식을 추적한 촉’ (2회)
    원초적인 경험으로서의 고통은 의심할 수 없는 영역입니다. 자고로 고통은 사람 곁을 떠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실제 모든 지식과 감각을 의심할 수는 있어도 고통만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현실적으로 고통을 당함으로 인식되는 자신은 생각을 통해 확인하는 자신보다 훨씬 더 의심 없이 다가오는 건 사실입니다. 가장 원초적인 고통의 경험은 인간에게 가장 기본적인 경험 가운데 하나입니다. 사람이란 존재는 쾌락을 더 좋아하긴 하지만 그것은 끝없는 반복의 느낌을 요구합니다. 반면에 고통으로부터 벗어났을 때 맛보는 해방감은 기쁨을 배가합니다. 그러나 행복은 다른 것들과는 달리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동안 더는 행복하다고 느끼지 못하기도 합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오늘날 전방위적으로 갖가지 고통을 줄이기 위한 범정부적인 노력은 유의미합니다. 다만 공리주의처럼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선으로 여기고, 대다수의 고통을 부추기는 결사체를 악의 요소로 취급합니다. 따라서 고통의 유무에 따라 선악을 판별하는 기준선을 설정한다는 것은 나름대로 설득력을 지닌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부정의 근원으로서의 고통은 무엇일까요? 죽음이 인간의 한계를 객관적으로 설정하기에 고통은 우리로 하여금 그것을 인식하게 만듭니다. 누구든지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고통 앞에서는 더욱 저항적인 행동으로 사람을 만드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물론 앉아서 당하는 무기력함을 목도하는 경우가 없지는 않지만 대체로 혈기가 남아있는 한 지금의 상태로 가만두지는 않습니다. 고통을 피하기 위한 행동일수록 조건반사적이고 즉각적이며 때로는 반성적이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사람들에게 고통이 없다면 영원히 사유 활동을 시작하지 않을 수도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고통을 문제거리의 뿌리요, 모든 부정의 핵이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요? 그런 선입견은 오히려 극심한 고통을 통해서 부정이 생겨나고 깊은 늪으로 빠져든다는 데 동의합니다. 그러나 모든 평가는 주관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헣다고 선악을 구별하는 객관적이고 최종적인 기준이 불필요하다는 건 아닙니다. 문제는 대단히 지성적이고 가치 중립적인 태도를 취한다고 해서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 튼실히 열린 과일은 땀흘린 보람 주관적 경험으로서의 고통을 두고 항간에서 남의 암덩어리가 내 종기보다 못하다고들 합니다. 은밀히 개인적으로 당하는 고통일수록 쉬이 갈음하기 어렵다는 비유입니다. 사회적으로 공유하지 못하는 고통을 마냥 방치하면 안 되는 이유입니다. 아픈 사람 옆에 가면 무조건 그의 말을 들어주며 가만히 머물다가 돌어오는 게 상책입니다. 그러나 후설은 지향성의 특징을 가리켜 지각하는 행위와 상상의 날개로 설명합니다. 사랑과 미움에는 무엇이 그렇게 만들며, 욕구는 무엇이 욕구가 되냐는 반문입니다. 실제 자연인은 무엇을 의식할 때 의식하는 행위를 동반합니다. 사랑이나 욕망보다 한 걸음 더 나간 게 고통이라는 주장입니다. 고통은 특이하게도 지향적이기도, 지향적이 아닐 수도 있다는 논리입니다. 전자의 경우 물리적인 현상이므로 고통을 유발하는 계기나 상황이 곧 고통 그 자체일 수는 없으며, 후자는 그저 지향을 지향하려는 심리현상에 불과하다는 부연입니다. 그렇다면 후설의 지향적 의식은 주체의 능동적인 행위의 결과라는 결론에 다다릅니다. 다만 레비나스는 고통도 의식 속에 주어진 것이므로 어떤 심리적인 내용을 가질 수 있습니다. 나를 의식하게 하는 고통은 다른 것은 인식하게 하는 데 중요하게 기능합니다. 미드는 나를 가능하게 하는 타인의 역할을 비교적 긍정하는 데 비해, 사르트르는 다소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곤 합니다. 상식적으로 다른 사람들을 심판함으로써 자신을 합리화하는 경향이 있다는 진단입니다. 고통은 하나님 앞에 선 아담과 하와처럼 불행히도 애써 부인하고 그것을 느끼지 않으려 몸부림칠수록 피할 수 없는 특징을 지녔습니다. 그래서 헤겔은 사람은 아픔을 통해 자신의 주체성을 느낀다고 말합니다. 즉 공개적이 되려는 사적인 고통은 지극히 주관적이므로 더 공개적이 되려는 충동을 가진다는 설명입니다. 가장 내면적인 것일수록 가장 외면적이 되려는 욕구를 분출할 수 있다는 의견입니다. 그것에 가장 효과적이고 유용한 수단이 언어입니다. 언어를 전제하지 않는 의식은 불가능하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고통과 언어는 긴밀한 내면적 관계를 갖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 프로필 - 고교생에게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퇴임 후 기고활동을 이어가면서 기독교 철학박사(Ph.D.) 학위를 받았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을 운영합니다. - 정론지 <평택자치신문>에 “세상사는 이야기”를 15년째 연재하는 중입니다. ※ 다음호(741호)에는 ‘고통받는 인간의 한계 - 고통의 역사가 주는 함의’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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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하식의 이야기
    2024-10-07
  • [세상사는 이야기] 고통받는 인간의 한계 ‘고통에 대한 철학적 성찰’ (1회)
    손봉호 교수의 『고통받는 인간』은 연약한 사람이 겪는 고통의 문제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 다룬 내용입니다. 저자는 책을 쓴 이유에 대해 철학자가 철학에 관한 책을 쉽게 쓰려고 노력하지 않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라고 스스로에게 규정합니다. 그러고 보면 이 책은 자신에 대한 사회 이론적 정당화의 일환으로도 볼 수 있겠습니다. 유수의 철인이자 독실한 신앙인으로 알려진 그가 생애 후반기에 와서야 사회의 약자들을 돕는 일이 정의라는 사실을 발견한 것은 흥미로운 지점입니다. 이를 계기로 사랑이 삶의 가장 고상한 가치라는 기독교의 가르침을 재음미하며 일관성 있게 행동하려고 애쓴다는 그의 말에 상당 부분 공감합니다. 하지만 또 다른 신앙적 측면까지 동의하지는 않습니다. 요즘 들어 그가 보이는 성적 소수자에 대한 태도를 보면 모호한 측면이 있습니다. 그밖에 성경적 세계관에 들어가서도 이견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전개되는 논리를 통해서도 일정 부분 문제 제기는 있을 것입니다. 적극적으로 필자의 의견을 개진하는 일에도 주저하지 않겠습니다.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이 모든 인간은 일생을 통해 크고 작은 고통을 당하며 살아갑니다. 문제는 인간들이 오욕칠정을 느끼는 가운데 본능적으로 즐거움보다는 괴로움의 무게가 심신을 짓누른다는 데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영혼에 관심이 있다면 고통의 근원을 절대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고통이 지닌 다양한 모습과 의의를 철학적 안목으로 관찰하고 성찰하는 일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이 책에서는 넓은 의미의 현상학적 방법으로 인간의 고통에 접근하고 있습니다. 저자가 시도한 ‘인간들의 구체적인 경험들에 주목하여 만약 사람에게 고통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를 가정한 상황을 상상해보는 사유실험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곧 철학적 사고의 특징과 고통: 철학자의 연구 대상과 방법론은 있는 것에 대한 존재론적 접근입니다. 이는 자연에 대하여 두려움을 가진 고대인들에게는 요원한 일이었습니다. 다만 그들에게는 대자연에 대한 경외심이 있었습니다. 역설적으로 오늘날과 같은 재앙을 전혀 예견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어느 쪽이 그나마 인간의 고통을 덜어주는 행위일까요? ▲ 물향기수목원에서 일하는 농부상 고통에 무관심한 철학이 대내외적으로 위기를 맞고 있는 현상은 인간의 고통에 대하여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의학마저 이 분야에서 개척 단계에 있다는 것은 놀랍기 그지없습니다. 인문학을 이끄는 철학계에서 사람의 본질에 대한 연구를 게을리함으로써 고통의 중요성을 소홀히 한 처사야말로 매우 유감스럽습니다. 이를 핑계의 그물로 이용한 현상학자 후설은 갈릴레오로부터 시작된 과학주의가 바로 그런 오류에 빠졌다고 말합니다. 반면에 칸트 같은 철학자는 얼마큼 자체모순을 감수하면서도 물자체(物自體)의 존재와 그것의 의의를 인정했습니다. 설득력 있는 논리는 경험과 함께 인류를 움직일 수 있는 중요한 힘이니까요. 고통과 철학의 자체변혁이 고통의 문제들과 철학자들이 씨름해야 하는 까닭입니다. 고통은 본질상 인간 형성에 필요한 마음의 질서 영역에 해당하므로 이제 철학의 임무는 인간들이 당하는 고통에 대해 수긍할 만한 이유를 찾아내고 긍정적인 반응을 얻어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정확한 정의를 거부하는 고통은 또 다른 문제입니다. 국제고통학회에서 내린 고통(pain)의 정의는 ‘(신체적) 조직의 실제적 혹은 그러한 파손이란 표현을 사용하여 서술되는 불쾌한 감각적·정서적 경험’이므로 신경물리학이나 의학이 철학보다 유리한 입장에 있지 않습니다. 즉 다른 경험과 구별되는 특징은 그 경험을 일으키는 원인으로부터 도피하도록 행동을 유발하거나 그것이 가능하게 해주기를 호소하는 것입니다. 고통이란 개념은 과학적으로 연구할 때만큼은 행동주의 심리학의 유혹이 큽니다. 일반적으로 아픔은 육체적인 것이고, 괴로움은 정신적인 것입니다. 동일한 자극이라도 개인적인 차이에 따라 그 반응은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후자는 의식작용과 정신능력을 가진 인격체에 국한되어 있습니다. 한자어를 보아도 괴로움[苦]과 아픔[痛]의 합성이니까요. 우리말에서도 고통이란 낱말은 양자를 다 포함합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아픔과 괴로움을 구별하는 것은 몸과 마음을 엄격히 구별하는 생각과 관련이 있습니다. 육체적인 요소를 뺀 괴로움이 있을 수 있느냐는 반론이 가능한 지점입니다. ■ 프로필 - 고교생에게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퇴임 후 기고활동을 이어가면서 기독교 철학박사(Ph.D.) 학위를 받았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을 운영합니다. - 정론지 <평택자치신문>에 “세상사는 이야기”를 15년째 연재하는 중입니다. ※ 다음호(740호)에는 ‘고통받는 인간의 한계 - 고통의 의식을 추적한 촉’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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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하식의 이야기
    2024-09-30
  • [세상사는 이야기] 서유럽 견문기 ‘바티칸: 강고한 교황의 아성’ (8회)
    견고한 장벽을 두고 스스로 인내심을 시험해보는 것도 이번이 두 번째. 추상같이 캐묻건대, “누가 감히 한 인간에게 ‘교회의 황제’라는 칭호를 부여했는가?” 길게 늘어선 구경꾼에 섞여 새삼 필자가 떠올려본 의문문이다. 꼬박 두 시간을 기다려 들어간 로마교황청(The Holy See)은 바티칸시국(State of the Vatican City)이라고 부르는 엄연한 국가로써, 불과 0.44㎢의 면적에 800명 내외(추정치)가 상주하며 공식적으로 4개어(라틴어,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영어)를 사용하고 있거니와 전 세계 가톨릭교회의 유일한 대변자로서, 그 중심에 교황(현재 266대 프란치스코)이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성육신하신 예수그리스도의 강림사건 이후 십자가상의 대속하심을 부활로 입증하시며 오순절을 기해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을 체험한 결과는 교회공동체의 태동이었다. 성경의 계시는 게바라 하는 베드로를 가리켜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라고 명하셨지(마태복음 16:18), 천국 열쇠의 주인이 바로 너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다(마태복음 16:19)는 사실을 부디 상기하기 바란다. 그날따라 몸수색은 지루했고 소지품 검색은 지체됐다. 들어가자마자 내가 다시 걸어 보기를 원한 곳은 실은 원형 계단이었다. 그런데 동선 자체를 바꿔버렸다고 인지하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단단한 백향목을 가공해 만든 목제 통로에 대한 환상이 산통 깨지는 순간이었다. 아니 그 기대감이 송두리째 깨졌다기보다는 여태껏 뫼비우스 띠를 닮은 난간에 대롱대롱 매달려 빙글빙글 맴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은근히 거들먹거리는 용병들의 몰골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고압적인 검색원의 표정까지 감수하려면 자유의지가 중요하다. 이와 같은 정서를 전연 감지하지 못했다면 그건 개인차일 수 있다. 지나치게 예리하거나 민감한 감각이 오감에 들지는 않으니까. 여하튼 뻘쭘한 석고상이나 보자고 내공을 쌓아 여길 입성한 건 아닌데 구경거리가 영 시원찮다. 일부 드물게 만나는 지역지도에 딸린 그림이야 눈에 익은 천장화처럼 진부할 테니 희귀한 보석은 몰라도 진귀한 골동품마저 죄다 골방으로 이동시킨 게 명확하다면 여봐란듯이 대체물품으로 채워놓아야 하지 않느냐는 성토. 다만 바닥을 장식한 대리석의 문양만은 밀라노에서 봤던 그걸 수렴하는 작품인 거 같다. ▲ 바티칸 회랑 창가에서 쳐다본 바깥 뜰 게다가 시스티나 대성당이 아니고 소성당으로 가라는 연유는 또 뭔지 따지고 싶다. 높고 낮은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며 무려 56개의 관문을 통과하기까지 갖은 고초를 감내하라며 한껏 생색을 내더니만 이젠 그마저 귀찮아졌는지 그냥 선선히 풀어주는 느낌이어서 그다지 기분이 좋지 않았다. 탁한 공기를 피해 냉큼 바깥으로 나온 건 그래서다. 커다란 십자가 형상을 기반으로 조성한 구도를 현 위치에 대입한다면 이해가 훨씬 빠를 터. 솔방울 상징물을 쳐다보며 종신직 교황의 선출을 알아내느냐는 부수적이다. 김대건 신부를 찾아뵙거나 피에타 앞에 가서 피눈물을 봤다고 우기는 게 신앙과 무슨 상관인지. 다행히 전에는 차단되었던 베드로 대성당의 위용을 감상하려고 그곳으로 발길을 옮기니 천사들이 거드는 세면대를 지나쳐 고해성사를 받겠다고 차린 상자를 보는 순간 본질하고는 더 거리가 멀어진다. 우리 부부는 잠시 미사를 드리는 좌석에 앉았다. 아직 깨닫지 못한 영혼들을 놓고 드리는 간절한 기도. 내 가정의 영적 평화와 나아가 나라와 겨레의 안위를 위해 고개를 숙이고 나니 무거운 짐이 한결 가벼워졌다. 테베르 강변에서 똬리를 튼 바티칸의 내부를 대충이나마 돌아보니 지나간 날들이 주마등처럼 우뇌를 스친다. 313년 콘스탄티누스의 밀라노칙령 이후 기독교는 지속적으로 영향력을 확장하다가 십자군전쟁이란 명분으로 8차에 걸쳐 전무후무한 살인극을 벌였다. 한국과의 접촉양상도 166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리나라 교회와 교황청이 정식관계를 맺은 때는 1831년이로되, 당시 문헌을 보면 교황 알렉산더 7세는 중국 교회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보였고, 그해 남경대목구를 설정하면서 1702년 들어 조선이 북경 주교의 관하에 들어간 터였다. 그러나 1866년 병인박해를 시작으로 어떠한 일들이 일어났는가? 1054년 동서교회 분열을 필두로 끊임없는 배교사와는 별도로 제사를 거부한다며 2만 명에 가까운 순교자를 양산했거늘, 어찌 오늘날 다원주의를 표방할 수 있는지 뼈아플 따름이다. 기독교에 복음이 빠지면 존재 이유는 사라진다. 끝으로 아내의 경우 여간해서는 세계여행에 대한 찬사에 인색한데, 주다영 인솔자의 세심한 배려와 현지 해설자들의 전문성 덕분에 최고의 여정이었다는 말씀을 꼭 전하고 싶다. ■ 프로필 - 고교생에게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퇴임 후 기고활동을 이어가면서 기독교 철학박사(Ph.D.) 학위를 받았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을 운영합니다. - 정론지 <평택자치신문>에 “세상사는 이야기”를 15년째 연재하는 중입니다. ※ 다음호(739호)에는 ‘고통받는 인간의 한계 - 고통에 대한 철학적 성찰’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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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하식의 이야기
    2024-09-09
  • [세상사는 이야기] 서유럽 견문기 ‘이태리: 걸어서 둘러본 로마’ (7회)
    하늘이 고운 날, 다인승 벤츠 대신 걸어서 로마 시내를 둘러본 기회는 행운이었다. 기실 어젯밤 입소문만 무성한 나폴리(세계 3대 미항?)를 벗어날 때만 해도 줄기찬 빗소리 때문에 통 잠을 이루지 못했으니 말이다. 첫 목적지는 로마의 랜드마크인 콜로세움. 1층은 투스카니아식, 2층은 이오니아식, 3층은 코린토스식 기둥으로 꾸며져 있든 말든 한눈에 들어온 건축미는 그야말로 시신경에 경련을 일으킬 지경. 그런데 왜 첫 탐방 때는 그토록 후줄근하게 보였는지 도무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물론 현재 진행형인 보강공사로 인해 황금색으로 거듭났다는 전제를 깔고서도 예술미에 정교함을 더한 자태를 설명해낼 자신이 없을 정도. 하긴 그때만 해도 사방에서 뿜어대는 매연에 의해 부식되어가는 모습을 안타까이 여겼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러한 세계유산을 베드로 대성당을 지으며 채석장으로 이용했다니 참으로 통탄할 수밖에. 아직 확인하지 못한 내부는 타원형 평면의 장변과 단변이 가장 조화롭게 1.618 대 1의 황금 비율로 건조했다는 얘기는 널리 알려진 사실. 바로 곁에 세운 콘스탄티누스개선문은 균형추였다. 일행과 떨어져 팔라티노 언덕에서 바라본 콜로세움의 위용은 더욱 장관이었다.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한 채 발걸음을 돌리니 온통 내가 좋아하는 갈색 톤. 포로 로마노의 입구를 기준으로 훑어보자면 티투스 개선문을 시작으로 베스타 신전과 무녀의 집을 지나 율리아 공회당과 원로원 건물 옆으로 아우구스투스 및 세베루스 개선문과 마주한 몇 개의 신전들이 눈앞에 가로놓여있다. 거기에다가 당시 백화점이었던 건물에서 풍기는 색조의 조화로움도 오묘한 분위기를 자아내기에 충분한데, 유감스럽게도 유물의 훼손을 방지하기 위해 상당히 넓은 구역을 전면적으로 통제하고 있었다. 통행 금지 대신 망원경을 설치했으나 토큰을 집어넣으라 하니 귀찮을뿐더러 관광객으로서는 직접 걸어서 로마의 심장부를 관통했을 때 느끼는 짜릿함을 무기한 유예하라는 통첩이나 다름없어, 차라리 당대 모습을 그래픽으로 복원한 영상물이 더 낫지 싶지만, 이토록 쾌적한 날씨에 고대 로마의 민주정치가 행해지고 법을 집행하며 상업활동의 중심지였던 땅을 이곳 지리에 밝은 안내자와 함께 오붓이 돌아본다는 것에 감사할 뿐이다. ▲ 통일기념관 옥상에서 본 포로로마노 이번 이탈리아 여행에서 건진 번외 수확은 거대한 통일기념관의 발견. 로마의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장소일뿐더러 로마시가지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단계별 전망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발품을 팔아 옥상으로 올라가니 방금 전 지나온 거리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눈길을 돌려 시내를 가로지르는 비아 델 코르소를 따라가면 로마 북쪽의 포폴로 광장까지 시원스럽게 뚫려있는데, 당연히 콜로세움은 물론 포로 로마노의 전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왜 굳이 혈세를 들여 이만한 석조건물을 지어야 했을까? 앞서 살펴봤듯이 이탈리아는 서기 476년 서로마 멸망 이후 각각 도시국가로 분열되어 무려 1400년 동안이나 하나로 통합할 엄두를 내지 못했는데 대차게 빅토리오 엠마누엘레 2세가 갈라졌던 도시들을 하나로 통일한 것이다. 1878년 그가 세상을 떠난 뒤 1935년 이탈리아 정부는 초대 국왕을 기리는 통일기념관을 건설하였고, 신고전주의를 재해석했다는 평가를 받는 가운데 중앙 계단 위로는 코린트식 열주 기둥, 꼭대기 좌우에는 사두마차를 모는 그리스신화의 니케 및 청동 기마상을 탄 자가 그 주인공이다. 영화 로마의 휴일에 나오는 스페인 광장을 저만치 두고 트레비 분수를 어찌 그냥 지나치랴. 그런데 아뿔싸, 분수에 물이 바짝 말라붙다니 이런 낭패가 또 있을까? 그렇다고 해서 오래전에는 여럿이 주머니 눈치가 보여 그냥 지나쳤으나 고가의 아이스크림도 두 개나 사서 먹어주는(3.5유로X2=원화로 만 원대가 넘는 가격) 등, 이전과는 확연히 결이 다른 접근을 시도해보기로 했겠다. 다름 아닌 세 갈래 길이 만나는 처소에 담긴 의미를 되새겨보리라는 다짐이거늘, 제아무리 요리 보고 조리 봐도 도무지 자연과 예술의 결합이라는 속뜻을 도통 헤아리지 못하겠으니 어쩐담. 그도 그럴 게 빼곡한 건물들에 둘러싸여 자투리 동전을 어깨너머로 던지며 재방문을 약속할 일은 전부터 관심 밖이었고, 주어진 시간에는 여유가 있으니 반경을 넓혀 주변을 걸어보기로 한 건 그래서다. 문제는 늘 소매치기를 당할 위험부담을 경계해야 한다는 삭막함. 어쨌든 바로크식 외관을 자랑하는 산 빈첸초 에드 아나스타지오 교회나, 그 뒤 교황의 정궁으로 사용했다는 팔라초 퀴리날레를 찾아본들 출출한 뱃속을 달래줄 맛있는 요리에 비할까? ■ 프로필 - 고교생에게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퇴임 후 기고활동을 이어가면서 기독교 철학박사(Ph.D.) 학위를 받았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을 운영합니다. - 정론지 <평택자치신문>에 “세상사는 이야기”를 15년째 연재하는 중입니다. ※ 다음호(738호)에는 ‘바티칸: 강고한 교황의 아성’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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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9-02
  • [세상사는 이야기] 서유럽 견문기 ‘이태리: 폼페이 건너 카프리’ (6회)
    운치 넘치는 아르노 강변을 따라 로마로 향하는 길. 나머지 사흘을 한 숙소에 머물기만 해도 일단 피로감은 반감된다. 내일 아침 일찍 서둘러 폼페이를 간다고 해도 감수할 만하니까. 필자의 경우는 온종일은 아니더라도 이동 거리가 좀 섞여 있는 걸 선호한다. 그래서 눈동자를 밖으로 돌리니 워낙에 비옥한 토양이어선지 비닐하우스 농사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차창에 비친 산야만 해도 특이하리만치 선명히 구분된 모양새. 마냥 산자락을 길게 늘어뜨린 채 야산들이 버티고 앉아있는 풍광도 이채롭다. 산은 산들끼리 모여 산맥을 형성하고, 들과 들은 서로를 맞대고 사이좋은 이웃처럼 논밭을 이루고 있다. 유독 눈자위에 박히는 장면들은 남한의 세 곱이나 되는 대자연을 품은 이탈리아인들의 생태계. 무엇보다 곳곳에 물이 풍부하고 오염원이 없어 보여 부럽다. 자연스레 모래톱을 만들어가는 하천을 보자니 물가는 물론 섬처럼 뵈는 중간지대에 수풀이 무성하다. 우리네 농촌과 비슷한 풍경이라면 나란히 늘어선 미루나무 행렬이나 줄지어 박혀 있는 양배추 포기들. 한국은 이제 백두대간이라도 반드시 지켜내야 할 텐데! 그간 말로만 듣던 폼페이의 잔해를 마주한 느낌이야말로 만감이 교차하더라는 표현이 어울릴 법하다. 상상을 가미한 영화처럼 잘 나가던 인간들이 맞이한 최후의 날을 체감하진 못할지라도 참혹한 과거사를 돌이켜본 것만으로도 재앙은 늘 미래형이다. 설마설마하던 일이 벌어진 화산 폭발 현장에서 화려한 도시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극치를 치닫던 애정행각은 설화가 되어버렸다. 말초적 감도를 높이려는 영상물이야 애써 부모의 복수와 자신의 연인을 지켜내기 위해 생목숨을 건다지만 결투 중 도주할 틈새도 없이 쏟아지는 용암과 화산재에 나름 힘깨나 쓴다는 군상마저 속수무책일 수밖에는 별도리가 있었으랴. AD 79년 로마의 도시를 자처하던 식민지는 그렇게 속절없이 잔혹사에 묻히고 말았으니, 잘 닦은 도로를 따라 도시계획에 의한 상하수도시설까지 갖추고도 온갖 죄악상의 제물로써 오늘날 길손들 앞에 그 일부를 드러낸 참이다. 가장 놀라운 실물은 수세식 화장실. 현재 공개된 실상만 갖고도 방탕한 생활상을 속속들이 짐작할 수 있거늘 계속 발굴 중이라니 범죄사의 종착역은 어딜지 솔직히 두렵기까지 하다. ▲ 화산재에 파묻혀 있던 폼페이의 잔해 간이역에서 기차를 타고 이탈리아의 남부지방을 구경하는 재미 또한 쏠쏠했다. 급격히 떨어진 북부와의 수준차. 외진 곳에 위치한 공동주택에는 허름한 옷가지들이 내걸렸고, 허술한 역사에는 잡초들로 빽빽한 데다가 미처 손을 쓰지 못한 듯 길모퉁이에는 비닐로 덮은 흙더미들이 수북했다. 간간이 움푹 파인 노면까지 눈에 띈다 했더니 어느새 해안선을 끼고 발달한 소렌토 진입. 채 2만이 안 되는 곳치고는 멀끔하다. 얼룩진 깃발이 펄럭이는 로터리를 뒤로하고 고샅길을 걸으며 길가 상점에 진열된 일상용품에 눈길을 주었으나 마지못해 지갑을 열 수는 없었는데,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이란 게 거기서 거기여서 슬그머니 열린 쪽문 곁에 놓인 상자는 무얼까 기웃거린 일 외에는 딱히 기록장에 남길 일조차 마뜩잖다. 곧장 가파른 계단을 내디디며 내려다본 장면은 카프리로 건너가는 부둣가. 아말피 항을 떠나며 절벽강산을 바라보니 소득 격차로 인한 지역감정이란 게 여기서는 아예 나라를 나누자는 목소리로 들릴 수는 있겠지만, 우리네처럼 정치권에서 진영논리에 따라 조장한 측면은 아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풍랑이 제법 일렁이는 듯 선창에 물기가 잔뜩 서린 가운데 당도한 카프리는 예로부터 유럽 귀족들의 휴양지로 알려진 작은 섬. 이곳 특유의 풍경과 낭만적인 분위기로 이름이 났다는데 섬 전체가 대자연 보호구역이어서 그 자체가 네이플스만의 작은 보석으로 여겨진단다. 셔틀버스에 오르면 비좁은 비탈길에서 차체를 스치듯 아슬아슬한 운전기술을 맛볼 수 있다. 곧바로 가이드를 따라나선 골목길 산책. 조용히 사는 주택가라서 어찌 명품점이 없을쏘냐. 장사꾼이 진을 치건 말건 섬에서 가장 뛰어난 아나카프리 전망대에서 인증샷을 남기자니 저 너머 유명인사들의 별장보다는 차라리 벤치가 있는 바로 옆 소정원이 훨씬 정겹게 느껴진다. 어느 섬인들 이만치 아침저녁 노을이며 해돋이나 해맞이를 실컷 감상할 수 없을까마는, 여기까지 온 김에 가게 앞에 선보인 향수를 맡아본 뒤 반경을 좁혀 자유시간에 돌아본 윗동네에는 가정집 회당이 있었고, 축구의 나라답게 국제규모의 경기장도 숨어있었다. 사람에 따라 취향은 다를지언정 여생을 마칠 만큼은 아니었기에, 역설적으로 “돌아오라 소렌토로”라는 노래가 나온 걸까? ■ 프로필 - 고교생에게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퇴임 후 기고활동을 이어가면서 기독교 철학박사(Ph.D.) 학위를 받았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을 운영합니다. - 정론지 <평택자치신문>에 “세상사는 이야기”를 15년째 연재하는 중입니다. ※ 다음호(737호)에는 ‘이태리: 걸어서 둘러본 로마’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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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8-26
  • [세상사는 이야기] 서유럽 견문기 ‘이태리: 피렌체 앞 토스카나’ (5회)
    꽃의 도시 피렌체로 가는 길은 멀었다. 그러나 자칫 지루할 수도 있는 시공을 종횡무진 넘나든 이가 있었으니, 전반적인 박식함을 넘어 가히 전문적으로 해박한 경지에 오른 ‘정주애’ 현지 가이드였다. 그녀의 해학적 뜻풀이를 옮기면 이름부터 ‘술 주 · 사랑 애’라니 더 보탤 말이 없으렷다. 한마디로 유럽사를 관통하는 인문학적 소양에 관해서는 기독교 철학박사 학위를 가진 필자가 끼어들 만하다. 다만 조직신학 전공자이자 신앙인의 시각에서 짚어보면 신구약 성경 분야만큼은 상대적으로 취약할 수밖에 없다. 여하튼 제번하고 서양사의 맥을 짚는 지점에서 공시적 통찰은 몰라도 통시적 고찰에 관해서는 배우는 바가 있었다. 예컨대, 초장에 로마제국의 흥망사를 다루면서 BC 753년 건국한 뒤 (AD 395년 동서로 분열했다가) AD 476년 서로마가 멸망한 데 이어 1453년 동로마가 무너지면서 흔히들 말하는 중세로 접어들었다는 설명이 무척 일목요연하게 들리더란 말이다. 하지만 소괄호 부분이 빠진 데다가 1517년 루터의 종교개혁에 관해 논하려거든 반드시 1054년 동서교회분열의 원인을 파헤쳐야 매듭이 풀린다. 단, 본 기행의 경우 개략적 기록물을 지향하는 마당에 복잡한 교회사를 들춰내려는 의도는 아니로되, 유럽 여행에서 빠질 수 없는 장소가 기독교(개념적으로는 천주교, 개신교, 정교회, 성공회를 포함함)를 표방하는 예배당이므로 사실관계를 보완하면서 독자들의 이해를 돕자는 취지다. 다들 피렌체에만 들어서면 선뜻 떠올리는 르네상스란 화두가 통념적으로 그리 고상한지는 잘 모르겠으나, 이곳 출신이라는 핑계로 짐짓 재미 삼아 카사노바가 후리는 화술이나 세기적 음란성을 언급하기보다는, 응당 인본주의적 종교미술에 등장하는 도상학이며 정제된 메디치 가문의 자취를 입에 올리는 편이 정석일 것 같아 관련 내용을 간략히 정리하면, 연약한 사람에게는 예외 없이 공과가 있을 테니 경위야 어떻든 어두운 측면을 불문에 부친다면 상업자본을 매개로 300년 이상 정치 권력을 이어간 사례도 흔치는 않을 것이다. 우리 속담에 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쓰랬지만 어디 그런 소문조차 듣기 어려울뿐더러, 목적에 부합한 수단이라야 정당성을 갖는 것이 인류사의 교훈일진대 지금 와서 벌떼처럼 따지고 들면 무슨 대수랴. ▲ 치유마을로 알려진 토스카나의 풍치 오랜 세월 세찬 물결에 휩쓸리지 않고 말없이 강물 곁을 지키고 있는 둑방이 보였다. 이는 어쩌면 옆에서 보기에는 꽤나 거북할지라도 영양가 있는 흙탕물처럼 피렌체를 일으킨 메디치 일가의 족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지나쳐가는 창밖을 응시하던 중 시나브로 두 눈을 사로잡은 풍광이 나타났다. 바라보면 볼수록 목가적 풍치가 살아 숨 쉬는 대자연. 봄기운이 완연한 산기슭에 은은한 연녹색과 그윽한 갈색 톤이 어우러져 필자의 마음을 감싸듯 어루만졌다. 궁금증이 도져 실례를 무릅쓰고 물어보니 치유 마을로 알려진 토스카나의 전경. 이탈리아반도에 이만치 아름다운 고장이 있다는 게 샘 날 정도였다. 그래서인지 오면서 보니 그리 높지 않은 고원에 성처럼 모여 사는 동네도 있었다. 기후 위기가 전 지구를 강타하기 전에는 일교차 없는 지중해성 기온이 온화하게 느껴져 에어컨은커녕 선풍기마저 필요치 않았다는 전언이 결코 허사는 아닌 게다. 그 한복판에 내려 잠시나마 호사를 누리도록 이끈 이는 다비드상. 중턱에 조성한 미켈란젤로 광장에서 사방을 굽어보니 다채로운 색상 조화가 온몸에 푸근히 다가왔다. 비좁은 골목을 비집고 배불리 마친 현지식 점심. 이후 일정에 맞춰 단테 기념비를 만날 때까지는 비교적 진행이 순탄했다. 그런데 피렌체의 중심지였던 시뇨리아에 멈춰 산타크로체성당 앞에서 추억을 쌓으려는 참에 화창하던 일기가 돌변하면서 궂은비가 이내 옷깃을 적시기 시작했다. 역시나 관광 중에 날씨 운이 따르지 않으면 구경은 뒷전. 스냅사진 찍기는 물론이려니와 실시간 쏟아놓는 해설마저 도무지 귀에 들어오질 않는다. 애초부터 갈릴레오를 비롯한 사람들 무덤에는 무덤덤했고, 조토의 종탑은커녕 프레스코화니 네오고딕이니 하는 설명이 뇌리에서만 맴돌 뿐 앞서 필자가 거들었던 천국과 지옥에다 연옥을 추가한 신곡에 관해서도 고인 게 없어, 우산을 받치고 주위를 돌아보다가 아내와 난간에서 잠시 쉬어가려는데 먹구름 사이로 햇살이 비쳤다. 그래 이젠 메디치가의 행위를 두고 장마 끝에 반가운 햇빛이었다고 인정하면 어떨까? 막대한 부를 동원해 문화예술진흥과 고등학문증진에 기여했다면, 현실적으로 천민자본주의의 민낯을 감춘 차선책인 동시에 빈부의 양극화를 좁히려는 마중물이라고 말이다. ■ 프로필 - 고교생에게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퇴임 후 기고활동을 이어가면서 기독교 철학박사(Ph.D.) 학위를 받았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을 운영합니다. - 정론지 <평택자치신문>에 “세상사는 이야기”를 15년째 연재하는 중입니다. ※ 다음호(736호)에는 ‘서유럽 견문기 - 이태리: 폼페이 건너 카프리’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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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8-19
  • [세상사는 이야기] 서유럽 견문기 ‘이태리: 밀라노 거쳐 베니스’ (4회)
    다소 칙칙한 동선을 벗어나니 예측을 한참 빗나간 구상화. 각설하고 밀라노 밤거리는 화려했다. 현란한 문양으로 채색한 대리석 보도 위를 살며시 밟고 눈부시게 치장한 두오모 청동 문전에 서니 고색창연하기 그지없다. 순간 호화롭다 못해 자못 휘황찬란하다는 수사를 떠올릴 만큼 황홀해도 되겠다는 착각이 들 지경. 자주 필자의 글월을 읽는 이라면 이건 과장을 넘어 호들갑이 지나치다고 한들 대꾸할 말이 궁해질 정도였으니, 그윽한 달빛 아래 곱고도 다채로워 심히 아리땁다는 표현밖에는 딱히 들이밀 언사마저 동난 상태랄까. 여태껏 유럽 전역을 쏘다니며 수십 군데 회당을 회람했건만 이만치 우아한 자태를 대하기는 처음이다. 그러니 해설자 입술에서 자그마치 2천여 개의 조각품에 수많은 첨탑과 기둥으로 이뤄진 바로크, 신고딕, 네오클래식 양식을 조합한 결정체라며 쉴 새 없이 늘어놓을 만하다. 늘어선 아케이드형 상가는 물론 스칼라 극장이나 지하철 역사도 문화재급을 뛰어넘는 건축미를 갖췄으니 예능감 넘치는 세공술을 가리켜 다각형 안에 담아낸 함의를 능가한다는 고평가를 얼마든지 내릴 법하다. 그렇다면 그동안 내가 매긴 이탈리아에 대한 평점은 수정해야 마땅하리라. 기실 2005년 한여름에 다녀간 뒤로는 첫인상이 좋지 않아 별반 오고픈 생각이 없었던 게 사실이다. 그중 몇 가지만 나열해도 인종차별, 인프라 미비, 지저분한 거리, 가족 소매치기단 목격 등 그때 박힌 이미지로 인해 외화내빈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후기에 썼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를테면 그러한 선입견에 일대 반전이 일어난 참인데, 바뀐 가이드 말마따나 아직은 반도의 북부권이어서 언뜻 부티가 날 수는 있겠으나 창밖에 비친 경치를 보노라면 영상으로 접하던 그림이나 진배없다. 기차가 힘차게 내달리는 아치형 다리를 보거나 오지마을에 지어놓은 농가를 봐도 단아한 멋이 있다. 그래서일까? 풀밭을 가로지르는 흙길마저 동심을 불러올 듯 정겹다. 워낙 바삐 살아온 탓에 아련한 향수에 젖을 틈이 없었는데, 이렇듯 이탈리아를 여행하며 잠자던 옛 추억을 더듬어갈 줄이야. 그나저나 줄줄이 이어지는 포도밭을 구경하자니 불현듯 소싯적 노동의 현장이 다가왔다. 다만 물찬 논배미나 가지런한 밭이랑도 심연의 그리움을 자극하긴 마찬가지다. 부슬비가 내리는 가운데 베네치아에서 만난 현지 가이드는 초장부터 길손을 휘어잡았다. 여기 역시 재방문이어서 색다른 경관이야 기대할 게 없었으나 설명하는 본새가 하도 재밌어서 시종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게다가 얼굴이나 몸집은 영락없이 고 김정남이 환생한 듯한 모습. 때마침 삼일절이어서 느닷없이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친 횟수만 해도 줄잡아 열 번은 채운 듯한데, 어쨌든 자신이 택한 일을 즐기는 거야 퍽 바람직한 데다가, 지도를 편 채 전체구도를 알려주는 성의 또한 그의 특장점이로되, 천연 해자처럼 바다 한가운데 피난지를 조성해 겨우 살아남았다는 얘기는 이만 생략해버려도, 듣던 대로 밀물 때면 상승하는 수면을 막아내느라 대비책을 세웠다는 대목에서는 발군의 실력을 발휘했다고 할밖에. 그 실체는 섬과 섬을 잇는 개폐식 인공제방. 애초에 말뚝을 박고 자갈로 갯벌을 메워 지금과 같은 부촌을 만들었다면 과연 리알토 다리를 놓아 산마르코 광장에 줄을 세우는 카페를 차릴 만하다. 관건은 늘 돈벌이. 대항해시대 처절한 생업의 현장에서 베니스의 샤일록이 셰익스피어의 눈에 뜨인 참이다. ▲ 베네치아 수상택시로 돌아본 섬마을 수상택시를 타고 본섬을 빠져나오는 길. 118개 섬을 424개 다리로 연결한 물길이 한눈에 들어올까마는 혹여 개꾼의 문답이라도 끼어들세라 연신 침이 마르도록 주워 삼키는 해설의 핵심은 물가를 차지한 가옥의 현시세요, 곤돌라 기사의 연봉. 하지만 필자의 눈에 비친 수십 억대 가구주의 삶이나 뱃삯으로 고액을 챙기는 대물림이나 부질없는 단막극에 불과하다. 그것이 틈나는 대로 창조세계를 주유할지언정 피조물로서의 본분을 한시도 등한시하지 않는 까닭이렷다. 흐린 하늘이 누꿈한 사이 명품가방을 끼고 으스대며 운하를 누빈들 영적 공허감을 물질적으로 메울 수는 없으므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저마다 갖가지 형상을 빚어놓고 이른바 종교현상이 이토록 기승을 부리는 중이다. 요컨대 다양한 노선의 철로를 개설해 지역경제를 뒷받침한 당국의 정책이야말로 6천만에 이르는 주권자의 소득원에 다초점을 맞춘 최선책. 너울거리는 해초가 부둣가를 맑히는 것도 G7 국가다운 환경보존책이다. 지구촌 관광 대국의 현실감이 이러하거늘 우리 정부는 뭘 고심하며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직무를 수행하는지 캐묻고 싶다. ■ 프로필 - 고교생에게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퇴임 후 기고활동을 이어가면서 기독교 철학박사(Ph.D.) 학위를 받았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을 운영합니다. - 정론지 <평택자치신문>에 “세상사는 이야기”를 15년째 연재하는 중입니다. ※ 다음호(735호)에는 ‘서유럽 견문기 - 이태리: 피렌체 앞 토스카나’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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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8-13
  • [세상사는 이야기] 서유럽 견문기 ‘스위스: 설산 위의 융프라우’ (3회)
    하루해가 뉘엿뉘엿 저무는 가운데 두 시간 반 만에 안착한 스위스 벨포르역의 플래폼. 서른 명이 연달아 내리는 짐 가방들은 흡사 수화물을 취급하는 인부처럼 숨 가쁘게 돌아갔다. 아쉬운 건 어느새 어둠이 내려앉아 인터라켄으로 가는 내내 기대하던 바깥 구경을 거의 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가로등 하나 없는 산길에서 차량 불빛마저 어찌나 흐린지 산맥이나 호수는 고사하고 차창 가까이 보일 법한 초원조차 그림자처럼 어렴풋했는데, 그걸 일거에 보상해준 선물은 안락한 숙소. 운치가 있고 깨끗하고 좁지도 않아 기분 좋은 아침을 맞을 수 있었다. 상쾌한 공기를 즐길 새도 없이 이른 식사를 마치자마자 향한 간이역사는 벌써 만원. 오늘 케이블카에 오를 인파를 보아하니 융프라우의 인기는 여전한 터다. 눈앞에 시시각각 펼쳐지는 산수화. 늦겨울이어선지 특유의 푸르른 빛깔은 아니었으나 그래도 고도가 높아지는 만큼 응달에 쌓인 눈덩이가 눈에 띄었는데, 흰 융단을 두른 듯한 기다란 스키장이 인공눈이란 걸 알고 나니 여기라고 해서 지구 온난화를 피해갈 수야 있으랴마는 심란해지는 심사는 어쩔 수 없었다. 한국의 40% 남짓한 땅덩어리(1/4이 알프스산맥)에 채 900만 명도 안 되는 인구이므로 일찌감치 영세 중립국을 자처할 수밖에는 없었겠으나, 유럽연합(EU)에까지 가입하지 않은 이유는 다음 두 가지였다. 하나는 자칫 지금의 부요(1인당 GDP 약 10만 달러)를 지속적으로 담보하기 어렵고, 다른 하나는 오히려 운신의 폭이 좁아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 즉, 자유 왕래가 가능한 셍겐조약의 비준만 갖고도 충분히 정치(10만 명이면 ‘국민 발의’ 가동), 경제적으로 안정적일 수 있으니 굳이 자국 화폐(프랑)가 아닌 유로를 쓰면서까지 불투명한 미래를 선택할 까닭이 없다는 게 찬반투표에서 3/4 이상이 반대한 논리였다. 그러고 보니 독일계, 프랑스계, 이탈리아계가 섞여 살며 로망슈어까지 공식어로 인정하는 상황에서도 양원제로 23개 주가 연방을 이루고 있다는 건 놀라운 합집합. 간간이 나타나는 주황색 지붕이나 축사처럼 뵈는 허름한 헛간도 서로들 간격을 유지한 채 드문드문 흩어져 있다. 그래서인지 산정에 다가갈수록 희뿌연 산안개가 아예 시야 자체를 가렸음에도 곧 말끔히 걷힐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 몽블랑 융프라우로 오르는 케이블카 아닌 게 아니라 차츰 날씨가 맑아지더니 이윽고 투박한 기암괴석들이 하나둘 정체를 드러냈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태에서 깎아지른 천애 절벽을 바로 코앞에 둔 느낌은 말로는 형용하기 어려울 지경. 직접 마주하지 않고는 어떠한 낱말로도 전달이 쉽지 않다는 게 시인의 토로다. 필설로는 표현할 수 없는 천 길 낭떠러지. 그러니 몽블랑을 보기 위해 수많은 객들이 적잖은 금전과 공력을 투입하는 거 아닌가. 그렇게 얼마큼을 오른 뒤 다시 산악열차로 갈아타는 거야 예고한 대로였으되, 이처럼 거대한 산세를 관통하면서까지 융프라우로 가는 길을 단축한 조치에 대해서는 선뜻 동의할 수 없었다. 천혜의 대자연을 훼손한 작위에 감탄이 아닌 한숨이 먼저 흘러나온 참이다. 필자의 경우 그 지난한 대역사를 두고 단순히 토목공사라는 시각으로 사안을 규정할 순 없었지만, 어쨌거나 돋보이는 지점은 설산과 얼음동굴을 살린 정교한 설계도. 다만 나도 모르게 엄습한 고산병에도 불구하고 그냥 예전대로 톱니바퀴 열차를 타고 느리게 오르거나 곤돌라를 이용해도 괜찮았겠다는 아쉬움을 좀체 떨쳐내기 어려웠다. 하늘 끝에 맞닿은 스핑크스 전망대에서 바라본 알프스의 꼭짓점. 다행히 짙은 운무도 저만치 걷혀 만년설로 뒤덮인 몽블랑의 속살을 잠시나마 물끄러미 조망한 시공은 두고두고 잊지 못할 추억이 되리라. 모든 등정이 그러하듯 이제는 하산할 시간. 그것이 설령 얌체같이 문명의 이기를 활용했을 때는 자연이 아픈 만큼 힘이 덜 들어갈 뿐이다. 아내에게서 비싼 아이거익스프레스 표를 받아들고 위아래 차편을 오르내리는 동안 내 건강은 경고음을 냈고 배우자는 멀쩡하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거라면, 마지막 남은 중남미 여행의 복병은 바로 필자인 셈이어서 한편으론 씁쓸하면서도 40년 지기 짝꿍이 대견스러운 건 당연지사이렷다. 이어진 점심은 푸짐한 한식. 서둘러 출발한 리무진 앞에는 수십 개의 터널이 기다리고 있었다. 82개의 알프스 봉우리 가운데 스위스에 무려 48개나 있다니 지나갈 동굴이 얼마나 많으랴. 고마운 건 어젯밤 지나쳤던 풍광을 고스란히 감상할 수 있게 된 것. 이전에 봤던 루체른 호수며 험준한 능선에 걸터앉은 산당을 빼닮은 건물도 눈길을 끌었다. 이탈리아 국경은 단지 최소한의 경계선이었다. ■ 프로필 - 고교생에게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퇴임 후 기고활동을 이어가면서 기독교 철학박사(Ph.D.) 학위를 받았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을 운영합니다. - 정론지 <평택자치신문>에 “세상사는 이야기”를 15년째 연재하는 중입니다. ※ 다음호(734호)에는 ‘서유럽 견문기 - 이태리: 밀라노 거쳐 베니스’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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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하식의 이야기
    2024-07-29
  • [세상사는 이야기] 서유럽 견문기 ‘프랑스: 익숙한 느낌의 파리’ (2회)
    한식 도시락을 까먹고 올라탄 유로스타. 대강 두어 시간을 내달려 저녁나절에 내린 파리역사 주변은 고풍스러운 외양과는 달리 쓰레기 천지였다. 아닌 게 아니라 게슴츠레한 눈동자를 굴리며 담배를 꼬나문 노숙자들. 일행은 그들을 요리조리 피해가며 리무진이 기다리는 곳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현지 가이드의 일성은 역시나 소매치기를 각별히 조심하라는 것. 국제적 상생도 좋으나 6,500만 상주인구에 더해 난민을 과도하게 받아들여 사회 분위기가 숭숭해진 건 아닌지 의아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신속히 짐을 싣고 출발한 버스 안에서 듣게 된 프랑스 내부의 속사정. 차분한 어조로 털어놓는 해설자의 입담은 이내 좌중을 사로잡았다. 한마디로 생활 여건이 녹록지 않다는 것, 즉 수입의 절반이 세금인 상황에서 살아남기조차 만만치 않다는 게 요지였다. 딴은 선입견이 있어 언뜻 듣기에는 와 닿지 않을 수 있겠으나 평소 프랑스 정치구조에 관심을 가진 필자로서는 단박에 이해되는 바가 있었다. 하긴 7~8월 열리는 하계올림픽 준비로 어수선한 마당에 방문 일자를 잡았으니 밑바닥 인심을 전하는 품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나저나 강행군으로 인해 다들 피곤할 테지만 센강 유람선 투어와 에펠탑 야간일정은 예정된 수순. 다만 우리 부부는 대기하던 승용차에 올라 호텔로 직행할 수 있었다. 이미 파리를 두세 번째 찾은 터여서 다행히도 재충전이 가능했다. 다음 날 오전 찾은 곳은 몽마르트 언덕. 일단 시야가 탁 트여 미로형 파리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왔다. 흔히들 상주인구 200만 남짓한 도시로 알려졌으나 기준선을 광역권으로 넓히면 규모가 1,300만 명으로 늘어나 런던을 앞선단다. 그림 같은 풍경이 나오는 건 50년 이상 묵은 건물은 법적으로 철거할 수 없다는 게 비결이라면 비결. 문제는 볼펜을 들고 무슨 조사원인 척 대상을 물색하는 무리 탓에 실시간 눈치를 보며 사진을 찍느라 취하는 포즈가 편하지 않다는 점이다. 현지인들이 이용하는 푸니쿨라에 올라 예술인들이 생업에 열중인 고지 마을로 향하는 발걸음은 예상보다는 가벼웠다. 맨날 야외로 출퇴근하는 화가의 숫자는 어림잡아 열 명 남짓. 오래된 성당을 배경으로 사진을 남긴 뒤 가파른 비탈길을 신경을 곤두세운 채 내려와 마주친 벽 낙서의 의미는 죄다 사랑이었다. ▲ 몽마르뜨 언덕에서 바라본 파리 시내 보도 가운데 가로수를 심은 샹젤리제 거리를 스치듯 지나쳐 겨우 만나본 개선문. 주위가 온통 공사판이어서 무명용사의 불꽃에 접근하기는커녕 잠깐 머무는 일조차 단속 경관의 눈치를 살폈다. 루브르 역시 영국박물관을 방불한 전쟁터. 코로나 이후 관광 수요가 급증해 일어난 일치고는 되게 언짢은 경우여서 하릴없이 감수하면서도 뒷맛이 개운치 않기는 매한가지랄까. 게다가 탐방할 때마다 수박 겉핥기인지라 눈썹 없는 모나리자 여인밖에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게 중론인데, 시간을 한정해 외국단체 손님을 홀대하는 갑질도 모자라 부득불 규정을 어길 때는 공들여 따낸 현지 가이드의 자격까지 문제 삼겠다는 게 이들이 공표한 운영 세칙이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눈을 부릅뜨고 해설자를 따랐건만 머리 없는 승리의 여인 니케상을 노려보다가 그만 일행을 놓쳐버렸으니 이런 낭패가 있으랴. 금세 흩어진 동지를 찾아 그를 따라 유일한 남자 미라를 확인한 뒤 약속 장소로 오기는 왔으되 막상 센강에 놓인 37개 다리 중 영상을 통해 자주 보는 124년 된 교각마저 건너지는 못한 채 서둘러 테제베에 탑승해야 했다. 차창에 비친 불란서 최고의 풍광은 드넓은 농지에 수평선이 보일 만큼의 초지. 명실공히 프랑스란 나라가 농업 대국임을 증명하는 광경이었다. 흠결은 열차의 창문이 지저분하다는 것. 오래전 탔을 적에는 의자나 탁자도 이보다 훨씬 깔끔했었다. 관리를 어떻게 하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얼룩 때문에 아름다운 풍경화를 맘껏 즐기지 못하는 상황은 분명 유감스러운 노릇. 앞서 제시한 현지 가이드의 두 가지 전제는 이곳 역사에서 기독교 배경 지식을 빼고는 설명이 어렵다는 점과 부디 평등사상에 대한 오해는 풀어달라는 것. 필자로서는 일단 한국사회의 현안을 풀어가는 데 지장을 초래하는 지점과 묘한 일치를 보인다는 게 흥미로웠다. 곧 종교 얘기라면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가 하면, 대체로 잘못된 동일시 현상과 맥을 같이하는 대목이어서다. 결론은 안락한 삶 못지않게 사후세계 역시 중시해야 한다는 당위와 함께 선거 때만 되면 지적인 논리를 무지한 옹고집으로 뒤덮으려는 시도의 폐해에 대한 지적이었다. 덧붙여 역대 프랑스 대통령들이 갖추고 있는 자질로는 추진력, 명석한 두뇌, 문화적 업적을 꼽았다. ■ 프로필 - 고교생에게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퇴임 후 기고활동을 이어가면서 기독교 철학박사(Ph.D.) 학위를 받았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을 운영합니다. - 정론지 <평택자치신문>에 “세상사는 이야기”를 15년째 연재하는 중입니다. ※ 다음호(733호)에는 ‘서유럽 견문기 - 스위스: 설산 위의 융프라우’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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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7-22
  • [세상사는 이야기] 서유럽 견문기 ‘영국: 런던의 청량한 하늘빛’ (1회)
    오랜만에 다시 찾은 런던(필자는 2005년 여름방학에 학생들과 함께 배낭을 메고 옥스퍼드를 거쳐 스코틀랜드까지 훑어보았음)의 날씨는 의외라 싶게 청량했다. 그 덕분에 내내 특유의 대기질을 연상했던 우리 부부에게 이보다 더한 희소식은 없을 터여서 혼인 41년째를 여는 여정을 상큼하게 출발할 수 있었다. 하늘은 맑고 바람은 다소 서늘한 기후를 반색하는 가운데 나의 눈길이 머문 곳은 런던탑(Tower of London, 일명 런던성). 차분한 목소리로 풀어놓는 현지 가이드의 자세한 설명을 죄다 섭렵할 수는 없었으나 나름대로 정리한 지점은 그 당시 화이트 타워(높이 28m)야말로 영국 전역을 지배하던 노르만 군사 건축의 본보기로써 1066년 정복왕 윌리엄이 런던을 방어하고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기 위한 목적으로 템스강 가까이 건설했다는 게 요지였다. 주위를 둘러보니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1988년)하기에 손색이 없는 자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위풍당당한 요새는 늘 강력한 왕권을 대변하는 상징물이었다. 런던을 방어하고 통제하던 경계용 표지였으되 인류 문화사적으로 보편타당한 가치를 인정받은 셈이다. 유럽사를 통틀어 주요 사건의 무대가 되었던 런던타워를 뒤로하고 따라나선 템스강변의 뱃길 투어. 타워 브리지를 배경으로 출발한 유람선이 누런 강물을 헤치며 물길을 가르는 동안 역사적 명소와 어우러진 현대적 건축물의 조화로움이 새로운 스카이라인을 만들어나가면서 자칫 기존의 인프라를 건드려 고풍스러운 옛 정취를 해치지는 않을까 저어되는 마음이 들었다. 어언 고희를 바라보는 나이 탓인지는 몰라도 걸핏하면 지난 시절이 떠올라 만감이 교차하는 경우가 늘더라는 모종의 노파심이랄까. 첫 탐방 때는 언뜻 이곳에서 옥스브리지의 조정경기가 열린다는 토막소식을 접했는데 아담한 뱃전에 비친 풍광 중 으뜸은 런던아이. 아무래도 자유여행 중에나 느긋이 기다렸다가 서서히 상공에 떠오를 기회가 있겠으나 배 안에서 올려다보는 눈요기만으로도 그 기분을 얼마큼은 가늠할 수 있을 성싶다. 조석간만의 차로 회생한 듯 축대에 끼어든 이끼류를 보면 대자연의 복원력은 놀랍다. 바로 옆 철제 다리는 실은 석제로 이루어진 정교한 조합 그 자체. 필자의 눈에 들어온 영국의 건축술은 높이보다는 초석이 뛰어나다. ▲ 템스강 선착장에서 보이는 런던아이 유럽에서 유일하게 상주인구 천만을 헤아리는 런던 시내에서 해설자가 이끄는 동선은 퍽 경제적이다. 빅벤을 품은 국회의사당을 마주한 채 웨스트민스터 사원은 변함없이 똬리를 틀고 있건만, 유난히 동상을 좋아하는 민족성인 듯 서 있는 위인 중 처칠, 간디, 호치민 등이 아닌 만델라가 가장 돋보인 건 왜일까? 극심한 흑백 갈등의 와중에서도 진실과 화해를 위한 대장정에 반대하는 아내와의 이별마저 불사했던 그의 거대한 행보를 새삼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는 없다. 거기서 버킹검궁전으로 향하는 길에 만나는 시민공원은 평소 산책을 즐기는 내게는 최적의 공간. 걷기 편한 흙길에 정갈한 초목들이 한껏 어우러진 풍치가 실시간 눈자위를 어루만졌을뿐더러 맘껏 자란 능수버들의 하늘거리는 실가지들이 척박한 유년 시절의 동심을 불러오기에 충분했으니까. 막상 차가운 인상의 근위병이 지키는 궁궐 모양새는 실제 화면임에도 무미건조하기 짝이 없다. 행여 그 옛날 불편한 마차길을 넓힌다는 명분을 빌미로 섣불리 대영제국 건축의 완숙미가 일부라도 흐트러진다면 안 되겠다는 조바심이 필자의 소박한 바람이다. 여기서는 세 가지가 빨갛다는 대목 또한 흥미롭다. 이따금 만나는 전화부스, 우체통, 이층버스가 그것인데 하나같이 우리나라에서는 찾기 쉽지 않거나 어려워지는 물건들. 그나저나 북적대는 영국박물관의 축소 지향적 운영은 실로 유감이다. 이전 중앙 홀에서 눈여겨봤던 원형 서가에 꽂힌 고서적과는 끝내 재회할 수 없었다. 그 나머지야 대동소이하다지만 관람 시간을 턱없이 줄여 서두르는 바람에 로제타석을 비롯한 희귀 미라 등 다수의 전시물이 제국시대가 낳은 장물인지라 더는 감흥이 없었다. 넬슨 제독이 버티고 있는 트라팔가 광장을 지나 유로스타에 탑승할 시각. 차창 밖을 응시하는 내내 봄빛이 완연한 들판을 딛고 초원을 누비는 소 떼며 하늘을 나는 새들을 바라보는 즐거움도 쏠쏠했다. 단 하룻밤 일정을 되새겨보니 고무적인 건 관광용 투어버스에 아직도 한국어 안내방송은 없을지언정 콧대 높은 섬나라에 불어닥친 한류 열풍이 예사롭지 않다는 사실. 단지 전현직 모자 국왕을 빼고는 전 국민이 손흥민의 발재간에 매료되어 대한민국 이미지 개선에 단단히 한 몫 거들고 있다는 게 일대 반전이자 방점이었다. ■ 프로필 - 고교생에게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퇴임 후 기고활동을 이어가면서 기독교 철학박사(Ph.D.) 학위를 받았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을 운영합니다. - 정론지 <평택자치신문>에 “세상사는 이야기”를 15년째 연재하는 중입니다. ※ 다음호(732호)에는 ‘서유럽 견문기 - 프랑스: 익숙한 느낌의 파리’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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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하식의 이야기
    2024-07-15
  • [세상사는 이야기] 좋은 글쓰기를 위한 조언
    이 글은 고성환, 이상진 공저인 『글쓰기』 내용 가운데 ‘좋은 글의 요건’이라는 소단원을 요약한 것이다. 좋은 글은 무엇보다 글을 쓰는 목적을 분명히 알고 독자의 수준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사전에 자신이 왜 이 글을 쓰는지에 대한 동기가 확실해야 하며, 예상 독자의 요구를 적절히 반영할 필요가 있다. 읽는 사람의 여건에 따라 글의 양식과 문체는 물론 글을 쓰는 과정이 달라질뿐더러 글의 갈래도 설명문, 논설문, 안내문, 감상문, 문예문 등으로 나눌 수 있으므로 글의 문체를 독서물을 접하는 대상의 수준과 다양한 요구에 최대한 맞춰 써야 하기 때문이다. 즉 독자의 연령대와 교육 정도에 따른 문해력과 독서력, 독자의 관심사와 독서 이유 및 문화적 배경과 이념적 성향 등을 십분 감안해야 한다. 주목할 지점은 독자의 입장에 서서 자문자답하며 역지사지하는 자세에 있다. ‘과연 나라면 이 글을 끝까지 읽어낼 수 있을까’,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행간을 통해 어떤 생각을 떠올릴까’ 등 필자의 주변과 연계한 제반 사회환경을 글 속에 넉넉히 투영한다면 훨씬 더 바람직한 글을 쓸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글을 쓸 때는 표현하고자 하는 의미에 걸맞은 적절한 단어 선택이 중요하다. 명확한 정보를 제시하는 글은 개념어의 사용에 각별히 유의할 필요가 있다. 특히 일반적으로 통용되지 않는 전문용어는 반드시 분명한 개념을 정의한 다음 독자들에게 오해를 불러일으키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다의어의 경우에는 문맥적 의미의 확보를 위해 한자나 영어를 병기함으로써 그 뜻을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 신중히 선택한 어휘는 적절한 위치에 배치하고 동어반복 회피의 원리에 따라 가능한 한 되풀이하여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 무의미한 표현이나 잉여적인 부분은 과감히 삭제해야 하며 상투적이거나 진부한 표현도 최대한 피해야 한다. 그에 따라 문장의 길이는 전달 내용이 명료하게 드러나도록 조절해야 한다. 문장이 무조건 짧다고 좋은 것은 아니며, 길어지는 것에 분명한 까닭이 있다면 짧은 것이 오히려 어색할 수 있다. 곧 문장에 담긴 내용의 모호성 자체가 문제시되는 것이다. 어떠한 문장이든지 다 읽고 난 뒤 해석상의 명확성만 확보된다면 문장의 길이는 선택지의 하나다. 바로 쉼표의 적절한 활용이 그에 대한 적절한 처방일 수 있다. 그러나 창조적 표현을 위한 글쓰기에서는 의도적으로 다의적인 낱말을 선택함으로써 다중적인 해석이 가능하도록 문장과 단락을 배치하기도 한다. 내용상 난해한 글과 부적절한 표현으로 해석을 힘들게 하는 글은 명백히 다른 경우다. ▲ 삼봉 정도전 기념관의 전경 이어서 좋은 글에는 부분과 전체를 아우르는 내용의 통일성과 형식의 짜임새가 있어야 한다. 통일성은 각 부분의 내용이 전체 주제와 유기적인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 특성을 말한다. 각 문장은 단락의 소주제를 잘 나타내는 긴밀성을 지녀야 하고, 각 단락은 전체 주제를 형성하기 위하여 긴밀성을 유지해야 한다. 원래의 표현 의도에 맞게 글을 구성하는 것도 중요하다. 곧 시간 순서에 따른 전개, 개념의 나열과 범주화에 따른 전개, 비교를 위한 배치, 인과관계를 중심으로 한 전개, 주장과 논거의 논리적 연계 등에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골라야 한다. 필자의 관점이 글의 형식을 통해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이 관건이다. 좋은 글은 충분한 정보를 담되 의문의 여지를 남기지 않고 전체적으로 완결성을 갖춰야 한다. 위에서 언급한 좋은 글의 요건을 확실히 담보하는 것은 글의 내용이 충실하고 정확해야 한다는 점이다. 사실관계에 어긋나지 않는 글이라야 뭇 인간과 세계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줄 수 있거니와 실시간 삶에 필요한 깨달음과 감동을 안겨줄 수 있어서다. 확실한 사실에 기초하지 않은 글은 해석 과정에서 얼마든지 곡해될 수 있으며 내용이 부실한 글일수록 대중에게 신뢰를 얻기가 어렵다. 글의 생명력은 화려한 수사로 치장하는 데 있지 않고 내용의 정확성과 적절성에 달려있다. 실용문에 속하는 글은 장소, 일시, 통계수치 등이 정확할 때 자료의 근거를 확보할 수 있다. 특히 연구논문과 같이 설득력을 요구하는 글의 경우에는 해당 분야의 권위자나 학계 전문가의 검증된 견해를 적절히 인용함으로써 글의 신뢰성과 윤리성을 담보해야 한다. 글을 쓰는 사람의 기본자세는 자신이 발표한 글에 대하여 마땅히 책임을 지는 일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글을 쓰는 사람의 마음가짐은 자신이 공표한 글을 두고 제기되는 문제나 의문에 대하여 성실히 답변하겠다는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 ■ 프로필 - 고교생에게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퇴임 후 기고활동을 이어가면서 기독교 철학박사(Ph.D.) 학위를 받았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을 운영합니다. - 정론지 <평택자치신문>에 “세상사는 이야기”를 15년째 연재하는 중입니다. ※ 다음호(731호)에는 ‘서유럽 견문기 - 영국: 런던의 청량한 하늘빛’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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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7-08
  • [세상사는 이야기] 효과적 독서의 요건 ‘도서관 이용법 안내서’ (15회)
    독서를 촉진하는 도서관 이용법은 과연 존재할까? 이용훈 저자는 있다고 말한다. 도서관을 잘 이용하면 할수록 경제적 부가가치를 얻는다고 말이다. 2020년을 기준으로 국립중앙도서관에서는 일반도서 13만여 권과 4만 책에 가까운 공공간행물을 수서할 계획을 발표했다. 한국만 해도 한 해 출간 예정인 책이 총 17만여 권에다가 판매를 목적으로 유통되는 책이 5만여 종에 달하는 것으로 보아 그 일부가 도서관에 들어온다고 보면 된다. 물론 해당 도서관의 설립 목적이나 이용자들의 요구 등을 면밀히 검토·분석한 후에 연간 입수하는 도서류가 정해지겠으나 이른바 장서개발, 즉 구입의 우선순위, 소장 도서의 평가와 관리, 폐기할 장서를 미리 선정하는 등 활용하는 도서의 유용성을 높이는 작업은 필수적이다. 이용 빈도가 높은 대학도서관의 경우는 각 학문 분야에서 발표하는 논문이나 국내외 학술 저널 등 연구학습에 필요한 자료를 신속·정확하게 입수함으로써 교·강사나 학생들에게 시의적절한 도움을 주어야 한다. 이용자들은 실시간 인터넷을 통하거나 수시로 발품을 팔아 신착 도서의 동향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 독서를 즐기는 개인 집에서도 늘어나는 책들을 서가에 아무렇게나 꽂아놓으면 찾기가 만만찮은데 하물며 도서관은 오죽하겠는가? 「문헌정보학용어사전」에서는 ‘분류’를, “사물이나 현상, 개념 등을 유사한 것은 모으고, 상이한 것은 구분하여 체계화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분류법이 존재하는데 우리나라 도서관에서는 통상 ‘한국십진분류표(KDC)’를 기준으로 삼는다. 예컨대 모든 주제와 관련된 종합물은 총류: 000, 철학: 100, 종교: 200, 사회과학: 300, 자연과학: 400, 기술과학: 500, 예술: 600, 언어(어학): 700, 문학: 800, 역사: 900으로 나누는데, 우리가 참고한 것은 듀이십진분류표이며, 그 외에 국제십진분류표, 미국의회십진분류표, 콜론분류표 등이 있다. 특이점은 멜빌 듀이는 언어를 400에 배치한 데 비해 한국은 문학과 인접하도록 700번을 부여했다는 점에서 보다 합리적이라고 볼 수 있다. 필자 역시 문헌정보학 전공자로서 덧붙일 말인즉 일본십진분류표의 경우 한국을 분류표상 9번(기타)에 유배(?)했지만, 우리는 대범하게 한중일이라는 관행에 맞춰 3번을 부여했다는 점이다. ▲ 평택시 중앙동 일대에 피어난 다알리아 꽃무리 정해진 절차에 따라 분류한 책들은 고유한 청구기호를 갖게 된다. 부수적으로 저자기호, 별치기호, 권차기호, 복본기호 등이 붙지만 요즘은 카드목록(저자, 제목, 출판사, 출판년, 쪽수, 목차, 약식 소개)을 찾기보다는 대부분 인터넷 검색을 이용하고 있다. 주요한 지점은 사서와의 만남이다. 사서는 도서관 경영이나 관리를 책임지고 자료를 수집·정리하고 이용자에게 정보 서비스를 제공하는 전문가다. 필자 또한 학교도서관에서 업무를 본 세월이 8년에 가까운 사람으로서 국어로 학과목을 돌리기까지, 아니 이후 도서관장 역을 수행한 6년 동안 과연 그 일에 충실했는지는 솔직히 의문이로되, 한시도 1급 정사서 자격증 소지자로서의 정신자세는 흐트러진 적이 없었고 ‘도서관인’이라는 정체성으로 충만해 있다. 다만 법적으로 명시된 사서직의 정원조차 채우지 않은 채 운영되는 도서관의 현실 앞에서 고언마저 가슴에 묻어둘 수는 없었다. 사서라는 직종이 책이나 나르고 서가를 정리하는 직업인 정도로 인식되던 시절에 운신의 폭이 좁아지기도 했으나 감히 지식의 총체적 안내자라는 자긍심만은 바래지 않았다는 회고담이다. 그럼 어떻게 하면 능숙하게 각종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을까? 국립중앙도서관을 비롯한 국회도서관, 도립이나 시립도서관을 직접 찾아가는 방법도 있으나 컴퓨터 앞에 앉아 국가자료종합목록(KORIS-NET)에 들어가면 전국 1,600여 개소 공공도서관과 전문도서관은 물론 정부 부처 자료실의 통합목록 데이터베이스를 이용할 수 있다. 특히 국립중앙도서관 디지털컬렉션에서는 국내외 희귀본을 디지털 형태로 제공하는 중이다. 이에 한국방송통신대학교에서는 『쉽게 따라 배우는 학술정보 활용법』을 내려받아 이용하기를 권장하고 있다. 누구나 한국교육학술정보원에 접속해 요긴한 서비스를 받을 수도 있는데, RISS라는 곳에서는 이용자 활용도에 따른 항목별 분석결과, 연구주제 동향 분석결과 등 이용이 가능한 자료의 현황을 연도별 통계로 제시해주거니와 DBpia, KISS, 북코스모스에서도 편리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자, 이제 지구본을 띄운 정보의 홍수에 떠밀려 내려가지 않기 위해서는 우주를 유영한다는 기분으로 수영을 배우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이런 정보에도 어두운 채 어찌 Ph.D.를 마쳤는지 모르겠다. ■ 프로필 - 고교생에게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퇴임 후 기고활동을 이어가면서 기독교 철학박사(Ph.D.) 학위를 받았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을 운영합니다. - 정론지 <평택자치신문>에 “세상사는 이야기”를 15년째 연재하는 중입니다. ※ 다음호(730호)에는 ‘좋은 글쓰기를 위한 조언’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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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7-01
  • [세상사는 이야기] 효과적 독서의 요건 ‘새로운 도서관의 미래’ (14회)
    새로운 도서관 시대는 언제쯤 도래할 수 있을까? 이용훈 저자에 따르면, 도서관들은 늘 그 시대 상황에 따른 요구 등에 대해 능동적으로 대응하면서 변화해 왔다. 그러한 의견을 피력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저자는 급변하는 현대사회를 대표하는 키워드로 4차산업혁명에 따른 초연결과 초지능을 들고 있다. 그렇다고 첨단 과학기술에 의한 출판과정이며 유통 환경이 획기적으로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나날이 발전하는 전자책이나 디지털 자원을 시시각각 따라가기조차 녹록지 않다는 것이 현재 도서관들이 맞닥뜨린 서비스 양상이어서다. 게다가 한편으로는 인구절벽으로 인한 이용자 감소 현상에 직면하여 재정축소 등의 현실적 압박이 도서관의 앞날을 불투명하게 몰아가고 있다. 당면한 이 위기국면을 어떻게 극복해 나갈 참인가? 이럴수록 도서관에서는 책정된 예산 내에서 시대적 변화요인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 새로운 지식정보를 요구하는 이용자들을 위해 도서관들이 선제적으로 변화를 주도할 책임을 짊어진 터다. 다행히 역대 정부에서도 다양한 도서관 정책들을 통해 활성화를 도모하고 있다. 이에 대한 관건은 인간이 쥐고 있다. 도서관 서비스의 주역은 사서의 수준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사람의 요인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점이다. 탈무드를 소환하면 “과거는 해석에 따라 바뀌고, 미래는 선택에 따라 바뀌며, 현재는 행동하기에 따라 바뀐다.”라고 했다. 벌써 10년 전에 나온 관련 보고서에도 저출산·초고령 사회, 불평등 문제, 미래세대 삶의 불안정성은 물론 고용불안, 저성장에 따른 성장전략 전환, 국간 간 환경 영향 증대, 기후변화와 자연재해, 남북문제 등을 중요한 이슈로 거론하며, 세계적으로도 전 지구적 위기 심화, 교육방식에 따른 기존 학교제도의 변화, 산업화 시대의 종결에 관해 언급한 바 있다. 이러한 혁명의 핵심은 인공지능, 로봇공학, 사물인터넷, 무인 운송수단, 3차원 인쇄, 나노기술의 6대 분야에 더해 요즘은 챗 GPT까지 선보인 마당이니 이제는 스스로 변화하지 않고서는 삶을 영위하기 곤란한 지경이 된 셈이다. 이를 두고 새로운 인류의 출현, 즉 ‘포노 사피엔스(Phono Sapiens)’라고 지칭하는데, 현재 도서관에서 미래의 초연결 시대를 이끄는 변화의 바람을 피해갈 수 있겠는가? ▲ 평택시 중앙동 일대에 피어난 만수국 꽃무리 그렇다면 굳이 구글 북스 라이브러리 프로젝트를 소개할 필요도 없이 지구촌의 모든 도서관이 하나로 통합되어가는 시스템이 결코 상상의 세계가 아닌 형국이다. 2016년 미연방 대법원이 공정이용에 관한 입장을 확인했고, 2018년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은 구글과 파트너십을 맺더니, 아마존에서도 ‘아마존 킨들 언리미티드’ 서비스를 이끌고 있다. 오죽하면 미국의 한 경제학자가 세금 절약을 위해 아마존이 지역 도서관을 대체해야 한다는 글을 「포브스」지에 올렸다가 집중포화를 맞았겠는가? 국민독서율의 지속적 감소에 따른 저조한 독서 활동이 문해력 저하로 이어지면서 세계적 추세와는 정반대 현상을 보이고 있다면, 이를 해결할 대안으로 20대를 중심으로 나타난 ‘리딩테인먼트’, 곧 읽기와 노는 것을 결합한 형태를 고려해봄 직하다. 도서관의 입지조건도 사람들이 붐비는 곳이 최적지라는 조언이다. 국가상호대차시스템인 ‘책바다’, 회원증 공동이용서비스인 ‘책이음’, ‘사서에게 물어보세요’ 또한 바람직한 제도다. 나아가 무크(MOOCs)라는 이름으로 제공되는 온라인 공개강의(K-무크 포함)도 더욱 확대되어야 한다. 2017년 지구촌의 도서관 관련 전문가 77명은 향후 똑똑한 도서관, 개인화 도서관, 경계 없는 도서관의 방향을 발표한 바 있다. 서울대학교 관정도서관은 ‘전자지원 중심의 이용자 맞춤형 서비스 공간’을 표방하고 있고, 충북대학교 중앙도서관은 지역사회와 함께 관내 유휴시설을 복합문화공간으로 만들었으며, 연세대학교 언더우드기념도서관은 다양한 유형의 열람환경을 조성하는 등 전국의 대학교들이 앞다퉈 인포메이션 커먼스를 도입하는 일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나아가 2020년 2월 현재 995개 도서관의 장서 약 1억 권, 14억 건의 대출 데이터, 2,770만여 명의 도서관 회원 데이터를 활용하여 여러 유형의 분석결과를 제공하고 있다. 우리 삶에 밀착된 도서관은 사람을 보듬고, 공간을 혁신하며, 정보의 민주성을 추구한다. 결국 미래를 여는 도서관은 본질적으로 개개인의 가능성을 발견함으로써 공동체의 역량을 키워 사회적 포용을 실천하는 곳이어야 한다. 문제는 늘 시대정신을 도외시하는 데서 발생한다. 사람의 정당한 요구에 민감하라. 새로운 도서관의 미래는 이용자와 사서가 함께 만들어나가는 것이므로. ■ 프로필 - 고교생에게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퇴임 후 기고활동을 이어가면서 기독교 철학박사(Ph.D.) 학위를 받았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을 운영합니다. - 정론지 <평택자치신문>에 “세상사는 이야기”를 15년째 연재하는 중입니다. ※ 다음호(729호)에는 ‘효과적 독서의 요건 - 도서관 이용법 안내서’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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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하식의 이야기
    2024-06-24
  • [세상사는 이야기] 효과적 독서의 요건 ‘철학이 있는 독서문화’ (13회)
    책에 담긴 도서관의 철학 역시 무겁게 느껴지기는 매한가지다. 송승섭 교수에 의하면, 독서문화란 “문자를 사용하여 표현된 것을 읽고 쓰는 활동을 중심으로 하여 이루어지는 정신적인 문화 활동과 그 문화적 소산”을 말한다. 역사상 손쉽게 책을 구해서 읽을 수 있었던 시기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16~19세기까지 서구의 독서 관행과 도서관문화는 그 지역사의 변천에 따라 다르게 발전해 왔기 때문이다. 그에 힘입어 18세기 후반부터는 계몽사상이 널리 퍼졌고, 가히 독서혁명이라고 부를 만큼 새로운 부류의 독자와 출판 시장이 형성되었으며, 19세기에 들어서는 많은 사람이 문맹을 벗어나 도서관의 이용자가 될 수 있었다. 그런데 도서관은 사회적 기관으로써 문헌정보학이라는 이론과 현장을 동시에 두고 있다. 이는 개개인의 지적 활동을 돕고 사회적으로는 인류의 지적 재산을 계승하여 문화창달에 기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만약 교양 있는 시민을 양성하는 도서관문화가 없었다면 과연 민주주의 제도의 정착이 가능했을지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도서관은 문해력을 높여 지적인 자유를 가져온 공론장이었다. 독서의 역사와 도서관은 궤를 같이한다. 책을 만드는 데 사용한 서사 재료는 점토판, 죽간목독, 파피루스, 양피지, 종이 등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지만, 독서행위 자체는 변한 게 없기 때문이다. 독서자료의 법적 개념은 “문자를 사용하여 표현된 도서·연속간행물 등 인쇄자료, 시청각 자료, 전자자료 및 장애인을 위한 특수자료 등 독서에 필요한 자료”를 말한다. 조선 전기만 해도 사대부들이 책을 파는 서점의 설치를 극구 반대하여 일반 백성은 물론 과거시험을 준비하는 유학생조차 책 구입에 애를 먹었다는 대목에서 새삼 한글 창제의 위대함을 되새기는 가운데서도, 조선 후기에 와서야 겨우 서점이 만들어졌다니 뒷맛이 씁쓸한 건 어쩔 수 없다. 이는 기실 책 읽기 자체가 통치를 방해하는 요소로 인식한 지배층의 고루한 사고에 기인한 것이었다. 성인의 말씀을 기록한 책이야말로 매매의 대상이 아닐뿐더러 문자 또한 한자를 쓰면 된다는 발상이었다. 이윽고 19세기 들어 형성된 폭넓은 독자층은 지배층에게는 불안의 원천이었으나, 그 기저에는 샤르티에의 지적처럼 양질의 독서가 국가적으로 중요함을 시사하고 있다. ▲ 평택시 중앙동 일대에 피어난 데이지 꽃무리 사회적 기관으로서의 도서관이 지닌 함의는 다분히 철학적이다. 독서실이 아닌 독서문화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면 철학을 내포한 이론적 배경을 확보할 수 있어서다. 종래의 도서관학에서 문헌정보학으로 학과명을 변경한 연유가 바로 그것이다. 곧 문헌이란 정보 매체에 기록된 정보의 총칭이며, 도서관학은 정보센터로서의 업무 진작에 관련된 지식의 응용이라고 볼 수 있어, 정보학이란 정보에 관련한 본질과 성질을 규명하고 그 사항의 사회적 적용 가능성을 추구하는 학문이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도서관학과 정보학이 융합되어 새롭게 문헌정보학이 태어난 셈이다. 최근 들어 여기에 컴퓨터를 접목한 업무의 효율성을 가미함으로써 사회인식론에 지식사회학의 개념을 포함시킨 조치는 적절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문헌정보학의 이론적 기초는 학문적 과학성에서 찾을 수 있되 그 실천성은 철학적 배경을 가질 때라야 완성도를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도서관의 소관 부처가 교육부가 아닌 문화 담당 부서인 점은 정책적으로 모호한 측면이 남아있어 국민의 평생학습권 보장이라는 시책에서도 시정할 여지는 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근대적 도서관이 지닌 공공성은 영미로부터 전 세계로 전파되었다. 미국은 독립전쟁(1775~1783)을 통해 민주주의 기초를 튼튼히 했고, 그 기운으로 영국은 차티스트운동(1838~1848)을 벌일 수 있었다. 정보의 자유로운 접근이 민주주의의 초석을 다진 결과였다. 공공도서관으로 인해 대중교육과 도덕함양의 발판을 마련함으로써, 사회 전반의 지속적인 발전이 가능했던 참이다. 그 효시는 미국에서 1833년에 세운 피터버러 공공도서관이었다. 이는 비록 일부지만 시민이 낸 세금으로 예산을 집행한 최초 사례였다. 이후 1850년 영국 맨체스터 공공도서관이 생기면서 1854년 보스턴에 시립도서관 설립으로 연결되었고, 19세기에 들어와 ‘지식과 정보 접근의 보편화’라는 명제를 달성하면서 역사에 이바지했다. 그 첫째는 첫째 공교육을 통해 무상 기초교육을 실현한 점이고, 둘째는 시민들에게 무료도서관을 제도화한 조치다. 이제는 사서직에 관리자 정신을 요구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인도 랑가나단의 도서관 5법칙이다. 인류 문명사에서 장서, 사서, 시설은 독자를 위한 유기체로 기억될 주제다. ■ 프로필 - 고교생에게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퇴임 후 기고활동을 이어가면서 기독교 철학박사(Ph.D.) 학위를 받았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을 운영합니다. - 정론지 <평택자치신문>에 “세상사는 이야기”를 15년째 연재하는 중입니다. ※ 다음호(728호)에는 ‘효과적 독서의 요건 - 새로운 도서관의 미래’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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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하식의 이야기
    2024-06-19
  • [세상사는 이야기] 효과적 독서의 요건 ‘도서관 역사와 변화상’ (12회)
    책 읽기 장소로서의 도서관 역사와 공간변화에 대한 제목은 묵직한 감을 안겨준다. 송승섭 교수에 따르면, 도서관은 일상생활 가운데 편리하게 원하는 책이나 각종 자료를 볼 수 있는 곳이라야 한다. 그 어원을 보면 라틴어의 ‘liber’에서 온 낱말로 나무껍질의 안쪽을 가리키는데, 그 연원은 기원전 4,000년을 전후해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생겨났다. 관련 역사를 추적하면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 이후 서점과 출판사는 물론 카페 공간 등에서 다른 성격의 사회적 매체들과 경쟁하면서 발전해 오던 중 17세기 후반부터 18세기에 이르러 신문과 잡지의 출현을 기반으로 영국에서 번창한 커피하우스를 중심으로 공론장으로서의 도서관 기능을 수행하며 장차 민주시민을 양성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이는 도서관이란 장소가 특권층의 전유물에서 벗어나 일반 대중과의 관계를 정립했다는 의미가 된다. 자연스레 영미를 포함한 유럽 등지에서 근대 도서관의 파급효과를 불러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도서관의 역사는 인쇄술의 발달과 함께 고려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조선조의 규장각을 비롯한 왕실도서관에서 꽃을 피웠다. 도서관의 본질적인 역할은 무엇일까? 요즘은 단순히 책뿐만이 아니라 전자자료, 즉 영화관람이나 음악감상 등 이미 문화시설로서의 공공성을 확보한 지 오래되었다. 21세기 도서관의 면모는 과거 단순히 인쇄물을 취합하는 기능성에서 탈피해 최첨단의 정보기술을 융합한 공간으로서의 위상을 확립해가는 참이다. 그런데 실상 도서관이라는 용어를 본격적으로 사용한 기점은 서양 문물이 유입되기 시작한 1906년 ‘대한도서관’ 설립을 위한 발기회에서였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앞서 제시한 도서관의 어원과 같이 책이란 단어 역시 앵글로색슨어인 ‘boc’에서 나왔는데 그 뜻이 나무껍질이라는 점이다. 이는 종이(paper)가 파피루스(papyrus)에서 오고, 이를 그리스어로 비블로스(byblos)라고 하는데 ‘책 중의 책인 성경(Bible)’의 어원이 되었으며, 서지학(bibliography)과 독서치료법(bibliotheraphy)이란 낱말이 파생되었다는 교집합이 있다. 이는 “자료를 수집·정리·분석·보존하여 공중에게 제공함으로써 정보이용·조사·연구·학습·교양·평생교육 등에 이바지하는 시설”이라는 도서관의 법적 정의를 만들어냈다. ▲ 평택시 중앙동 일대에 피어난 풍차국화 꽃무리 칼 세이건의 말처럼 도서관은 바야흐로 기억의 거대한 물류창고가 된 셈이다. 돌이켜보면 도서관이란 장소는 인류의 진전된 삶을 위한 협력방식이었고, 개인과 사회가 정보와 지식에 접근하는 효율적 의사소통의 기제였다. 세계 최초의 도서관은 기원전 667~628년경 이집트 아슈르바니팔 왕의 대형 문고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거기서 발견한 설형문자를 새긴 수많은 점토판의 존재로 인해 국왕의 교서, 역사, 군사 기록, 서간, 종교서의 원전 등을 밝혀낸 것이다. 니네베 유적에서 “길가메시 서사시”를 접한 이들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이어 BC 18세기 바빌로니아 왕 함무라비 법전이나 BC 1,300년경 람세스 2세는 ‘영혼의 요양소’라는 도서관을 지었으며, 고대 그리스에는 알렉산드리아도서관을 세워 무려 70만 권에 가까운 장서를 수집하여 서지학자 칼리마코스에 의해 120만 권에 달하는 『피나케스』 목록을 만들었다는 말이다. 게다가 BC 1세기 무렵에는 수준 높은 교양을 위해 로마 전역에 개인 문고들이 유행했으며, 28개 공공도서관도 모자라 기원전 2세기부터는 목욕탕에까지 문고를 두었다는 기록은 놀랄 만하다. 중세의 도서관은 로만가톨릭 문화, 그리스정교회의 비잔틴 문화, 중동과 아프리카의 이슬람 문화의 영역으로 나눌 수 있다. 11세기 유럽에서는 성당에서 출발한 대학도서관이 14세기 말에 75개 이상으로 늘어났고, 16세기 초반에는 책의 유통과 활용의 중심지로 발전했다. 반면에 한반도는 정조 이후 왕실도서관의 기반마저 무너져 내렸으나 오늘날에는 선진국에 진입하면서 계층이나 신분에 상관없이 지식정보의 혜택을 누리며 21세기의 도서관문화를 공유하고 있다. 관련 통계에 의하면 전국에 산재한 공공도서관, 대학도서관, 학교도서관, 전문도서관, 특수도서관이 총 천 개소를 넘어섰고, 편의성뿐만 아니라 심미적 감각을 자랑하는 명소로 자리를 잡았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아직도 일부 지자체에서는 창의적 발상을 저해하는 정책으로 퇴행하는 듯한 움직임을 보여 깊은 우려를 낳고 있다. 그렇다면 2017년 5월 코엑스몰에 개관한 ‘별마당도서관’이야말로 저차원의 장소적 개념이 아닌 3차원적 공간으로 대중에게 다가서야 한다는 명제에서 벤치마킹하길 권유한다. 비로소 도서관의 공간적 전환은 특화된 문화 담론이 되었다. ■ 프로필 - 고교생에게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퇴임 후 기고활동을 이어가면서 기독교 철학박사(Ph.D.) 학위를 받았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을 운영합니다. - 정론지 <평택자치신문>에 “세상사는 이야기”를 15년째 연재하는 중입니다. ※ 다음호(727호)에는 ‘효과적 독서의 요건 - 철학이 있는 독서문화’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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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6-04
  • [세상사는 이야기] 효과적 독서의 요건 ‘사회운동 콕 짚어내기’ (11회)
    사회운동과 NGO를 읽어내려면 특별한 각오라도 해야 할까? 이창언 교수에 의하면, 사회운동 관련 도서는 복잡다단하게 변화하는 사회 양상을 올바로 이해하는 통찰력을 길러준다. 나아가 사회 구성원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이바지하고, 공공성 강화를 위한 개혁 프로그램과 정책대안을 만들어 책임 윤리에 입각한 행동기준을 끌어내는 일에도 기여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사회운동에 관한 독서는 이를 설명하는 다양한 이론적 논의를 이해하는 토대에서 출발할 수 있다. 거기에는 우선 우수한 학술논문이 있을 테지만, 그들의 주장이 현대사회를 완벽히 설명해내지는 못한다는 점이다. 저자는 소위 ‘서삼독(書三讀)’이라는 단계별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는 텍스트를 읽고, 둘째는 그 필자를 읽고, 셋째는 나 자신을 읽으라는 의미다. 그와 더불어 주목할 지점은 NGO 활동을 정립한 저서들이다. 이른바 ‘NGO학’은 특징적으로 자율과 참여의 가치를 공유하며 견제와 비판을 견지하되 복지와 교육 분야 등에서 갈등조정의 기능을 수행한다. 이 단원에서는 우리는 각자가 무엇을 원하는가에 대한 자문자답으로 시작된다. 응당 사회운동에 대한 관심과 오해는 NGO와도 관련이 있다. 이는 자칫 그 틀이나 맥락 안에서 동시대인과의 소통에 나태하지 않았느냐는 추궁일 수 있다. 그러나 사회운동의 영역이 어느 한 부류의 전유물일 수는 없으므로, 도리어 근본적인 사회 변화를 갈망하는 가운데 불거지는 저항행위는 그 집합행위의 발생 원인을 규명하려는 시도로 보는 쪽이 더 타당하다. 보통 사회과학의 전통적 관심사가 사회질서문화에 따른 관습, 규칙, 제도 등이라면 사회운동 연구는 새로운 질서의 출현이나 방식에 더 관심을 갖는다. 무릇 사회운동은 정치적 의사결정과정에 접근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사회구조적인 문제를 집단적으로 제기하는 노력이기 때문이다. 사회운동가들이 기득권들로부터 낙인효과의 대상이 되는 데는, 첫째 사회운동을 비정상적 현상으로 본다는 점, 둘째 사회운동을 혁명과 동일시한다는 점, 셋째 사회운동을 계급운동으로 착각한다는 점, 넷째 사회운동을 특정 집단의 일탈 행동으로 본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사회운동이 태동한 유럽과는 달리 우리 사회는 군중적 상황이 극단적으로 정형화되어 버린 탓이 크다. ▲ 평택시 중앙동 일대에 피어난 불란서국화 꽃무리 과연 그럴까? 물론 현대 사회운동의 양상은 어떤 이념을 바탕으로 합목적적이고 적절한 수단을 전방위적으로 강구하기는 한다. 하지만 적어도 피암시성, 비합리성, 감정성, 폭력성 등을 동반하지는 않는다. 이들이 법적 테두리에서 합법적 단체를 이루기 위해서는 연대적 지속성을 유지해야 할 뿐만 아니라 사회운동이 인간의 삶과 분리되는 순간 존속할 명분은 물론 그 존재 자체의 동력을 상실해버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회운동으로 사회를 변화시키는 힘은 깨어난 시민들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다만 사회운동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명심할 일은 지나친 일반화에 더해 추상적 객관화의 신화를 경계하라는 점이다. 초기 집합행동을 연구한 르봉은 『군중심리』라는 저서에서 군중의 집합행동을 자극하는 비이성적 힘의 지배를 지적한 바 있다. 이는 심리적인 면에서 상호 자극에 의해 좌우되는 행위야말로 위험천만한 쪽으로 흘러갈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 이론이거니와. 비록 저자가 언급한 여러 주의주장을 일일이 나열하지는 않더라도 어느 시대이건 사회과학 지식체계는 당대 사회 성격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것이다. 고로 일제강점기를 거친 해방공간에서 맞이한 동란은 재앙이었다. 긴 군사독재의 터널을 지나 문민정부가 들어섰어도 사회운동가들이 서 있을 땅은 비좁았다. 그나마 1980년대 후반부터 비정부기구의 폭발적 증가로 한때 다양한 영역에서 권력을 감시하고 정책을 추동하며 시민의 권리를 옹호했으나, 이 또한 거버넌스, 즉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려고 주어진 조건에서 모든 이해 당사자들이 책임성을 지니고 투명하게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제반 장치는 표류하는 중이어서, 다시금 전열을 가다듬고 교육체계를 가동하는 일이 시급하다. 다행히 최근 비정부에 비영리와 공동체 부분을 추가한 협력과 사회경제적 약자의 협동조합적 방식에 대한 재발견이 있었다고는 하나, 그 또한 여성, 노동, 소수자, 종교, 인권, 복지 등에서 반세계화를 지향하는 세부 주제의 탐색이 절실한 시점이다. 고 신영복 선생의 말처럼 공부란, “삶을 통해 터득하는 세계와 인간에 대한 인식 변화를 꾀하는 일”이라는 관점에서 사회운동을 바라본다면, 세상을 바꾸기 전 나의 성찰이 먼저라는 자각이 앞서야 한다는 지점에 도달할 때까지 달리라는 채근이다. ■ 프로필 - 고교생에게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퇴임 후 기고활동을 이어가면서 기독교 철학박사(Ph.D.) 학위를 받았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을 운영합니다. - 정론지 <평택자치신문>에 “세상사는 이야기”를 15년째 연재하는 중입니다. ※ 다음호(726호)에는 ‘효과적 독서의 요건 - 도서관 역사와 변화상’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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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29
  • [세상사는 이야기] 효과적 독서의 요건 ‘과학의 세계로 빠지기’ (10회)
    어려운 과학책을 어찌 독파할 수 있을까? 이필렬 교수에 따르면, 과학이란 근대에 들어 형성되고 발달해온 순수 학문으로써, 과학적 지식뿐만 아니라 자연을 이용하기 위한 기술까지 포함한다. 과학책의 유형은 과학 해설서, 과학 역사서, 과학의 사회학적 접근서, 과학 비판서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책들을 읽는 방법이 따로 있지는 않다. 특별히 관심이 가는 책 가운데 과학의 이해에 도움을 주는 것이면 된다. 다만 과학책은 정독을 통해 접근하는 것이 좋다. 현대사회를 알기 위해서는 과학 전반에 대한 소양과 실생활에 유용한 기술 지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실은 우리가 접하는 과학이란 학문은 17세기 무렵 서양에서 형성되었다. 가설이나 이론을 증명하기 위하여 실험을 거쳤고, 자연을 대상화했으며, 자연법칙의 탐구를 위해 도구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예컨대 아리스토텔레스의 가르침이 옳은 것인지를 피사의 사탑에서 실험했거니와 베이컨이 말한 아는 게 힘이라는 기치를 걸고 망원경이며 기압계가 등장한 터였다. 다종다양한 양상으로 인간사회의 변화를 주도한 것이 과학이다. 현대과학 이전에 있었던 과학의 형태는 어떠했을까? 지금처럼 정리된 책자는 없었으나 그래도 천체의 움직임에 따른 궁금증은 실로 대단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과학원리에 관한 해설서가 필요한 건 그래서다. 일반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을 안 다음에는 과학의 발달 과정을 역사적으로 서술한 과학 역사서를 읽어야 한다. 그다음은 과학기술이 사회적으로 어떻게 작용하고 얼마큼 영향을 미쳤는지를 살펴보기 위한 과학의 사회학적 접근이 있어야 하며, 여태껏 과학이 일으킨 문제점들을 규명한 과학 비판서까지 두루 살펴보라는 것이 저자의 권고다. 그중에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와 같이 대중의 인기를 모은 책도 있고, 스티븐 호킹의 『짧은 시간의 역사』와 같이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오른 책도 있지만, 정작 중요한 바는 과학기술에 대한 안목을 길러 독자 나름대로 비판적 시각을 갖추는 일이다.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접하며 원자력발전의 기본원리를 아는 것과 모르는 건 천양지차의 반응을 보일 수 있어서다. 다만 필자는 과학 자체를 두고 기계적·환원주의적으로 비판하는 접근 방식에는 동조하지 않는다. ▲ 평택시 중앙동 일대에 피어난 만수국 꽃무리 문외한의 입장에서 보아도 그동안 과학계에서 이룬 성과물은 학자들의 엄청난 업적인 동시에 인류문화의 산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원칙적으로 인간사회의 비과학적 요소들을 근원적으로 파고드는 데는 찬동하지만, 과학적으로 설득하지도 못하면서 우주의 원리 자체를 부정하는 시도에는 단호히 선을 긋는다. 현대인의 기초적 소양에 필요한 내용일수록 분야와는 무관하게 세심한 주의를 요한다는 생각에서다. 비근한 예로써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를 대충 읽어서도 이해할 영재는 극히 드물 터일진대, 빛의 속도는 일정한데 시간의 길이가 움직이는 물체의 속도에 따라 다르고, 길이는 줄어들 수 있으며, 질량과 에너지가 등가라는 특수상대성 원리에 덧붙여, 중력장, 중력과 가속도의 등가성, 휘어진 공간 등을 설명하는 일반상대성 원리까지 버무려 다룬다면 설렁설렁 읽어서 이해할 수 있겠느냐는 반문이다. 그러므로 추천할 책이라면 찰스 길리스피의 『객관성의 칼날: 과학사상의 역사에 관한 에세이』와 더불어 하이젠베르크의 자서전 『부분과 전체』에 더해, 레이철 가슨이 과학기술 결과를 비판한 『침묵의 봄』을 권한다. 그 외에는 저마다의 취향에 따르되, 아래 소개하는 지은이의 회고담 ‘나의 과학책 읽기’는 참조할 만하다. 독일 유학을 다녀온 저자가 과학책을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한 때는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였다. 처음에는 주로 과학 역사서와 과학자 전기를 읽다가 과학 해설서와 비판서로 넘어갔는데, 기억에 남는 저서는 조지 가모프의 『물리학을 뒤흔든 30년』, 허버트 버터필드의 『근대과학의 기원』, 제레미 번스타인의 『이인슈타인-학문·생애·사상-』 등이었다. 첫 책은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의 형성기를 서술했고, 둘째는 17세기 근대과학의 혁명을 역사적으로 기술했으며, 셋째는 저자가 처음 접한 인물평전이어서 기록해 두었다는 얘기다. 필자의 눈에 들어온 구절은 하이젠베르크가 플라톤의 대화편에서 ‘티마이오스’의 영향을 깊게 받은 대목이다. 이후 지은이는 과학자들의 전기를 꽤 찾아 읽어가며 그들의 고뇌에 찬 탐구 과정을 통해 과학자의 지평을 여는 데 적잖을 도움을 받게 된다. 과학 비판서 중에는 프리초프 카프라의 『현대물리학과 동양사상』이 인상적이었으나, 여전히 과학도에게도 과학 세계는 무거운 과제다. ■ 프로필 - 고교생에게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퇴임 후 기고활동을 이어가면서 기독교 철학박사(Ph.D.) 학위를 받았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을 운영합니다. - 정론지 <평택자치신문>에 “세상사는 이야기”를 15년째 연재하는 중입니다. ※ 다음호(725호)에는 ‘효과적 독서의 요건 - 사회운동 콕 짚어내기’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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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18
  • [세상사는 이야기] 효과적 독서의 요건 ‘사회과학 똑바로 하기’ (9회)
    사회과학책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백영경 교수에 따르면, 사회과학이란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사회 현상과 인간의 사회적 행동을 연구하는 분야로써, 근대의 분과 학문체계이자 통치 권력의 기반이 되는 중층적인 성격이 존재한다고 덧붙인다. 다시 말해 사회과학에서는 사회 현상들의 원인이나 영향을 받는 관계에 대해 체계적으로 접근하여 미처 일반인의 생각이 닿지 않는 이면적 측면까지 다루고 있다는 설명이다. 단, 특정 관점에 국한해서는 사회를 올바로 들여다볼 수 없다는 데 유의해야 한다. 고로 사회과학책을 읽을 때는 해설에 타당성이 있는지, 새로운 지점에 대한 성찰이 있는지, 서술을 통해 빠뜨린 대목은 없는지, 배제된 사람들에 대하여 배려했는지를 문답을 통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것이 나의 경험칙상 객관성을 확보하면서 검증된 이론과 개념이라는 도구를 이용한 사회 현상에 관하여 총체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길목이라는 지침이다. 그렇다면 막상 읽고 싶은 사회과학책을 어떻게 고를 참인가? 아무래도 초심자는 나의 관심사를 위주로 살펴보는 것이 무난한 선택지가 될 것이다. 필자는 사회과학 과목의 보고서를 쓰면서 관련 용어는 어려워도 전체 흐름을 놓치지는 않았다. 평소 시사성 있는 화제나 날마다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무관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의점은 사회과학 저술은 유사한 주제의 언론 보도나 자기계발서의 유형과는 달리 그저 알려주기 위한 소개서가 아니라는 점이다. 사회과학자들은 일정한 개념을 통해 자신의 관점을 드러내고 체계화된 이론을 동원하여 흐트러진 사실들을 일목요연하게 조직하는 일들을 떠맡는다. 즉, 언뜻 엇비슷해 보이는 현상일지라도 특정 시점과 공간에 얼마큼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따져 묻는 역을 감당한다. 그러므로 ‘사회과학하기’라는 작업은 저자의 서술에다가 독자의 참여를 끌어내는 쌍방향 과정이 된다. 이러한 접근법이 처음에는 어떤 훈련된 눈을 통해야 한다는 면에서 다소 생소할 수도 있으나, 차츰 이전에 볼 수 없었던 것과의 연관성을 발견하면서부터는 나름은 흥미도 있고 보람을 느낄 것이다. 그렇다고 사회과학책 모두가 비판적 사고를 고양해주지는 않는다. 행정적 기능을 다루거나 현실의 합리화에 급급한 경우도 있다. ▲ 평택시 중앙동 일대에 피어난 맨드라미 꽃무리 사회과학의 종류에는 인류학, 사회학, 정치학, 경제학, 법학, 지리학, 국제관계학, 교육학 등 인간 생활의 사회적 측면을 조명한 학문을 포함한다. 그러나 인문학의 핵심인 역사학을 두고는 광의에서 사회과학의 일부로 보기도 하며, 심지어 자연과학과 의료 등의 영역까지 사회과학의 연구대상으로 삼는 것이 최근의 경향이기는 하다. 서구에 기원을 둔 근대 학문체계를 소환하면 ‘사회’를 주목하며 탐구할 대상으로 여긴 때는 18세기 중반이었다. 그 직전인 17세기가 되어서야 인간의 감정과 행동을 주시하며 ‘사회적’(social)이라는 형용사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사회라는 낱말은 가족이라는 사적 영역도 아니요, 공적 영역인 국가도 아닌 소규모 결사체에서나 적용하던 용어였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사회라는 개념이 정치적 자유주의 이념에 부합하면서 중요성이 부각되었고, 정상적 질서유지의 차원에서 통치자들이 개입하지 않으면 안 되는 지점으로 정당성을 얻게 되었다. 요컨대, 사회과학적 시각으로 세상을 관찰하면 기존의 ‘바라보기 방식’에서 벗어나 몰각한 정치권력과 부당한 통치수단에 대한 안목이 생길 것이다. 저자는 사회라는 현상은 어떤 실체가 있는 게 아니라 특정한 시기 이래 인간들 사이의 집합적 삶을 이해하는 하나의 방식이라고 정의한다. 실제 생활하는 터전이 있기에 손에 잡힌다고들 생각하지만, 실은 사회의 기본을 만인 대 만인의 투쟁으로 볼 참인지 아니면 상생의 공동체로 여기냐에 따라 매우 다른 전개 양상이 전개된다는 시각이다. 요체는 사회학자의 근본적 세계관에 달렸으므로 굳이 편협한 틀에 갇혀 다양한 세계를 놓칠 이유는 없다는 게 저자의 권고다. 하지만 지은이는 현재의 삶을 분석하여 미래를 예측하는 일은 주의할 지점이라고 충고한다. 미래 예측이란 본질적으로 불가능한 영역이거니와 누군가의 현실 자체에 개입하려는 의도가 있어 깊은 성찰을 전제하더라도 미지의 시간에 대한 변수가 존재할 수 있다는 진단이다. 가령 지금의 출산율을 기준으로 민족 소멸을 장담하고 아파트 수요를 예단하는 행위는 사회과학이 아니라고 단정한다. 실체는 누구의 시선이냐에 대한 맥락이다. 현상 자체의 시공을 따라 뿌리와 줄기를 파헤치면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파악하면서 사안을 꿰뚫어 볼 수 있을 것이다. ■ 프로필 - 고교생에게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퇴임 후 기고활동을 이어가면서 기독교 철학박사(Ph.D.) 학위를 받았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을 운영합니다. - 정론지 <평택자치신문>에 “세상사는 이야기”를 15년째 연재하는 중입니다. ※ 다음호(724호)에는 ‘효과적 독서의 요건 - 과학의 세계로 빠지기’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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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14
  • [세상사는 이야기] 효과적 독서의 요건 ‘서양사 바로 톺아보기’ (8회)
    서양사를 바로 톺아보는 길은 있을까? 이혜령 교수는 오늘을 사는 우리는 수천 년간의 역사과정에 빚을 지고 있으므로 서양사 읽기를 통해 나를 알기 위한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고 말한다. 즉, 지나간 시공을 뒤돌아봄으로써 당면한 문제들의 해답을 찾아야 한다는 조언이다. 현재에 대한 비판적 인목이야말로 미래를 설계할 합리적이고 종합적인 전망을 모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책을 읽을 때는 먼저 다양한 질문을 던지며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와 더불어 기존의 역사서술에서 제시된 입장을 살피며 자신의 위치를 설정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서양사에서 주의할 요소는 서구중심주의와 부르주아 및 남성 중심의 편견들이다. 그것들이 불러올 사실관계 왜곡은 물론 시비와 공정을 흐리는 지점을 바로 잡기 위해서는 양자 비교와 종합분석의 자세를 견지할 필요가 있다. 역사는 기본소양을 바탕으로 자유로운 사유에서 오는 판단력을 기름으로써 다른 학문을 연구하는 데 긴요한 분야로 널리 인정받은 셈이다. 여기서는 좁아진 지구촌에서 이질적 문화를 공유하며 상생하는 방안을 여러모로 제시할 것이다. 문제의 초점은 서양 역사는 팽창 지향적이라는 데 있다. 다시 말해 국제적으로 치열한 경쟁 구도를 타파하려면 치밀한 전략이 필요하다. 예컨대 그리스는 기원전 8세기부터, 알렉산더는 기원전 4세기부터, 로마인들은 기원전 1세기 말부터, 중세 유럽인들은 기원전 1세기 말부터 영토전쟁에 돌입했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 어디 그뿐인가? 그들은 중세사회가 붕괴된 15세기 이후 아시아와 아프리카로 진출하여 자원을 약탈하고 자본주의를 수립함으로써 세계사를 주도하는 면모를 보여왔다. 급기야 19세기 말에 이르러서는 양차 대전을 일으키며 세계를 초토화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그 대가는 극한적 대결의 냉전체제였다. 그렇다면 나의 관심사와 연결된 주제의 선택과 집중이 요구된다. 영화감상 후 흥미로운 영역을 찾아보는 것도 괜찮고, 시사성 있는 사태를 보고 자료를 탐색해볼 수도 있다. 요체는 개인적, 사회적 전망이 어두울수록 유사한 역사를 돌아보며 사안별 대처능력을 키워야 하거니와 현실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가운데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과거사를 분석하는 일은 시간의 확장을 뜻하기 때문이다. ▲ 평택시 중앙동 일대에 피어난 설악초 꽃무리 그러나 학자들과 독자들 사이에는 시각의 괴리가 존재한다. 일반인들의 성향은 통상 역사의 거시적 흐름을 생각하는 반면에 전문가들은 특정 사실에 대한 정립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어, 이왕지사 양자의 거리를 단박에 좁히기 어렵다면 역사의 저변을 확충하기 위해 때로는 독자의 편에 서서 소구력을 높이는 방안을 꾸준히 모색할 필요는 있다고 본다. 물론 주제를 넓게 잡고 동서양사의 도도한 흐름을 크게 잡아주는 거시적 서적이 아주 없지는 않다. 이때 요긴한 기능을 담당하는 것이 요약과 질문이므로 그 둘을 진지하게 접합한다면 독서의 흥미를 배가시킬 수 있다. 극히 경계할 요소는 특정 집단의 이해관계에 휘둘려 견강부회하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다만 설령 역사가의 정치적 입장에 따라 사건을 해석하고 평가하는 기준은 시대와 사회의 여건에 의해 좌우될 수는 있어 이마저 흔들리지 않는 푯대가 최선이겠으나 인간이 하는 일에서 절대선을 추구할 수 없다. 권력자와 지배자, 심지어는 약탈자의 눈으로 역사를 기록하고 유포하는 과정에서 거대한 은폐와 폭력성을 수반하는 사례도 있어서다. 최근 들어 서구중심주의를 비롯해 가부장주의에 대한 반추, 모성신화에 대한 분석, 여성성과 남성성이라는 고정관념의 해체 등이 도마 위에 올라온 건 고무적이다. 하지만 민족적 우월주의와 성인식만으로 학계를 급격히 변화시킬 수는 없다. 그렇다면 독자들은 다양한 연구 방향성 앞에서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비록 전문가는 아닐지라도 공정하고 주도적인 자세를 견지하라는 권유다. 독서를 통해 쟁점을 놓고 자신의 입장을 옹호하는 경험만으로도 이미 소기의 성과를 올렸다는 칭찬이다. 기억해둘 지적 활동의 중심은 성찰에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 역사학자인 마르크 블로그의 지적처럼 역사의 대상은 어디까지나 인간이기에 그렇거니와 저자가 권하는 공동의 독서와 반성적 작업이 무엇보다 중요해서다. 함께 독서노트를 만들고 요약집을 분담해보는 것도 유익하다. 물론 메모는 각자의 몫이다. 발제자의 내용을 비교하며 보완하는 일도 권장할 만하다. 그렇게 생긴 정교한 비판의식이야말로 인류의 정신사를 살찌워왔다. 깊은 문제의식은 숱한 현실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자유와 권리를 신장한 지름길이었다. ■ 프로필 - 고교생에게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퇴임 후 기고활동을 이어가면서 기독교 철학박사(Ph.D.) 학위를 받았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을 운영합니다. - 정론지 <평택자치신문>에 “세상사는 이야기”를 15년째 연재하는 중입니다. ※ 다음호(723호)에는 ‘효과적 독서의 요건 -사회과학 똑바로 하기’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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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하식의 이야기
    2024-04-26
  • [세상사는 이야기] 효과적 독서의 요건 ‘한국사 제대로 꿰뚫기’ (7회)
    한국사를 제대로 꿰뚫어 보기 위해서는 어떤 시각이 필요할까? 송찬섭 교수에 의하면, 역사를 읽는 목적은 단순히 흥미를 충족하기 위한 수단일 수도 있지만, 시대적 흐름과 구체적 현실을 알려고 하거나 역사 속에서 희망을 찾아 실천 의지를 다지려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역사책의 종류를 보면 통사, 시대사, 왕조사 등과 같은 과거사의 기록물, 유적지를 통해 역사적 안목을 길러주는 답사기, 전기류와 유사한 인물평전이나 회고록, 생활문화를 탐구하는 일상사, 역사소설이나 사극 등에서 상상력을 자극하는 책도 있다. 유의점은 각 책에 담긴 사관은 물론 저자가 지향한 가치요 사상이다. 다만 사실(史實)과 허구는 엄연히 다른 영역이다. 다산 정약용이 아들에게 제시한 도서류 가운데 『삼국사기』와 『고려사』 등이 들어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의 향취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걸핏하면 중국의 일을 인용하는 것을 두고 비루한 품격”이라고 꼬집은 대목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고 흥미로운 주제에 관심을 둔다며 나무랄 수는 없다. 각종 문제를 파헤치려는 노력 또한 다양한 시각의 하나로 볼 수 있다. 중요한 지점은 과거와 기록에 대한 관심이다. 기나긴 역사를 통해 말 없는 다수의 실상이 전면에 나선 소수로 대치될 수는 없잖은가? 예컨대 서구 열강의 침략사에 얽힌 일제 강점기를 무심코 지나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사방에서 국운을 옥죄어오던 구한말로 되돌아가 근대화를 선제적으로 추동할 수는 없었는지 문제를 제기하는 대목도 역사책에서 고리를 풀어야 한다. 다만 역사의 기술상에 남아있는 객관성의 확보 여부는 별개 사안이다. 이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관점에서 그 한계치를 어디까지 설정할 것이냐에 대한 논쟁과 합의가 이뤄져야 할 부분이다. 최근 사학계에서는 사가의 기호나 욕망, 편견과 이념, 지방이나 민족과 같은 집단의식, 현재라는 시점 등을 넘어서서 역사를 기록하는 일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회의론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역사란 무엇인가에 대한 개념 정리는 필요하되 누구를 위한 역사인가에 대한 초점이 더 절실하다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정작 어떠한 역사적 사실에 보다 주안점을 두고 선조의 기록을 대할 것인가를 늘 고민해야 한다는 점을 간과하면 곤란하다. ▲ 평택시 중앙동 일대에 피어난 천수국 꽃무리 역사 고전에 해당하는 사서의 대표적 예로는 시대별 정사(正史)를 들 수 있다. 이는 연대기 형태로 고정돼있어 매우 건조하긴 하지만 분야별로 정리한 지(誌) 또는 열전은 이야기 구조여서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조선왕조의 『실록』과 『일성록』은 편년체로 정리했다는 특징이 있다. 실은 전근대에 들어와서도 사찬(私撰)에 의한 사서는 흔했다. 민중의 의식이 깨어나던 조선 후기만 해도 서술방식이 다른 역사책이 다수 만들어졌다. 눈여겨볼 책은 『동사강목』이나 『연려실기술』, 『해동역사』와 같은 역사 담당자 전체를 주체로 한 서술이나 인과관계에 의한 사회 발전을 규명한 일련의 움직임이다. 『대동야승』처럼 민간설화, 사건일지, 기행문 등을 실은 야사류도 있다. 근대에 와서는 학교를 통해 역사교육이 이뤄진 만큼 접근성은 좋아졌으나 역사학의 독립성과 민족사학으로서의 정체성은 여전히 해묵은 숙제로 남아있다. 이에 대항한 신채호의 민족사관에도 불구하고 식민지근대화론의 확산을 막아내려면, 1980년대 들어 부쩍 민주화의 열풍을 일으켰던 기층민의 항쟁사 및 변혁운동사에도 애정 어린 눈길을 줘야 한다. 역사현장을 직간접적으로 그려보는 재미를 무엇에 비할까? 반만년을 일궈온 이 땅에서 지나간 현재를 음미하며 미래를 설계해보는 사실만큼 설레는 일은 없을 터이기 때문이다. 거기서 만나는 역사적 인물은 한국 사회를 만든 지난한 족적이자 수많은 논쟁을 거쳐온 시대의 산물이었다. 각별히 주시하는 민중사를 놓고 인류사의 거대한 흐름 속으로 들어가면 우리 시대의 보편적 가치를 안다는 즐거움만으로도 훈훈한 감동을 안겨주기에 충분하다. 가령 민초들의 생존사를 비롯한 이순신의 『난중일기』, 이병기의 『가람일기』, 김성칠의 『역사 앞에서』가 그 전형이다. 또 하나의 흐름은 생활문화, 곧 공동체적 일상사를 탐구하는 쪽이다. 기본적으로 의식주 외 부업이나 부식, 신앙생활, 여가문화 등속까지 낱낱이 기록해 두었다. 그러한 맥락에서 살펴본 근현대는 대내외적으로 성장과 수용을 용해한 과도기적 상황이었다. 역사소설이나 드라마를 통해서도 역사를 배울 수 있다. 다만 작가의 역사이해 부족과 과도한 상업성의 개입은 경계할 요소다. 상상력이라는 틀 안에서 실체적 진실을 이해하려는 슬기로움은 필수라고 본다. ■ 프로필 - 고교생에게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퇴임 후 기고활동을 이어가면서 기독교 철학박사(Ph.D.) 학위를 받았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을 운영합니다. - 정론지 <평택자치신문>에 “세상사는 이야기”를 15년째 연재하는 중입니다. ※ 다음호(722호)에는 ‘효과적 독서의 요건 - 서양사 바로 톺아보기’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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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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