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4(토)
 


좌탑 정재우 칼럼.JPG
정재우 가족행복학교 대표, 평택성결교회 원로목사

신록의 세상은 갓 태어난 신세계와 같다. 아파트 정원을 거닐며 신록과 어우러진 꽃들의 잔치에 흠뻑 취해 본다. 아직 완연한 봄날을 맞이하기 전 어느 날 오후, 8차선 대로 네거리 건널목에 서서 우연히 행인을 위해 설치된 파라솔을 바라보았다. 접혀져 기둥처럼 서 있는 파라솔 커버에 이런 문구를 보았다. “따뜻한 봄이 오면 다시 펼칠게요”


지금은 완연한 봄. 신록의 세상은 신선하다. 하지만 오후 햇볕이 따가워져 네거리마다 파라솔은 겉옷을 벗고 양산처럼 펼쳐졌다. 파라솔 그늘로 사람들은 잠시 몸을 피한다. 햇살이 따가워 누구든지 그늘 아래로 한 발 들어선다. 그리고 신호등이 바뀌면 서슴없이 그늘을 벗어나 건널목을 건너간다. 


따뜻한 봄날의 약속이 지켜져 시민들을 흡족하게 한다. 그늘을 주려고 한 작은 약속은 지켜졌다. 세계 여러 나라 도시를 여행할 때 본 적이 없는 건널목 파라솔은 우리나라만의 특허품인가? 시민을 위한 따뜻한 배려가 멋지지 않은가? 노년의 어르신과 유모차에 아이를 태운 젊은 새댁도 때론 뛰어와 숨을 고르는 청년도 그늘 아래서 만난다. 앞으로 녹음이 짙어져 갈 오뉴월에도 한여름 칠팔월 태양의 햇살이 작렬할 때에도 이 파라솔 그늘 아래서 잠시 쉬어 갈게다. 

 

봄날을 기다려 온 그늘의 약속에 우린 익숙하다. 시민으로서 흐뭇하고 고마운 마음을 가진다. 이런 그늘의 배려를 베푸는 이웃이 있다. 힘든 사람에게 파라솔 역할을 하는 우리 사회가 꼭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다. 

 

기지촌 할머니들을 위해 2박 3일 일정으로 여행을 모시고 다녀온 시민재단의 사람들. 청춘을 기지촌에서 살아야 했던 우리 사회의 아픈 손가락인 할머니들을 기억하고 잠시 여행을 떠나 즐거움을 선물한 그들이 고맙다. 

 

말기 암 환우와 그들의 간병으로 지친 가족들을 위해 1박 2일, 혹은 당일치기로 관광을 해마다 다녀온 호스피스의 멤버들이 고맙다. 세상 떠날 날을 기다리며 우울하고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야 하는 환우들과 가족들에게 그늘의 배려를 베푸는 그들이 진정 고맙다. 


목숨을 걸고 자유의 땅을 찾아온 탈북민의 애환은 남다르다. 굶주림과 착취의 지옥에서 벗어나기 위해 국경을 넘어 중국과 제3국을 거쳐 수천 km를 지나 찾아온 남한이었지만 살아가기에 결코 만만하지 않다. 북녘의 어투와 생활 방식의 차이로 적응하기 쉽지 않은 시간을 보내야 했다. 때론 두고 온 가족들이 그리워 갈등하는 그들을 품어주고 격려해 주는 경기남부하나센터의 멤버들이 고맙다. 남북민이 함께 일구는 텃밭에서, 고향이 그리워지는 명절마다 함께 모여 망향제로, 지역민과 함께하는 명랑 체육대회, 야유회 등으로 그들을 품는 실무자들이 고맙다. 


먼 이국땅에 와서 땀 흘리는 외국인노동자들을 위한 무료진료소를 운영하는 의료진과 봉사자들, 자식조차 돌보지 않아 더 외로운 노후를 살아가는 독거어르신을 정기적으로 방문하고 돌보아 드리는 지도사들, 한때의 실수로 일찍 부모가 된 청소년미혼부모를 돌보는 봉사단체, 이와 동일한 사회적 섬김이들이 있다. 그들이 만드는 그늘이 고맙다. 


임병호 시인은 ‘4월’이라는 시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사람들 가슴속에서 봄에는 풀잎이 움튼다

사람들 가슴속에서 봄에는 나무가 자란다

사람들 가슴속에서 봄에는 들꽃이 피어난다

사람들 가슴속에서 봄에는 산꽃이 피어난다

사람들 가슴속에서 봄에는 남풍이 분다

사람들 가슴속에서 봄에는 냇물이 흐른다 


아아, 봄에는 사람들이 강물로 흐른다

청산으로 일어선다 하늘로 열린다

삼라만상을 품에 안는 대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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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우 칼럼] 따뜻한 봄이 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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