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3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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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하식 수필가·시조시인, Ph.D.

규슈(九州, 쓰시마 별도), 혼슈(本州), 홋카이도(北海道)에 이은 시코쿠(四国, 370여만 명 거주) 단기방문은 남달리 감회가 새로운 여정. 무려 8년 반 전 무렵 주말에 출발했다가 갑자기 현지 일대에 불어닥친 극심한 폭풍우로 인해 아쉽게도 인천공항에서 발길을 돌려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이번에는 아무 일 없어야 할 텐데 하는 일말의 불안감이 불시에 나타난 곳은 다카마쓰(高松) 공항 검색대. 탐지견이 우리 부부의 가방에서 구수한 누룽지 냄새를 맡았는지 내용물을 샅샅이 뒤지는 동안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을 방문할 때마다 인적 물적으로 느끼는 정서는 매사 예의 바른 몸가짐과 동선이 편리한 정교함. 사람의 힘으로 이루어낸 아름다움이 기실 자연을 방불한 인공미를 자아낼 수 있다는 걸 실체적으로 감지하는 건조물에서 늘 감탄하는 바가 있거니와 열 길 속마음이야 어찌 됐건 매번 남을 배려하는 관습에서 배우는 바가 적잖아서다. 왜들 한국 사회는 다른 나라의 바람직한 사례를 받아들이는 데 퍽 인색하다 못해 불필요한 관행이나 알량한 자존심 따위를 앞세우는 걸까?


첫 탐방지는 고토히라(琴平). 유독 계단(785개)에 약한 무릎을 감안해 조즈산(해발 538m) 중턱쯤에 자리한 신사 대신 상점가 입구에 있는 킨료노사토 주조기념관부터 들러보았다. 한눈에 방문객들이 돌아보기 편안한 건물구조. 매년 지역 궁에서 바다의 수호신(곤피라상이라는 애칭으로 불림)을 향해 제를 올리던 청주 ‘킨료’를 만들던 회사의 양조장을 개축한 공장 터답게 커다란 고목 한 그루가 마당 한가운데 서 있고, 마치 제주(製酒) 당시 여건을 그대로 재현한 듯 공정을 빠짐없이 살펴볼 수 있도록 이동로를 구석구석까지 잘 짜놓았다. 밖으로 나오니 나그네의 손길을 유혹하는 가지런한 몬젠마치(상점가). 하지만 우리 부부의 눈길은 이곳 공익재단법인에서 운영하는 ‘海の科学館’을 지나 오래된 마을 공회당(琴平町公会堂)으로 향하고 있었다. 1932년에 지은 일본식 전통 목조건축물이었는데 웅장한 팔작지붕에 나름 고풍스러운 자태를 지녔고 운치 있는 정원을 갖췄으나 막상 국가 등록 유형 문화재에 걸맞은 관리상태는 미흡해 보여 아쉬웠다. 잔뜩 기대를 걸었던 우동 맛에 별로 매력을 느끼지 못한 채 돌아서는 발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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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시마 전망대에서 바라본 다카마쓰 시가지

 

야시마 전망대에서 바라본 다카마쓰 시가지는 때마침 붉은 노을이 물들어 눈이 부신 역광이었지만 얼핏 보아도 도시 규모를 어느 정도는 짐작하게 했다. 해안선을 따라 상주인구 41만여 명이 모여 사는 고을은 이곳을 관할하는 가가와현(香川県) 외에 에히메(愛媛), 도쿠시마(德島), 고치(高知) 현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설명에 더해, 관련 자료에는 기와지붕 모양의 산맥을 배경으로 이어진 쇼도섬의 도후치 해협(土渕海峡)은 폭이 9.93m에 불과해 세계에서 가장 좁은 바닷길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었다는데 그곳이 어딘지는 아리송했다. 저 멀리 뵈는 세토대교는 혼슈의 오카야마현 구라시키와 가가와현 사카이데를 잇는 현수교. 철도와 도로가 있는 병용교로서는 세계 최장이란다. 다시 눈길을 여기로 돌리면 겐지와 헤이케 일족의 전투가 벌어진 장소. 안타깝게도 작년 축제의 산물로 지은 용트림 형상의 곡선 관망로를 직접 걸어보지는 못했으나 절간 경내에 들어오며 훑어본 진언종 옥도사(屋島寺) 본방의 쌍방향 대결형 수직 옥개와 두루 복을 가져다준다는 너구리의 상징물로도 그 의미를 충분히 가늠하리라.


린츠린(栗林) 공원의 자연스러운 인공미는 가히 일본 정원의 백미로 부를 만했다. 16세기 후반 사토 씨를 시발점으로 사누키 지방의 영주인 다카토시가 내리 5대 백 년간에 걸쳐 조성했다는 별장 지대. 시운산 자락이 열두 폭 병풍처럼 둘러싸인 천혜의 지세도 그렇거니와 산기슭을 벗 삼아 흐르는 시냇물이 6개의 연못이며 13개의 동산을 만드는 데 결정적 조건이었음을 대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안내서를 보니 에도시대 초기의 다이묘 정원으로써 적절한 토지분할과 자연석 배치가 뛰어나 사시사철 피어나는 꽃들과 어우러진 천여 그루의 싱싱한 소나무들을 매일 분재처럼 감상할 수 있다는 찬사가 결코 과언이 아니다. 모름지기 심미에 바탕을 둔 인공과 자연의 조화로운 정취라고 못박아도 무방한 수준의 역작. 평소 조경에 조예가 깊기를 갈망하는 필자로서는 이런 게 정녕 진경산수화가 아니면 뭐냐고 되묻고 싶다. 그야말로 일보일경(一步一景), 즉 한걸음 내디딜 때마다 다른 경치가 보이는 가운데 압권은 ‘쓰루카메마쓰’, 곧 학과 거북소나무가 짝을 이룬 모습. 1875년 현립공원으로 일반에 공개했으며, 1953년 특별명승지로 지정되었단다.


■ 프로필


- 고교생에게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퇴임 후 기고활동을 이어가면서 기독교 철학박사(Ph.D.) 학위를 받았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을 운영합니다.

- <평택자치신문>에 “세상사는 이야기”를 14년째 연재하는 중입니다.


※ 다음호(705호)에는 ‘시코쿠 가가와 기행 - 인공을 방비한 자연미’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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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시코쿠 가가와 기행 ‘자연을 방불한 인공미’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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