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2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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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하식 수필가·시조시인, Ph.D.

얘기만 꺼내도 골치 아픈 철학서는 무슨 책부터 읽어야 할까? 이준석 교수에 의하면, 철학은 나를 지탱해주는 튼튼한 밧줄이자 삶의 부조리와 허무에 정면으로 맞서 이겨내는 일이어서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길이라고 규정한다. 그래서일까? 꽤나 무겁게도 철학에 입문하는 학생들을 위해 몇 가지 책들을 시대별 난이도별로 소개하겠다는 약속과 함께, 철학은 홀로 수련하기는 어려우므로 반드시 도움을 받아야 하며, 우리말로 된 철학서 중에서 좋은 책을 찾는 데는 안목이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런데 초장부터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만나도록 구성한 바는 색다르다. “이 초월적 이념들에 관해서는 본래, 우리가 범주들에 관해서 제공할 수 있었던 것과 같은 객관적 연역이 가능하지 않다.”라는 말에 이어서 헤겔의 『대 논리학 2권』을 통해, “삶에서 우리는 삶이 이념이지만 동시에 삶은 아직 이념의 현존재의 진정한 서술이나 방식이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나는 것을 보았다.”라고 진술하고 있으나 무슨 뜻인지는 아리송하다. 생략해버린 들레즈/기다리의 천 개의 고원을 보면 정신적 혼란이 일어날 지경이다.


저자의 말마따나 “독서백편의자현”이란 옛말은 거짓말임이 드러난 셈이다. 거듭해 읽어봐야 철학에서 멀어질 따름이다. 바로 그것이 좌절할 수 있는 이유로되 다만 쉬이 포기하지는 말고 긴 호흡을 갖고 시나브로 철학의 맛에 길들이기를 소망한다는 발언에 고무된 건 적실하다. 응당 철학 공부를 위한 주춧돌을 놓으라는 말이다. 그래야 철학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단다. 대상을 모른 채 호불호를 가릴 수는 없잖은가? 철학 서적을 펼치자마자 난해하다 못해 난삽하기조차 하다면 초심자들은 이내 책장을 덮을지도 모른다는 진단이다. 스티븐 로의 『철학학교 1,2』를 권한 건 그래서다. 문제 상황을 벌여놓고 다양한 접근법을 통해 철학하기를 보여주며, 나이절 워버튼의 『철학의 근본문제에 관한 10가지 성찰』 역시 비슷한 취지의 입문서이긴 해도, 그보다 가벼운 책은 오가와 히토시의 『철학의 교실』이란다. 그러나 주요 개념과 친해지지 않고서는 철학의 빗장을 풀기 어렵다. 다른 맥락에서 말하는 존재, 실체, 무한 인식, 진리, 필연과 같은 전문용어를 역사적으로 접근하면 서서히 철학의 집에 입주할 날이 다가올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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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택시 중앙동 일대에 피어난 만수국 꽃무리

 

예컨대 고대철학에서는 그리스의 소크라테스를 빼놓고 논의를 계속할 수 없다. 그는 한 권의 책도 남기지 않았으나 제자인 플라톤의 대화편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주로 일상어로 대화를 이어간 플라톤을 읽고 난 뒤 여력이 있으면 다음 행위를 전개하라는 주문인데, 『소크라테스의 변명』, 『에우튀프론』, 『크리톤』이 그것이다. 이상 세 권의 저서를 소화했다면 『향연』, 『파이돈』, 『메논』을 읽은 다음 『국가』까지는 독파하기를 권한다. 그의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는 여러 가지 주제에 걸쳐 수많은 저작을 남겼으나 번역서가 많지 않은 게 걸림돌이다. 고대와 중세를 잇는 철학자로는 플로티노스와 보에티우스를 들 수 있다. 중세의 경우, 교부철학의 후기를 대표하는 아우구스티누스는, 『고백록』, 『자유의지론』, 『신국론』, 『영혼의 위대함』, 『삼위일체론』, 『그리스도교 교양』, 『참된 종교』, 『선의 본성』, 『영혼 불멸』, 『독백』 등을 남겼다. 스콜라 철학의 중심에 서 있는 토마스 아퀴나스는 『신학대전』, 『지성단일성』, 『신앙의 근거들』, 『진리론』 등을 남겼고, 아베로에스의 『결정론 논고』는 중세철학의 깊이를 더해주었다.

 

근대로 넘어오면서 인간의 이성은 신으로부터 독립했다. 중세철학은 신학을 위한 도구로써 학문적 근간이 되지 못한 데 대한 반작용이었다. 17세기에 이르면 유럽 대륙은 수학적 합리주의를, 영국 철학은 관찰에 의한 경험주의를 따라갔다. 근대철학의 시조로 간주되는 데카르트 이후로는 스피노자를 꼽는데 스토아철학을 익힌 독자라면 무난하게 읽어낼 수 있다. 18세기 후반에는 철학의 흐름이 임마누엘 칸트에게로 집중되었다. 그 이후의 거목으로는 관념론에 천착한 헤겔이 있으며, 19세기 후반에 태동한 사회주의는 철학적으로는 다듬어지지 않았다. 현대철학 세계는 관념적이고 사변적인 틀에서 벗어났다. 20세기 영국에서는 전통적인 철학과는 단절하고 논리실증주의에 중점을 두는 경향이 나타났다. 이는 결국 20세기에 들어 영미권에서 분석철학으로 이어지며, 유럽에서는 실존주의와 같은 철학이 발전하고 있었다. 그 시점에서 철학 사조의 변질을 우려하며 철학의 본령을 지키려던 학구파도 생겨났다. 현대철학의 진보 내지는 논란의 여지를 남긴 인물로는 삶의 철학(생철학)을 우주로 확장한 앙리 베르그송이 있다.



■ 프로필


- 고교생에게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퇴임 후 기고활동을 이어가면서 기독교 철학박사(Ph.D.) 학위를 받았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을 운영합니다.

- 정론지 <평택자치신문>에 “세상사는 이야기”를 15년째 연재하는 중입니다.


※ 다음호(720호)에는 ‘효과적 독서의 요건 - 한국철학을 읽는 방법’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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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효과적 독서의 요건 ‘무슨 철학책이 좋을까’ (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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