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7(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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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하식 수필가·시조시인, Ph.D.

밤새 크루즈를 타고 입성한 인구 550만가량(면적: 한국의 3.2배)의 노르웨이(Kingdom of Norway). 수도 오슬로(약 70만 명)에서의 일정은 문 닫힌 시청 뜰을 잠시 들렀다 왕궁을 둘러보는 것으로 이어졌다. 이 나라가 12년째 민주주의 지수 1위를 고수하는 비결은 무엇일까? 현지에서 두 아이를 키우는 해설자는 이곳 초등학교는 주로 노는 법을 가르친다고 귀띔한다. 설령 눈비가 내린다 해도 굳이 맞아가면서 자연스레 참을성을 기른다는 것. 경작 가능한 지역이 3%에 지나지 않아도 어업이나 해운업으로 상쇄한다는 말속에는 1975년부터 영국과 공동 개발한 북해유전에서 생산하는 원유와 천연가스의 힘이 작동하고 있단다. 문제는 1인당 8만 달러가 넘는 소득의 45%가 세금이라는 점. 여기 역시 불투명한 미래보장책으로 인해 고민이 크다는 전언이다. 다소 길게 진술한 역사의 물줄기는 왠지 들을 때뿐이고 기억에 남은 건 왕실의 대가 끊어져 영국도 아닌 덴마크에서 방계 왕자를 빌려왔다는 얘기였다. 그거야 당사자들이 결정할 사안이로되 고대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각자 소견대로 행하였다는 구약 사사기(21:25)의 말씀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백성들은 과연 사사(士師)를 따랐을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통치가 순탄한 적은 길지 않았다. 시청이나 왕궁에서 눈에 띈 지점은 국가권력이 시민들 가까이서 소통을 꾀한다는 것. 실용적으로 꾸민 화단을 보며 들어선 입구에서 시를 상징하는 백조상을 떠받친 분수대가 눈길을 끈다. 행사 진행으로 인해 노벨평화상을 시상하는 중앙홀이나 내부에 전시한 유명 예술가들의 헌정 작품을 관람하지 못한 건 부득이한 상황이로되 사전에 좀 더 치밀하게 동선을 짤 수는 없었는지 캐묻고 싶다. 도심을 감싸고 도는 공원 안에 자리한 왕궁의 겉모양은 매우 소박했다. 아내와 뒤뜰을 거닐며 얻은 덤은 진정한 권위는 형식적 의전이나 화려한 치장에서 나오지 않는다는 교훈. 에덴동산을 패러디한 나무 신화는 선악과에서 파생한 아담과 하와의 후손임을 인정하는 설화로 이해한다. 길거리에 위치한 건조물이 곧 대학 강의실인 유럽의 풍경은 오슬로대학교도 예외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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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르웨이의 오슬로 비겔란공원에 있는 모노리탄

 

처음 본 노란 아카시아꽃이 만발한 가운데 아이들의 버스킹을 들으며 향한 곳은 비겔란 조각공원. 널따란 부지에 안치한 그의 조각품들은 거의 인간군상을 주제로 한 작품들이다. 전시품 200여 개 중 압권은 단연 17m 높이의 모노리텐. 이는 121명이 뒤엉킨 채 하늘을 향해 몸부림치는 기둥으로 숙련공 세 명이 14년간을 매달린 결과란다. 올려다보노라니 파란만장한 인생의 굴레. 그런데 등장인물들은 죄다 나체이거늘 작가 자신의 형상에만 옷을 입힌 의도는 무얼까? 햇볕이 따갑게 내리쬐는 날씨에도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뒤꼍까지 살펴본 뒤 돌아서려는데 새삼 뭇 인생의 희로애락이 한꺼번에 느껴지는 듯했다. 그나저나 이만한 전시공간을 반영구적으로 확보한 데는 비겔란의 수완이 한몫했다는 후문. 말하자면 기증을 조건으로 당국과의 줄다리기에서 많은 걸 얻어낸 셈이다. 하지만 멀리서 공원의 정면을 가린다는 구실로 교회당을 옮기라는 요구는 지나쳤다. 그에 비해 노르웨이가 낳은 불세출의 화가인 뭉크는 미적거리다가 사후 한 세대가 지난 1970년대에 와서야 작품을 박물관에 보관할 수 있었다니 튀는 걸 꺼리는 게 고유한 민족성이라고는 해도 실속을 챙길 기회는 스스로 잡아야 하는 법이렷다.


1년에 한 번씩 전 국민 댄스 타임이 있다는 현지 가이드의 소개에 귀가 솔깃했다. 그 또한 평등사상의 발로요 민주시민의식의 표출이리라. 태생과 직업에 따라 차별이란 있을 수 없다는 게 이네들의 최대 자산. 실시간 행복지수는 높을 수밖에 없다. 유감스럽게도 잔뜩 허세를 부린 플롬열차만 아니었다면 수목의 한계선을 말해주는 장엄한 산세는 더욱 빛날 뻔했다. 푸르른 대지야말로 설산에서 하얀 시냇물이 흘러내리기에 가능한 풍광. 온난화로 인해 지레 녹아내린 듯 산정호수의 물빛에는 에메랄드 색감이 감돈다. 유람선에 올라 빙하가 깎아내린 게이랑에르-헬레슐트 구간 피요르드를 따라 쏟아지는 일곱 자매 폭포수는 구혼자 폭포와 더불어 그야말로 장관. 게다가 피얼란드 영상관에서 본 설경처럼 겨울스포츠의 강국답게 평소 즐기는 크로스컨트리 종목에 강세를 보이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중에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1994)을 치르고 향후 유휴시설을 남기지 않은 슬기는 두고두고 화젯거리. 사람답게 살아가는 길을 알려주는 것이 교육정책의 본질이라면 노르웨이는 분명 성공한 사례다.



■ 프로필


- 고교생에게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퇴임 후 기고활동을 이어가면서 기독교 철학박사(Ph.D.) 학위를 받았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을 운영합니다.

- <평택자치신문>에 “세상사는 이야기”를 14년째 연재하는 중입니다.


※ 다음호(710호)에는 ‘북유럽 기행 - 스웨덴이 구축한 시공문화’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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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북유럽 기행 ‘노르웨이 자산은 평등사상’ (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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