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2(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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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하식(수필가·시조시인, Ph.D.)

그렇다면 인위적인 손길이 닿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은 어디서 나올까? 두말할 나위도 없이 태곳적 신비를 간직한 대자연으로부터 비롯된다는 데 다수는 이의를 달지 않을 터. 왜일까? 인공을 방비하는 주체가 자연미 자체에 들어있기 때문이다. 굳이 성경책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로마서 1:20)라는 구절을 보면 왜 창조세계에 흩어진 온갖 사물이 그토록 숭배대상이 되는지를 알아차릴 만한 지점이렷다. 일본 전역에 퍼진 신사만 해도 10만여 곳을 헤아리고 모시는 잡신만도 800만 명이 넘는다고 하니 말이다. 이는 생명이 자신의 소유물이 아닌 데서 오는 두려움이 그 원인이다. 다시 말해 연약한 인간에게 가장 무서운 존재는 죽음이기에 피조물을 코앞에 놓고 끊임없이 빌고 엎드리는 기복신앙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것이 무속(shamanism)이란 허상인 게다. 가령 길가에서 객사한 영혼을 위해 정성껏 위로비를 세워주는 수고를 보면 명약관화하지 않은가?


아내와 함께 나오시마 둘레길 18.4km를 일주하며 느낀 바는 섬을 가득 채운 무성한 수풀 말고는 별반 볼품이 없더라는 점이다. 그다지 볼거리가 없었기에 산업폐기물 처리장으로 낙점이 되지 않았겠느냐는 합리적 추정이 가능한 대목. 이를 일거에 살린 이는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타다오(1941년생)였다. 그는 동양의 자연 관조 사상을 현대적으로 추상화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선보이며 유명세를 치른 인물로, 역설적으로 그만의 아트 프로젝트를 거쳐 섬 전체를 하나의 미술관으로 재탄생시킴으로써 대반전의 중심에 섰다. 하지만 솔직히 예술의 섬이라는 별칭은 그저 관능적 수사일 뿐 문외한의 눈에는 자연보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아니 어떤 감흥보다는 일부 관객의 적극적 호응을 끌어냈다는 말이 더 어울릴 법하다. 미야노우라항을 기점으로 해안선을 걷다가 이우환 야외작품을 만난들 작가정신에 깃든 전문지식으로 소상히 풀어내지 않는 한 무슨 영감을 얻을 수 있을지 의문이 들더라는 지적이다. 그래서인지 위치감각에 의지해 길을 찾아 걷는 일도 그리 쉽지는 않았다. 어디서나 골목길에 눈길이 가는 필자의 취향에 따라 여기저기 둘러보며 궁금증을 풀고 요모조모 물어가며 목적지에 다다른 게 소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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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오시마 야외 전시장에서 본 이우환 작품

 

시코쿠무라(四国村)를 찾아나선 길. 가이드가 가리킨 대로 가와라마치(瓦町) 역까지는 순탄했다. 그러나 기차 시간표는 무용지물. 일본어 방송으로 뭐라고 알려준 거 같으나 알아들을 수 없어 답답했고, 몇 사람에게 물어도 토막 영어조차 모르니 무작정 기다릴 수밖에. 그렇게 꼬박 한 시간 반을 기다린 끝에 무사히 내린 S06번째 역명은 고토덴야시마(琴電屋島). 눈치껏 도착한 곳은 에도시대 가옥 23채를 재현한 민속촌이었는데 입장요금은 따끔했고 일일이 살펴보기는 따분했다. 기껏 칭찬한 일본의 특장점이 하나둘 사라지는 현장. 울퉁불퉁 깔아놓은 돌판이 돌아다니기 불편한 데다 순차적으로 돌아보도록 설계한 구성은 부자연스러웠다. 게다가 화장실은커녕 잠시 쉴 만한 의자조차 없었고 자판기는 딱 한 곳뿐이어서, 거지반 언덕배기를 차고앉은 옛집들이나 시설물들을 어린이나 노약자들이 과연 끝까지 구경할 수 있을까를 걱정하다가 겨우 찾아낸 핑곗거리인즉, 그 옛날엔 다들 이토록 열악한 환경에서 살았을 거라는 추정치랄까? 그나마 가부키라도 공연했다면 좋았으련만 그마저 공친 채 돌아서는 걸음이 무거웠다.


돌아가는 길도 어떻게 될지 몰라 서둘렀다. 고샅길을 기웃거리며 역사로 가 차표를 끊으려니 500엔짜리를 자꾸만 토해냈다. 현지 젊은이한테 도움을 청하니 새 동전이 먹히지 않는 걸 알고는 선뜻 바꿔줘 해결했으나, 하도 어이가 없어 흘리는 푸념처럼 정말 첨단과 구태가 뒤섞여 종잡기 어렵다고 하니 옆에서 선명한 우리말이 들렸다. “일본은 그런 게 잘 안 바껴요!” 그렇다면 다카마쓰 시내에 방치된 중앙공원의 현재는 인공미도 자연미도 아닌 셈이다. 모기에 물릴 만치 방역에 소홀한 채 물을 아끼려고 논두렁을 시멘트 공법으로 정밀히 다진다 한들 그 또한 인공물이긴 마찬가지. 비록 히라가나 철자는 서툴렀으되 사흘 밤을 묵은 호텔 미화원에게 <감사의 말씀>을 올리고 싶었다. “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 지난 사흘간 잘 자고 잘 먹고 잘 놀다 갑니다. 그간 길을 친절히 가르쳐주신 분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대한민국인 한은숙+조하식 드림”. 탁자에 남긴 천 엔은 헌금을 드리는 마음으로 전한 성의 표시였다.



■ 프로필


- 고교생에게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퇴임 후 기고활동을 이어가면서 기독교 철학박사(Ph.D.) 학위를 받았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을 운영합니다.

- <평택자치신문>에 “세상사는 이야기”를 14년째 연재하는 중입니다.


※ 다음호(706호)에는 ‘배추를 위한 송가’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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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시코쿠 가가와 기행 ‘인공을 방비한 자연미’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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