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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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우 가족행복학교 대표, 평택성결교회 원로목사

17세기 프랑스의 철학자인 르네 데카르트는 근대 철학의 아버지라는 명성을 얻는 결정적인 한 마디를 남겼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이 말은 철저한 의심을 통해 더 이상 의심할 수 없는 확신에 다다른 진리를 담아낸 말이었다. 


다가오는 성탄절을 앞두고 의심 없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나는 기억한다 고로 존재한다.” 실은 생각이나 기억이나 거의 동의어에 가깝다. 하지만 철학의 세계에서는 분명 다른 개념이다. 하지만 이 말을 차용해 성탄의 의미를 생각해 보자.


고등학교 시절 겪었던 잊을 수 없는 성탄의 기억은 이렇다. 진해 해군통제부군인교회에서 성탄 전야 행사를 마친 후 자정에 새벽송을 나섰다. 해군 장교 관사를 돌며 새벽송을 했다. 새벽송 대원들의 기척이 나면 현관의 등불이 켜지고 가족이 나와 대문 앞에서 함께 성탄 찬송을 했다. 그리고 밝은 목소리와 표정으로 인사한다. “메리 크리스마스!”


그리고 우리는 함대 쪽으로 한참 걸어갔다. 군함들이 우리를 맞이해 주었다. 해군 함정 밖에서 새벽송을 했다. 함정의 병사들이 손을 흔들며 외쳤다. “메리 크리스마스!” 여러 척의 함정을 돌며 새벽송을 했다. 거의 끝나갈 무렵에 새벽송 대원들을 함정 내 식당으로 안내해 따뜻한 팥죽을 대접해 주었다. 그 기억을 어찌 잊겠는가?


신학교에 입학하기 전 가덕도에서의 겨울이었다. 지금은 부산과 거제도를 잇는 거가대로가 해저와 지상으로 뚫려있다. 그때는 가덕도 대항리까지 가려면 용원에서 나룻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부산에서 오는 연락선에 옮겨 타고 여러 마을 선창을 거쳐 대항리로 갔었다. 한 시간도 넘어서.


대항리 마을에 유일한 언덕 위의 조그만 교회가 있었다. 목회자가 없어서 평신도 몇 가정이 교회를 지키고 있었다. 필자가 그 교회에 나가자 신학교 지망생이라고 주일 저녁과 수요예배에 설교하게 했다. 교회학교와 학생회 30여 명을 위해 교사직도 맡겨 주었다. 이들과 함께 성탄 전야 행사를 준비하고 동네 사람들을 초청해 성대하게(?) 치루었다. 그리고 성탄절 새벽에 교회 마당의 종각 앞에서 새벽종을 울린 후 마을을 향해 새벽송을 불렀다. 그리고 목청껏 외쳤다. “메리 크리스마스!”


그 후, 기도한 대로 중소도시 전통교회에 와서 목회하게 되었다. 평택 초기 목회 때에는 새벽송을 나갔다. 특이한 점은 그들이 새벽송을 마치고 돌아올 땐 과자나 귤, 사과 등 과일을 가득 메고 왔다. 그 많은 선물들을 강단에 산더미처럼 쌓아두고 성탄절 예배를 드렸다. 예배 후 성탄 구제헌금과 그 선물들을 평택 내 장애인 시설에 전달했다.


새벽송이 사라진 후에도 성도들에게 새벽송 선물을 성탄절 예배에 가져오라고 했다. 선물을 강단 아래 잔뜩 쌓아두고 예배를 드렸다. 그리고 성탄 구제헌금과 그 선물들을 작은 교회와 장애인 시설에 보냈다. 지금은 평택 내 독거어르신 1,500여 가정을 돌보는 평택성결교회 부설 노인복지센터를 통해 겨울나기가 힘겨운 독거어르신 가정에 내복이나 이불, 혹은 전기장판을 선물로 보내고 있다.


기억은 정신적 자산이다. 기억이 우리를 더 나은 미래로 이끈다. 기억하는 자가 밝은 미래를 열어갈 것이다. 반대로 빗나간 기억은 어긋난 역사를 만든다. 일본은 여전히 그런 태도다. 영화 ‘서울의 봄’은 빗나간 기억(5.16)으로 잘못한 역사적 과오(12.12)를 보여주었다. 온 국민이 그토록 간절히 기다렸던 민주화의 봄을 후퇴시켰다.


성탄의 기억은 더 나은 미래를 열게 한다. 세상의 평화와 안식과 나눔을 이루게 한다. 이제 고난과 성장의 고비를 넘어 풍요로운 작금의 현실을 맞았다. 이를 바르게 기억하는 국민이 되자. 이 기억이 더 밝은 미래를 열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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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우 칼럼] 성탄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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