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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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우(가족행복학교 대표, 평택성결교회 원로목사)

해마다 11월에 들어서면 김장으로 온 국민의 마음이 분주해진다. 모든 뉴스의 초점이 김장에 관한 그 해의 정보를 발표한다. 배추, 무, 고춧가루, 새우젓, 소금에 대한 가격 변동에 민감해진다. 김장에 대한 비용이 올라가거나 내려가거나 관계없이 모두 뉴스감이다. 김장을 앞둔 주부들의 동향도 빼놓을 수 없는 뉴스거리다.


김장에 대한 추억은 중년층 이상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이다. 어린 시절에 김장은 한 해 중 가문의 대사였다.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어서 집안이 한자리에 모여 합동으로 김장을 치렀다. 그도 아니면 동네 사람들이 모여 품앗이로 서로 김장을 도왔고, 이처럼 김장은 축제처럼 치러졌다.


필자가 추억하는 옛날 김장하던 풍경은 이랬다. 먼저 외할아버지가 밭에다 배추를 심었고, 김장철이 되면 먼저 밭에 가서 잘 자란 풍성한 배추를 뽑아 가지고 오는 일이었다. 손수레에 아마도 200포기 이상을 운반해 온 듯싶다. 무려 2km 정도의 거리를 우리 네 형제와 아버지가 실어 날랐다. 몇 차례를 왕복하면서.


가져온 배추는 그날 바로 반으로 쪼개어 큰 드럼통(초등학교 6학년 때 큰 드럼통은 내 키만 했다) 몇 개에 담긴 소금물에 나누어 절였고, 드럼통에 담겨 있던 소금물은 김장을 마쳐도 버리지 않았다. 그 이유는 온 동네 이웃이 김장을 하면서 다시 배추 절임에 소금물을 사용하기 위해서였다.


하룻밤을 지난 절인 배추는 아침 일찍부터 온 집안 식구와 동네 사람들이 모여와 씻기 시작했다. 우리 가족은 모두 7명이라 김장은 이 정도 해야 월동한다고 어머니가 말씀한 것 같다. 그땐 김치가 도시락의 유일한 반찬이기도 했다. 또 하루 세끼 식탁에 김치가 떨어지는 법이 없었고 겨울방학이 되면 하루에 한 번 이상은 김치국밥을 먹어야 했다.


한쪽에서는 절인 배추를 씻어서 쌓아둔다. 물이 어느 정도 빠지기를 기다려야 했기에. 다른 한쪽에서는 배추 포기 사이에 넣을 양념을 준비하느라 무, 생강, 미나리, 부추 등을 썰어 큰 고무 대야에 쏟아 버무렸다. 김장 준비가 되면 새참으로 간식인 고구마나 감자를 쪄 먹었다. 


잠시 휴식을 취하며 아줌마들의 떠들썩한 수다로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그 후 본격적으로 남자들은 물이 빠진 절인 배추를 날라주면 아줌마 부대는 한자리씩 차지하고 앉아 김치 속을 넣기 시작한다. 얼마나 손이 빠른지 모른다. 가끔 포기김치를 날라주는 우리 입에 굴이 들어간 김장김치를 한입 가득 넣어주었다. 아, 그 맛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김장이 마쳐지면 점심을 푸짐하게 준비한다. 특히 돼지 수육은 필수로 등장하고 동태찌개도 나왔다. 모처럼 흰쌀밥도 나왔다. 그날 김장한 김치 겉절이에 수육을 올려 한 입 크게 받아먹던 그 맛, 그 분위기, 그 축제. 우리 민족의 훈훈한 마을 공동체 전통이요 풍습이 아닌가.


그 시절 김장하는 날의 풍습은 이제 차츰 사라지고 있어 서운하고 안타깝다. 11월 22일은 김치의 날이다. 그런데 정부가 공식적으로 정해 발표한 날임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이 잘 알지 못한다는 뉴스가 흘러나온다. 참 아쉬운 현상이다. 


최근 세계 각 나라에서 K-푸드 열풍이 일어나면서 김치의 글로벌화를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국내적으로는 갈수록 김장이 위축되고 있다. 1인 가구가 국민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어 김장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굳이 김치가 당기면 가까운 마트에서 사서 먹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김치보다 패스트푸드에 익숙해져 김치를 외면한다. 


하지만 김치를 담그는 김장은 서민 생활문화의 소중한 자산이다. 가족을 위한 사랑이요 헌신이 담긴 맛의 유산이다. 이렇게 귀한 자산이 사라지지 않게 보존하는 방식을 찾아보자. 김치맛의 유산을 제대로 지키려면 마을 공동체가 나서서 김장 경비는 각자 공동 부담하고 옛날처럼 한 자리에서 함께 김장을 하고 나누어 가는 방식은 어떨까?


김치의 세계화는 가족을 위한 사랑과 헌신이 만들어 낸 우리의 풍습과 전통을 잘 지켜 나갈 때 가능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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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우 칼럼] 김장은 사랑과 헌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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