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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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우 가족행복학교 대표, 평택성결교회 원로목사

어릴 적에 동생과 싸운 일을 평생 잊지 못하고 있다. 싸운 이유가 있었다. 동생이 내가 없는 틈에 내가 좋아하던 여학생이 준 호두 알 두 개를 깨어 먹어버린 것이 싸움의 발단이었다. 동생은 별거 아닌 걸로 끝까지 우기며 나를 화나게 했다. 결국 형의 권위로 폭력을 가했다. 매우 심하게.


인류 최초의 싸움은 아담의 자녀인 형 가인이 동생 아벨을 시기 질투해 살인을 행한 일이다. 자신의 마음을 자제하지 못한 불행이었다. 아브라함의 자녀인 이삭을 시기 질투한 이복형 이스마엘은 이삭을 괴롭혔다. 결국 이 일로 이스마엘과 그의 생모 하갈은 아브라함 집에서 쫓겨난다. 


이 일이 오늘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전쟁의 기원이다. 중동의 이슬람 국가들이 팔레스타인과 같은 이스마엘의 후손들이다. 그래서 끊임없이 그들의 조상 때부터 싸우며 오늘에 이른 것이다. 형제간의 싸움이자 종교적인 전쟁이다.


이번에는 하마스가 이스라엘의 초막절 절기 마지막 축제를 즐기고 있을 때 기습 공격을 가하면서 전쟁이 시작되었다. 하마스는 수년 전에 이스라엘이 예루살렘의 이슬람 사원을 불법 침입해 파괴를 일삼은 일에 대한 보복이라고 전쟁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다. 천여 명이 넘는 사람들을 살해하고 인질로 끌고 갔다.


이스라엘은 즉각 전쟁을 선포하고 무차별 폭격을 팔레스타인에 가해 또 천여 명이 넘는 사람들을 살해했다. 보복성 대가를 치른 것이라고 했다. 이번 전쟁에서 팔레스타인을 완전히 괴멸시킬 것이라고 결의를 다지고 있다. 


세계 역사는 한 마디로 전쟁의 역사라 할 수 있다. 전쟁이 없는 날이 거의 없었다고 역사학자들은 말한다. 그때마다 전쟁의 정당성이나 구실이 꼭 있다. 그것으로 전쟁을 유발하고 살상을 자행한다. 가장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다. 전쟁의 정당성(때로는 정당성을 가장하기도 함)만 있으면 전쟁은 언제든지 가능한가?


그렇다면 생각해 보자. 북한이 남침할 때 ‘남조선 해방’이라는 정당성이 합당한가? 일본이 전쟁에 내세운 ‘대동아 통합’이라는 정당성이 합당한가? 그 외에도 알렉산더, 칭기즈칸, 나폴레옹, 십자군, 히틀러 등의 세계 정복을 위한 전쟁의 정당성은 합당한가?


전쟁은 인간 최악의 범죄이다. 결국은 인간에 대한 살상이기 때문이다. 전쟁에는 윤리나 아량이나 선처가 없다. 피는 피를 부른다. 어린이와 여성들이 최대 피해자가 된다. 하마스와 이스라엘의 전쟁에서도 같은 양상이 재현되고 있다. 생명을 대량으로 살해한다. 갈수록 참혹한 상황의 절정을 향해 달려간다. 


인간은 생명의 주권자가 아니다. 인간의 생명은 신성하다. 신적인 부여라고 할 수 있다. 아메바의 출현과 성장이나 진화가 아니다. 생명의 탄생을 가져오는 잉태 과정부터 신비로운 영역이다. 영혼이 깃든 만물의 영장이다.


그러므로 이렇게 존귀한 존재를 말살하려는 그 어떤 정당성도 용납할 수 없다. 예수는 폭도들에게 붙잡혀 갈 때 제자 중 하나가 칼을 빼어 한 사람의 귀를 쳐서 떨어뜨리자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한다.”라고 경고했다. 그 어떤 전쟁의 정당성도 정당하지 않다는 뜻이다. 


이 말씀을 하기 전에 엄히 명하셨다. “네 칼을 도로 네 칼집에 꽂으라(마26:52)” 지금도 여전히 우리가 새기고 따라야 할 교훈이 아닌가? 모든 인간은 한 형제다. 하마스도, 이스라엘도, 헤즈볼라도, 레바논도, 팔레스타인도, 이란도, 사우디아라비아도, 미국도, 우크라이나도, 러시아도 칼을 칼집에 꽂으라! 이것이 인류가 사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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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우 칼럼] 전쟁의 정당성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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