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30(화)
 

‘빨간 나비’ 날아다니면 아직 봄이 안 온 것이고, ‘흰 나비’ 날면 진짜 봄이 온 것

진위천 냇가 꽃에서 초가을 보낸 네발나비 겨울 앞두고 산국의 꽃꿀에서 정점 이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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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제 평택자연연구소 소장

온도, 강수량 등 농경사회의 필요에 따라 만들어진 농업의 역사에 태양의 움직임에 따라 1년을 24개로 나누어 정한 24절기가 있고, 이 절기를 기준으로 생물노트를 작성했던 생물학자 이강운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소장의 24절기 생물 노트를 보면, “옛날 어르신들은 ‘빨간 나비’가 날아다니면 아직 봄이 안 온 것이고, ‘흰 나비’가 날면 진짜 봄이 온 것”이란 내용의 글이 있다.


인용 글에서 옛 어르신들의 사물을 바라보는 관찰력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것은 표현 중의 ‘빨간 나비’란 알이나 애벌레 혹은 번데기의 변태과정을 통해 성장한 나비가 아닌 성체로 혹독한 겨울을 난 네발나비와 뿔나비 혹은 큰멋쟁이나비 정도를 가리키는 것인데, 몸 색깔이 전체적으로 붉은색을 띠고 있으며, 완연한 봄이 오기 전일지라도 기후 조건만 맞으면 출현이 가능한 나비라는 것을 어떻게 알아차릴 수 있었는지 지금도 옛 어르신들의 눈썰미와 통찰력에 감탄해 마지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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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천변 고마리의 꽃꿀을 찾은 네발나비(2008.9.12 진위천 냇가)

 

◆ 어른벌레로 겨울을 나는 ‘빨간 나비’


가을은 한 해의 땀과 노력을 거둬들이는 결실의 계절이면서 한편으로는 다음을 준비하는 계절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옛 어르신들이 일러주신 네발나비, 큰멋쟁이나비 등의 ‘빨간 나비’는 알이나 애벌레 혹은 번데기 상태로의 월동을 통해 자신에게 주어진 소임을 마치는 것이 아니라 어른벌레 즉 성충으로 혹독한 겨울을 이겨냄으로써 다음을 내다보고 종족을 이어 나가고 있다.


청띠신선나비, 들신선나비, 큰멋쟁이나비, 작은멋쟁이나비, 산네발나비, 네발나비, 뿔나비 등 어른벌레의 상태로 바위나 가랑잎 주변에 붙어서 겨울을 나는 네발나빗과의 나비는 여럿 있지만 도심 속 냇가나 산지 주변의 풀밭, 심지어는 화단과 텃밭 주변에서도 드물지 않게 모습을 보이는 네발나비는 그중에서도 으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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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미취 꽃꿀을 무리 지어 찾은 네발나비 (2023.10.2 웃다리문화촌 나비정원)

 

네발나비는 앞다리가 퇴화하여 걸을 때 전혀 사용하지 않는 종류의 대표 나비로 뒷날개 중앙에 백색의 ‘C’자(혹은 L자) 무늬가 있어 예전에는 ‘남방씨-알붐나비’라고 부르기도 했다. 성충은 연 3회 이상 발생하는 데 6월과 7월 중순에 그리고 9월 이후에 나타난다. 마지막으로 나타난 가을형이 성충으로 혹독한 겨울을 이겨내야 하며, 주변 온도가 오르는 이듬해 봄에 나타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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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가막사리의 꽃에 잠자리를 편 남방부전나비(2023.10.3 배다리생태공원 실개천)

 

◆ 환삼덩굴보다는 달콤한 ‘꽃꿀’


혹 봄과 여름에 네발나비를 꽃이 아닌 애벌레의 먹이식물인 삼과의 환삼덩굴에서 더러 만날 수 있었다면 가을을 맞아서는 다르다. 상수원보호구역이 있는 진위천 냇가에서 미국가막사리와 고마리의 꽃에서 초가을을 보낸 네발나비는 겨울을 앞에 두고는 미국쑥부쟁이와 산국의 꽃꿀에서 정점을 이루며, 다양성을 지닌 화단에서는 박하, 층꽃, 배초향, 개미취, 버들마편초 등의 꽃꿀을 즐기며 더러는 서리 내리기 전까지 붓들레아에서 배추흰나비, 호랑나비와 등과 어울리기도 한다.


가을에 만나는 네발나비의 관심은 여느 때와는 달리 애벌레의 먹이식물인 환삼덩굴에서 크게 벗어나 있다. 주 관심사는 성체로 겨울을 나기 위한 에너지 즉 꽃에서 혹은 농익은 과일에서 얻을 수 있는 꽃꿀이나 무기양분에 관심사가 모여 있다. 특히 가을이 깊어지면서부터는 한둘이 아닌 큰 무리를 지어 한 곳에서 야외 꽃꿀 잔치를 펼치기도 한다. 


어떤 의미에서도 진정 가을은 옛 어른들이 전해주신 ‘빨간 나비’에 방점을 찍고 있다. 종족보존을 위한 환삼덩굴(먹이식물, 기주식물)보다는 개체 보전을 위한 흡밀식물의 꽃꿀이 가장 큰 관심사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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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충으로 월동하는 ‘기후변화 생물지표종’ 물결부전나비(2021.10.21 웃다리문화촌 나비정원)

 

◆ 경쟁을 피하기 위한 진화된 생존전략


변온동물인 나비와 관련하여 ‘작고 예쁘다’라는 뜻도 지닌 부전나비류 중 계곡 주변의 느릅나무가 많은 곳에서 관찰되는 까마귀부전나비는 알로 겨울을 나고, 남부지방에 흔했던 암끝검은표범나비 등과 함께 북상해 주변에 수두룩하게 널린 괭이밥을 먹이식물로 하는 남방부전나비는 애벌레로 동면한다. 그리고 암컷 날개 윗면이 ‘먹물처럼 검다’하여 이름이 붙여진 부전나비과의 암먹부전나비는 번데기로 겨울을 나고, 그간에는 미접(迷蝶)으로 취급하였으나 나는 힘이 강해 원거리를 이동하며 토착종에 포함된 물결부전나비는 성충으로 겨울을 난다.


이강운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소장은 “알로, 애벌레로, 번데기로, 어른벌레로 각각 적응해 가며 봄, 여름, 가을, 겨울을 가려 사는 곤충 생활사는 서로 간의 쓸모없는 경쟁을 피하려는 진화된 생존전략이다”라고 정리하고 있다. 오랜 시간과 세월을 통해 우리 인간이 그러했듯이 벌레라고 치부했던 수없이 많은 곤충들 또한 우리와 차이가 있었을지라도 나름 생태계의 하나로 자신의 자리를 지켜나가는 능력을 체득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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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층꽃나무의 꽃꿀을 찾은 네발나비(2021.9.23 웃다리문화촌 나비정원)

 

자연은 사람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은 그대로 자연스러워야 한다. 무척이나 무더웠던 여름이 지나가고 연중 최고의 계절을 보내고 있다. 사람만큼이나 힘들고 어려운 날들을 보낸 생태계의 수많은 생명이 새로운 환경을 맞아 조금은 더 여유를 갖고 각자에게 소임을 차분하게 감당하길 바란다. 사마귀는 알(알집)로, 홍점알락나비는 애벌레로 겨울을 나듯 호랑나비는 번데기로, 네발나비는 성충으로 동면을 하고 내년 봄, 주변에 너무도 흔한 환삼덩굴을 만나 새로운 미래를 이어가야 할 것이다.


주변 냇가 풀밭의 꽃꿀을 찾아 이리저리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는 네발나비를 둘러보면서 옛 어르신들께서 하신 말씀 “‘빨간 나비’가 날아다니면 아직 봄이 안 온 것이고, ‘흰 나비’가 날면 진짜 봄이 온 것”을 되새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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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제의 평택의 자연] ‘네발나비’가 날아야 진짜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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