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9(월)
 


정재우 칼럼.JPG
정재우 가족행복학교 대표, 평택성결교회 원로목사

깊은 숲속 조그마한 샘터는 작은 동물들의 쉼터다. 가끔 큰 동물들이 샘터를 흩트려 놓고 간 후 한참을 숨어 기다리다 눈치껏 뛰어나와 목을 적신다. 숨이 턱턱 막혀 오다가도 샘터에서 쉼을 얻는다.


마침 샘터에는 마르지 않는 샘구멍으로 맑은 샘물이 퐁퐁 솟는다. 이윽고 샘터는 맑은 물로 채워지고 작은놈들은 쉼을 누린다. 그래서 생태계는 조물주 계획대로 지속되어 왔다.


어느 동네 작은 마트에 허름한 차림의 중년이 들어왔다. 몰골이 초췌하고 얼굴은 어두웠다. 금세 울음이 터질 듯한 기세다. 주머니에 두 손을 꽂은 채 계산대로 다가왔다. 아르바이트 직원은 섬뜩해졌다. 혹시나?


그런데 첫 마디가 내 얘길 들어 달라는 요구였다. 아무도 자기 얘길 들으려고 하지 않아 답답해 죽겠다고 했다. 직원은 차분하게 내가 들어주겠다고 했다. 중년은 문밖으로 나가 쓰러지듯 바닥에 앉아 울기 시작했다. 


청년인 직원이 문밖 중년에게 다가가 말을 걸자 폭풍같이 사연을 쏟아내었다. 가족과 헤어진 사연, 사업에 실패한 사연, 동료와 친구가 다 떠나고 너무 외로워 죽고 싶다는 사연을 이어가며 연신 울었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직원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게 인계되어 가면서 청년 직원을 안아주었다. 내 얘길 들어주어 고마웠다며.


비로소 샘터를 만나 쉼을 얻었나 보다. 사흘을 굶었던 중년은 굶주림보다 사람이 무척 고팠나보다. 내 얘길 들어 줄 사람, 들어만 주어도 위로가 되겠기에. 결국 위로에 목말라 방황했다. 위로의 샘터는 어디에 숨었을까? 도시 정글에는 여전히 위로의 샘터를 찾아 헤매는 영혼이 있다.


제도적 장치로 샘터 같은 쉼터가 마련되길 바란다. 도시 정글에서 길을 잃은 영혼들을 위해서. 하지만 아르바이트 직원 같은 마음의 여유를 가진 자들이 많아지면 좋겠고, 갈수록 각박해지는 도시 정글에 샘터가 절실하다.


청소년 상담복지센터는 도시마다 있어서 위기청소년을 위해 안전망을 펼치고 있다. 상담 신청을 본인이나 동반인이 하면 즉각 개입한다. 진로, 성격, 대인관계, 학교 부적응 등 다양한 고민을 전문상담사와 함께 해결 방안을 찾는다. 자신을 이해하는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심리검사를 통해 객관적이고 통합적인 자기 이해를 돕는다. 집단상담도 받을 수 있다.(평택YMCA 부설 청소년상담복지센터 사업 참고)


중장년을 위한 정신건강센터도 있다. 자살예방센터를 갖춘 지자체도 있다.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한다. 노인 우울증, 자살 예방 기관과 탈북자, 다문화가정을 위한 복지단체도 있다. 이런 제도를 널리 홍보하고 시민이 활용하면 좋겠다.


사람의 생태계가 존속하려면 제도적 장치는 필수적이다. 그러나 실제로 이를 이용하는 시민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래서 샘터 같은 사람이 많아져야 한다. 우리가 서로 공존하기 위해서라도. 


다섯 살에 보육원을 탈출해 혼자서 십 년여를 껌과 음료수를 팔면서 목숨을 이어온 소년이 어느 날 자기의 재능을 알고 도움을 준 한 샘터에 의해 성악을 배워 스타킹 프로에 나와 영감 깊은 노래로 감동을 안겨주었다. 그를 품어준 무명의 샘터가 얼마나 고마운지.


어떤 형태든 복잡한 사회구조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작지만 생기를 되찾게 해주는 샘터가 많아졌으면 좋겠다.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샘터가 되어 누군가에게 쉼터가 되어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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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우 칼럼] 샘터와 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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