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7(토)
 

빨리 걸어도 한 달 걸어야 도착하는 고행의 길... 성지, 순례길로 이어져 오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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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태 이야기가 있는 역사문화연구소장

본지 전문 필진인 김희태 이야기가 있는 역사문화연구소장이 프랑스 국경을 출발해 스페인 산티아고까지 가는 여정을 독자들에게 소개한다. 프랑스 국경에서 산티아고까지는 764km, 피니스테레까지는 852km로, 아무리 빨리 걸어도 한 달은 걸어야 하는 고행의 길이다. 김희태 소장의 ‘산티아고 가는 길, 준비 없이 떠나보자!’ 기행문을 4~5회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 말>


■ 순례 목적 이외에도 걷는 자체로 충분히 매력적


카미노 데 산티아고(Camino de Santiago, 산티아고 가는 길), 아마 많은 이들에게 한 번은 가보고 싶게 만드는 마법과도 같은 가진 단어일 것이다. 나 역시 버킷리스트(bucket list)의 하나였던 이곳을 걸었다. 돌이켜 보면 걷기를 참 잘했고, 이때의 경험이 나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산티아고를 걷고 싶어 하지만 쉽게 떠나지 못하는 것은 현실적인 이유 때문일 것이다. 왜냐하면 산티아고로 가는 길은 정말 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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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티아고 가는 길

 

내가 걸었던 산티아고 길은 가장 널리 알려진 프랑스 국경을 출발해 스페인 산티아고까지 가는 여정으로, 첫 출발지는 생장피에드포르(Saint-Jean-Pied-de-Port)다. 이곳에서 산티아고(Santiago)까지 764km, 피니스테레(Finisterre)까지는 852km다. 경험상 산티아고까지 28일, 피니스테레까지 31일이 걸렸다. 아무리 빨리 걸어도 한 달은 걸어야 산티아고에 도착할 수 있기에 분명 쉽지 않은 고행의 길이다. 그런데 이 정도의 시간을 낼 수 있는 것은 일반 직장인은 쉽지 않은 일이다. 실제 길을 걸으면서 만난 대부분의 우리나라 사람은 성직자와 방학을 맞은 교사와 학생, 나처럼 일을 그만두고 온 퇴사자 등이 대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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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과 달리 길을 걸으면서 점차 순례자가 되어갔던 날들

 

‘카미노 데 산티아고’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이 길은 산티아고로 가는 길이다. 여기서 산티아고는 산(san)은 성(saint)를 의미하고, 티아고(tiago)는 예수의 12제자 가운데 한 명인 야고보(James)를 의미한다. 즉, 성 야고보를 찾아가는 길로, 일설에는 순교한 야고보의 시신이 배에 실려 스페인 갈라시아(Galicia) 지방까지 왔다고 한다. 이후 야고보의 무덤이 발견되면서 지금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가 만들어지게 된다. 때문에 산티아고 가는 길은 성지이자 순례길로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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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장피에르포르 역

 

이처럼 산티아고 가는 길은 순례길이긴 하지만 순례 목적 이외에 걷기 길 자체로도 충분히 매력적이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순례자 여권인 크레덴시알(Credencial)과 숙소인 알베르게(Albergue)로,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숙박과 식사가 가능한 점이다. 이와 함께 알베르게에서 숙박할 때 순례자 여권에 스탬프를 찍어주는데, 나중에 산티아고에 도착한 뒤 순례자 사무소에 가서 순례자 여권을 보여주면 순례 완주증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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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티아고 가는 길에 쉽게 볼 수 있는 노란색 이정표

 

■ 준비 없이 떠난 산티아고, 그만큼 느끼는 것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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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장피에드포르 순례자 사무소, 이곳에서 크레덴시알을 발급받을 수 있다.

 

내가 산티아고를 걷겠다고 이야기하니 주변에서 준비를 철저히 해서 가라고 했다. 여기서 준비를 하라는 것은 많은 정보를 얻어 가라는 그런 의미였을 것이다. 하지만 난 이런 말을 무시했다. 어쩌면 이건 내 기질적인 문제일 수도 있다. 좋게 말하면 모험심 가득한 낭만적인 여행을 꿈꾸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가서 다 해결하면 된다는 생각이 날 오만하게 만든 원인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준비 없이 떠나다 보니 첫날부터 고비들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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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레네 산맥을 넘어가는 길

 

출발지인 생장피에드포르와 론세스바예스(Roncesvalles) 사이에는 피레네 산맥이 있는데, 이곳을 지날지 몰랐던 나는 별 준비 없이 생수 하나를 챙겨서 올라갔다. 하지만 건조한 기후 탓에 이내 물을 다 마셨고, 길을 걷다가 목이 말라 도중에 잠시 앉아 쉬어야 했다. 얼마나 더 가야 하는지 알 수가 없고, 지금까지 온 거리도 제법 되기에 어쩌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때 멀리서 두 명의 외국인 여행자가 오는 것이 눈에 보였다. 무슨 용기가 생겼는지 먼저 말을 걸어 물이 있으면 좀 달라고 하니 다행히도 내게 물을 나누어주었다. 그때 마신 물 한 모금은 타는 목마름을 해결해 준 단비와도 같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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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곳에도 어김없이 이정표가 있다.

 

그렇게 물 한 모금의 고마움을 느꼈던 첫날, 다른 사람들과 달리 그 흔한 지도나 관련 정보 같은 걸 전혀 알지 못했던 나는 정말 대책 없는 순례자였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준비를 안 하며 떠났기에 그만큼 느끼는 것도 많았다. 알베르게의 선택만 해도 그렇다. 막상 가서 보니 꽤 다양한 형태의 알베르게가 있었는데, 허름한 곳도 있지만 찾아보면 꽤 깔끔한 곳도 있었다. 하지만 사전 정보가 없었기에 내게 있어 알베르게의 선택은 낮잠 시간인 씨에스타(Siesta)를 고려해 도착지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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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베르게를 따라 늘어선 배낭

 

혹자는 많은 준비를 하라고 하지만 나는 반대의 생각이다. 그저 무작정, 발길 닿는 대로 떠나라고 권할 것이다. 준비한다는 건 좋은 것이다. 하지만 그런 준비가 오히려 산티아고를 걷는데, 쉽고 편한 길을 가게 하는 것이 아닌지 그런 생각이 든다. 나는 산티아고 가는 길이 생장피에드포르에서만 출발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나의 착각이었을 뿐, 길의 중간에 있는 팜플로나(Pamplona) 혹은 레온(Leon) 등지에서 출발하는 순례자들도 많이 볼 수 있었다. 만약 내가 이런 사실을 알았다면 굳이 생장피에드포르에서 출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피레네 산맥에서의 에피소드도 경험하지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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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벽녘부터 시작되는 산티아고 가는 길 <사진 제공: 박수진>

 

너무 많이 안다는 것이 어쩌면 산타이고 가는 길에 있어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몸으로 느꼈던 그 순간, 분명 힘들겠지만, 준비 없이 떠났던 그 길이 나에게 큰 영향을 미친 것만은 분명하다. 마음속에 불안감이 있다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기 자신을 속박하는 동아줄일 뿐, 그것을 끊을 수 있는 용기를 낼 수 있다면 분명 그것이 어렵지 않다는 것과 살아가는 동안 내게 힘을 주는 교훈으로 승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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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태의 카미노 데 산티아고] 산티아고 가는 길, 준비 없이 떠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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