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6(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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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우 평택성결교회 원로목사

갑자기 물 폭탄이 서울 도심 한가운데 떨어졌다. 올해 들어 제2차 장마가 이런 지경까지 만들 줄은 우리 모두 미처 예상을 못 했다. 무엇보다 가슴 저미는 사건은 반지하 거주민의 피해였다. 이미 예견된 착각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영화 기생충의 한 장면이 그대로 재현된 듯 했다.


외신들은 한국의 비 피해 소식을 전하면서 반지하 피해를 ‘K-banjiha’라고 표기하며 비아냥거리고 있다. 선진국 반열에 다 들어선 줄 알았는데 재난에 대한 안전관리가 또 후진성을 드러내고 말았다. 빈부의 격차, 경제적 불평등이 여실히 노출되고 말았다.


한편으로는 강남 저지대 도심이 난리였다. 지형을 고려하고 설계와 건축을 해야 했는데 지금 와서 뒤늦은 후회들이다. 부유층의 외제 수입 자동차들도 수난을 당했다. 물 폭탄이 고급차라고 피해 가지는 않았다. 문제는 반복되는 위기 상황을 누구도 예상치 못한 게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라는 속담이 있다. 외양간을 손보기 전에 폭우 이전의 외양간 돌아보기부터 해보자. 외양간은 이미 낡아 보호 기능을 상실했다. 겉으로는 멀쩡한 외양간을 그냥 믿고 싶었던 거다. 아마도 지금까지 소들은 잘 지내고 있었기에. 그런데 느닷없이 도둑이 든 것 아닌가. 아니면 소들이 외양간을 박차고 나간 건가.


폭우 피해 후에 대책들이 쏟아진다. 과연 이번 폭우가 우리에게 남겨주고 떠난 메시지는 무엇이었나. 고쳐야 할 외양간의 문제가 무엇이었나 찾아보자.


먼저 예방 문화가 실종된 현실을 고발한 것이다. 반지하 거주민에 대한 위기대처와 예방적 행정조치가 아예 없었다. 20만 호나 되는 반지하 서민주택 거주민은 시민이 아니었던가.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른다. 더 이상 나아갈 진로가 없으면 부딪치고 솟구쳐 올라 기둥을 만든다. 그리고 새길을 여는 법이다. 새길을 만들 때는 예기치 못한 대변동이 일어난다. 즉 홍수가 일어난다. 물이 나아갈 길을 예상치 못한 결과다.


치산과 치수가 그래서 중요한 일이다. 미리 물의 길을 내고 물의 대변동을 사전에 막아야 한다. 이를 위해 산에 식목하는 일과 관리하는 일이 중요하다. 산이 푸르르고 울창해야 물을 잡을 수 있다. 또 저수지와 저류지를 많이 확보해야 한다. 지하 빗물터널이 필요하다. 댐을 건설하고 물을 잘 가두어 보관해야 한다.


이런 상식 수준을 넘어 이제는 국토개발을 더 신중히 해야 한다. 산맥을 관통하는 터널을 무차별적으로 뚫고, 고각 기둥을 세우고 협곡과 산과 산을 잇는 고속도로와 고속철도를 낸다. 사람이 자연을 해치면 자연이 사람 사는 마을을 해치지 않겠는가?


호주는 오랜 세월 형성된 지형을 고려해 고속도로를 구불구불하게 낸다. 수천 년 동안 자연이 만든 배수 환경을 생각 없이 파헤치지 않는다. 자연을 최대한 배려하니 자연이 사람 사는 마을과 도시를 보호해 주고 있는 셈이다. 우린 도시나 시골이나 너무 성급하게 파헤쳐서 이런 건 아닐까?


그리고 이미 벌어진 난국에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살아있었다. 어느 도심 맨홀에 물이 분출해 사방을 분별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배달 오토바이 라이더가 그 자리를 지키고 서서 사람들에게 가까이 오지 말라고 외치고 있었다. 그 시간에 다른 비슷한 도심 맨홀에는 사람이 빠져 실종되고 죽기도 했다.


또한 어느 물에 잠긴 도심에 시내버스가 더 나아가지 못하고 차내에 물이 차오르자 기사는 승객들을 친절히 하차시켰다. 버스에서 내린 승객들은 가슴까지 차오른 물을 조심스럽게 헤치고 나아가야 했다. 마지막 승객이 하차할 때까지 기사는 조심히 내리라고 승객들을 다독여준다. 승객들의 ‘기사님도 내리라’는 말에 기사는 버스 안에 남을 거라고 말했다. 과연 그 기사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이외에도 산사태 현장에서 인명을 구조해 업고 나오는 소방대원, 반지하 창문과 창살을 뜯어내고 동네 주민을 구한 이웃들, 물먹은 집기를 끌어내고 집안을 깨끗이 청소해 준 사람들이 무너진 일상을 구한 희망들이다.


소는 이미 잃었다. 누구를 탓하랴? 난개발, 이상기후와 환경파괴는 우리가 피고인이 아닌가. 이제 할 일은 외양간을 다시 잘 손보는 일이다. 도쿄의 지하 빗물저장 터널이 모델이다. 그 규모가 어마어마하다고 한다. 200년에 한 번쯤 일어날 대형 재난을 위해 충분한 수만큼 만들었다고 한다. 


이제라도 우리에게 남은 할 일은 더 이상 소를 잃지 않기 위해 의식과 생활방식을 바꾸는 일이다. 도시와 국토개발을 위한 실무자들이 더 치열하게 고민하면서 외양간을 고쳐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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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우 칼럼] 폭우와 외양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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