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25(토)
 
조하식(한광고 교사, 수필가)
 
 
11.jpg
  선술집에서 밤낮 노닥거리는 축들. 술잔을 들이키며 그들이 내뱉는 자조적 저주를 들어봤는가? 입만 뻥긋하면 남의 흉을 너절하게 늘어놓는 자들은 흔하다. 정결해야할 먹거리를 이용해 가증스런 장난질을 일삼고도 버젓이 버텨내는 대한민국. 눈앞의 이익에 눈멀어 소중한 생명을 하찮게 여기는 자들을 추방하라는 목청이 드높다. 그네들의 저급한 수법인즉 백주대낮과 오밤중을 넘나들며 뻔뻔스레 저울눈을 고치거나 해로운 물질까지 남몰래 주입하는 범죄를 서슴없이 저질렀다. 상도덕의 추락과 실종. 예로부터 신뢰가 무너지면 종국엔 사달이 나는 법이다.
 
  도무지 바로잡힐 줄 모르는 공공질서. 무단횡단도 모자라 교차로를 가로지르는 청소년이 늘고 있다. 고막이 터질 듯이 내달리는 오토바이 엔진소리. 불법적으로 소음 제거기를 떼어낸들 불이익은 없다. 더러운 침을 아무데나 뱉고서도 대수롭잖다는 입술. 방금 전 공들여 청소한 아파트 현관에 담배꽁초를 비벼 끄는 발놀림. 대로변 육교를 제쳐두고 어린 자식의 손을 잡고 뜀뛰는 엄마.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행인처럼.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고성방가. 내 물건이 아니면 함부로 써도 된다는 사고방식. 사회 저변에 만연한 행동양식이 끝 간 데 없다.
 
  우리네 의식구조는 어떠한가? 소시민의 누추한 외모를 보면 단박에 깔보는 행태는 그저 일상사에 속한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사람을 값으로 매겨야 직성이 풀리는 동공 풀린 눈동자. 주유소에 들어오는 고급차량을 향해 깍듯이 허리를 굽히는 종업원. 조금 더 배우고 안다는 이유로 유난히 잘난 체 떨며 타인을 업신여기는 불순함. 나이어린 애들의 버릇없는 행각. 동네 길목에서 부모 같은 이웃어른을 마주치고도 인사를 잊은 신세대. 아니 기본예절은커녕 못된 행동을 나무랐다가 봉변을 당하기 일쑤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라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세상사는이야기.jpg
 
  나는 늘 후미진 데로 밀려난 소외계층을 돌봐야 한다고 홀로 목청을 높여왔다. 하지만 정작 불쌍한 사람을 목전에 두고선 무기력했다. 신랄하게 파고들어 일일이 지적하는 나마저도 탈탈 털어 털리는 먼지는 있다고 끄덕일 수밖에 없다. 기껏해야 후원 계좌를 열어 푼돈을 보태는 일 말고는 굳이 나서지 않았으므로. 실토하건대 나는 가끔 아프리카에서 날아온 감사의 서신을 받고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코앞에 낯선 아이의 사진을 놓고 미래를 축복하는 기도조차 불성실했다. 목하 나 몰라라 지나쳐버렸던 지난날의 부끄러운 고백이다.
 
  화창한 봄날 하루 날짜를 잡아 높다란 뫼에 올랐다. 산행할 때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일그러진 그림. 좁다란 길을 독차지하고 거들먹거리는 자의 심사는 뭘까? 큰소리로 틀어대는 뽕짝은 골치 아픈 소음이다. 주인도 모르는 부지기수의 묘지들. 이제는 그 봉분들조차 쳐다보기 두렵다. 지구상에 죽은 자가 산 자보다 넓은 땅을 차지한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단다. 후손에게 물려줄 땅조차 아낄 줄 모르는 민족에게 앞날은 있을까? 나날이 흉물스레 파헤쳐지는 산야가 늘어날 때마다 나는 일종의 통증을 느낀다. 애써 자랑하는 금수강산으로 눈길을 돌린들 불도저의 굉음은 막아낼 수 없다.
 
  틈만 나면 선진국에 다가섰다고 목청을 돋우는 매스컴. 바람직하지 않은 통계수치는 세계에서 수위를 다투고, 바람직한 분야에서는 매번 순위가 밀리는 건 어쩌라고? 가령 자살률, 교통사고율, 음주운전비율, 청소년 흡연율이며 각종 사기사건 등에서 보듯이 아예 불명예를 방치하니 큰일이다. 운전자를 위협하는 도로의 무법자들. 살기를 품고 덤벼드는 무지막지가 도를 넘었다. 단군 이래 이보다 추한 무법천지가 있었나? 문제는 삶의 불쾌지수가 상승 중이라는 사실. 참 행복지수를 높이는 길은 마구 흔들리는 정체성을 어떻게 바로 세우느냐에 달려있다.
 
  타인들의 건강마저 해치면서 피워 무는 담배. 나는 유독 그 매캐하고 자욱한 연기를 혐오한다. 자신의 몸뚱이를 망가뜨리며 탐욕스레 집착하는 까닭을 캐묻고 싶다. 주변에 불편할 만치 생활화된 무질서. 실종된 지 오래인 공중도덕. 둔감하기 짝이 없는 준법정신. 제발 전 민족적인 대오각성을 통해 창피스런 풍경들이 하루빨리 말끔히 사라졌으면 좋겠다. 덧붙여 굳이 지적한 게 아닐지라도 여타 범주에서 발본색원할 일거리는 더 있다. 나 또한 결단코 예외일 수 없다고 감지하는 영역들. 다들 추상같은 질책에 귀를 기울일 때다. 그럴 적마다 발가벗은 심정으로 자신을 아파해야 한다.
 
프로필
 
<월간에세이>를 거쳐 <한맥문학>을 통해 수필가로 등단. 본보에 6년째 세상사는 이야기를 연재하고 있으며, 신앙산문집 <주님과 동행한 오솔길>, <생각만큼 보이는 세상>을 펴냄. (홈페이지 http://blog.naver.com/johash, 이메일: johash@hanmail.net)
 
다음호(362)에는 조하식 수필가의 유럽 배낭 여행기인 영국 견문기9회에 걸쳐 연재됩니다. 독자, 시민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자치돌이★ 기자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태그

전체댓글 0

  • 44504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세상사는 이야기] 나를 슬프게 하는 것들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