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25(토)
 
조하식(한광고 교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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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때는 왕국의 수도였던 땅. 식민지를 개척한(?) 네덜란드가 닦았다는 가로(街路)를 가로지르는 기분이 미묘하다. 천막을 방불한 경찰초소. Polis라는 문자는 라틴어를 모태로 변형한 낱말이렷다. 저만치 떨어진 외국인 거리에는 골동품이 즐비하다는데 무슨 제품이든 우리 부부의 관심을 끌기에는 역부족이다. 일행이 두어 시간 <베링하르조> 전통시장을 도는 동안 그냥 앉아 쉬었던 건 그래서다. 줄곧 차안에서 눈을 붙이다가 말미에 잠깐 나왔지만 양고기 굽는 냄새에 매캐한 연기를 당해낼 재간이 없는데다 보잘것없는 옷가게를 지키는 상인들의 눈매가 적이 부담스러워 지레 돌아서고 말았다. 천편일률적인 의상 디자인을 보자고 지독한 매연을 들이마시며 돌아다닐 필요는 더 이상 없었던 터. 이윽고 2시간이 지나고 삼삼오오 들어오며 던지는 말들은 도심을 일주하는 우마차를 값싸게 탔느니 바지런히 발품을 팔며 들쑤시고 돌아다니니 제법 고를 만한 물건이 있다느니 왁자지껄했지만 차라리 맘 편히 푹 쉰 편이 훨씬 나았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상점을 나와 석양에 비친 성당을 만난 건 소득이었다. 지상 최대 이슬람 국가의 한복판에서 십자가 그림자만 봐도 반색하는 건 나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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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도를 펴니 인도네시아의 주요 섬들은 빽빽한 열대림을 품은 화산 성향의 산들로 뒤덮여있다. 이따금 보이던 염소 떼들. 초지에서 풀을 뜯는 모습이 더없이 평화로웠다. 그렇다고 대뜸 부농들의 목가적인 풍광을 연상하는 건 무리다. 여전히 의료 시설과 종사자들의 부족으로 극심한 어려움을 겪고 있고, 수많은 어린이들은 영양실조에 직면한 현실. 게다가 산업의 원동력인 전력 공급(대부분 수력 발전)마저 태부족이어서 교육 환경은 열악하기 그지없단다. 어느 시대건 극소수는 실컷 누리고 대다수는 매사 지난(至難)한 삶을 구질구질하게 꾸려갈 뿐이다. 앞으로의 부가적 과제는 25%에 달하는 문맹률을 뚝 떨어뜨리는 데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성싶다. 다만 치안만은 자타가 공인할 만큼 안정돼 있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 여타 동남아에 비해 바람직한 치안행정을 펼치는 건 아무래도 오랜 독재체제의 양면성인 듯하다. 그렇더라도 중동을 중심으로 폭탄테러를 서슴지 않는 요즘 분위기로는 과격단체에 속한 무슬림을 마냥 믿기는 힘들다는 게 중론인 것 같았다. 드디어 마지막 만찬. 또 현지식이었다. 갈 때까지 똑같은 음식이냐는 볼멘소리에 돌아온 응답은 한식이 워낙 비싸기도 하거니와 이동거리를 고려한 배치라니 막상 대꾸할 말이 궁색했다. 조촐한 식탁에서 나를 위무한 건 시어터진 김치였다. 고맙게도 일행 중 넉넉히 싸온 반찬이 남아 시디신 맛을 실컷 즐겼다. 고향을 기준으로 나뉜 테이블 팀끼리 맥주를 돌아가며 돌렸으나 우리 부부는 멀리 비켜나 있었고 그때마다 주어진 상황에 적절히 대처했다. 반듯반듯한 벼논의 행렬. 근자에 정부 주도로 농장 현대화를 꾀하며 쌀 소출을 크게 늘렸다는 해설을 접하니 매년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네 농업정책의 잘못된 방향이 보였다. 미래에는 식량자원이 생존을 가를 무기가 될 게 불 보듯 빤해 내뱉는 말이다.
 
  인도네시아는 오랫동안 내게 문을 열지 않았다. 진작부터 번잡한 자카르타를 겨냥했건만 이번에도 잠시 경유지로 거쳐 왔을 뿐 좀체 발길을 내디딜 수 없었다. 그 아쉬움과 궁금증은 가이드를 통해 얼마간 풀 수 있었다. 그는 자카르타를 가리켜 사철 북적이는 인파에 여름한철은 지겨운 홍수뿐이라고 잘라 말했다. 의외라 싶게 구경거리라곤 없다는 말이 선뜻 가슴에 와 닿지는 않았지만 기회가 닿는 대로 자카르타를 꼭 한번 방문하고 싶다. 어쩌면 선교 여정의 일환이거나 퇴직 후 해외 파견교사 프로그램이 될지도 모르겠다. 고무적인 건 이 글을 다듬기 바로 이틀 전 접한 인도네시아 새 대통령의 취임식(10월 20일) 뉴스였다. 지난 7월 당선된 조코 위도도는 1961년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 가구 판매업으로 대성공을 거둔 뒤 2005년 솔로 시장(야당 후보), 2010년 재선(90% 지지율), 2012년 자카르타 주지사에 이어 2014년 직선제 이후 최초의 정권교체를 일궈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그야말로 현 오바마 대통령이나 고 노무현 대통령을 능가하는 초고속 정상인 셈이다. 더욱 친근감이 가는 건 식구들이 하나같이 한류에 빠져있다는 소식. 곧 그는 다민족 다종교 국가인 인도네시아를 이끌어갈 지도자로서 5대 건국이념인 ‘판치실라’ 중 세 번째인 ‘다양성 속의 통일’을 두 어깨에 짊어진 참이다. 느긋이 보낸 3박5일을 되돌아보니 고맙게도 유머 감각을 지닌 가이드의 세심한 해설을 듣게 하시므로 여정 내내 지루하지 않았고, 드넓은 나라를 두루 구경하게 하시므로 색다른 견문을 넓혀주셨다. 우상이 가득한 터전에서 시종 안전하게 일정을 인도하신 우리 주님의 은혜에 깊이 감사드릴 따름이다.
 
※ 8회에 걸쳐 ‘인도네시아 기행’을 구독해 주신 독자, 시민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다음호(353호)부터는 조하식 수필가의 ‘인문 고전 읽기와 글쓰기’가 4회에 걸쳐 연재됩니다. 독자, 시민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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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인도네시아 기행 ‘족자카르타 : 도읍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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