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8(일)
 

김선우 기자 

 평택농악의 UNESCO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를 축하하는 ‘평택농악, 세계의 신명이 되다’ 행사가 지난 10일 시민들의 축하 속에 열렸다. 이 행사는 평택농악을 보존하고 있는 중요무형문화재 제11-2호 '평택농악보존회'가 주관했다. 그동안 '평택농악보존회'가 평택 시민을 대신해 우리문화의 정신과 정서, 생활풍습 등을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꾸준히 이어온 것에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지난 10월 24일부터 28일까지 파리 유네스코 본부에서 개최된 9차 무형유산위원 회의에서 한국의 ‘농악’이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됐으며, 이에 앞서 문화재청이 평택농악의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등재를 위해 지난해 여러차례 무형문화재 분과회의를 통해 평택농악과 더불어 전국 농악단체 30개를 선정하고, 지난 2월 12일 유네스코 사무국에 인류무형유산 등재 신청서를 제출한 바 있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종묘제례악과 판소리, 김장 등에 이어 17번째 인류무형문화유산을 갖게 됐다.

 유네스코로 등재된 한국의 ‘농악’은 국내 중요무형문화재 6개와 평택농악을 비롯한 지방무형문화재 24개 등 총 30개의 무형문화재로 구성되어 있다. 현재 중요무형문화재에는 1호인 ‘종묘제례악’을 비롯하여 110개 종목이 지정되어 있으며, 무형문화재는 ‘연극 음악 무용 공예기술 등 무형의 문화적 소산으로 역사적 예술적 또는 학술적 가치가 큰 것’(문화재보호법)을 말한다.

 평택은 소샛들이라는 넓은 들을 끼고 있어 예로부터 농산물이 풍부하였고, 이는 평택농악을 이루는 중요한 배경이 되었다. 또한 평택 근처의 청룡사(靑龍寺)는 일찍부터 사당패들의 근거지가 되어 조선 말기에는 그들의 농악이 크게 발달하였다. 그래서 평택농악은 두레농악인 동시에 걸립패농악(승려들이 꽹과리치면서 염불하고 공양하는 일)의 성격을 갖는다. 전문 연희패의 영향을 받아 더욱 발전해오던 평택농악은 인근의 안성·화성 등지와 함께 농악의 중심역할을 해오던 중 1985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받으면서 명실공히 웃다리가락의 대표적인 농악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농악에 사용되는 악기로는 꽹과리, 징, 북, 버꾸, 호적, 나팔이 있다. 편성은 영기수(令旗手), 농기수(農旗手), 나팔수, 호적수, 상쇠, 부쇠, 종쇠, 징수 1, 징수 2, 설장구, 부장구, 상장구, 북, 상버꾸, 부버꾸, 종버꾸, 꼬리버꾸, 상무동, 종무동, 삼무동, 칠무동, 중애(사미), 양반으로 되어있다. 농악수들은 옛날 군졸들이 입었던 의상을 입고 그 위에 색띠를 걸쳐 매며 머리에는 벙거지나 고깔을 쓴다. 악기에 있어서 징과 북이 타지역에 비하여 적으며 소고와 법고의 구별이 없다. 가락의 가림새가 분명하며 노래굿이 있는 것도 특이하다. 또한 길군악칠채는 경기농악에만 보이는 장단으로 평택농악의 길군악칠채는 다른 지역과 구분된다.

 개인적인 바람이지만 우리지역 유일한 국가지정 중요 무형 문화재인 평택농악에게 많은 관심 부탁드리며 시민들의 응원과 박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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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평택농악, 세계의 신명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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