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8(일)
 

박중수(경기도농업기술원 농업환경팀장)

 생로병사(生老病死)는 ‘불교(佛敎)에서 인간(人間)이 반드시 겪어야만 한다는 네 가지 고통(苦痛), 즉 태어나 늙고, 병들고, 죽는 네 가지의 고통(苦痛)’을 말한다. 인간으로 태어나면 누구나 피할 수 없는 숙명이기도 하지만 이는 인간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닌 주위의 거의 모든 것들이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이다.

 우리 주위 어디에서나 쉽게 접할 수 있는 흙은 물, 공기와 함께 지구에 존재하는 동식물들이 자랄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고 생명활동에 필요한 에너지를 공급해 주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흙의 생로병사를 살펴보면 먼저 흙의 탄생은 물, 바람, 온도가 어우러진 풍화작용으로 바위가 부서져 가루가 된 것에 동식물에서 생긴 유기물이 합쳐져 탄생하게 된다.

 흙 1㎝가 생성되는 데 짧게는 170년 길게는 700년 정도가 걸린다고 한다. 여기에 인간의 지혜가 더해져 흙이 식물 생육에 적합하도록 개량하는 과정을 거쳐 논과 밭이 만들어 지고 식량을 생산하면서 흙은 성장하게 된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흙은 자연스럽게 토양아래의 바위에서 부터 위로 올라갈수록 알갱이가 작아지면서 나무의 나이테와 같이 눈으로도 구분이 가능한 층이 만들어지면서 성숙한다. 그리고 유사한 흙의 성질을 구분하여 흙에도 이름을 부여하는데 우리나라에는 사람의 성씨 277개 보다 많은 390개 정도의 흙 이름이 있다.

 그럼 흙은 어떻게 병들고 어떻게 최후를 맞이하는 걸까? 방사능, 쓰레기, 산업폐수 등 각종 폐기물과 오염된 공기에 의한 산성비 등으로 오염이 심각해질수록 흙의 병은 깊어지고 결국에는 식물이 자랄 수 없는 사망상태에 이르게 된다.

 일본은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국토의 0.15%인 600㎢가 방사능에 오염되었고, 중국은 현재 10만㎢에 달하는 농경지가 오염된 농업용수로 인해 위협을 받고 있다. 또한 물, 바람, 눈, 중력에 의해 양분과 미생물이 많이 함유된 표층의 흙이 이동하는 현상인 ‘토양침식과 토양유실’도 중요한 흙의 사망 원인이다.

 우리나라는 여름철 강우가 집중되어 경사가 큰 지역을 중심으로 표층의 흙이 침식되어 유실되고 있는 데 전체 국토면적의 30%에서 ha당 연평균 33t 넘게 유실되고 있는 심각한 상황이다. 현재의 속도로 흙의 침식과 퇴화가 계속된다면 표층의 흙을 이용할 수 있는 기간이 앞으로 약 60년 밖에 남지 않는다는 보고도 있다.

 건강한 흙에서 안전하고 생명력 있는 농산물을 생산할 수 있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상식이다. 조상들로 부터 물려받은 흙을 더욱더 건강하게 만들고 또 우리 후대에게 그대로 물려주는 것은 우리의 필연적 사명일 것이다.

 흙도 생물과 같이 생겨나고 성숙하며 병들고 죽게 되는 생명이 있는 자원이라는 인식을 국민들이 공유해야 한다. 흙이 오랫동안 건강하게 유지 보존될 수 있도록 우리 주변을 되돌아보아야 한다. 심지어 생수를 외국의 먼 알래스카로 부터 수입해 마시고 있는 현실을 볼 때, 우리가 관리를 소홀히 하면 흙도 수입할지 모른다는 끔찍한 상상을 해 본다. 최근에는 주말농장, 도시농업이 중요한 여가생활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천년만년 후에도 지금처럼 자라나는 어린이의 고사리 손에서 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흙을 만져보면서 흙의 중요성을 체험하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그 날을 그려 본다.

★자치돌이★ 기자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태그

전체댓글 0

  • 34056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칼럼] 생로병사, 흙의 일생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