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8(일)
 

■ 다시 가보고픈 소이작도

 나는 일상에서 탈출하고 싶었다. 혼자 소이작도에 갔다. 물론, 원 목적지는 그곳이 아니었다. 인천항에서 자월도 행 선표를 끊었던 것이다. 한자로 도서명이 표기되지 않아, 뜻을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섬 이름이 그럴 듯해서였다. 그런데, 그곳을 지나치고 말았다. 선미로 갈라지는 맥주거품 같은 흰 포말을 바라보며, 뭔가 상념에 잠겨있다 보니, 그 섬을 지나친 것이었다. 여객선은, 소이작도를 돌아, 인천항으로 귀환하는 배였다. 낭패라 생각되었다. 기왕 떠난 여행이었다. 할 수 없이, 소이작도에서 내릴 수밖에 없었다.

 하선한 사람은 나 하나뿐이었다. 사위는 조용했다. 비현실적인 상황에, 혼자 내팽개쳐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섬을 둘러보니, 민가가 조금 있었고, 섬 한쪽으로 조그마한 학교 건물이 보였다. 학교 운동장 한쪽에는 거대한 팽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그로 미루어, 연륜이 꽤 오랜 학교인 것 같았다. 소금기를 밴 뜨거운 해풍이 몸을 감아왔다. 무척 더웠다. 팽나무 그늘로 갔다. 그늘에 몸을 숨기고 앉아 잠시 생각에 골몰했다. 배는 하루에 한 번 뿐이다. 꼴을 보아하니 숙소도 없을 게 뻔하다. 식당이나 있을 런지. 될 대로 되겠지. 사람이 사는 곳에서 설마 굶거나 노숙하지는 않을 거야.

 몸을 일으켰다. 온 김에 섬의 형태나 살펴보기로 작정했다. 산으로 난 소로를 따라 팍팍한 다리를 주먹으로 두드리며 올랐다. 지열이 숨을 턱턱, 막았다. 등은 땀으로 질척했다. 정상에 오르자, 평평한 지형이 펼쳐졌다. 인가도 꽤 있었다. 밭에서 일하고 있는, 할머니 한 분이 있어, 길을 물었다. 여기에 민박할 곳이 있나요? 할머니는 한동안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말했다. 혼자 왔우? 예. 민박집은 없는데……오늘 나갈 수도 없을 테고……아무튼, 날 따라오우. 할머니는 나를 데리고 밭길을 건너 자신의 집에 데려갔다. 할머니는 집 위에 원두막처럼 지어진 헛간을 가리켰다. 오늘 밤, 여기서 잘 수 있겠소? 오히려 시원하고, 나름대로의 풍취도 있을 것 같았다. 좋군요.

 나는 원두막에 올라 가방을 놓고 다시 내려갔다. 그때 막, 할머니의 남편으로 보이는 노인이, 뭔가 가득 든 바구니를 들고 들어섰다. 전어였다. 파닥이는 놈도 있었다. 바다에 친 그물에서 건져온 것으로 보였다. 할머니는 영감에게 나를 소개했다. 그는 무뚝뚝하게 한마디 뱉었다. 이런 곳에, 뭘 볼 게 있다고……. 할아버지는 수돗가로 가서 전어의 배를 가르고 회를 떴다. 이어, 그것을 들고 내 옆에 와 앉았다. 할머니는 술상을 내왔다. 농주였다. 할아버지는 나에게 잔을 건네고 술을 따랐다. 보리술인데, 처음 맛볼 거야. 자, 마셔요. 감사합니다. 나는 입안이 바짝 말라 있었다. 술잔을 받아 냉큼 마셔버렸다. 술이 입안에 착착 감겼다. 주는 대로 계속 넙죽넙죽 받아 마셨다. 곧, 정신이 몽롱해졌다. 동시에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자꾸 주절대고 있었다. 아마도 도시생활의 어려움 같은 것을 이야기하고 있었을 게다. 또한 이곳 시골 인심에 대해서도.

 다음 날, 눈을 뜨니 원두막이었다. 실수나 안했는지 모를 일이었다. 내려가서 '어제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다. 할머니는 빙그레 웃기부터 했다. 하더니, 말했다. 참 얌전하게도 술을 마시더니만……. 나는 비로소 안심을 했다. 죄송합니다. 아니, 감사합니다. 밥을 차려놨으니 들어요. 눈길을 마루로 돌렸다. 거기에 상이 하나 있었다. 콩나물국이 먼저 시선에 잡혔다. 국에는 대하가 가득했다. 나는 마루에 가 앉았다. 국부터 훌훌 마셨다. 속이 다 후련했다. 젓갈류도 맛깔스러웠다. 밥그릇과 국그릇 등을, 싹싹 비웠다. 며칠 더 있고 싶었다. 하지만 어딘지 그들에게 폐가 될 것 같았다.

 일어났다. 배를 타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좀 어색해진 음성으로 물었다. 얼마를 드려야 되지요? 할머니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뭘 말이우? 민박비와 식사비……? 에이, 그냥 가셔. 나는 만 원 권 몇 장을 마루에 꺼내놓았다. 할아버지는 돈을 집어 내 주머니에 찔러 넣으며 눈을 부라렸다. 젊은 사람이 말귀를 꽤 못 알아듣는군.

 나는 할 수 없이 머리통을 벅벅 긁으며 집을 나섰다. 할머니가 따라왔다. 할머니는, 내리막길에 다가서자, 나의 손을 꼭, 잡았다. 대처에 나간 아들 생각이 나서…… 꼭, 그 녀석을 꼭 닮았어……밥이나 제대로 챙겨먹고 사는지…… 원……. 할머니의 눈에 눈물이 글썽했다. 이윽고, 할머니는 코를 휑, 푼 다음 돌아섰다. 나도 모르게 콧등이 시큰해 왔다.

 나는 서둘러 선착장으로 내려갔다. 배가 다가서고 있었다. 서둘러 승선했다. 배는 곧,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내가 내려온 쪽을 바라보았다. 할머니가 손을 흔들어주고 있었다. 이제는 유명을 달리하여 이승 저편에 계실 손자에게 그리도 잘 해주시던 조부모님의 모습이 얼핏 뇌리에 잡혔다. 목이 잠기어들어 흔들던 손을 내렸다. 나는 어금니를 꽉 다물었다. 소이작도 작은 섬의 숲에서 뻐꾹새가 뻐꾹-! 뻐꾹-! 구슬프게 울고 있었다.

■ 방영주 소설가·시인 약력

 <월간문학> 소설 당선, 소설집 <거북과 통나무> <내사랑 바우덕이> <카지노 가는 길>, 장편소설 <무따래기>(상·하권) <우리들의 천국> <카론의 연가> <국화의 반란> <돌고지 연가> <대무신왕> 등, 한국소설가협회 중앙위원(연락처 ☎ 011-227-0874, 주소: 450-760 경기도 평택시 평남로 281 삼성(아) 105동 805호, 이메일: youngju-5@hanmail.net)

※ 방영주 소설가·시인의 세상을 바라보는 지혜, '소설가 방영주의 세상만사(世上萬事)'가 연재됩니다. 시민,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바랍니다.

 

★자치돌이★ 기자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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