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8(일)
 

본보 안연영 기자는 지난 9월 12일부터 18일까지 7일간 캄보디아 한인회를 찾아 교민들의 생활상과 함께 교민들이 캄보디아 시엠립 주민들과 함께 사랑과 우정을 나누는 모습을 밀착 취재했다. 또한 캄보디아의 문화재를 답사했다. 총 10회에 걸쳐 안연영 기자의 캄보디아 방문기가 연재된다. <편집자 말>

“캄보디아 한인회 산증인, 윤윤대 사무국장”

 캄보디아 시엠립 한인들을 위해 설립된 한인회는 지난 2004년 11월 설립되었다. 하지만 많은 한인들이 정착 초기단계여서, 소위 먹고사는 문제로 한인회는 유명무실한 단체였다. 이러던 차에 2007년 한국을 떠나 캄보디아에 정착한 윤윤대 전 사무국장은 유명무실했던 한인회를 정비하기 시작했다. 당시 캄보디아 시엠립에 정착한 교민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한인회의 필요성을 이야기하고, 한인사회의 이익과 캄보디아 시엠립 발전을 위한 한인회의 중요성을 역설하였다.

 많은 교민들이 윤 전 사무국장의 말을 듣고 한인회를 통해 "김 한장도 나누어 먹자"라는 생각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윤 전 사무국장이 사무국장으로 취임하면서부터 교민과 시엠립의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왔으며, 이러한 한인회에는 윤윤대 전 사무국장의 노력과 땀이 진하게 배어 있었다.

 특히 매월 소카 고아원을 방문하여 청소, 빨래 및 어린아이들을 목욕시키고 있으며, 헌옷과 쌀을 지원하고 있다. 또한 어려운 현지민들의 집수리, 먹거리 지원, 의류 지원과 함께 학생들에게 중요한 교통수단인 자전거 지원 외에도 한국의 많은 개인, 단체들과 협력해 경북의사회 의료봉사, 열린의사회 의료봉사, 충북의사회 의료봉사, 앙코르대학 한글어학과 도서기증, 충북 옥천군 자원봉사센터 자원봉사, 새마을운동 자원봉사 등 시엠립 현지민들에게 사랑을 전파하고 있다.

 윤윤대 전 사무국장이 캄보디아에 정착한 것은 2006년 3월이다. 캄보디아 정착하기 이전에는 충북 충주시에 거주하면서 개인사업과 함께 국제로타리 3740지구 회장으로 재임하면서 지역사회에서도 봉사활동 등 이웃을 위해 노력하면서 살았다. 그러던 중에 홀어머니가 갑작스럽게 돌아가시자, 이웃에서도 소문이 자자한 효자였던 윤 전 사무국장은 많은 방황을 했다. 방황 끝에 비행기 표 한장만을 들고 무작정 캄보디아로 향했고, 그렇게 캄보디아에 정착하게 됐다.

 캄보디아에 정착한 윤 전 사무국장은 한인회를 다시 규합하고, 시엠립 고아원들을 방문해 빈곤계층의 어린이들, 장애를 가진 어린이들, 그리고 에이즈를 가진 어린이들을 위해 봉사활동을 펼쳤다. 심지어 고아원 봉사활동을 마치고는 현지민 주거지에 텐트를 치고 그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캄보디아어를 배우고, 그들에게는 한국어를 가르쳐주면서 형제와 다름없이 지냈다. 그러한 이유에서인지 필자가 윤 전 사무국장과 현지인들을 만날 때마다 어김없이 현지인들은 윤 전 사무국장에게 엄지를 치켜세우며 환한 웃음으로 맞았다.

 다만 필자가 보기에는 관광객들이나 자원봉사자들이 고아원을 방문하는 소위 ‘고아원 관광’이라는 형태의 고아원 방문이 굉장히 요즘 많아지고 있다. 필자의 개인 견해지만 이러한 '고아원 관광'은 조금 자제했으면 한다. 그 이유는 관광객들이 고아원을 찾아 아이들과 교류하고 나서 그냥 떠나버리는 것이 아이들의 정서, 인지적 발달에 좋지 않은 영향을 주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캄보디아인들은 더 나은 삶을 찾기 위해 시엠립 시내로 거처를 옮기고 있지만 대부분 경험이 없고 가진 것이 없기 때문에 결국 슬럼가에 살게 되고, 잔인하게도 아이들에게 거리에서 구걸을 하라고 내보내고 있다. 이러한 이유에서 한인회는 불우한 아동들을 위해 낙후 학교들을 무상 수리해주고 있으며, 특히 수원시에서 자매결연을 맺고 '프늠크름 수원'이라는 마을을 만들고 초·중학교를 설립, 교민들이 선생님을 자처해 어려운 환경의 아이들을 무상교육하고 있다. 또한 방과후에는 한국어 교실 운영을 통해 캄보디아의 아이들에게 '한국'이라는 나라를 알리고 있다. 아이들을 위해 지역공동체의 교육 디렉터가 되거나 교육 프로젝트를 이끄는 봉사를 보면서 애국이라는 것이 멀리 있지 않고, 사랑을 나눈다는 것이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을 이번 취재를 통해 알았다.


"가난해서 물 위 수상가옥에 사는 사람들"

 세상 어디를 가도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의식주일 것이다. 필자가 느끼기에도 못살던 과거의 우리나라와 잘사는 현재의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차이를 느끼는 점은 역시 의식주일 것이다. 쉽게 말해 잘 먹고, 잘 입고, 좋은 집에서 생활하는.

 시엠립을 찾으면 꼭 찾는 명소이자, 캄보디아 어두운 현실과 경제적 어려움을 대변하는 곳이 톤레삽 호수의 수상가옥이다. 독자 여러분들도 이전 글에서 읽어서 아시겠지만, 톡톡이를 타고 40여분간 달리면 캄보디아 전 국토의 15%를 차지하는 톤레삽 호수에 도착한다. 건기에는 2,500㎢, 우기에는 4배 이상 불어나 12,000㎢나 되는 톤레삽 호수는 대단했다. 호수의 수평선은 호수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였으며, 거대한 저수지 역할의 톤레삽이 있었기에 고대 크메르 왕국이 부강했을 것이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처음 도착했을 때만해도 조금은 지저분하다고 생각했지만, 물 위로 떨어지는 황혼에 채색된 톤레삽은 또하나의 예술품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감흥은 오래가지 못했다. 많은 어린이들이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구걸행위를 보며, 6.25 전쟁의 폐허 속에서 유엔군들에게 손을 내밀던 다큐멘터리 속의 흑백사진들이 떠올랐다. 어쩌면 국민이 행복하고, 아이들이 행복하기 위한 첫번째 조건은 경제력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 다음호(305호)에서는 '캄보디아 취재기, 톤레삽 호수의 수상가옥'이 이어집니다. 시민,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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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연영 기자, 캄보디아 한인회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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