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8(일)
 

과거에 11번 낙방한 문학자 포송령(浦松齡)

 중국 괴이담의 태두로 알려진 "유재이지"는 중국 산동의 만년 낙제생 포송령이 저술한 것이다. 이는 명조에서 청조에 이르기까지의 처참한 일대기를 포송령의 눈으로 바라본 것이다.

 포송령(浦松齡: 1640출, 1715몰)은 유재선생이라고 불려왔는데, 생가인 포가는 대대로 과거에 합격생을 낸 집안이었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는 명나라 말기에 동란을 맞아 과거를 포기하고 상업으로 전업했다.  그래서 그의 부친은, 송령으로 하여금 과거를 종용했다. 자신의 외도를 자식을 통해 보상받고 싶은 마음에서 였을 것이다.

 송령은 11세부터 부친에 의해 학문의 기초를 닦았다. 그리고 청나라 순치 15년 과거의 예비시험인 학교시에서 1, 2, 3차 모두 수석으로 합격했으니, 그때 나이 19세였다. 그래서 수재의 자격을 얻었다. 그의 명성은 골골에 자자했고,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이로 알려졌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3년마다 실시되는 과거에는 보는 족족 미끄럼이었다. 그렇게 하기를 11번, 이제 송령의 나이 50을 넘기고 있었다.

 기실 송령은 과거에 별 흥미가 없었다. 오히려 문학 쪽에 관심이 있었다. 이것은 과거의 실패를 거듭하며 자괴감을 풀기 위한 한 방편으로 시작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기담, 괴담으로 자신을 위무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아내는 진작부터 이런 그의 속내를 눈치채고 있었다.

 어느 날, 아내는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만일 당신이 출세할 운이었다면 지금쯤 대신이 되었을 거요. 그렇게 자신을 괴롭힐 것은 없지 않소. 이제부터라도 당신이 좋아하는 일을 해봐요. 송령은 아내의 말에 탄복하여 거의 탄성을 지를 뻔했다.

 송령은 이미 40세에 "자서(自序)"를 탈고 했었다. 그는 아내의 제의를 받아들여, 이후로 문학에 몰두해, 68세에 "유재이지"를 끝냈다.

 우리는 학생, 또는 자식, 아니, 자신의 진정한 재능은 접어둔 채 교사나 학부모, 또는 사회의 권유나 강압에 의해 자신의 진로가 결정된다. 그래서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발휘하지 못하고 불운한 일생을 보내게 되는 것이다. 모두에게는 자신이 이 세상에 온 이유(소명)가 있을 것이다. 우리는 무엇으로 어떻게 인간다운 삶을 살며 이 사회에 이바지할 것인가, 바로 그것일 터이다.

 만약 송령이 과거를 일찍 포기하고 문학에 전념하였더라면 더 훌륭하고 많은 업적을 남기지 않았을까를 잠시 생각해 본다.

■ 방영주 소설가·시인 약력

 <월간문학> 소설 당선, 소설집 <거북과 통나무> <내사랑 바우덕이> <카지노 가는 길> , 장편소설 <무따래기>(상·하권) <우리들의 천국> <카론의 연가> <국화의 반란> <돌고지 연가> <대무신왕> 등, 한국소설가협회 중앙위원(연락처 ☎ 011-227-0874, 주소: 450-760 경기도 평택시 평남로 281 삼성(아) 105동 805호, 이메일: youngju-5@hanmail.net)

※ 이번호부터 방영주 소설가·시인의 세상을 바라보는 지혜, '소설가 방영주의 세상만사(世上萬事)'가 연재됩니다. 시민,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바랍니다.

★자치돌이★ 기자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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