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8(일)
 

 본보 안연영 기자는 지난 9월 12일부터 18일까지 7일간 캄보디아 한인회를 찾아 교민들의 생활상과 함께 교민들이 캄보디아 시엠립 주민들과 함께 사랑과 우정을 나누는 모습을 밀착 취재했다. 또한 캄보디아의 문화재를 답사했다. 총 10회에 걸쳐 안연영 기자의 캄보디아 방문기가 연재된다. <편집자 말>

 이렇게 벽면의 양각화들은 많이 훼손되었지만 당시의 생활 모습을 오롯이 담고 있었다. 일부 벽화는 연속동작으로 느껴질 만큼 세밀하고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었다. 천장에도 각종 무늬의 양각이 표현되어 있어 공간 내부 전체가 예술 그 자체였다. 또 죄수인지, 포로인지 모를 어린 아이를 묶어놓고 못을 박아 사형시키는 양각화도 있었는데, 그 후 수백년이 지나 그 악몽은 현실로 나타난 것은 아닌지. 독자 여러분들도 잘 알고 있는 '킬링필드'.

 한인회 윤윤대 전 사무국장은 캄보디아 유적지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했다. 800년대에 지어진 프놈꿀렌, 쁘리아 꼬, 바꽁 롤레이, 프놈바켕, 프놈끄롬, 끄라반. 900년대에는 박쎄이 참끄롱, 쁘레룹, 동메본, 피미아나까스, 쓰라스랑, 밖세이 참끄롱, 반테이 쓰레이, 끌리앙, 따 께우. 1,000년대에는 서바라이, 바푸온, 서메본. 1,100년대에는 앙코르왓, 톰마논, 차우싸이 때보다, 반띠아이 쌈레, 따쁘롬, 쁘리아 칸, 니악뽀안, 따솜, 바이욘, 앙코르 톰, 코끼리테라스, 문둥이왕테라스, 끄롤 꼬, 반띠아이 끄데이, 쁘리아 빨리라이. 1,200년대에는 그렇다할 유적은 없었다.

 앙코르와트의 맨 끝 건물 뒤편에서 바라라보면, 이 건물의 뒤쪽은 특별한 조각품이나 벽화 등은 보이지 않았다. 올라가는 계단도 높았으며 견고하게 축조되어 있었다. 또 석조로 된 창살이 건물 앞 뒤 모두 이채로웠고, 뒤뜰도 그리 넓어보이진 않았다. 이제 이곳에서 다시 되돌아 나가야한다. 되돌아 나오면서 이전과 달리 올라갈 수 없는 탑의 꼭대기만 아쉽게 바라보았다. 나오는 길에 눈에 들어오는 기둥에 조각된 여신들의 모습들을 바라보며, 힌두교에서는 여신들이 중심신으로 숭배되는 것으로 생각했고, 그 후에 세월이 지나면서 관세음보살신을 숭배하는 쪽으로 바뀌었다는데, 무딘 필자의 눈으로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

 시바신인지, 비뉴스신인지 모르지만, 탁본해간 흔적 때문에 변색이 되고, 마모되긴 했지만, 볼수록 신기해서 자리를 뜨기가 아쉬웠다. 신도 역시 산자의 편이든가. 여신들의 모습이 동남아 여인들의 모습이었다. 다리의 난간이 시작되는 부분이나, 계단의 난간 시작부분에 어김없이 세워진 여러 마리의 코브라 머리모양의 조형물들은 뱀을 신성시 했다는 반증이기도 할 것이다.

 앙코르와트를 뒤로하고 얼마간을 오토바이에 인력거 비슷한 것을 이어 만든 일명 톡톡이에 몸을 실었다. 사람이란 게 그렇듯이 처음에는 불편하기만 했던 톡톡이가 그새 탈만해졌다는. 30여분을 달려 도착한 '브라마의 조상'이란 뜻의 타프롬 사원(Ta Prohm)에 도착했다. 후일담이지만 타프롬 사원을 찾았을 때 우기 때라 그런지 너무 습했고, 필자는 이곳을 방문 후 며칠간 감기에 시달리기도 했다.

 최근에는 영화배우 '안젤리나 졸리'가 주연한 영화 <톰레이더> 촬영지로 더욱 유명해진 타프롬 사원은 자야바르만 7세가 앙코르왕국의 수도인 앙코르톰을 건설하기 전에 모친을 위해 건립한 불교사원이다. 동서 1km, 남북 600m의 주벽으로 둘러 쌓여있고 거대한 뱀이 기어가는 것과 같은 나무뿌리가 사원을 감싸고 있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  원주민을 찾은 한인회 윤윤대 전 사무국장

 입구에서 4~5분을 걸으면 '통곡의 방'이 있다. 어머니의 작고로 슬픔에 젖은 자야바르만 7세는 통곡의 방에서 가슴을 치고 울었다고 한다. 윤 전 사무국장의 설명에 따라 가슴을 치니 그 소리가 정말 사방에 울려 퍼졌다. 어머니를 잃은 자야바르만 7세의 아픔이 전해지듯. 다만 타프롬 사원 역시 문화재들의 보존 상태는 형편없어 보였다. 말 그대로 후진국일수록, 또 경제상황이 어려울수록 문화재 유지 및 복원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으며, 한편으로는 개발에 치우쳐 자연과 문화재들을 잃어가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 적은부분 일지라도 겹쳐보였다. 내부로 좀 더 진입하니 복원공사가 한창이었다. 개인적 바람이지만 복원공사가 잘 마무리되기를.

 타프롬 사원의 특징은 외관만 바라보았을 때는 너무 작은 규모로 느껴졌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미로처럼 건물들이 연결되고 있었다. 이전에 들렸던 앙코르와트의 벽화보다 사원의 벽화들은 좀 더 섬세했고, 어쩌면 섬세함 아닌, 높은 위치에 벽화들이 암각되어 있어 훼손이 덜하지 않았냐는 개인적인 생각도 들었다.

 나오는 길에 기념품을 파는 열살 남짓한 아이들이 눈에 띄었다. 지나가는 관광객들에게 1달러~3달러용 기념품을 팔기위해 씨엠립 시로 모여들고, 학교에 다녀야 할 아이들까지 달러 벌이에 투입되는 현실을 보며 역사의 아이러니를 느꼈다. 하긴 하루에 1달러만 벌어도 1개월이면 30달러, 웬만한 노동자의 1개월 수입이라고 한다.

 한때 융성했던 동남아의 패권국이며 종교적 중심지로 우뚝 섰던 크메르 민족의 자긍심을 알고는 있는지. 하기사 조상들이 남긴 유적들이 이들에게 작은 생명줄을 전해주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 다음호(304호)에서는 캄보디아에 정착하면서 한인회를 설립한 '윤윤대 전 사무국장의 삶'이 이어집니다. 시민,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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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연영 기자, 캄보디아 한인회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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