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8(일)
 

 본보 안연영 기자는 지난 9월 12일부터 18일까지 7일간 캄보디아 한인회를 찾아 교민들의 생활상과 함께 교민들이 캄보디아 시엠립 주민들과 함께 사랑과 우정을 나누는 모습을 밀착 취재했다. 또한 캄보디아의 문화재를 답사했다. 총 10회에 걸쳐 안연영 기자의 캄보디아 방문기가 연재된다. <편집자 말>

 둘째 날 윤윤대 전 사무국장의 안내로 말로만 듣던 앙코르와트 유적지를 찾아가기 위해 시엠립에서 오토바이에 인력거 비슷한 것을 이어 만든 일명 톡톡이에 몸을 실었다. 유적지까지 가는 30여분 동안 필자의 눈에 비친 캄보디아의 길거리는 70년대 수준이었으며, 이와는 별도로 자연경관은 훼손이 없어서인지 울창했다.

 30여분을 달려 도착한 앙코르와트 서쪽의 정문. 앙코르와트는 총 5.2km의 해자로 둘러 싸여 있으며 단일신을 모시는 사원 중 세계 최대 규모다. 옛 크메르 제국의 수준 높은 건축기술이 잘 표현되어 있다. 12세기에 세워졌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규모와 그 섬세함이 신비로움을 자아낸다. 앙코르와트 유적은 19세기 밀림 속에서 발견된 이후, 세계 최고의 문화유적 탐방 명소로 꼽히고 있으며, 사원의 정문이 서쪽을 향하고 있는 특징이 있는데, 이는 해가지는 서쪽에 사후 세계가 있다는 힌두교 교리에 의한 것으로 왕의 사후세계를 위한 사원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앙코르(Angkor)는 산스크리트어 나가라에서 파생된 도읍이라는 의미의 노코르(Nokor)의 방언이고, 와트(Wat)는 크메르어로 사원이라는 뜻인 만큼 앙코르와트는 '사원의 도읍'이라는 뜻이 된다. '사원의 도읍'이라는 의미인 앙코르 와트라는 이름은 16세기 이후부터 사용되었다고 윤 전 사무국장은 설명했다.

 번성했던 앙코르 왕조가 13세기 말부터 쇠망의 길을 걷기 시작해 15세기경에는 완전히 멸망했고 앙코르와트도 정글 속에 묻혀버렸다. 이후 1861년 표본채집을 위해 정글을 찾은 프랑스의 박물학자가 이곳을 발견하여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지역은 1972년부터 폐쇄된 이후 낮이면 베트남군이 장악하고, 밤이면 크메루루지의 게릴라가 장악하는 등 전화와 약탈로 수많은 불상이 파괴되고 많은 부분이 외국으로 불법 유출되었다. 지난 82년 집계에 따르면 중요유물 30점 이상이 분실되었고, 전체 유적의 70%가 복원 불가능한 상태로 파괴되었다. 또한 사원 근처 유물도 약 1,000점이 도난당하거나 파괴되었다. 어쩌면 그 나라의 문화재를 보존하고 잘 관리하는 것은 국력의 척도일 것이며, 우리 역시 개발과 발전이라는 거대 담론 앞에서 후손들에게 물려줄 문화재 관리에 소홀한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았으면 한다.

 다시 돌아와서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선정된 앙코르와트는 전체의 설계도를 만들기 위해 슈퍼컴퓨터로만 2년이 걸린다는 설이 있다. 그런데 이러한 건축물들이 당시의 기술로 40년만에 설계와 건축이 이루어 졌다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 물론 여러 왕조에 나뉘어서 공사를 했겠지만. 결국 앙코르 유적지는 9~15세기 인도차이나 반도 중앙부를 지배한 크메르 제국의 흥망성쇠를 담은 유물이며, 그중에서도 앙코르와트는 건축과 예술이 집대성 된 세계적인 유물인 것이다. 그렇지만 과거의 쇠락과 몰락을 부여잡고 오늘의 힘겨운 생존이 이어지고 있는 곳이 캄보디아라는 생각이 들었다.

 윤 전 사무국장은 앙크르유적지를 돌아보는 데에 한 달이 걸린다고 말했다. 출입문 격인 건물에는 이렇다 할 특징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건물 내부에는 별다른 조각물이 없었다. 긴 통로를 따라가면 통로 중간쯤에 근대에 세워진 관세음보살상이 있어 불신자들이 참배할 수 있도록 해놓았다. 아마 방치된 후에도 여전히 불교적 순례지로 보존되었고, 이에 따라 개보수시 불신자들을 위한 배려는 아니었는지 추측해본다.

 입구를 지나면 뱀(코브라) 모양의 긴 난간과 석조물 계단이 눈에 들어온다. 또 좀 더 들어가면 앙코르와트 주건물이 나오고, 이 건물들은 옛 크메르 제국의 융성함을 대변하고 있는 듯 웅장하고 섬세했다. 안타까운 점은 이러한 웅장한 석조 건축물들이 붕괴 위험에 처해 있고, 또 곳곳이 보수중이어서 이전에는 출입이 되었던 지붕에도 출입할 수가 없었다.

 사원의 벽면에는 종교의식에 관한 내용, 전쟁에 관한 내용, 생활 모습들이 표현된 양각화가 당시의 생활상을 보여주고 있었다. 다만 많은 관광객들의 손길을 타는 바람에 이 양각화 역시 많이 훼손되어 있었다.

※ 다음호(303호)에서는 '앙코르유적지' 두번째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시민,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바랍니다

 

★자치돌이★ 기자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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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연영 기자, 캄보디아 한인회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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