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6(금)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는 법, 홀로 걷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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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태 이야기가 있는 
역사문화연구소장

본지 전문 필진인 김희태 이야기가 있는 역사문화연구소장이 프랑스 국경을 출발해 스페인 산티아고까지 가는 여정을 독자들에게 소개한다. 프랑스 국경에서 산티아고까지는 764km, 피니스테레까지는 852km로 아무리 빨리 걸어도 한 달은 걸어야 하는 고행의 길이다. 김희태 소장의 ‘산티아고 가는 길, 준비 없이 떠나보자!’ 기행문을 5회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 말>


■ 새벽녘 별들의 계곡을 마주하며


칼사디야 데 라 쿠에사(Calzadilla de la Cueza) 마을에서 머물 때였다. 이전과 달리 이곳에서는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는데, 이유는 다름 아닌 코 고는 소리 때문이었다. 생각해 보면 알베르게(Albergue, 숙박시설의 한 종류로, 순례자들이 이용하는 숙박업소)라는 공간이 다수의 인원들이 머물기에 코 고는 사람이 있는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그럼에도 이렇게까지 잠을 이루지 못한 건 또 처음이었기에 자는 둥 마는 둥 뒤척이다가 평소보다 이른 새벽 5시에 일어나 떠날 준비를 한 뒤 30분 뒤에 길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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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티아고 가는 길, 메세타 평원을 지나다.

 

밖은 아직도 깜깜했다. 피곤함을 감출 수 없었던, 그렇게 평소와 다름없이 길을 걷다 문득 하늘을 바라보며 나도 모르게 탄성을 내질렀다. 하늘에는 별이 무수히 많았는데, 산티아고 가는 길에서 왜 별들의 계곡이란 말이 나왔는지 알 수 있을 만큼 별이 쏟아지고 있었다. 이 와중에 별똥별이 떨어지자 잠시 눈을 감고, 마음속에 담아둔 소원을 비는 등 잠시 행복에 취해 길을 걸었다. 조금 전까지 코 고는 아저씨 덕에 잠을 설치며 피곤한 채로 길을 나섰지만, 그 덕에 새벽녘 별들의 계곡을 볼 수 있었던 에피소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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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다리를 건너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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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이정표

 

한편, 산티아고 길을 걸으면서 가장 많이 했던 말 중 ‘돈데에스따?(¿Donde estas?)’가 있는데, ‘어디예요?’ 혹은 ‘어디에 있어요?’ 정도로 번역된다. 길을 가다 모를 때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Donde esta el camino a Santiago?”라고 물으면 친절하게 안내해 준다. 외국어를 못하는 입장에서 출발 전만 해도 말이 안 통하면 어쩌나 싶은 걱정이 있었는데, 막상 현장에서 느낀 건 문장 몇 개와 단어를 응용하면 간단한 안부와 길 찾기 등이 가능했다. 오죽했으면 길을 걷던 중 만났던 선생님 한 분이 내게 ‘¿Donde estas’만 알아도 산티아고까지 갈 수 있겠다며 우스갯소리를 했을까 싶다. 즉, 외국어를 잘하지 못해도 길을 걷는 데 있어 불편할 수는 있어도 걷는 것은 문제가 없기에 용기만 있으면 언제든 갈 수 있는 그곳이 바로 산티아고 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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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타아고 가는 길을 걷는 순례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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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타아고 가는 길을 걷는 순례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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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타아고 가는 길을 걷는 순례자들

 

■ 홀로 걷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자!


살아가다 보면 자신이 꿈꾼 목표로 가는 과정에서 안 되는 여러 이유들이 생긴다. 이것 때문에 안 되고, 저것 때문에 안 되고, 그렇게 안 되는 이유를 찾다 보면 그 꿈은 신기루처럼 허상에만 머무르게 된다. 혹자는 산티아고 가는 길을 가고 싶은데, 홀로 긴 거리를 걷는 것에 대한 부담감을 가지는 이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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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를 머물렀던 오세브리오(O Cebrei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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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모스 수도원을 지나며

 

하지만 정말 혼자일까? 경험상 산티아고 가는 길 위에서 많은 이들을 만났다. 처음에는 한국인들 위주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탈리아, 프랑스, 헝가리, 스페인 등 다른 나라의 순례자들도 만날 수 있었다. 이들과 동행할 때도 있었고, 알베르게에서 다시 만나 반가운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특히 이탈리아 부부의 식사를 초대받아 저녁을 먹을 때 내 생애 가장 많은 스파게티를 먹었다. 꽤 유쾌했던 추억으로 남았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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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티아고 콤포스텔라 대성당을 찾은 필자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는 법, 내가 혼자 걷고 싶을 때는 혼자 걸으면 되는 것이고, 길을 걷다 만난 일행과 같이 걷고 싶으면 동행하면 그만이다. 만나고 헤어지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산티아고 가는 길, 어차피 목적지가 산티아고 가는 길이기에 길 위에서 수없이 만나고 헤어짐을 반복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러니 막연한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면 산티아고 가는 길은 꿈이 아닌 이룰 수 있는 현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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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티아고 콤포스텔라 대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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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티아고 콤포스텔라 대성당

 

한편, 길의 마지막 목적지였던 피니스테레(Finisterre) 마을에서 하루를 머무른 뒤 버스를 타고 산티아고로 돌아왔다. 늦은 저녁에 출발하는 마드리드행 버스표를 예매한 뒤 잠시 시간이 남아 산티아고 콤포스텔라 대성당(Catedral de Santiago de Compostela)을 향해 걸어갔다. 4일 만에 다시 찾은 장소이자 산티아고 가는 길의 상징과도 같은 장소다. 성당 내부를 관람하고, 이곳에 있는 야고보의 유해를 참배한 뒤 잠시 광장에 누워 주변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오고 가는 이들과 광장에 모여 웃고 있는 이들, 성당을 바라보며 기도하는 이들, 울고 있는 이들, 그리고 사진을 찍는 이와 노래를 부르는 이들, 퍼포먼스를 하는 이들, 필자처럼 광장에 누워 쉬고 있는 사람 등 긴 여정의 길을 마친 이들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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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야고보의 유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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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장의 풍경 

 

32일간의 여정은 그 자체로 무모한 도전이었다. 무작정 노란색 이정표만을 따라 걸었기에 좌충우돌 에피소드도 많았다. 힘들었던 순간도 있었지만, 그 어려움을 이겨내었기에 오히려 내적 성장을 이루어낼 수 있었던 시간이기도 했다. 돌아보면 산티아고는 내게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임을 알리는 사건으로 기억되지 않을까 싶다. 이 길을 통해 내가 찾고자 했던 해답을 찾았을까? 애석하지만 그렇지는 않다. 길을 걷는 동안 답을 찾고자 했으나, 산티아고 가는 길이 명확한 해답을 주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경험이 앞으로 살아가는 내내 영감이나 교훈으로 승화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마지막으로 산티아고 콤포스텔라 대성당에서 미사를 드린 후 마드리드행 버스를 타면서 그렇게 나의 산티아고 가는 길은 마무리되었다. 그리울 그 이름, 다시 한번 만났으면 좋을 그 이름, 안녕! 산티아고. ※ 필자의 말: 5회에 걸친 ‘김희태의 카미노 데 산티아고’ 연재를 마감합니다. 앞으로 더 좋은 글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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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태의 카미노 데 산티아고] 여러분의 산티아고 가는 길을 응원합니다 (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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