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7(토)
 
조하식(한광고 교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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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학교(현 초등학교) 2~3학년(?) 때 겪은 퍽 미묘한 오감의 물결, 그 일렁임의 조각모음이다. 귓가에 익은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막 시작된 1960년대 중반기를 학창시절로 보낸 연배들은 아마도 잘들 아실 것이다. 가감 없이 콩나물시루를 방불케 하던 교실 풍경. 빼곡한 일정표상에 포크댄스라는 걸 배우는 시간이 있었다. 국민교육헌장을 무조건 외우라던, 아무튼 미처 개화가 덜 된 듯 어수선한 시국에 아직 솜털 보송보송한 남녀 어린이 둘씩을 짝지어 왜 하필 서양놀이를 시켰는지는 알다가도 모를 노릇이다. 돌이켜보매 거의 매일 그 행사를 투덜거리며 치러냈던 기억이 뇌리에 생생하다.
 
  흥미롭게도 그 시간만 되면 애들이 꼬박꼬박 챙기는 물건이 있었다. 다들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득달같이 달려가 앞 다퉈 가느다란 나뭇가지를 주워오거나, 용케 그 비슷한 도구들을 찾아내 어색한 손마디와 손가락 사이를 막대기로 이으려고 서툰 시도를 거듭했다. 나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유난히 그 시간을 싫어한 나였건만 남달리 눈곱만한 숙기조차 없었거니와 그 방면에 워낙 소질이 달려 도저히 따라갈 재간이 없어서였다. 당연지사 지금도 체조나 율동이라면 쩔쩔매기 일쑤인 걸 보면 사람마다 가진 달란트는 천차만별인 터다.
 
  그런데 웬일일까? 그런 환경에서 전전긍긍하던 내게 참으로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춤이라면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킬 만치 꺼려하던 내가 도리어 그 시각을 애타게 기다렸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여린 맘에 쏙 드는 여자아이가 바로 코앞에 나타났으니까. 이름(가명)<이유리>. 내 눈에 비친 그 애는 눈부실 만큼 예뻤다. 치렁치렁 길게 따 내린 두 갈래 머리에 우윳빛보다 뽀얀 살결. 맑은 이슬방울을 머금은 듯 초롱초롱한 눈망울에 살포시 미소 짓고 서있는 고운 자태라니……. 나는 그녀의 가냘픈 손목을 꼭 잡아보고 싶었다. 그야말로 첫눈에 반한 뒤부터 그 어여쁜 소녀의 일거수일투족은 촌스럽기 짝이 없는 시골소년의 영혼을 마냥 설레게 만들었다.
 
  병적일 만치 수줍어는 했으되 되바라질 만큼 조숙했던 탓일까? 집안에 엄마 말고는 여자라곤 없던 탁한 대기의 거센 역류였을까? 어쨌거나 나는 유리와 함께 춤을 추기 위해 갖가지 묘안을 짜내기에 바빴다. 당장 맞닥뜨린 숙제는 응당 키 순서에 따라 짝을 정하는 법칙이었다. 어떻게든 유리 옆에는 서야겠는데 그게 맘먹은 대로 되는 일은 아니었으니 고민거리. 그렇다고 멀뚱멀뚱 바라만 보다가 다른 치에게 사랑스런 유리를 빼앗기는 건 상상하기조차 싫었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을까? 놀랍게도 나는 누가 볼세라 작위적으로 키를 낮춰가며 유리가 있는 순번 언저리에 잽싸게 끼어 들어가서는, 딴에는 아무도 낌새를 채지 못하도록 교묘히 앞뒤를 짜 맞추며 기어이 그녀를 차지하고야 말았다. 떠올릴수록 얼굴이 화끈거리고 나도 모르게 입가에 웃음이 번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채 반시간에 못 미친 크나큰 행복! 비록 코흘리개 꼬맹이의 알량한 착각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녀 또한 나를 싫어하지는 않는 눈치였다.
 
  그녀의 손은 무척 보드라웠다. 말로만 듣던 섬섬옥수. 못 추는 춤을 추는 동안 내 열 손가락 틈에서는 연신 진땀이 솟아났다. 자꾸만 옷자락에 문지르고 닦아내도 그때뿐, 행여나 동작을 틀릴까봐 극도로 긴장한 탓에 이내 손바닥이 축축해지고 미끈거렸다. 그렇게 지겹게만 들리던 댄스음악 소리마저 그토록 감미로울 수는 없었다. 스스로 즐거우니 도무지 짜증날 일도, 귀찮다는 느낌조차 있을 리 없었다.
 
다음호(339)에서는 첫사랑두 번째 이야기 폭댄스 추는 광경이 이어집니다. 독자, 시민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조하식 수필가 프로필
 
<월간에세이>를 거쳐 <한맥문학>을 통해 수필가로 등단. 본보에 6년째 세상사는 이야기를 연재하고 있으며, 신앙산문집<주님과 동행한 오솔길>, <생각만큼 보이는 세상>을 펴냄. (홈페이지 http://johs.wo.to/, 이메일: johas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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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첫사랑 ‘천진난만한 등굣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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