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7(토)
 

조하식(한광고 교사, 수필가)

 공식명칭은 ‘프랑스공화국(French Republic)’, 인구 6,300여만 명에 면적은 남한의 5.5배에 달하는 나라. 추적추적 겨울비가 내렸다. 노변에 진을 친 집시들. 어림잡아 100만 명을 웃돈다는데 하나같이 정신이 아픈 게다. 부러운 건 쾌적한 기온. 비록 날씨는 궂지만 피부에 와 닿는 감촉이 그토록 온난할 수 없었다. 한쪽에 늘어선 주택가는 서민들의 주거지. 우리와 같은 고층 아파트는 구경조차 힘들다. 정원이 딸린 단독주택이 중산층의 상징처럼 굳어졌다는데 말을 타고 요트를 즐겨야 비로소 상류층이란다. ‘랭스(Reims)’로 이동하는 길. 인적이 뜸한 고성(古城)이 10억대의 매물로 나온다니 한국의 소유개념과는 차이가 현격하다. 엄청난 유지비용으로 인해 선뜻 입질하는 자는 없으되 이따금 상업용으로 전용하는 사례는 있었다. 야트막한 산마저 드문 지형지세. 교외로 나올라치면 밀과 보리를 양산하는 경작지들이 눈앞에 가득하다. 눈에 띈 입간판. 불문자가 영문자와 똑같았다. 주의하라는 ‘Attention’, 그밖에도 비슷한 글자는 흔했다. 라틴어가 그 뿌리였거니와 그래서 바벨탑으로 인해 언어가 갈래갈래 갈라지지만 않았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가정이었다. 통번역에 관련된 직업이야 생겨나지 않았겠으나 도처에서 외국어를 배우느라 골머리를 앓을 필요는 없었을 테니 말이다.

  흙빛이 드러난 초원. 볼수록 낙엽송과의 조화가 예사롭지 않다. 수풀이 우거진 곳에는 큰 나무와 하늘이 맞닿아 기묘한 대조를 이룬다. 늘 햇빛이 그리운 건 구라파의 공통점. 구릉지를 품은 목초지에는 아득한 지평선이 보였다. 몇 년마다 휴경지를 두는 지혜도 본받을 점. 유채를 심고 곡식을 가꾸는 풍경이 풍성함으로 넘쳐났다. 운하를 품은 아르네강. 일대가 잔다르크가 활약한 무대라는 설명에 쫑긋 귀를 세웠다. 역대 프랑스 왕들이 대관식을 치른 곳이자 독일의 항복 조인식이 열린 땅. 10세기 전후 지었다는 <랭스성당>에 들어가니 스테인드글라스가 빛을 발했다. 첨두아치와 고딕양식의 세계문화유산답게 건물 길이가 150m, 높이가 38m라며 자랑했으되, 왜 예배당 안에 독수리를 매달고 왜 샤를7세가 등극해야 하는지 도무지 모를 일이다. 사암을 다듬어 쌓아올린 건축물. 골목마다 사람인 마리아를 여신으로 모셔 놓았다. 재질이 단지 사암이어서 저리 새까맣게 변질됐겠느냐는 게 우리 부부의 일관된 견해다. 깨끗한 주택가에서 분리수거를 마다하는 습속은 무지 의아한 단점. 제아무리 동네 어귀에 삼위일체탑을 세워본들 올곧은 창조신앙에는 요원하다. 언뜻 적막한 랭스대학교 앞을 지나치다가 만난 조각상이 있었으니 제목은 ‘랭스의 미소’, 얼떨결에 그 스토리를 들었지만 기억에는 남아있지 않다. 여기는 샴페인의 원산지. 더불어 숲속에 자리한 운치 있는 미술관도 여럿이었다. 촉촉한 물초지에 스며든 은은한 석양. 저녁식사는 김치에 해당하는 양배추절임이 푸짐했다. 소금에 절인 소시지나 돼지 훈제 요리는 별로였고 올리브유를 뿌린 야채류가 그나마 입에 맞았다. 랭스를 뒤로하고 ‘스트라스부르’로 향하는 길. 조촐하고 깔끔한 호텔에서 기도를 드린 뒤 잠을 청했다.

  벌어진 시차 탓에 꼭두새벽 눈을 떴다. 허룩한 배를 채운 건 역시 컵라면. 잠꾸러기 아내는 아직  꿈나라다. 다행히 아침식사는 평균 이상. 값비싼 사과에 신선한 요구르트를 실컷 들 만큼. 고맙게도 8시 전에 날이 밝았다. 녹지가 흔한 <스트라스부르(Strassburg)>. 당연지사 보행로 바로 곁이 공원이었다. 프랑스 동부 알자스 지방 바랭 주의 주도. 라인강이 흐르는 프랑스와 독일의 국경으로 1870년과 제2차 세계대전 때 파괴된 <노트르담 대성당>은 여태껏 복구 중이었다. 뚱뚱한 인솔자의 부실한 해설 가운데 귓속을 간질이는 게 있었다. 가는 데마다 만나는 노트르담사원의 뜻은 ‘신이 거하는 집’이고, 그 속에 성모 마리아가 살아있어서란다. 참으로 기가 막힐 노릇이다. 왜들 도구로 쓰임 받은 여인을 붙들고 신격화에 골몰할까? 성경에 이르기를 예수그리스도의 탄생은 적실히 성령의 잉태라 하였거늘 어찌하여 대놓고 불신앙을 자초하는가 말이다. 거주인구는 약 30만 명. 흐르는 개천이 맑은 만큼 대기도 맑았다. 선진국과 후진국의 극명한 격차는 또 있었다. 고풍스러운 구시가지가 그곳. 원형을 그대로 보존했는데 거지반 독일풍이다. 이처럼 목재를 드러나게 지으면 보온과 피서 효과는 물론 건물 수명이 오래 간단다. 바로 옆 자료실을 다녀오니 차가운 겨울비가 더 굵어졌다. 음산한 빗속을 거닐기가 만만찮아 아쉽게도 자유시간의 대부분을 성당에 앉아 보내야 했다. 아내와 나눈 대화의 주제는 ‘천성 가는 길’, 애오라지 예수그리스도를 말미암지 않고는 하나님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는 진리를 못 깨닫는 한 구원은 없다. 곧이어 방문한 <쁘띠 프랑스>는 프랑스의 작은 마을. 그곳 역시 독일의 건축양식을 적잖이 받아들인 모습이었다. <홈페이지 http://johs.wo.to/>

※ 다음호(318호)에는 서유럽 기행 다섯 번째 이야기, '정교한 룩셈부르크' 편이 이어집니다. 시민,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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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서유럽 기행 - 랭스로 가는 길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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