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7(토)
 

조하식(한광고 교사, 수필가)

 열대 우림지역을 벗어나니 <반트랑 사원>이었다. 한자로는 永長古寺(영장고사). 19세기 초 중국과 앙코르 양식을 베트남 건축술에 녹여 만든 축조물이다. 5층 건물에 178개의 기둥이라니 한국의 절과는 전연 다른 모양새. 가부좌한 금색불상이 환하게 웃고 있어 그 밑자락을 보니 ‘當來彌勒大佛(당래미륵대불)’이란 글자가 선명하다. 하지만 7,000만 년 뒤 심판주로 오실 분은 미륵불이 아니다. 놀랍게도 아무도 모르게 재림하실 예수님을 어렴풋이나마 알고는 있다는 문구였다. 사찰 내부를 둘러보며 조악한 정원을 거닐 때는 햇볕이 무척 따가웠다. 곧이어 찾은 프랑스풍의 <노트르담 사원>은 일정을 변경한 터. 정교한 불란서의 건축공법으로 지은 신 로마네스크 양식답게 고풍스럽고 화려했으나 아쉽게도 때마침 미사 중이어서 내부로 들어가지는 못했다. 앞뜰에 조성한 정원 역시 일품이었다. 갖가지 꽃나무에 정갈한 조경수가 어우러져 품격을 더했다. 다만 마리아가 중심인 주제는 어딜 가나 불변 사항. 왜 흥해야할 예수님은 어린 그대로이고 쇠해야할 사람은 육친을 넘어 성모(聖母)라는 이름으로 떠받드는지 안타깝다. 바로 옆 <중앙우체국>은 프랑스 통치를 상징하는 건조물. 앞문에 1886~1891년에 걸쳐 완공했다는 표지가 위용을 더하지만 막상 둘러본 내부 시설은 식민지 역사를 대변했다. 중앙에 내걸린 호치민의 초상화. 어딜 가나 그는 영웅 일색이다. 전국지도로 벽면을 장식하고 엽서 판매대는 유럽의 상술을 본뜬 듯 상업성을 짙게 풍겼다. 한 술 더 뜬 건 기념품을 파는 가게였는데 몰려드는 인파로 인해 돛대기 시장을 방불케 했다. 출입문을 나오며 건물을 올려다보니 큼지막한 시계의 길쭉한 바늘이 베트남의 오늘을 웅변처럼 이르집고 있었다.

 거기서 곧바로 시내 구경에 나섰다. 번듯한 가로의 매끄러운 보도. 하지만 후진국 특유의 지독한 매연만은 어쩔 수 없었다. 건널목을 건널 때는 나도 모르게 재채기가 나올 만치. 비염이란 고질병을 앓고부터 온몸으로 오염원을 거부하는 몸짓이 생겨났다. 손수건으로 코를 막고 현지인들에 뒤섞인 채 시청까지 걸어갔다. 서울의 명동에 해당하는 동코이(Dongkhoi) 거리. 프랑스를 닮은 오페라하우스를 여기 명품거리에 지었다. 변변찮은 쇼윈도가 늘어선 샤넬가게를 지나치니 연립주택 같은 시청사. 그 곁을 호치민이 지켰다. 동상을 세워 이른바 유훈 통치를 시도하는 참이었다. 적어도 필자의 눈에는 그리 보였다. 각종 분재로 장식한 화단은 플로베리 일색. 정성껏 꾸미느라 무던히 애는 썼으되 피부에 썩 와 닿지는 않았다. 습기 머금은 보슬비를 맞으며 어스름에 기념사진을 남긴 뒤 궂은비를 피해 ‘YINCOM CENTER’ 백화점으로 들어갔다. 깔끔하지만 단순한 진열대. 다만 삼성의 브랜드는 그대로 유효했다. 도심을 오가며 만나는 68층 빌딩은 호치민시를 대변하는 랜드 마크. 저녁은 반가운 한식(귀빈식당)이었다. 맛깔스런 버섯전골을 비롯해 김치, 감자조림, 멸치, 부추무침, 상추무침 등으로 만찬을 즐기고 향하는 숙소. 귀찮은 발마사지 대신 경험한 택시의 승차감(기본요금은 700원 정도)은 의외라 싶게 부드러웠다. 때마침 방영하는 한국 드라마(KBS World)를 시청하다가 기도를 드리고 잠자리에 들었다.

 푹 자고 일어난 아침. 준비해간 간식으로 아침을 해결했다. 내려 가봤자 어제 아침처럼 썰렁할 테니까. 서둘러 찾은 데는 <전쟁기념관>. 둘러보니 각종 전쟁 관련 유물은 별로 없고 베트남전쟁 당시 미군의 잔학상을 고발한 사진이 대부분이었다. 고엽제 피해 실상을 알리는 코너를 빼면 소규모. 눈에 띈 데는 종군기자의 유품을 전시한 공간이었다. 전쟁 중 사망하거나 실종된 인명이 134명에 이른다니 가히 참화의 양상을 가늠할 만하다. 특이한 건 열대지방의 실내에 에어컨이 없다는 점. 짐작컨대 비극의 고통을 더불어 기억하자는 의도 같았다. 바로 옆에 자리한 정치범 수용소. 원래 꼰다오 섬에 있던 교도소의 모형이란다. 그 한쪽 구석에 끔찍한 형틀이 보였다. 단두대 비슷한 차꼬랄까. 강변을 내닫다가 지나친 대학 캠퍼스는 F. P. T. University. 입간판을 제대로 읽지 못해 정확한 명칭은 알 길이 없지만 허름한 몇 동의 건물이 전부였다. 거리에는 자전거를 개조해 만든 씨클로가 한창 성업 중이다. 이미 하노이에서 타봤지만 위험천만하기 짝이 없는 운행 수단. 한 사람이 사람을 둘씩이나 매달고 다닐라치면 힘에 부쳐 속도를 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가이드가 퀴즈를 냈다. 베트남 경제에 기여하는 나무 순위는 1위 아라비카 커피, 2위 고무나무, 3위 코코넛, 4위 실크제품, 5위 노니나무, 6위 꿀이란다. 즉 대부분이 농산물로써 앞으로 공산품으로 개발한다면 값싼 노동력을 당해낼 수 있을까 싶다. 그밖에 노천 석탄, 석유, 시멘트 재료인 잡석, 희토류 등 묻혀있는 지하자원이 무궁무진하단다. <홈페이지 http://johs.wo.to/>

※ 다음호(310호)에는 베트남 기행 네번째 이야기, '베트남전의 영웅' 편이 이어집니다. 시민,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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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베트남 기행 - 이런저런 유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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