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7(토)
 

조하식(한광고 교사, 수필가)


 인사는 우리처럼 때와 상관없이 “신짜오!”하면 되고, 고맙다는 말은 “신깜언”하면 된단다. 미안하면 “신로이”라고 건네는데 숙제는 무려 6성조를 내는 게 좀처럼 쉽지 않다는 것. 본래는 고유문자를 사용했지만 표기가 너무 힘들어 알파벳 22자(F, J, W, Z 제외)에 이모티콘 비슷한 걸 7개 만들어 차용한지 오래란다. 존칭은 단어 끝에 우리네 호격조사와 동음인 “야”를 붙이는 게 특이점. 더 흥미로운 건 ‘마’라는 낱말이다. 엄마라는 의미와 동시에 악마의 뜻도 있다니 웬일일까? 새롭게 안 상식은 동남아 일대 언어들이 산스크리트어에 속한다는 점. 베트남어, 캄보디아어, 미얀마어, 태국어가 죄다 고대인도의 범어(梵語)에 연원을 두고 있다는 사실이다. 어쨌거나 1932년부터 공식문자를 채택하면서 한자 사용을 전면 금지한 건 통치권자의 결단이었다. 하지만 한자의 음역을 떠올리는 단어들마저 인위적으로 모조리 추방할 수는 없나보다. 지금도 남(男)은 그대로 ‘남’으로 읽고, 화장실은 배설하는 곳으로 여겨 ‘야배씽’이라 하며, 결혼은 ‘게톤’이라고 한다니 연음법칙에 의해 자연스레 한자를 읽는다면 그런대로 통하는 바다. 그밖에 숫자 8을 ‘땀’, 대학을 ‘다이혹’, 학생을 ‘혹신’, 기숙사를 ‘키툭사’, 수도를 ‘투도’, 박물관을 ‘바탕’이라고 하니 발음의 잔상은 얼마큼 아니 꽤나 유지되는 것 같다. 주유소 간판을 보니 ‘SAIGON PETRO', 'NAMBIET OIL'. 엄연한 산유국이지만 우리네 2/3 가격에 기름을 쓰고 있었다.

 궁금했던 라이따이한(라이는 잡종이라는 뜻)에 대해서는 의외의 답변을 들었다. 그간 알려진 바와는 다르게 군인들의 소행이 아닌 사업차 들른 민간인들의 허물이라는 해명이었다. 귀를 기울이니 전쟁 중 한가로이 계집질하기가 쉽지 않았을 거라는데 필자는 그 가능성을 반반으로 본다. 음란행위란 누구든 필시 쥐도 새도 모르게 저지르는 법이니까. 개인적으로는 셋째 외숙이 월남전 참전용사였다. 상기하건대 백마부대와 맹호부대는 전투요원이었고 비둘기부대는 비전투요원이었다. 1964년 파병해 1973년 철수할 때까지 사실상 용병이 아니냐는 구설수에 올랐지만 5,000명이 넘는 목숨을 담보로 경제개발의 종자돈이 됐던 건 사실이다. 고무적인 건 베트남 통치자가 내린 과거를 불문하는 정책 기조. 그야말로 미래를 지향하는 탁월한 선택이자 열린 마음이 아닐 수 없다. 하긴 고엽제 피해 당사자이면서도 유감을 표명하는 선에서 일단락 짓자는 이들에게 누군들 다시금 총대를 들이대랴. 그들이 주장하는 “Nobody behind us.”를 새삼 주목하는 이유다. 그런 와중에 교통경찰 1년이면 집을 장만하고 군의관이 임지를 벗어나 돈을 번다는 탈법의 현장이 어쩌면 우리네 성장기와 그리도 빼닮았는지 기가 찰 노릇이다. 그 와중에서도 내 가족이 아니면 회계 처리를 안 맡길 만큼 불신이 극에 달한 나라. 재밌게도 베트남인들의 특기는 호박씨 까기란다. 그러면 대뜸 전 국민이 뒷담화를 즐기느냐고 반문하겠으나 그런 게 아니라 실제 일상에서 심심풀이로 호박씨를 까먹는다는 얘기였다. 조그만 씨앗이 씹을수록 고소해 남몰래 해치운다는 게 요즘 애들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울 터다.

 <미토>는 일명 유니콘 섬. 티벳고원에서 발원한다는 메콩강의 일부 생태를 나룻배를 이용해 돌아보는 코스였다. 이 지역의 메콩델타는 비옥한 농토의 상징. 물야자수와 맹그로브 숲을 이루는 정글을 비집고 돋아난 황톳빛 흙탕물이 머금은 거름기도 모자라 켜켜이 쌓인 퇴적물로 형성된 삼각주가 이네들의 밥줄이다. 1년에 1미터씩이나 길어진다며 즐거운 비명. 부레옥잠이라는 정화초가 자라나 웬만한 부유물의 정화조 기능을 한다니 오묘하다. 하루 500명분의 생활하수를 너끈히 처리한다면 모름지기 사람이 살만한 터. 그래서인지 귀찮은 모기를 거지반 만날 수 없었다. 언뜻언뜻 형체를 드러낸 잔뿌리는 건강한 자연의 증거였는데, 한국이라면 과연 강물을 이만큼 보존할 수 있을까? 강변을 따라 수상가옥이 늘어선 이국적인 풍경. 유의점은 우리는 관광객이로되 이들에게는 여기가 삶의 터전이라는 게다. 점심은 월남쌈밥에 생선을 곁들인 메뉴. 고맙게도 일행 가운데 풋고추, 된장, 갓김치까지 싸와 먹거리가 푸짐했다. 식후를 틈타 둘러본 데는 조상신을 모신 사당. 보나마나 우상을 숭배하는 부류는 한통속이어서 늘 눈요깃거리는 드물다. 그보다는 이런저런 설명을 곁들인 과일농장이 훨씬 나았다. 향긋한 꿀차와 각종 열대과일을 시식한 다음 아리랑이 울려 퍼지는 전통 가옥촌에 잠시 머문 뒤 뱃머리를 돌렸다. 멀리 바라다 보이는 현수교. 듣자니 호주의 건설업체와 베트남 회사와의 합작품이라 했다. 일행이 탄 배는 정크선. 침향(향기가 무려 천 년을 간다는 나무)으로 쓴다는 홍목(紅木)을 뒤로하고 재래식 크루즈에 오르니 물가를 따라 배주유소들이 늘어섰다. 이처럼 번잡하게 배를 띄우면서도 오염의 징후가 낮은 걸 보니 퍽이나 가상하고 부러웠다. <홈페이지 http://johs.wo.to/>

※ 다음호(309호)에는 베트남 기행 세번째 이야기, '이런저런 유적들' 편이 이어집니다. 시민,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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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베트남 기행(미토의 자연환경) 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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