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키르기스스탄(Kyrgyzstan, 남한 면적의 2배, 인구 7백만, 1인당 GDP 2,700달러)으로 넘어가는 출입국관리소, 짧게 끝난 입국 절차는 다소 의외였다. 상대방 배려를 모르는 한 남정네로 인해 상한 기분을 추스르고 수도 비슈케크(Bishkek, 인구 110만)로 가는 차편에서 목격한 광경은 초장부터 파헤친 도로공사 현장. 엉망진창인 보행로를 따라 허름한 가옥들이 성글게 늘어서 있었다. 숙소로 가는 동안 차창 밖 풍경은 퍽 후진적. 그에 비해 호텔은 상당한 국제화를 이뤄 잠자리는 깨끗했고 음식도 먹을 만했다. 이튿날 일행이 향한 이름난 이식쿨(‘따뜻한 호수’라는 뜻). 한눈에 수평선이 있어 바다로 보암직한 호수였다. 표면적이 서울시의 9배에 달하는 데다가 정확한 둘레조차 모를 만큼 드넓은 염수호(염도 0.6%). 문제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돼 있는데도 근래에 호수 주변에 우후죽순처럼 늘어나는 관광업 관련 시설물이다. 내륙에 갇힌 나라이다 보니 생겨난 어쩔 수 없는 추세라고는 해도 눈앞에 들어선 신시가지에서 보듯 당국의 치밀한 관리가 필요하다는 점은 불문가지였다. 이들이 극구 자신하는 치안 상태처럼.
오전 일정 중간부터 비좁은 비포장도로임을 감안해 소형승합차로 갈아탄 뒤 접어든 농로는 나름 운치가 있었다. 이만하면 산천경개를 제대로 갖춘 곳. 가까이는 맑은 물이 흐르고 멀리는 만년설이 보이더니 이어진 산자락에 그림 같은 초원이 나타났다. 한마디로 몇 시간에 걸친 밋밋한 풍경화를 일거에 상쇄해버린 대반전. 목축업 비율이 70%라더니 양무리와 소들이 풀을 뜯었다. 거기 스묘나스코에 계곡에 정성껏 차린 점심상. 빵, 쌀밥, 양고기, 감자튀김, 사과 등으로 든든히 속을 달래고 이식쿨에 띄운 유람선에 올랐다. 정박해 있는 선박들을 보니 만만찮은 영업 규모. 하지만 그에 비례하는 수질 오염도는 어찌할 텐가. 코앞의 이익을 좇다가 세계 두 번째 산정호수의 청정가치를 해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일행과 공유했다. 뱃전에서 들은 가이드 설명 중 특이사항은 이 나라에 경비행기 숫자가 850대라는 것과 보쌈, 매매혼에 관한 얘기. 전자는 기간도로 사정이 여의치 않고 빈부격차가 심해서라는 데 동의했으나, 후자는 원시 부족사회에서나 가능한 일이어서 생뚱맞게 느껴졌다. 그것이 7개 교회의 사역은 아닐까.
키르기스스탄의 이식쿨에서 바라본 톈산산맥
솔직히 기대치에는 크게 못 미친 선상체험을 뒤로하고 들른 르호르도 종교관도 매한가지. 3/4이 무슬림인 나라에 1/5을 차지하는 러시아정교회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지구촌에 존재하는 신앙 형태를 한 곳에 모아 놓고 관광상품으로 활용하려는 의도였으나 그에 걸맞은 콘텐츠가 없다 보니 유의미한 볼거리는 아니었다. 일단 대표적 종파만이라도 그럴싸한 회당을 짓고 경전을 총망라한 자료실이며 조각품 대신 박물관 등으로 구색을 갖추는 일이 시급했다. 그보다 눈길이 간 곳은 촐폰아타의 암각화 공원. 심각한 건 엄연히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음에도 1,500여 암각화를 야외에 방치한 상태였다. BC 2,000~AD 8세기 사이 형성된 것으로 추정하는데, 필자 눈에는 지형상 천재지변에 의한 독특한 돌무더기로 보였다. 사람, 낙타, 산양. 말, 사슴. 눈표범 등이 새겨져 있고, 곳곳에 주거생활을 꾸렸던 흔적이 남아있는데, 임의로 돌들을 옮겨 주차장을 만들고 통행로를 내는가 하면 좀도둑까지 기승을 부린다는 전언이어서 말문이 막혔다. 듣자니 영국 옥스브리지 분교까지 둔 마당에 적절한 역할이 있었으면 한다.
먼길을 되돌아와 휴식을 취한 뒤 서둘러 고선지 루트를 따라 비슈케크로 향하는 길. 여전히 담장 안 살림집은 허술했고 너저분한 거리는 초라했다. 하지만 한참을 내달리다 만난 들판은 어느새 낯빛을 바꿨다. 그야말로 일대 변신, 선명한 풀밭이 이어지더니 철길을 따라 강폭 가득 물길이 출렁였다. 바로 톈산산맥을 지탱해온 설봉들이 바로 대지와 연결돼있어 꿀, 꼬냑, 치즈가 세계적이란다. 간간이 스치는 트럭 말고는 변화무쌍한 봉우리가 전부.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커다란 덩치의 산들이 끊이지 않더니 코카서스를 빼닮은 풍광이 눈동자를 메우기 시작했다. 차이라면 단지 줄지어 서 있는 포플러 행렬뿐, 산자락에는 나무 한 그루는커녕 중턱을 덮은 옅은 풀빛마저 찾을 수 없는 산세에 연신 흥미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한참을 내달려온 끝에 비슈케크 중앙관청이 모여 있는 알라토 광장에서 레닌을 조우한 건 뜻밖이었다. 해설자에 따르면 옛 소련 위성국에 단 하나 건재한 동상. 그래선지 어설픈 교대식보다는 전사자 기념탑에 눈길이 갔다. 고마운 이는 키르기스스탄에 정착한 박성림 씨, 이분은 성실한 직업인이었다.
■ 프로필
- 기고활동을 이어가며 산문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교직 퇴임 후 기독교철학 분야와 문화교양학을 공부했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s://blog.naver.com/johash
- 본지에 “세상사는 이야기” 코너를 16년째 연재하고 있습니다.
※ 다음호(780호)에는 ‘중앙아시아 기행 - 우즈베키스탄 중심지를 걷다’가 이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