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9(월)
 

 "평택농악"은 몸으로 체감하고 익히는 세대 간 통합과 전승인 것

교육 수요자 60%만 수용, "전수교육관 신축" 시·시의회 관심 필요

 “평택농악, 드디어 세계의 신명이 되다” 지난해 말 유네스코 무형유산위원회는 프랑스 파리에서 회의를 열어 한국의 대표적 문화유산인 농악을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 결정했다. 우리나라 농악 가운데 가장 역동성과 연희성이 뛰어난 농악으로 평가받고 있다. 평택은 ‘소샛들’이라는 넓은 들을 끼고 있어 예로부터 농산물이 풍부하였고, 이는 평택농악을 이루는 중요한 배경이 되었다. 또한 평택 근처의 청룡사(靑龍寺)는 일찍부터 사당패들의 근거지가 되어 조선 말기에는 그들의 농악이 크게 발달하였다. 그래서 평택농악은 두레농악인 동시에 걸립패농악(승려들이 꽹과리 치면서 염불하고 공양하는 일)의 성격을 갖는다. 전문 연희패의 영향을 받아 더욱 발전해오던 평택농악은 인근의 안성·화성 등지와 함께 농악의 중심역할을 해오던 중 지난 1985년 중요무형문화재 제11-2호로 지정받으면서 웃다리가락의 대표적인 농악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본지는 총 3회에 걸쳐 ▶평택농악,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평택농악의 발생과 문화재 지정 ▶파일난장굿 ▶평택농악의 인간문화재 최은창 ▶평택농악의 인간문화재 이돌천 ▶평택농악의 인간문화재 김용래 ▶웃다리 평택농악의 특징 ▶대한민국 6대농악 평택농악의 발자취 ▶평택농악의 형태 ▶평택농악의 창조적 계승 ▶평택농악보존회 김용래 회장 인터뷰를 상세하게 보도한다. <편집자 말>

 ■ 평택농악보존회, 김용래 회장 인터뷰

- 평택농악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소감은

 먼저 이번 농악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과정에서 애써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 말씀드립니다. 항상 우리의 삶과 함께 해온 농악이 우리의 유산에서 전 인류의 유산으로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농악의 갖고 있는 공동체성, 역동성 등 문화적 가치가 제대로 조명 받게 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농악인의 입장에서 기쁜 마음을 금할 수 없으며 어려운 시기에도 농악을 지켜 온 선대예인들의 노고가 제대로 인정받게 된 점 또한 기쁘기 그지없습니다.  

- 유네스코에 등재되면서 평택농악에 대한 기대효과와 변화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유네스코에 등재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문화적 가치가 높아지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전 인류가 우리에게 농악을 잘 지켜내고, 후대에 온전히 전승하라고 요구하는 것이지요.

 또한 평택농악에 대한 보다 깊이 있는 학술적 연구가 이루어지게 되리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평택농악학이라는 연구가 자리 잡게 되길 기대해 봅니다. 현재 평택농악에 학문적 연구는 굉장히 단편적인데요, 앞으로 보다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길 기대합니다.

 유네스코는 직적접인 재정지원은 하지 않고 있습니다. 평택농악에 대한 지자체의 관심과 지원이 확대되기를 기대합니다.

- 시민들을 위해 평택농악애 대해 자세히 소개해 주십시오

 농악은 그 특징을 묶어 5개 권역으로 나누어지는 데요, 각 권역마다 국가에서 보존전승의 가치를 인정한 농악이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평택농악은 그중 가장 넓은 지역인 웃다리지역, 즉 서울, 경기, 충청, 강원서부를 아우르는 지역을 대표하여 국가지정으로 지정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인구 3,100만 명을 대표하는 농악인 것이지요. 1985년 문화재 지정이후 1,500여회의 초청공연, 100여회의 해외 공연을 실시하였고, 전국에서 20,000여명에 이르는 인원이 평택농악을 배우고 갔습니다. 올해에도 100여회가 넘는 국내외 공연이 있었고, 1,500여명 이상이 평택농악을 배웠습니다. 대한민국 농악의 중심역할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 평택농악의 발생과 문화재지정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평택농악의 역사는 모든 우리 민속이 그러하듯이 문헌에 남아 있는 자료가 미비하여 그 시작을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평택지역은 넓은 들판을 배경으로 농업이 발달하여 함께 두레농악이 발달했습니다. 자료를 통한 추측은 약 150여년의 역사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 이전에도 평택농악은 존재해 있었겠지요.

 공식적으로 평택농악이라는 이름이 세상에 나온 것은 1958년 전국농악경연대회입니다. 이 대회에서 내리 2년을 1등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1980년 제주도에서 열린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특별상을 수상하면서, 이게 계기가 돼서 1985년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게 되었습니다. 당시 최은창, 이돌천 선생이 인간문화재로 지정되었고요, 이후 2000년에 제가 인간문화재로 지정받아 현재까지 평택농악을 지키고 있습니다.

- 평택농악의 특징은 어떤 점들이 있는지

 평택농악의 특징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요, 먼저 판제가 굉장히 다양합니다. 다른 지역의 농악이 일반적으로 원형을 기본으로 큰 변화가 없는데, 평택농악은 원형, “ㄷ”자 모양의 당산벌림, “ㅁ”자 모양의 사통백이, 4열 종대 모양의 좌우치기 등 다양한 모양의 진풀이가 있습니다. 또한 꽹과리 가락이 다른 지역에 비해 발달하였습니다.

 그 중 가장 특징적인 것은 어른 어깨위에 아이들이 올라가 다양한 기예능을 연희하는 무동놀이입니다. 어른위에 아이가 올라가는 단무동, 어른위에 아이 둘이 올라가는 맞동니, 어른위에 어른이 올라가고 그 위에 아이가 올라가는 삼동, 농거리, 곡마단 등의 예능이 있습니다.

 평택농악은 저를 포함한 모든 단원들이 합심해 사라져간 무동놀이의 복원에 심혈을 기울여 왔습니다. 현재 전국에서 무동놀이의 전 과정을 연희하는 곳은 평택농악보존회밖에 없습니다.

- 평택농악보존회의 전수교육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평택농악보존회는 전수교육에 상당한 공을 들여왔습니다. 보존회의 사명이기 때문이지요, 현재 평택농악 전수교육은 일반시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상·하반기 일반강습, 일반시민 및 대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동하계 전수교육,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청소년예술단 “예운”, 초등생을 대상으로 하는 어린이 농악아카데미, 미취학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평택농악 1일 체험 등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또한 전승지정학교 4개교, 농악교실 2개교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미취학 아동부터 일반시민에 이르기까지 모든 연령층을 대상으로 과정을 개설하여 운영하고 있습니다. 보존회에서 상당한 노력을 기울인 결과인데요, 넉넉지 않은 보존회 재정에도 불구하고 상당부분 자체 예산을 들여 교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 평택농악의 공연은 어떻게 진행하고 계신지

 상설공연은 평택시 한국소리터 농악마을에서 4월부터 10월까지 진행됩니다. 평택농악의 고사, 판굿 등이 주로 공연됩니다. 그리고 해마다 5월에 평택농악 정기발표 공개행사가 있는데요, 평택농악의 원형을 제대로 보실 수 있는 몇 되지 않는 기회입니다.

 그리고 매해 9월에 대한민국 무형문화재 축제를 열고 있습니다. 이날은 평택농악뿐만 아니라 전국의 농악이 함께 모여 한자리에서 각 지역의 특색 있는 농악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줄타기, 탈춤, 판소리 등 다른 종목의 무형문화재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무형문화유산의 다양성과 신명을 느낄 수 있는 축제입니다.

- 평택농악을 오랫동안 해오셨는데요. 평택농악의 매력이라면 무엇일까요

 평택농악의 매력이라면 재미있다는 것입니다. 보는 사람만이 아니라 하는 사람도 정말 재미있습니다. 상모를 돌리고, 무동을 태우고, 장구를 치며 공연하고 있으면, 정말 재미있는 구성으로 정리해 놓았다는 생각이 들지요.

  그리고 아주 어린 아이부터 나이 많으신 어르신까지 함께 공연을 다니고 연습하는 것이 좋아요. 이제 이것이 정말 소중한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몸으로 체감하고 익히는 세대 간 통합과 전승인 것이지요. “우리 것을 지켜야 한다”라는 조금은 막연한 구호보다 훨씬 강력하고 훨씬 효율적인 공동체 형태를 지키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 평택농악을 지키고, 활동하면서 어려웠던 점은

 제가 감히 평택농악이 어려운 시절을 얘기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정말 힘든 시기를 지켜낸 분들이 있으니까요. 공연인원이 구성되지 못할 정도로 어려운 시기가 있었습니다. 무동놀이를 할 아이들도 없어 단원이 자기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하기도 했었습니다. 농악을 해서는 경제적인 안정을 얻지 못하기 때문에 다들 다른 일들을 하고 있을 때였지요. 그나마도 시간이 지나면 아예 발길을 끊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런 힘든 시기를 잘 이겨낸 분들이 있었기에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라는 큰 경사를 맞이하는 것 같습니다. 

- 평택농악을 지켜 온 보람은

 가장 큰 보람은 우리를 보면서 즐거워하는 사람들을 볼 때입니다. 그리고 평택농악을 배우기 위해 바쁜 시간을 쪼개어 찾아오시는 분들을 보면 보람과 함께 자부심도 생깁니다. 그리고 평택농악을 업으로 삼겠다고 열심히 땀흘리는 어린 친구들을 볼 때면 보람과 함께 이 아이들이 평택농악을 열심히 잘 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책임감도 느낍니다.

- 유네스코 등재 이후 활동계획은

 유네스코 등재로 인해 책임감이 훨씬 무거워졌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전 인류를 염두에 두고 활동을 해야 하는 것이지요. 먼저 교육에 보다 더 심혈을 기울이고자 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교육과정 외에 현재 학점은행제를 준비하고 있고, 연령에 맞는 교육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또한 외국인을 대상을 하는 교육프로그램도 함께 준비하고 있습니다. 특히나 평택은 미군이 많아 그들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 개발이 필요합니다.

 또한 다문화 사회에 맞는 사업들도 추진하고자 합니다. 더불어 현재 교육관 시설이 너무 열악한데요, 교육을 원하는 수요자의 60%정도 밖에 수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배우러 오셨다가 발길을 돌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전수교육관 신축은 예산문제가 해결되어야 하는데요, 이 지면을 빌어서 지자체의 보다 많은 관심과 지원을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국내외 초청공연은 보다 확대되리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해외교포 및 현지인들에 대한 평택농악 교육 강사 파견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아직은 초기 협의 단계입니다만, 해외현지 농악단에 대한 교육과 평택농악 지부 창립같은 평택농악을 세계에 알리는 활동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자 합니다. 

- 시민, 자치신문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은

 지금까지 평택농악은 소수 단원들의 힘을 기반으로 보존 전승이 이루어져 왔습니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 유산 등재를 계기로 평택농악은 보다 많은 시민들의 참여를 통해 보존전승의 체계를 확고하게 세우고자 합니다. 보다 많은 관심을 가져주시길 당부 드립니다.

 또한 평택농악보존회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의 전승단체로서 위상을 바로 세우고 시민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다양한 활동을 벌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의 무형문화유산은 문화강국 대한민국의 소중한 자산임을 항상 잊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안연영 기자
ptl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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