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9(월)
 

■ 노병에게 박수를

 우리는 흔히 나타난 실적만 가지고 모든 것을 평가하려 든다. 과정이 무시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1등만을 강요받으며 자라왔기 때문이다. 시지프스 신화가 갖는 진정한 감동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끝없는 실패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지속하는, 그 무모한 도전에 있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 인간의 모습이기도 하다. 도대체 인간의 궁극적인 도달점이란 무엇인가. 죽음밖에 더 있는가. 그 허무의 공간을 극복하기 위해, 우리는 오늘도 무엇인가를 창조하려 애쓰며, 끝없는 시행착오를 계속하는 것이다.

 다음은 내가 오래전 서울에서 교사로 있을 당시의 실화이다. 우리는, 체력장인가 뭔가를 하기 위해, 한 고등학교에 갔다. 감독교사로 참가한 것이다. 그것을, 왜 꼭이, 대지가 뜨겁게 달아오르는 계절을 택하는지, 그리고 입시는 또 왜 그렇게, 땅이 탱탱 어는 때에 맞추는지, 불만스러워 하면서였다.

 초여름 오후의 한낮, 수험생들은 한 점이라도 더 따내기 위해, 온몸의 힘을 쥐어짜내고 있었다. 도대체 공부를 더 하기 위해서, 이런 요식행위를 꼭 거쳐야 하는지, 이런 것도 점수화해야 하는지, 알 수 없는 속이었다.

 나는 속으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말하자면 나는, 무척 지쳐 있었던 모양이다. 끝 종목인, 오래 달리기가 시작되었다. 나는 기록을 맡았는데, 이젠 졸음까지 몰려들고 있었다. 나는 계측계가 수험생의 손바닥에 기록한 숫자를 기계적으로 옮겨 적었다. 한참 후, 그마저 모두 끝나가고 있었다. 이제 수험생을 귀가시키고 개별 종합 점수만 환산해 내면 되었다. 지루한 하루였다. 마지막 팀이 뛰고 있었다. 나는 시선을 들어 그들을 보았다. 그리고 제트기처럼 씽씽 달려주었으면 했다. 그 짧은 시간이 더욱 길게 느껴진 때문이었다. 나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그들은 힘차게 출발했다. 그런데 한 사람이 문제였다. 나보다도 더 늙어 보이는 수험생이었다. 그는 35세 전후로 보였다. 게다가 평발인 모양이었다. 뛰는 게 아니라 기는 것 같았다. 허공을 밟듯 허청거리며 뛰었다. 다른 수험생들은 이미 다섯 바퀴를 완주했는데, 그는 이제 겨우 세 바퀴 째였다. 더 뛰어봐야 기본점수를 넘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고 달렸다. 그는 힘에 붙이는지 노래를 시작했다. 싸아나이로 태어나서어 하알 일도 많지마은……. 다른 수험생들이 그에 맞춰 합창을 시작했다. 싸나이로 태어나서 할 일도 많지만……. 노병은 신이 났는지, 이젠 노래에 박수까지 치며, 네 바퀴를 돌았다. 다섯 바퀴를 돌기 시작하자 수험생들을 노래와 박수를 치며 그를 따라 돌았다. 그런데 계측계의 외침이 들려왔다. 만점! 수험생들은 일제히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나는 그 외침을 그대로 적었다. '만점.'

 나는 포장마차에 들려 소주를 한 잔 했다. 하루의 지루함이 늙은 수험생으로 인해 모두 상쇄된 기분이었다. 점수에 연연하지 않고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완주한 노병, 한 점을 다투는 살벌한 경쟁 터에서 그를 격려한 수험생, 나중에 문제가 될 소지가 있음에도 만점을 준 계측계, 이들 모두의 인간애로 만들어진 한 편의 짤막한 드라마였다. 거기서 한국의 밝은 미래를 보았다. 아직은, 하는 생각 같은 것 말이다. 나는 아직도 그 장면이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고 있다. 노병은 지금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 방영주 소설가·시인 약력

 <월간문학> 소설 당선, 소설집 <거북과 통나무> <내사랑 바우덕이> <카지노 가는 길>, 장편소설 <무따래기>(상·하권) <우리들의 천국> <카론의 연가> <국화의 반란> <돌고지 연가> <대무신왕> 등, 한국소설가협회 중앙위원(연락처 ☎ 011-227-0874, 주소: 450-760 경기도 평택시 평남로 281 삼성(아) 105동 805호, 이메일: youngju-5@hanmail.net)

※ 방영주 소설가·시인의 세상을 바라보는 지혜, '소설가 방영주의 세상만사(世上萬事)'가 연재됩니다. 시민,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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