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30(화)
 

9차례 7년 3개월 공적 확인… 국가보훈부에 서훈 상향 요청 계획 

 

안재홍 학술발표회.jpg

 

“여러 관련 자료를 찾아보니 민세 안재홍은 9번에 걸쳐 7년 넘게 감옥살이를 한 것이 맞습니다. 이제라도 국가보훈부는 국내 독립운동의 핵심 인물이었던 민세에 대한 서훈을 상향해야 합니다. 안재홍은 투옥 횟수나 기간, 비타협민족주의의 대표적 인물로 신간회를 창립하는 등 독립운동사에 끼친 영향 등으로 볼 때 건국훈장 1등급 서훈을 받기에 충분합니다.”


1997년 『안재홍의 신민족주의 사상과 운동』으로 중앙대 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이래 25년 가까이 안재홍 연구에 몰두한 역사학자인 김인식 중앙대 교수는 시종일관 진지하게 안재홍의 항일운동 업적을 하나씩 검토하고 기존 연구의 오류를 밝혔다.

 

평택 출신의 대표적인 민족운동가 민세 안재홍은 일제강점기에 국내에서 활동하며 독립운동가로서는 가장 많은 9번 투옥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1945년 8월 16일에는 국내 민족지도자를 대표해 ‘해내 해외 삼천만 동포에게 고함’이라는 감격의 첫 해방연설을 가진 바 있다. 


민세안재홍선생기념사업회는 8월 3일(목) 오후 3시 평택시중앙동청소년공부방에서 안재홍 선생 서훈 상향 독립운동 추가 공적 학술연구 발표회를 개최했다.


김 교수는 이날 발표에서 1989년 서훈 당시 안재홍의 공적 개요 등을 분석한 후 당시에는 관련 연구 자료가 불충분해 1912년 동경유학생 학우회, 1919년 대한민국 청년외교단과 조선일보 필화, 1929년 광주학생운동 민중대회 사건, 1937년 군관학교 사건 등 5차례 옥고에 5년 8개월만 인정된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축적된 안재홍 관련 각종 사료를 검토한 결과 1932년 재만동포 구호의연금 관련 옥고도 국내 비타협미족주의의 대표적 지도자였던 안재홍에 대한 일제의 탄압으로 인한 것으로 봐야 하며, 1938년 흥업구락부 사건과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인한 고초도 여러 근거 자료가 있는 만큼 9차례 7년 3개월의 공적이 확인된다고 밝혔다. 


또한 투옥이 되지는 않았으나 다양한 증거 자료를 들어 1913년 중국 여행 중 독립운동 단체 동제사와 1915년 중앙학교 학감 시절 신아동맹당, 조선산직장려계 활동 등도 민세의 독립운동 공적으로 인정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1920년대 대표적 국내 민족운동으로 큰 영향을 끼친 조선물산장려회 이사 활동과 특히 총무간사로 창립에 핵심 역할을 한 신간회 운동 등도 민세의 독립운동 공적으로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강조했다. 


안재홍기념사업회와 안재홍 선생 서훈 상향 시민추진위원회는 이번 학술발표 자료와 기타 증빙를 보완해 시민 서명지 등과 함께 국가보훈부에 안재홍 선생에 대한 서훈 상향을 요청할 계획이다. 

 

김지영 기자 ptl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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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홍 ‘서훈 상향 및 독립운동 추가 공적 학술발표회’ 성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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