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재 시인
막차를 놓치고
외길을 따라 걷는 어둡고 긴 밤
버스비로 내지 못한 동전이 주머니 속에서
하루 치의 소리를 내며 짤랑거린다
둔포천이 가까워질수록
백모단 향기로 마중 나온 그녀의 발걸음
무을녀 팔랑거리는 후레아 치마를 입고
외둥이 깜박거리는 골목길에서
긴 그림자 늘이고 서 있는 여자
석연화 꽂아 놓은
실금 간 갈색 토분에
물 주는 그녀의 가는 손가락을
문살에 붙은 드라이플라워처럼
스치듯 짧게 쳐다본 순간,
발뒤꿈치를 들고
먼 길을 돌아 그녀의 옛집으로 가는
무명의 시인이 있다.
그녀의 미소가 다육이 잎처럼
무장무장 번지는 둔포천 너머로
그녀의 푸른 옛집이 보인다.
※ 백모단·무을녀·석연화 : 다육 품종들.
■ 작가 프로필
경기도 평택 출생. 200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집 <투명인간>, <고흐의 사람들> 외 저서 <이기적인 시와 이기적인 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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