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30(화)
 

시가 있는 풍경.jpg

 

권혁재 시인


막차를 놓치고

외길을 따라 걷는 어둡고 긴 밤

버스비로 내지 못한 동전이 주머니 속에서

하루 치의 소리를 내며 짤랑거린다


둔포천이 가까워질수록

백모단 향기로 마중 나온 그녀의 발걸음

무을녀 팔랑거리는 후레아 치마를 입고

외둥이 깜박거리는 골목길에서

긴 그림자 늘이고 서 있는 여자


석연화 꽂아 놓은

실금 간 갈색 토분에

물 주는 그녀의 가는 손가락을

문살에 붙은 드라이플라워처럼

스치듯 짧게 쳐다본 순간,


발뒤꿈치를 들고

먼 길을 돌아 그녀의 옛집으로 가는 

무명의 시인이 있다.


그녀의 미소가 다육이 잎처럼

무장무장 번지는 둔포천 너머로

그녀의 푸른 옛집이 보인다.


※ 백모단·무을녀·석연화 : 다육 품종들.



■ 작가 프로필


경기도 평택 출생. 200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집 <투명인간>, <고흐의 사람들> 외 저서 <이기적인 시와 이기적인 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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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풍경] 둔포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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