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2-07-06(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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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하식 수필가·시조시인

욥기는 창조주의 절대 주권에 관한 일대 천명(闡明)이자 길흉화복에 대한 근원적 응답이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욥기 1:1)가 당하는 고통에 대해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선언적 지점이 뚜렷하기 때문이다. 당대 의인을 자처하던 욥에게 행하신 하나님의 시험은 그만치 가공할 충격이었다. 그에게 덧씌운 고난은 원초적 신앙을 검증하는 각본이다. 가정의 행복이든 물질의 부요(富饒)든 간에 그것은 절대자의 권역일 뿐, 일개인의 의지적 노력에 달려 있지 않다는 확증이다. 응당 의인은 단 하나도 없기에 우리는 욥을 만드신 분께 항의할 근거는 아예 없다. 정금처럼 나올 것을 예비하심으로 인해 현재의 극심한 고통을 변론하거나 상쇄할 근거조차 없다. 그저 죽음을 구걸하는 자 앞에서는 천국마저 보이지 않는 언약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상대적 의인에 속했던 욥에게 불어닥친 고난은 이에 그치지 않는다. 안타깝게도 그 배우자마저 그에게 저주를 퍼붓는다. 그가 소생하여 재기할 소망은 거지반 없어 보이는 국면이다.


욥을 울린 세 친구를 통해서는 온갖 요설(饒舌)의 위험성을 연신 경고하고 있다. 그들은 한목소리로 욥의 순전하지 못한 믿음을 추정한다. 남이 미처 모르는 욥의 불의에 대해 집요하게 추궁해댄다. 욥도 사람이기에 자조적 한탄을 시작한다. 기세가 오른 친구들은 무서운 죄의 결과가 아니고서는 도무지 이런 사태가 올 수 없음을 들어 마구 을러댄다. 그러나 욥은 쉽사리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는다. 예상이 빗나가자 친구들은 욥을 에워싸고 약을 올린다. 그들이 토설하는 현장에는 온갖 궤변만이 난무한다. 인간의 뿌리 깊은 죄성을 깊숙이 들여다볼 수 있는 결정적 장면이다. 겉으로 내보이는 동정은 우월한 감정에서 나오는 한낱 위장일 따름이다. 예수그리스도가 돌아가신 십자가 형틀이 적나라한 현장이었다. 친구의 파멸을 재촉하려는 가면들 속에서 내 모습을 찾아내는 일이야말로 두고두고 풀어가야 할 숙제인 셈이다. 범상치 않은 욥의 위대성이 그 순간 번득인다. 의로운 욥이 회개를 떠올린 터였다. 욥은 곧바로 세 친구를 위해 간구한다. 우리가 호소할 대상은 오로지 하나님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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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락한 천사의 궤계마저 창조주의 의도적 도구에 불과하다는 말씀은 퍽 흥미롭다. 땅을 두루 살피다가 돌아온 사탄을 보고 하나님께서는 마치 피조물처럼 장담하신다. “네가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는 세상에 없느니라.” 마귀의 대처는 예상치를 벗어나지 않았다.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주께서 그와 그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울타리로 두르심 때문이 아니니이까? 주께서 그의 손으로 하는 바를 복되게 하사 그의 소유물이 땅에 넘치게 하셨음이니이다.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모든 소유물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틀림없이 주를 향하여 욕하지 않겠나이까?”(욥기 1:9~11) 하나님의 대답은 다소 의외이셨다. “내가 그의 소유물을 다 네 손에 맡기노라. 다만 그의 몸에는 네 손을 대지 말지니라.”(욥기 1:12) 사탄은 잔혹할 만큼 욥의 일가를 난도질했다. 욥기를 묵상하며 그때마다 간구하는 제목은, “오 주님, 이와 같은 일은 욥 하나로 족하나이다!”이다.


필자가 주목한 바는 창조의 비사(祕史)이다. “그는 북쪽을 허공에 펴시며 땅을 아무것도 없는 곳에 매다시며, 물을 빽빽한 구름에 싸시나 그 밑의 구름이 찢어지지 아니하느니라. 그는 보름달을 가리시고, 자기의 구름을 그 위에 펴시며, 수면에 경계를 그으시니 빛과 어둠이 함께 끝나는 곳이니라. 그가 꾸짖으신즉 하늘 기둥이 흔들리며 놀라느니라. 그는 능력으로 바다를 잔잔하게 하시며”(욥기 26:7~12) “바람의 무게를 정하시며 물의 분량을 정하시며, 비 내리는 법칙을 정하시고 비구름의 길과 우레의 법칙을 만드셨음이라.”(욥기 28:25~26) “하나님의 입김이 얼음을 얼게 하고 물의 너비를 줄어들게 하느니라. 또한 그는 구름에 습기를 실으시고 그의 번개로 구름을 흩어지게 하시느니라.”(욥기 37:10~11) 창조주께서는 끝으로 욥에게 물으신다.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땅의 너비를 네가 측량할 수 있느냐? 가슴 속의 지혜는 누가 준 것이냐? 수탉에게 슬기를 준 자가 누구냐? 누가 지혜로 구름의 수를 세겠느냐? 누가 하늘의 물 주머니를 기울이겠느냐? 티끌이 덩어리를 이루며 흙덩이가 서로 붙게 하겠느냐?”(욥기 38:4, 38:18, 38:36~38) 글자 그대로 창조 사역의 비경(祕境)을 보았다.


고난과 죄의 문제는 꽤나 난삽(難澁)한 데가 있다. 하지만 죄 없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실험 삼아 시험하셨다고 단정한다면 치명적 오류를 범하고 만다. 적실한 것은 욥 또한 죄인이라는 사실이다. 그 역시 원죄의 사슬에 묶여 전적으로 부패한 존재였다. 욥의 위로자를 자처한 세 친구는 저마다 자신들의 자랑을 드러내는 데 바빴다. 욥과 친구들이 벌이는 신랄한 논쟁은 그들을 자칫 그릇된 곳으로 빗나갈 수 있었다. 벗이라는 알량한 명분에 갇혀 하나님의 의를 재단하는 죄악을 저지를 뻔했다. 영적인 깨달음 없이 행하는 욥의 의로움 정도로는 한 줄기 빛조차 기대할 수 없었다. 이윽고 욥을 향한 하나님의 답변은 축복을 더한 회복이었다. 따라서 욥의 단말마적 고통을 일회성 시험으로 치부한다면 이는 교만이다. 소유를 갑절이나 받은 욥의 선물은 천성으로 향하는 과정이었다. 이미 구원받은 영혼을 더하면 자녀의 숫자는 아들 열넷과 딸 여섯이었다.



■ 프로필


- 고교생에게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평택에서 기고 활동과 기독교 철학박사(Ph.D.) 과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 꾸립니다.

- <평택자치신문>에 “세상사는 이야기”를 13년째 연재하는 중입니다.

 

※ 다음호(625호)에는 ‘지혜문학과 떠난 자유여행 - 솔로몬이 깨달은 것’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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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지혜문학과 떠난 자유여행 ‘욥이 뛰어넘은 시험’ (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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