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3(금)
 
조하식(한광고 교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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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눈에 차분한 대지. 깔끔히 정돈된 느낌은 아니로되 곳곳에 인위의 칼자국은 많지 않았다. 다만 서서히 불어 닥칠 난개발 열풍을 앞으로 어찌 막아낼지는 미지수. 일행의 관심을 증폭시킨 건 자바원인의 발굴지가 여기서 불과 90km밖에 떨어지지 않았다는 가이드의 첨언이었다. 거지반 귀를 쫑긋 세웠으나 우리 부부에겐 관심 밖이다. 뭇 영혼을 좀먹는 진화론 자체가 허무맹랑한 가설일뿐더러 세간을 들썩였던 발표자의 자백처럼 유인원의 뼈를 아교풀로 붙여 학계를 감쪽같이 속였다는 게 가감 없는 진실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택시를 이용해 돌아보자던 일부의 제안은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도시 전체에 점점이 박힌 유적들. 지나치듯 시내를 한 바퀴 돌아보니 경주에 비하면 어림없다. 게다가 아예 주차 단속을 못할 만큼 교통질서 또한 어지러웠다. 낮은 의식수준으로 인해 고적의 상당수가 몹시 망가진데다 복원 작업마저 지지부진하다고 한탄했다. 애초 기대와는 한참이나 동떨어졌다는 게 대체적인 반응이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정도가 좀 지나치다. 점심은 엊저녁과 비슷한 메뉴. 그래선지 선뜻 손길이 가지 않아 애써 허기를 메우는 데 그쳤다. 덤으로 얻은 것도 있었다. 바로 옆 전통 세공품 작업장에서 장인정신이 투철한 장인을 생생히 지켜본 터. 좀처럼 보기 드문 장면이었다. 잠시 소규모 박물관을 겸한 판매점을 둘러본 뒤 천천히 물놀이장으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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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요강물을 따라 즐기는 <튜브 래프팅과 구아삔둘 동굴 체험>. 가는 길에 들쭉날쭉 뙈기논들이 널려있었다. 이채로운 건 참새 공격을 막아내느라 모기장을 촘촘히 쳐놓은 벼논. 셔틀버스가 일행을 토해 놓으니 아낙들이 일손을 멈추고 호기심어린 눈빛을 번득였다. 우리는 일제히 검고 커다란 튜브를 둘러메고 강가로 갔다. 하반신을 물살에 적시는 1인 래프팅. 상하(常夏)의 날씨는 노출된 살갗의 화상을 걱정할 만큼 불볕이었다. 온몸을 고무튜브에 내맡긴 채 그리 맑지 않는 강물에 실려 유유히 흘러가는 물놀이. 관광의 일환이라지만 돌아보매 그다지 권장할 만한 프로그램은 아니다. 이어진 동굴체험 역시 별 가치 없는 낡은 고택을 대충 훑어본 느낌이랄까. 홍보지를 화려하게 장식한 세계 4번째의 크리스탈 석주는 중국에서 보았던 여느 종유석이며 석순에 비해서도 한참 뒤떨어지는 상품이어서 살아있는 나의 감감에는 전연 와 닿지 않았다. 밋밋한 동굴의 민낯을 상대하기 민망해서인지 동굴 천장에 찰싹 달라붙은 자그마한 박쥐조차 솔직히 신비롭기는커녕 식상했다. 애써 잔잔한 미소마저 지어보이기 힘들 만큼. 소득이라면 오가며 감상한 인도네시아의 대자연. 그냥 미지의 땅에서 남다른 걸 체험했다는 데 그 의미를 둘밖에. 돌아 나오는 길에 연달아 찾은 <쁘람바난 힌두사원> 및 <치마 사원>과 <세우 사원>. 첫째는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으로써 지구촌을 통틀어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는데 이 분야에 워낙 조예가 없어서인지 조형미나 건축미를 읽어내는 감도마저 극히 미약했다. 가이드는 한사코 힌두문화의 정수를 맛볼라치면 그윽한 일몰에 푹 파묻혀야 제 맛이라지만 내게는 하나의 고건축 석조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둘째 또한 앙코르와트를 어설프게 닮은 부조물에 지나지 않았고, 마지막은 가이드가 주문한 대로 느긋이 기단에 걸터앉아 서산에 지는 해를 바라보며 감상해 봤지만 이내 목 잘린 부처의 애처로움을 감지했을 뿐 별스런 공감각에 흠뻑 빠져들지는 못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 누군가 작정한 듯 사향고양이가 배설한 똥커피 얘기를 꺼냈다. 생각건대 발효향 나는 커피똥이 무한정 나올 수도 없으려니와 감칠맛이 돌면 얼마나 돌까 싶어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그보다는 길가에 늘어선 망고나무며, 나그네를 감싸는 대나무군락에 더 눈길이 가는 걸 난들 어쩌랴. 화산재가 흩날리는 길목. 도로 사정이 엉망진창인데다 기본적인 안전시설마저 턱없이 부족해 한눈에 위험해 뵌다. 여기저기 둘러봐도 아파트는 8층 이상이 없다. 그렇고 그런 저녁을 들고 감상한 공연은 <라마야나 발레>. 한마디로 여태껏 관람한 연극 가운데 제일 재미없는 내용이었다. 뜻 모를 줄거리는 차치하고 유난히 전개가 느린데다가 연출마저 정교하지 못해 전반적으로 감흥이 흐물흐물했기에. 동서양이 그렇듯이 활쏘기를 통해 공주의 신랑감을 뽑는 소재는 널렸다. 우여곡절을 겪는 동안 차라리 고문에 가까운 오감을 추슬러야 했다. 차에 올라 떠올려보니 유장한 서사시는 고사하고 풀무불에 뛰어든 한 여인의 순결을 목숨과 바꾸려는 초점 말고는 언뜻 짚이는 게 없다. 이처럼 진부하고 허접한 극본을 누구라서 보랴마는 관람석 위치에 따라 요금을 매긴 건 무척 잘한 일이다. 무료하게 두 시간 반을 흘려보낸 끝에 밤 10시를 넘겨서야 잠자리에 누우니 온몸은 이미 파김치였다.
 
※ 다음호(347호)에는 인도네시아 기행 세번째 이야기 ‘족자카르타 : 머라피’가 이어집니다. 독자, 시민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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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인도네시아 기행 ‘족자카르타 : 요요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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