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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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영주(왼쪽 사진) 소설가의 중편소설 <천국의 별>이 약 6개월에 걸쳐 연재됩니다. <천국의 별>은 배달국 치우천왕의 이야기로, 치우천왕이 동북아를 평정하는 가슴 벅찬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독자, 시민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편집자 말>
 
■ <중편소설> 천국의 별
 
 단기 앞 2708년 10월 3일이었다. 이는 치우천왕의 재위 109년이 되던 해였으며, 그의 나이는 151세였다. 치우천왕은 거의 식음을 전폐하고 기도에 들어 있었다. 이번 치우천왕의 기도는 자신의 생전에 지은 죄를 삼신에게 빌기 위함이었다. 치우천왕은 제후국들의 위협이 계속되는 어려운 시기에 왕위를 물려받았다. 아마도 그게 비극의 씨였을 터였다. 다른 한편으로 보면, 시대가 그런 인물을 요구하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아무튼 치우천왕은 배달국을 요지부동한 반석 위에 올리기 위하여 끊임없이 전쟁을 치러야 했다. 그 과정에서 엄청난 사람들을 이승에서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다. 치우천왕은 직접 수많은 동족도 살해했다. 치우천왕의 가슴 한복판으로 가끔 회한이 물밀 듯 몰려들었다. 그들의 가족은 지금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치우천왕은 피치 못할 사정이었다고, 스스로 돌려 생각해 보지만, 아무래도 살인은 살인이었다. 거기에 어떤 명분도 더하여 붙일 수는 없었다. 게다가 자신은 죽어 가는 생명도 되살려야 할 임무가 있는 신선도인이었으며, 배달국의 국시는 다름 아닌 홍익인간이었다. 그런데 자신은 종주국의 이익만을 생각하여, 반대 세력을 창칼로 탄압한 것이 아닌가 하는 자책이 들었다. 무슨 악업으로 이승에 왔기에 그랬는지 진정 모를 일이었다. 아니…… 그런 무리들을 방치하였더라면……? 더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리고 고통을 받지는 않았을까……? 하지만 말이다……! 아, 그래…… 좀 더 좋은 방법은 없었을까……? 치우천왕은 서토를 평정하고부터 번민에 몸을 떨었다. 하여 치우천왕은 생의 마지막 백일기도를 하기로 결심한 거였다. 치우천왕은 매일 새벽에 일어나 목욕재계를 했다. 치우천왕은 떠오르는 해를 향하여 백 번 절하고, 무릎을 꿇어 향불을 살랐다. 전쟁에서 죽은 원혼들을 위무하기 위함이었다. 백일을 하루 같이 그랬다. 오늘이 그 마지막 날이었다. 동시에 자신의 삶을 끝막음하는 날이기도 하였다. 치우천왕은 진작 그것을 알고 있었다.

 치우천왕은 운사(雲師)의 부축을 받아 비척거리며 궁궐로 들었다. 거기에는 백관이 모두 모여 있었다. 웅씨국에서 한동안 비왕의 임무를 맡아보고 있던 치우천왕의 장자 치액특도, 부친의 부름을 받고 와 있었다. 치우천왕은 맏아들을 보자 참으로 반가웠다. 10년 만이었다. 벌써 아들의 나의 28세였다. 치우천왕은 늠름하게 장성한 치액특을 다시 보았다. 치우천왕은 모든 시름이 놓이는 듯했다. 치우천왕은 용상에 앉아 아들에게 미소부터 던졌다.
 "치액특, 이리 가까이 와라."
 치액특이 부친의 앞으로 나갔다.
 치우천왕은 맏아들의 손을 잡았다.
 "내 이제 그만, 너에게 왕위를 물려 줄 때가 온 모양이다."
 "부황폐하,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것이옵니까?"
 "오늘이 나의 임종일이다……."
 "부황폐하……."
 치우천왕의 몸은 옆으로 비스듬히 기울었다.
 "지금 어디서 누군가 날 부르고 있어…… 헌데 알 수가 없군…… 너무 희미해…… 아마도 한밝산 높으나 높은 곳에 날아올라, 이 땅의 삼신을 주관하시는, 마고대신님은 아닐 터이지……."
 치액특은 부친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부황폐하, 고정하시옵소서."
 치우천왕은 희미하게 웃었다.
 "나의 피는 무척이나 더럽혀져 있을 테니까. 그런 영혼을, 저 순결한 한밝산이 받아 주겠어……. 아니야, 항상 어디서나 희생양이란 필요한 것이지……. 하여, 나도 삼신님에게 제사를 지낼 때면 늘 희생을 받쳤지……. 그래, 그것만은 삼신님께서도 받아주셨어……. 아들아, 너만은, 날 피에 굶주려 날뛰었던 야차가 아니라,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고 기억해 주면 좋겠다……."
 이번에는 치우천왕의 전신이 앞으로 쏠렸다. 안면과 손에 심한 경련이 일고 있었다. 호흡도 몹시 거칠었다. 치액특은 양팔을 벌려 부친을 안았다.
 "정신을 차리옵소서……."
 치우천왕은 단전에 힘을 모아 자세를 바로 했다.
 "운사는 들으시오. 내, 오늘 부로, 장자에게 왕위를 양도하겠소. 이제 웅씨국 비왕 치액특은 배달국 15대 천왕이오. 오늘부터 시작될 제천행사가 끝나는 대로, 운사의 주관 하에 한 치의 흐트러짐이 없게, 황제 즉위식을 치러, 만방에 배달국 천왕의 권위를 세우게 하시오."
 "천왕폐하, 분부 받들어 거행하겠나이다."  
 "운사, 또 있소."
 "폐하, 어떤 영이옵니까?"
 "소도터 한편에 지금 즉시, 마른 장작으로 단을 쌓게 하시오. 내가 죽으면 그 위에 올리고 불을 지르시오. 난, 동족을 살육한 인간이오. 그것도 아주 많이……. 한웅천왕님 시절부터 죄가 많은 사람은 태워, 그 죗값을 치르고, 죄의 흔적이 이 세상에 남지 않도록 했잖소……."
 운사는 부복(俯伏)을 했다.
 "항공하옵니다, 폐하. 제발 그것만은 거두어 주시옵소서."
 백관이 모두 엎드려, 운사가 한 말을 복창했다. 치액특은 치우천왕을 붙들고 하염없이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 치우천왕은 눈을 부릅떴다.
 "운사는 날 힘들게 하지 말고, 내가 말하는 대로 따르시오. 거기에는 속죄의 뜻 이외에, 나의 소망도 하나 담겨 있소. 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죽 생각해 왔던 것이오. 나의 혼은 연기를 타고 저 하늘로 올라가 별이 될 생각이오. 그래서 어둠 속에 몸을 숨기고 있다가, 어디서건 한민족을 침략하려는 기운만 일면 어김없이 나타날 것이오. 그 혜성은 구부러진 꼬리가 달렸을 터인즉, 그것이 가리키는 곳에, 틀림없이 적군이 있을 것이오. 미리 알고 대비를 하시오. 만약 그들이 침공하여 우리 민족이 어려운 상황에 처하면, 나는 배달족 군사들의 몸에 강림하여, 적을 물리치도록 도울 터이오."
 치우천왕의 몸은 다시 흐트러져 가고 있었지만, 목소리만은 또랑했다.
 "모든 일에는 흥망성쇠가 있는 법. 하지만 한배달족은 앞으로 어떤 어려운 일이 있어도, 결국은 저 한밝산 터를 중심으로 영원무궁할 것이오. 왜냐하면 삼신님이 돌볼 것이며, 저 하늘에 내가 버티고 있기 때문이오."
 주위는 조용했다. 아니, 숙연했다. 만약 치우천왕이 신선도를 수련한 사람이 아니었다면, 그가 150세를 넘게 장수할 수가 없었을 뿐더러, 이렇게 정신을 차려 자신의 하고 싶은 말들을 논리적으로 남에게 옮길 수도 불가할 터였다. 이제 치우천왕은 혼신의 힘을 모아, 마지막 안간힘을 다하고 있었다.
 "운사, 제천행사는 늘 하던 대로 하시오. 오늘 삼신님의 경배에 최선을 다하란 말이오. 그리고 모두 모여, 먹고 마시며, 노래하고 춤을 추시오. 죽음은 어쩌거나 새로운 탄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겠소. 여러분의 앞에 천왕이 또 나타났고, 저 하늘에는 별이 하나 더 추가되잖소."
 치우천왕은 끝으로 남은 진기마저 다 써 버렸는지 축 늘어져 버렸다. 입멸에 든 거였다. 백관은 치액특을 따라 통곡을 터트렸다. 그러나 울고만 있을 일이 아니었다. 그들은 치우천왕의 유언을 이행해야 했다. 운사는 오늘 저녁에 치우천왕의 장례식을 치르고, 내일 아침 해가 떠오르는 시간에 맞춰, 황제 즉위식을 거행하기로 하였다. 그 나름대로, 뭔가 의미가 있을 듯싶어서였다. 운사는 치우천왕의 명대로 음울한 장례식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를 여는, 축제의 한마당이 되도록 배려했다.
 
 
■ 방영주 소설가·시인 약력
 
<월간문학> 소설 당선, 소설집 <거북과 통나무> <내사랑 바우덕이> <카지노 가는 길>, 장편소설 <무따래기>(상·하권) <우리들의 천국> <카론의 연가> <국화의 반란> <돌고지 연가> <대무신왕> 등, 한국소설가협회 중앙위원(연락처 ☎ 011-227-0874, 주소: 450-760 경기도 평택시 평남로 281 삼성(아) 105동 805호, 이메일:
youngju-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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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천국의 별(18회) - 방영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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