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3(금)
 
조하식(한광고 교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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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주제는 백석산. 길게 뻗은 태항산 줄기를 만난 건 래원(淶源)’이란 팻말을 본 지 불과 몇 분 뒤였다. 하북성에 흐르는 강 이름 래(), 그 근원을 이루는 물이 끊이지 않고 흐르는 모양을 합쳐 부르는 이름이랬다. 이윽고 톨게이트를 벗어나 시내 진입. NISSAN 가게는 거기에도 있었다. 현지식으로 이른 점심을 들고 당도한 백석산 주차장. 입구에 세운 여러 팻말인즉 유네스코의 세계지질공원을 필두로 중화인민공화국의 국가지질공원, 전국청소년과기교육기지인 국가삼림공원, 하북 명산인 AAAA국가급풍경구 등으로 등재한 돌비였다. <백석산(白石山)>이라 함은 석회 성분을 품은 바위가 흰색을 띄기에 붙여진 이름. 우리말로는 흰돌산인 셈이다. 하긴 한국에는 흰돌산기도원도 모자라 백석대학교까지 있고 보면 브랜드(?)의 가치는 높은가보다. 시선을 넓혀 몸을 돌려 바라보니 산 자체가 회백색 대리석으로 이뤄져 군대군데 한백옥과 초백옥들이 눈에 띄었다. 일단 1,500m까지는 셔틀버스를 이용해 올라갔다. 가이드의 말로는 백두산과 원가계를 버무려놓은 듯한 풍광이라는데 막상 둘러보니 장가계의 짝퉁쯤이랄까. 따라서 홍보지의 묘사처럼 황산의 기묘함, 화산의 웅장함, 장가계의 수려함이 공존하는 수사는 가당치 않다. 해발 2,096m, 9개의 깊은 계곡과 80여 개의 봉우리로 이뤄진 뫼. 이때까지도 여기가 트래킹에 가까운 코스라는 사실을 다들 알 리 없었다. 등산로는 거의 잔도(棧道). 뜻 그대로 벼랑에 선반처럼 길을 달아냈다. 두꺼비를 딛고 선 잡신상을 두고 동문에서 출발한 산행은 남천문을 지나 오르막과 내리막을 반복했다. 가파른 산중턱에 오솔길을 낸 중국인의 집념은 대단하다. 일부 전문가의 설계에 의해 상당 부분을 사형수를 동원해 시공했다지만 그만큼 위험도가 높은 난공사일뿐더러 보통 정치한 기술로는 엄두조차 내기 어려운 역작임에 분명하다. 제법 비경을 지닌 동적벽잔랑을 지날 때는 마치 지구지층의 박물관에 들어온 기분. 아슬아슬 협곡에 걸친 선인쇄화에 삼불조성은 태항지신을 받들고 굽이굽이 쌍운봉이나 불광정은 청운봉을 떠받치는 듯 초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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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과 땅을 잇는 구름다리. 신선한 대기를 마시며 오슬오슬 잔도를 걷는 즐거움은 적잖다. 특히 길손들의 가슴을 저미는 부분은 자연을 아끼는 중국인의 마음. 하찮은 나무 한 그루를 살리기 위한 섬세한 시공술이 실로 놀랍다. 현기증 나는 위를 보나 아찔한 아래를 보나 경이로워 탄성이 절로 터지는 경지. 시멘트로 만든 잔도 한가운데를 뚫고 나오는 나무를 쳐다보노라면 대자연을 소중히 여기는 씀씀이에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잔도 자체가 돈벌이라는 반론도 있지만 가녀린 수목의 생명을 보호하겠다는 의지를 한사코 폄하하기는 궁색하다. 비운구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오르는 벼랑. 얼마나 치솟아 올랐는지 기계조차 버거워할 정도였다. 드디어 해둔협을 뒤로하고 부추원을 거쳐 계단을 따라 발걸음을 재촉하니 다시금 동문이다. 줄잡아 4시간이 넘는 산행. 가이드에게 중국 전체에 잔도를 낸 산이 몇 개나 되느냐고 물으니 족히 수십 개는 넘을 거라고 답한다. 하긴 쓸 만한 뫼만 손꼽아도 수백 개를 훌쩍 넘길 테니까. 충만한 재충전. 영혼을 담는 그릇이 육신일진대 심신이 허약할 때는 냉큼 충전하는 슬기가 긴요하다. 가파른 길을 돌고 오르내리느라 힘겨웠으나 근래 등산다운 등산을 제대로 못한 아쉬움을 한꺼번에 날려버린 호기였다. 버스에 몸을 맡기고 내려오는 길. 저만치 산꼭대기에는 풍차 대여섯 대가 돌아갔다. 바람결을 느끼며 키 작은 해바라기 재배지를 보아하니 문득 홋카이도를 수놓았던 왜인들의 지략이 떠오른다. 비닐하우스에 파묻힌 지역. 보도블록은 도로만치 넓다. 랑방시내였다. 그곳에서 제일간다는 진도호텔. 전반적으로 시설이 힐튼 못잖았다. 샤워를 마치고 감사기도를 올리자마자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상쾌한 아침. 다리는 뻐근했지만 심신은 날아갈 듯 가벼웠다. 아무래도 변수는 오락가락을 거듭하는 빗줄기와 버걱거리는 차였다. 기도밖에는 달리 기댈 게 없는 형국. 간간이 비치는 고운 햇살과 싱그러운 산자락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는 듯이. 오늘의 첫 코스는 그 옛날 여우가 날아다녔다는 <비호곡(飛狐谷)>. 혹자는 여기를 그랜드캐니언에 비견하지만 솔직히 어림없는 소리. 그보다는 북경의 용경협과 엇비슷한 풍경구랄까. 연산연맥(連山連脈)의 경계에서 소오대산을 끼고 산서고원과 몽골대초원으로 통하는 길목. 그곳을 걸어 공중초원에 이르는 길섶에 수줍은 꽃들이 반긴다. 자생하는 야생화의 매무새. 드문드문 건네는 꽃말이 예사롭지 않았다. 제발 우릴 꺾지 말고 생긴 그대로 내버려두라고, 제발 당신을 포함해 산꽃의 생태를 운운하며 왈가왈부하지 말라고……. 바짝 말라붙은 시내. 온난화의 악영향인지 와디(wadi, 물이 없는 강)처럼 전락한 개울이었다. 돌아서서 보니 아닌 게 아니라 명궁수의 화살이 산기슭을 꿰뚫고 지나간 흔적(가이드의 해설에 따름)이 있었다. 산봉우리 밑에 구멍이 뻥 뚫렸다. 비록 삼척동자도 알만한 스토리일지언정 솔깃한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내는 재주꾼이 절실하다. 그러나 그게 보기보다 만만찮아서 세인들이 진정성을 느낄 때라야 하나둘 눈귀를 열고 공들여 찾아온다는 원리다. 오르막에 가이드가 중국어 몇 마디를 적선했다.
 
다음호(344)에서는 중국 방문기마지막 이야기 공중초원이 이어집니다. 독자, 시민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조하식 수필가 프로필
 
<월간에세이>를 거쳐 <한맥문학>을 통해 수필가로 등단. 본보에 6년째 세상사는 이야기를 연재하고 있으며, 신앙산문집<주님과 동행한 오솔길>, <생각만큼 보이는 세상>을 펴냄. (홈페이지 http://johs.wo.to/, 이메일: johas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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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중국 방문기 ‘백석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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