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3(금)
 
조하식(한광고 교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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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진의 거리는 거대한 대륙국가의 직할시치고는 한산한 편이다. 시야를 가린 큼지막한 건축물은 ‘중화인민해방군 제254의원’, 이네들은 병원이든 학교든 일련번호 붙이기를 즐긴다. 마치 관광대국 프랑스처럼. 그걸 북한 당국에서 흉내 내고 살아간다. 중국에는 여권신장을 반영하듯 대형차에 여기사가 흔하다. 가이드가 화제를 돌려 서태후의 일생을 장황하게 늘어놓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겐 별반 흥미 없는 소재. 탐욕스런 그녀가 일세를 풍미한 권력추구형 여인네라는 상식선 외에 온갖 죄로 점철된 가십(gossip)거리는 내심 솔깃할 리 없었다. 측천무후라는 명칭을 얻으면 무슨 소용이며 한때 부귀영화를 누려본들 그 영혼의 최후는 빤하기 때문이다. 수많은 궁녀를 거느리고 매일 바뀌는 성찬에 싫증내며 젊은 남정네와 음란을 넘은 광란이 끝나면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여 버렸다니 가히 천인공노할 짓이 아닌가? 더럽혀진 귀를 씻을 만한 두 줄기 강을 따라 백양나무 숲이 이어졌다. 옥수수밭은 이들의 주농업 분야. 얼마간 습지를 지나니 북경 71km의 이정표. 노면은 불량했지만 예정한 마트로 가는 데는 지장이 없다. 양보다 질로 옮겨간 <월마트> 풍경. 다른 일행(총 14명)은 다들 시장보기에 바빴지만 우리 부부는 천천히 상품 진열대를 훑어보며 주어진 시간을 메웠다. 두어 번 전시공간을 오가는 사이 아내가 중화인의 취향도 급격한 변화를 보이고 있다고 진단한다. 이름도 생소한 ‘랑방(廊坊)’ 시내. 식당은 조촐했지만 공안국의 위용은 대단했다. 숙소인 만달가화국제호텔은 구 힐튼호텔에 걸맞은 시설이었다. 여태껏 묵은 해외여행 가운데 최고 수준. 특히 화장실을 통유리 안에 설계한 발상은 특이했다. 바쁜 일상을 접고 맛보는 달콤한 휴식. 시편 146편을 펴고 감사예배를 올린 뒤 단잠을 청했다. 그 4절 말씀이 가슴에 남았다. “사람은 숨 한 번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니, 그가 세운 모든 계획이 바로 그 날로 다 사라지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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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괜찮은 호텔식. 게다가 오늘 제공한 차량은 컸다. 타자마자 풍기는 중국 특유의 냄새. 일부 얼룩진 시트로 인해 눈살을 찌푸렸다. 원체 닦기를 싫어하는 생활문화가 빚은 살풍경이랄까? 랑방(廊坊, 현지 발음은 ‘랑팡’)이란 지명은 흥미롭다. ‘복도 랑’에 ‘동네 방’이니 한 마을의 통로쯤은 된다는 뜻이렷다. 그도 그럴 것이 천진과 북경의 중간쯤에 위치한 도시. 인구는 100만을 훨씬 넘는다는데 하등 붐비질 않았다(중국의 100만은 우리네 10만쯤에 해당한다고 보면 됨). 도로가에 늘어진 능수버들. 이곳 아파트값은 싼 편이었다. 필자는 어떤 사물과 마주할 때 늘 전체 구도를 본다. 칸나가 자라나는 조경. 매번 눈여겨보지만 수종의 배치 능력이 탁월하다. 이때 가이드가 중국 부자들의 수수한 옷차림을 설명했다. 듣고 보니 겸손이나 절약이라기보다는 목숨 부지를 위한 위장술이었다. 수없이 수탈당한 역사의 교훈을 그들은 생리적으로 감지하며 살아온 터. 가난한 시절 머릿속을 기어 다니는 이조차 이르집어 자신의 피를 도로 빨아먹었다는 대목은 서글프지만 새겨들을 전언이었다. 그 역시 미물에 대한 복수라니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이를 문학에서는 ‘비극의 희극적 구제’라고 함). 침엽수와 단풍잎의 어울림. 간간이 잔솔이 끼어들라치면 금상첨화가 따로 없다. 동네마다 공장굴뚝이 우뚝 선 풍경은 우리네 개발시대와 똑같다. 숙제는 작금의 심각한 대기오염. 연일 보도되는 북경의 희뿌연 하늘은 이들이 자초한 결과물이다. 이웃나라에까지 극심한 폐해를 끼치면서.
 
  키 작은 아카시아 행렬. 어눌한 가이드의 입담은 구수했다. 문화혁명 당시 주검을 기차로 실어 날랐다는 삽화는 믿거나 말거나. 하지만 그게 사회주의자들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다름 아닌 영적 대공황일 터. 영혼을 살리는 복음 외에는 정답이 없는 참이리라. 자살자가 속출하고 민심이 흉흉한 틈을 타서 모택동은 그렇게 권력을 거머쥔 거였다. 복숭아 옆에서 다소곳이 자라나는 토마토. 그 옆에서 백양나무는 늘 그렇게 숲을 이룬다. 가로수마다 하얀 석회를 발라 벌레를 방제한 지혜는 돋보인다. 그 틈바구니를 좇아 지저분한 양떼가 노닌다. 녹슨 철조망을 등진 후줄근한 차림새의 목동과 함께. 몹시 곤비했는지 잠시 졸았다. 여간해서는 낮잠을 허락지 않는 필자로되 어언 이순(耳順)에 이르니 나도 모르게 눈꺼풀이 감길 때가 있다. 채석장의 몰골은 볼수록 볼썽사납다. 흉물스러운 뒤끝을 추스르는 뒷마당에서 선진과 후진이 갈린다 했던가. 앙상한 불쏘시개나무는 떨기나무인 양 서있고, 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가로수는 흡사 고깔모자를 눌러쓴 개구쟁이 같다. 차라리 시멘트공장과 어울리는 장면. 고속도로 옆 철조망은 필시 야생동물의 진입을 막아내는 장치렷다. 하여 이곳의 산야는 대체로 푸석한 몰골이다. 그 사이 웅장한 산세는 시작되었고, 예의 길고 짧은 터널이 지루할 만치 이어졌다. 그런데 불량한 노면상태로 인해 울렁증이 일 지경. 노후한 차체가 흔들리는 마당에 누군가 졸음을 방지하려 일부러 그랬을 거라고 두둔했지만 썰렁하게 허공을 맴돌다 만다. 그때 낯익은 지명이 스쳐갔으니 ‘장가구(張家口)’. 언뜻 장가계(張家界)를 떠올리는데다가 때마침 나타난 산줄기가 뭇 시선을 사로잡고 있어서였다. 그나저나 인위적 옹벽의 다양성은 우리가 본받을 점. 가도 가도 휴게소는 없었다.
 
※ 다음호(343호)에서는 ‘중국 방문기’ 세 번째 이야기 ‘백석산정’이 이어집니다. 독자, 시민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 조하식 수필가 프로필
 
<월간에세이>를 거쳐 <한맥문학>을 통해 수필가로 등단. 본보에 6년째 ‘세상사는 이야기’를 연재하고 있으며, 신앙산문집<주님과 동행한 오솔길>, <생각만큼 보이는 세상>을 펴냄. (홈페이지
http://johs.wo.to/, 이메일: johas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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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중국 방문기 ‘대륙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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