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8(일)
 
조하식(한광고 교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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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실 이런 기분은 난생 처음이었다. 무엇 때문에 그 칙칙한 막대기 따위가 필요하단 말인가? 이제는 춤추는 시간이 다가오기 전부터 가슴이 두근거렸다. 아예 매일매일 그 시각을 손꼽아 기다리던 나였다. 어쩌다 눈동자가 그녀와 마주치기라도 할라치면 그만 질식해 죽을 것만 같았다. 이러다가는 한없이 부풀어 오르던 내 허파가 펑 터져 버릴지도 모른다며 지레 겁을 집어먹을 지경이었다. 날마다 호리호리한 그녀의 두 손을 덥석 잡고는 하늘을 나는 그 시간이 그렇게 짧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이른바 첫사랑이었던 셈이다. 아니 풋사랑이래도 좋았다. 이 같은 황홀경은 세상에 또 없을 테니까. 하지만 극구 소망하던 걸 어렵사리 얼마큼 성취하고 나니 엉뚱한 과제가 나를 기다렸다. 꿈같이 보낸 며칠 뒤, 딱 이틀이 지나며 교실에는 소문이 나돌았다. 진상인즉 ‘하식이가 유리를 짝사랑한대요!’ 하긴 실제로 나는 그녀를 죽도록 좋아했으니 단 한 마디도 틀린 데라곤 없는 소식이었다. 솔직히 내 기분도 썩 나쁘지 않았다. 단언컨대 그 시점에서 이성을 향해 뜨거운 사랑을 느낀 최초의 사건. 내 일기에 기록될 일생일대의 중대사가 만인이 지켜보는 목전에서 나의 주도로 펼쳐졌던 참이다.
 
  그러나 똥 뀐 놈이 성낸다는 속담을 애써 증명이라도 하듯, 나는 애꿎게도 만만한 놈 몇을 차례로 불러내 괴소문(?)의 진원지를 대라며 윽박질렀다. 흡사 어설프게 불거져 나온 팔뚝의 힘줄이나마 한껏 과시해 보려는 치기였다. 물론 냉큼 범인이라고 시인한 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제아무리 다그친들 하나같이 모른다는 발뺌뿐이었다. 심지어는 남자 녀석이 비겁하다며 노골적으로 이죽거리거나 비아냥대는 축까지 끼어들었다.
 
  나는 약이 바싹바싹 타올랐다. 내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전개되는 국면에 금세 답답한 심정이 되고 말았다. 행동거지의 앞뒤가 들어맞지 않는 나의 성격적 결함은 또 있었다. 그쯤 해서 못 이기는 체 넘어갔더라면 그래도 좋았으련만, 이번에는 반 아이들을 향해 누군지 빨리 밝히라며 마구 을러대기까지 했다. 이를테면 고자질을 하라는 뻔뻔스런 주문이었는데, 말이야 바른 말이지 어디 그 사안이 ‘예, 제가 떠벌이고 다녔습니다!’라고 순순히 내뱉을 수 있는 정황은 아니었지 않은가 말이다.
 
  불행히도 나의 못난 짓거리는 거기서 그치질 않았다. 끝내 한 아이는 내게 억울한 매를 한두 대 얻어맞았던 터였다. 그 어린 나이에 벌써 주먹질이라니, 그 당시 나로 말하면 그리 큰 체구는 아니었으되 어깨가 떡 벌어지고 등치가 꽤 있는 편이어서 어딜 가나 남에게 손찌검을 당하는 형편은 아니었다. 나는 그 순간 심히 부당한 폭력까지 행사하는 부끄러운 잘못을 저지르고 말았던 게다.
 
  그 일이 있은 후 나는 딱 한번인가 더 유리와 짝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가녀린 손의 감촉은 이미 이전과 똑같은 촉감은 아니었다. 그녀의 체온은 나의 그런 치졸한 행위로 인한 실망감으로 싸늘하게 식어버렸다. 나를 향해 보내는 그 눈빛은 ‘에이, 야만인!’이라고 경멸하며 톡 쏘아붙이는 듯했다. ‘참 바보처럼 군 내 탓이로다!’하며 때늦은 후회를 해본들 무슨 소용이랴. 내 흐린 망막 속을 스쳐가는 유리의 태도는 자못 차갑기만 했다. 나는 나의 치명적인 잘못을 뼈아프게 질책했다. 몇 날 며칠을 두고 심란한 번민에 빠져들었다. ‘미련한 놈! 나쁜 녀석! 멍청이 같은 자식! 세상에 이런 천치가 도대체 어디 있담?’ 급기야 나는 스스로 켕긴 나머지 부러 유리와 떨어지려고 기를 쓰기까지 했다. 이리 뒤척 저리 뒤척 잠 못 이루는 뭇 밤이 이어질 만치 몹시 괴로워했더랬다.
 
※ 다음호(340호)에서는 ‘첫사랑’ 마지막 이야기 ‘전학 가는 모습’이 이어집니다. 독자, 시민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 조하식 수필가 프로필
 
<월간에세이>를 거쳐 <한맥문학>을 통해 수필가로 등단. 본보에 6년째 ‘세상사는 이야기’를 연재하고 있으며, 신앙산문집<주님과 동행한 오솔길>, <생각만큼 보이는 세상>을 펴냄. (홈페이지
http://johs.wo.to/, 이메일: johas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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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첫사랑 ‘폭댄스 추는 광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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