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8(일)
 
[연재소설] 천국의 별.jpg
 방영주(왼쪽 사진) 소설가의 중편소설 <천국의 별>이 약 6개월에 걸쳐 연재됩니다. <천국의 별>은 배달국 치우천왕의 이야기로, 치우천왕이 동북아를 평정하는 가슴 벅찬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독자, 시민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편집자 말>
 
■ <중편소설> 천국의 별
 
 헌원은 이제 탁록성 하나만으로 활동 반경이 좁혀졌다. 헌원은 탁록성의 방비를 더욱 굳건히 했다. 일테면 마지막 발악이었다.
 치우천왕은 탁록성을 에워싸고 헌원이 항복하기만을 기다렸다. 탁록성에는 양식이 거의 바닥나 가고 있었다. 돌림병까지 나돌았다. 아사자와 병사자들이 연일 늘어갔다. 헌원은 할 수 없이 치우천왕을 직접 만나 단판을 짓기로 했다. 치우천왕의 인물됨을 잘 알고 있는 헌원은, 백기를 치켜세우고 단신으로, 치우천왕의 진중에 말을 몰았다. 이는 치우천왕의 인간적 약점(?)을 이용하여, 선의를 악의로 보답하고자 함이었다.
 헌원은 치우천왕에게 무릎을 꿇었다.
 “천왕폐하, 신의 잘못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앞으로는 제후국의 제후로서 모든 의무를 다하고, 신계의 질서에 따르겠나이다.”
 치우천왕은 헌원의 속을 꿰뚫어 읽고 있었다. 치우천왕의 안구에서 불길이 활활 토해지고 있었다. 헌원은 눈이 너무 부셔 앞이 다 캄캄하였다.
 치우천왕의 음성만은 예상외로 부드러웠다.
 “짐은 그대가 스스로 이렇게 찾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소. 아무튼 반갑소. 짐은 지금까지 그대의 일을 모두 불문에 붙이고, 탁록의 제후로 인증할 터이니, 동이족 삼신일체의 원리를 지키시오. 하여 종주국에 할 도리를 다하고, 삼륜구서(三倫九誓)의 행함을 게을리 하지 마오.”
 헌원의 목소리는 아주 간드러졌다.
 “천왕폐하, 성은이 하해와 같사옵니다. 헌데 삼신일체와 삼륜구서는 무엇을 뜻하옵니까? 신이 폐하의 격문에서도 보았고, 폐하께옵서 저에게 누차 강조하시는 것으로 미루어, 어떤 특별한 의미가 있을 듯 사료되옵니다.”
 헌원은 물론 그 어휘들의 속뜻을 몰라서 물은 것은 아니었다. 헌원은 지금 속으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풍전등화의 처지에 놓인 자신이었다. 사태를 자칫 잘못 판단하였더라면, 조금만 시간이 늦었더라면, 자신은 제후는커녕, 목숨마저 부지하지 못하는 자리로 내몰렸을 터였다. 모든 것이 저 치우천왕 때문이었다. 그러나 우선은 치우천왕의 비위부터 맞춰야 했다. 헌원은 한숨 돌릴 시간을 벌고 싶었던 거였다. 목숨만 부지한다면 기회야 언젠가 다시 올 터였다. 헌원은 내심 칼을 갈고 있었던 것이다.
 치우천왕은 헌원의 얼굴에서 진작에 그의 속셈을 모두 읽고 있었다. 치우천왕은 안타까운 눈초리로 헌원을 보았다. 하지만 저자가 누구이던가. 자력으로 아무나 제후의 자리에 오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헌원은 한편으로 백절불굴, 칠전팔기의 영웅이기도 했다. 다만 방향이나 목표가 잘못 되었을 뿐이다. 아까운 자였다. 저런 사람이 배달국을 위해 힘써 준다면…….
 치우천왕은 왠지 씁쓸하고 서글픈 생각이 들어, 문득 하늘을 봤다. 많은 구름이 검은 색조로 낮게 가라앉아 우중충했다. 곧 적잖이 비가 쏟아질 터였다. 치우천왕은 무심결에 주위를 둘러보았다. 많은 사람들이 헌원과 자신을 지켜보고 있었다. 치우천왕은 그들을 위하여서라도, 저 진드기 같은 인간에게, 대답은 해줘야 했다.
 치우천왕은 목청을 가다듬었다.
 “삼신일체는 삼신님, 종주국, 제후국, 바꿔 말해, 마고대신님, 짐, 그대의 마음이 하나 됨을 의미한 것이오. 그것은 궁극적으로 환웅천왕께옵서 밝힌 홍익인간의 구현이 아니겠소?”
 “지당한 말씀이옵니다. 그럼 삼륜은 군신, 부자, 부부의 도리이옵니까?”
 “맞소. 하지만 짐은 삼륜 중에서 짐과 그대, 특히 군신간의 관계를 강조한 것이오. 짐은 그대를 지켜 주고, 그대는 짐을 보호해야 되지 않겠소. 지도층에서 먼저 모범을 보여야 한단 말이오. 구서는 그대가 백성들에게 가르칠 덕목이오. 그대는 백성들이 가정생활과 사회생활에서 효도하고, 자애롭고, 순종하고, 예의바르도록 가르쳐야 하오. 그래야 신계정토가 이루어지지 않겠소. 헌데 그대는, 엉뚱한 일들에 너무 많은 것을 빼앗겨 왔소.”
 “항공하옵니다.”
 헌원은 머리를 더욱 조아렸다. 헌원의 숙인 얼굴은 처참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헌원은 속에서 불덩이 같은 게 불쑥불쑥 치밀었다. 헌원은 지금의 이 일을 평생에 씻을 수 없을 치욕이라 치부하고 있었다. 물론 신선도인인 치우천왕은 그의 속까지 읽고 있었다. 치우천왕은 하늘을 다시 쳐다보았다. 더욱 검게 물들어 가는 하늘에서는 비가 질금거리기 시작했다. 치우천왕은 헌원을 서둘러 돌려보내고 싶었다. 잠시라도 그와 같은 인간과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치우천왕은 착 가라앉은 음성으로 말했다.
 “그만, 탁록성에 돌아가 보오. 가서는, 짐이 명한 대로 꼭 따라야 하오. 짐은 곧, 식량과 의약품을 그대의 성에 보낼 것이오.”
 “성은이 망극하여이다. 신, 다시는 불충한 마음을 품지 않겠사옵니다.”
 치우천왕의 목소리에는 날이 섰다.
 “짐은 그대가 부디, 면종복배(面從腹背)하지 않길 바랄 뿐이오.”
 “신 헌원, 꿈에서라도 폐하에 따를 것이옵니다.”
 헌원은 자신의 성으로 돌아가기 위해 치우천왕의 진중을 떠났다. 치우천왕도 군대를 완전 철수하여 배달국으로 옮겼다. 하지만 헌원은, 3년이 지나도 조공을 바치지 않았다. 속국으로서 지켜야 할 여타의 의무도 전혀 이행되지 못했다. 배달국에서 보내 준 것만 꿀꺽하고는 그만이었다. 그나저나 탁록은 외관상 조용했다. 서토에서는 한동안 어떤 도발도 없었다.
 치우천왕은 알고 있었다. 헌원이 그쯤에서 그냥 말 인간이 아니란 것과 이 모든 것이 탁록을 또 한바탕 광풍 속에 휘몰아 넣을 전조라는 것을.
 치우천왕은 헌원이 얼마나 자신을 속이며 버티나 두고 보기로 했다. 헌원이 언젠가 진심으로 자신의 앞에 굴복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그것은 헌원과의 싸움이 아니라, 전적으로 치우천왕 자신과의 대결이었다. 헌원이 자진하여 무릎을 꿇게 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헌원군을 대파하여 그를 죽인다 해도, 아무 의미가 없는 일이었다. 그것은 다만 일개 장군으로서의 장쾌한 사건일 따름이지, 천왕으로서 자랑할 만한 일은 못될 터였다. 치우천왕과 헌원은 생각하는 바가 본질적으로 달랐던 것이다.
 치우천왕은 헌원의 침공을 대비하여 별도로 준비하지 않았다. 군왕에서부터 필부에 이르기까지 모두 각자 맡은 일에 충실하면 될 터였다. 진정한 국력은 바로 거기서 나오는 거였다. 헌원 같은 인간이 아무리 설친다 해도, 별로 문제될 바가 아니었다. 치우천왕은 평상시처럼 국정을 운영해 갔다. 세금을 더 받거나 징집을 늘리지도 않았다. 군사들의 훈련을 강화하고, 무기들은 언제든 사용할 수 있게 잘 간수하도록 일렀을 뿐이다. 백성들에게 마음의 그늘을 드리우게 하고 싶지 않았던 때문이다. 만약 그렇게 해서라도 헌원을 굴복시킬 요량이었으면, 벌써 탁록성을 접수하고 남았을 터였다.
 
■ 방영주 소설가·시인 약력
 
<월간문학> 소설 당선, 소설집 <거북과 통나무> <내사랑 바우덕이> <카지노 가는 길>, 장편소설 <무따래기>(상·하권) <우리들의 천국> <카론의 연가> <국화의 반란> <돌고지 연가> <대무신왕> 등, 한국소설가협회 중앙위원(연락처 ☎ 011-227-0874, 주소: 450-760 경기도 평택시 평남로 281 삼성(아) 105동 805호, 이메일: youngju-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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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천국의 별(14회) - 방영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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