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8(일)
 
조하식(한광고 교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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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의식을 등에 업은 가이드의 해박한 지식은 그칠 줄을 몰랐다. 전직 대통령의 독도방문이 끼친 악영향을 뼈아프게 질타했다. 아시다시피 두고두고 불거지는 후유증이 아닌가? 고작 3%에 머물던 독도에 대한 일본인의 인지도가 연일 전파를 탄 결과 이제는 2/3 선을 넘었단다. 우습게도 좁아터진 시야로 다케시마에 방점을 찍은 오류를 통치자 스스로 범하고야 말았다. 또한 한국인 다수가 존경해 마지않는 맥아더 장군에 얽힌 후일담을 빼놓을 수는 없다. 그는 한국전쟁의 승리를 위해 만주 벌판에 원폭투하를 건의한 데 반해 일제의 잔꾀에 넘어가 독도를 한반도의 부속도서에서 제외함으로써 영토분쟁의 불씨를 남겼다는 게 그녀의 주장이지만 이는 기실 역사적 사실과는 배치된다는 게 학계의 정설이다. 인천상륙작전도 따지고 보면 하등 작전이랄 게 없는 선택이었을 뿐이란다. 통상 상대의 의표를 찌르는 전략의 결과물을 일컬어 작전이라 칭할진대 제아무리 양보한들 기발한 구석이라곤 없으니 무얼 가리켜 그렇게 운위하는지 모르겠다는 견해였다. 나아가 이순신 장군의 노량해전이나 명량대첩을 두고 본시 작전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다는 거였다. 그러나 둘 다 세계4대 해전이라는 근거는 희박하고, 되레 한산도대첩에서 더 큰 전과를 올렸다는 게 냉철한 분석이겠다. 러시아함대를 무찌른 도고 헤이하치로(東鄕平八郞)가 이순신을 존경한다는 고백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일견 식민사관의 논리에 빠진 듯 의심되는 대목이었다. 결국 고작 12척의 판옥선을 이끌고 133척의 적선을 박살낸 공적은 십분 인정하더라도 터무니없는 미화 역시 경계할 습성이라는 귀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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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색창연한 <구 북해도청사>는 정갈했다. 애칭은 아까렌가(빨간 벽돌). 연꽃을 기른 정원에 오리를 띄우고 잉어를 키우는 품이 여느 일본 정원의 전형이로되 어느 곳 하나 소홀함이 없이 단아한 건 부럽기 그지없다. 1888년 약 250만 개의 벽돌로 지은 미국풍의 네오바로크양식. 하여 맘으로는 당장 흉내를 내고 싶어도 쉬이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품성은 아닌 게다. 돌이켜보면 아이누족을 무자비하게 학살하고 차지한 홋카이도는 당대 폭설로 뒤덮인 쓸모없는 땅덩어리였다. 하지만 미래를 내다본 에도막부시대는 정복에 나섰고 쉽사리 손아귀에 넣었다. 그 과정은 인디언을 말살한 미국의 역사와 놀랍도록 닮았다. 평화롭던 원주민을 굴복시키고 혼혈정책을 편 결과 차츰 장대한 기골은 사라지고 이제는 일인과 아주 흡사한 용모로 동화된 터. 유엔에 의해 2007년에야 터주인의 권리를 인정받았으니 처절하게 유린당한 과거사를 치유하는 데는 세월이 필요하다. 가이드는 내친김에 오키나와(琉球列島)를 합병한 전과까지 곁들였다. 유구열도는 13세기 들어 중개무역으로 겨우 국가를 형성했으나 왕을 귀족으로 격하시켜 강제로 복속한 내력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왜인 남성도 그렇거니와 일본에는 흔히들 절색이 없다고 한다. 필자의 눈썰미로도 미인이 드물었다. 그 비밀을 고르지 못한 치아에서 찾는 건 흥미롭다. 아니 상식이란다. 견과류를 포함해 딱딱한 음식을 아니 먹고 싫어하다 보니 치열이 엉망이 되면서 부정교합이 늘어날 수밖에. 즉 이목구비가 가지런해지지 못한 연고였다. 다만 깨끗한 거리를 오가는 아낙들의 자태는 검소하고 수수하다.
 
  여행의 대미는 아쉬웠다. 일부 편향된 시각은 있었으되 대체로 신뢰를 받던 가이드의 태생적 전횡이 한순간 발동했기 때문이다. 버스 안에서 와이파이가 터지느냐는 확인까지 거치면서 싸구려 게르마늄 팔찌를 만병통치의 도구인 양 비싸게 팔아먹는 사기극을 노련하게 연출했던 터. 그야말로 숙달된 조교처럼. 작다란 돌덩이의 약효도 전무려니와 연약한 살갗이 텅스텐 줄에 견딜 리 만무인데도 불구하고 끼고만 있으면 몸에 좋다는 거짓말로 자신의 양심과 맞바꾸다니……. 화술도 좋고 정보도 품었지만 돈을 향한 흑심은 그녀의 한계였다. 야금야금 내면의 탐욕을 채우고 마는 통상적 언행. 이때 아내의 지혜는 빛났다. 다들 카드를 긁어대는 와중에도 그녀의 판단은 적확(的確)했다. 단연코 그런 명약은 세상에 없다고. 여러 개를 살 경우 주렁주렁 목에 걸고 스카프로 싸맬라치면 탈세를 보장한다는 요령도 모자라 급기야는 탈무드까지 들먹이며 이미 산 물건일랑 뒤돌아보지 말라는 지침까지 잊지 않았다. 실로 치밀한 전략. 내자의 충고인즉 심지어 그녀의 뚱보 남편에 대한 솔직한 신변잡사마저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 신중하란다. 말썽을 최대한 줄이면서 본인의 수입을 극대화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으니까. 어쨌든 삿포로의 하늘 아래 파란 수국은 하늘거린다. 깜빡 조는 사이 지나친 천세자동차학교. 어느덧 치토세 국제공항이 코앞이었다. 홋카이도의 선선한 날씨를 훈훈한 휴가로 매듭짓지 못한 점은 못내 씁쓸하다. 인간이란 모름지기 눈앞의 이익을 보고는 영혼이라도 파는 존재인 걸까.
 
다음호(338)에서는 첫사랑3회에 걸쳐 연재되며, 첫 번째 이야기 천진난만한 등굣길이 이어집니다. 독자, 시민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조하식 수필가 프로필
 
<월간에세이>를 거쳐 <한맥문학>을 통해 수필가로 등단. 본보에 6년째 세상사는 이야기를 연재하고 있으며, 신앙산문집<주님과 동행한 오솔길>, <생각만큼 보이는 세상>을 펴냄. (홈페이지 http://johs.wo.to/, 이메일: johas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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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홋카이도 기행, 도청사에서 치토세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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