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9(월)
 
9673ce4ea550378fa4356150ee367c1f_1435991914_6786.jpg
 방영주(왼쪽 사진) 소설가의 중편소설 <천국의 별>이 약 6개월에 걸쳐 연재됩니다. <천국의 별>은 배달국 치우천왕의 이야기로, 치우천왕이 동북아를 평정하는 가슴 벅찬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독자, 시민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편집자 말>
 
■ <중편소설> 천국의 별(11회)
 
 치우천왕은 다시 황후를 보았다. 언제 보아도 자태가 참 고왔다. 마음 씀씀이도 그랬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왕비는 백성들을 위해 노심초사 애쓰는 자신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 지금 연주를 하는 중일 터였다. 치우천왕은 그 은근한 애정에 코끝이 찡해졌다. 국사에 바빠 한 번 제대로 안아 주지도 못한 아내였다. 미안하고 안쓰러운 생각이 들었다. 여염집에 시집을 갔더라면 남편과 시댁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행복하게 살 여자였다. 그런 여자가 무슨 악연으로 이승에 왔기에, 자신 같은 남편을 만나 이 고생인가 싶었다. 더구나 황후는 한참 남자를 알 나이였다. 하지만 거의 매일 독수공방이었다.
 “그것도 삼신님의 뜻이었을까…… 나를 내조하여 백성을 잘 다스리게 도우라는…… 아, 나의 여인이여…….”
 치우천왕의 눈가에 언뜻 물기가 비쳤다. 황후는 남편과 눈길이 마주치자, 피리를 입에서 떼고, 볼우물을 깊게 패며 웃었다. 치우천왕은 황후의 그 모습을 보며 모든 근심이 말끔히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치우천왕은 황후가 있는 곳으로 걸음을 빨리 했다.
 황후는 아직도 웃는 얼굴이었다.
 “폐하, 어인 행차이옵니까?”
 “왜, 내가 못 올 곳을 왔소.”
 “여기에 납신 지 반 년이 넘었사옵니다.”
 “허허, 그래요. 미안하오. 내 너무 바빴소.”
 “제후국들의 동태가 심상치 않은 모양이군요.”
 “그들 저마다 군사력을 키우며 종주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준비하고 있다오. 좋게 말해서 그렇고, 사실은 배달국에 모반을 획책하고 있는 거지요.”
 “탁록의 헌원을 말씀하시는군요.”
 “제후국들은 이제 엄청나게 비대해졌어요. 앞으로 헌원과 같은 인물들이 도처에서 계속 나타날 것이오.”
 “상심이 크시겠사옵니다.”
 “내 그래서…… 이렇게 오늘…… 비를 찾은 것이라오…….”
 “무슨 말씀이온지 잘 알고 있사옵니다.”
 “자, 이제 그만 내전으로 듭시다…….”
 치우천왕과 황후는 내전으로 들어갔다. 은은한 관솔불에 드러난 황후의 모습은 고혹적이었다. 치우천왕은 황후를 살포시 안았다. 황후는 다소곳이 치우천왕에 전신을 맡겼다. 치우천왕은 황후의 머리에서 진한 향내를 맡았다. 치우천왕은 황후의 껍질을 벗겨 나갔다. 치우천왕은 어머니의 품과도 같은 황후의 몸에 자신의 모든 번뇌를 털어 내고 싶었다. 황후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황후는 양팔을 벌려 가슴을 열었다. 그리고 치우천왕을 받아들였다. 

 생활수준의 향상과 인구의 증가는 특권층을 양산했다. 가진 자는 더욱 많은 것을 요구하게 되었다. 인간의 탐욕이란 끝이 없는 모양이었다. 지배층은 강력한 법을 만들어 피지배층을 옭아매었다. 특권층은 호사스러운 생활에 탐닉해 들었다. 남보다 잘 치장하고 기름진 음식을 먹으며, 좋은 집에서 살고 많은 노예를 소유하는 것을 자랑으로 여겼다. 따라서 그들 기득층은 더욱 많은 재물이 소요될 수밖에 없었다. 민초들은 그들을 위해 혹사당해야 했다. 심지어 자식을 파는 경우까지 있었다. 자연스러운 인간의 질서는 점점 파괴되어 갔다. 지배계급의 교묘한 농간에 인심은 날로 흉흉해 갈 뿐이었다. 치우천왕은 배달국의 신하와 제후들에게 그런 짓을 못하도록 엄히 일렀다. 알고 보면 유망이나 헌원 같은 무리들이 나타나 설치는 이유는 그에 대한 반발일 거였다. 치우천왕은 스스로 검소하게 살며, 그들의 잘못을 자신의 부덕으로 받아들여, 삼신께 빌기도 많이 했다. 그게 안 되니까 할 수 없이 칼을 빼든 거였다.
 치우천왕이 몸소 그들 제후국의 천왕 노릇을 하는 이유는, 그들을 식민화시켜 노예로 길들이기 위해서도, 배달국만 배불리 먹고살기 위함도 아니었다. 배달국 신시 선왕들의 유업을 받들어, 그들을 홍익인간화 시켜 각자 자신의 몸을 닦아, 지구와 그에 딸린 별들을 관장하는 마고대신(麻姑大神)과 더불어 살던, 저 금단의 포도를 따먹은 지소씨(支巢氏) 이전의 인간 본래 모습으로, 전 인류가 되돌아가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이 땅에 사는 이들은, 사람다운 데서 더욱 멀리 달아나고 있었다. 치우천왕은 가슴이 아팠다. 치우천왕은 소도단에서 백일기도에 들어가기로 하였다. 그런 계획이 있었던 터라, 자신이 직접 동족들 앞에 서, 칼을 휘두르고 싶지는 않았다. 사제자는 무엇보다 살생을 금해야 할 터였다. 그리고 배달국에는 잘 훈련된 병사들이 있었다. 그들을 이끌어 줄 탁월한 장수도 많았다. 그들만으로 충분했다. 치우천왕 자신이 직접 전투에 참여할 필요까지는 없었다. 막판으로 치달리는 상황만 아닌 다음에야 말이다. 치우천왕은 소호를 상장군으로 하여 헌원을 평정하도록 하였다. 치우비와 거야가 힘을 다해 그를 도울 터였다.
 소호는 사기가 충천하여 병사들을 이끌고 탁록의 벌판으로 향했다. 그의 좌우에, 말을 탄 치우비와 거야도 따랐다. 소호는 내심 신이 났다.
 소호는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내가 천하무적의 배달군을 호령하는 상장군이 되다니…….”
 소호는 치우천왕의 배려에 새삼 감사할 뿐이었다. 배달국에 망명하여 목숨이나 간수하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그였다. 소호는 신명을 다해 자신의 책무를 완수하고 싶었다. 소호는 입을 꽉 다물고 끓어오르는 희열에 몸을 떨었다. 소호는 어서 빨리 헌원이 군대를 몰고 나타나기만을 고대했다. 헌원은 치사한 방법으로 왕위를 탈취하고 자신의 목숨까지 노렸던 자였다.
 “나쁜 자식.”
 소호는 으드득, 이를 갈았다. 헌원이 눈앞에 나타나는 즉시, 단칼에 요절낼 심산이었다. 지평선에 먼지가 구름처럼 일고 있었다. 필시 헌원의 군대일 터였다. 소호가 기다리던 사람들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었다.
 소호는 말의 고삐를 힘차게 당기며 달려 나갔다.
 “헌원, 네 이놈. 잘 만났다. 내 칼을 받아라.”
 소호의 뒤를 배달군이 질풍처럼 내달렸다. 헌원군도 그에 뒤질세라 속력을 높였다. 피아간의 거리는 지호지간(指呼之間)으로 좁혀 들었다.
 헌원은 소호를 알아보고 외쳤다.
 “소호야, 너는 언제부터 배달국의 개가 되었냐.”
 “이놈아, 개 눈에는 모두 개로만 보이냐. 아니다, 주인을 물어뜯어 죽이고 모국에까지 칼을 겨누는 네놈은, 개만도 못한 작자다.”
 “소호 네 이놈, 말이 많다. 내 곧, 네 입을 조용하게 해주겠다.”
 “우리 배달국에는, 사돈 남 말한다는, 속담이 있지…….”
 헌원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칼을 빼어 들었다. 그는 허연 이를 온통 드러내고 소호에게로 달려들었다. 두 사람의 검이 허공에서 불꽃을 튀겼다. 막상막하였다. 한참이 되어도 승부가 나지 않았다. 헌원은 시간 낭비라 생각되었다. 헌원은 몸을 돌려 배달군 깊숙이 뛰어 들었다. 소호도 그랬다. 소호는 거침없이 적을 베어 나갔다. 소호가 지나는 자리마다 헌원군은 푹푹 고꾸라졌다. 치우비와 거야의 신검(神劍)도 허공에서 춤을 췄다. 헌원군의 선혈이 땅과 허공에 낭자했다. 그것은 한 폭의 거대한 지옥도였다.
 
■ 방영주 소설가·시인 약력
 
<월간문학> 소설 당선, 소설집 <거북과 통나무> <내사랑 바우덕이> <카지노 가는 길>, 장편소설 <무따래기>(상·하권) <우리들의 천국> <카론의 연가> <국화의 반란> <돌고지 연가> <대무신왕> 등, 한국소설가협회 중앙위원(연락처 ☎ 011-227-0874, 주소: 450-760 경기도 평택시 평남로 281 삼성(아) 105동 805호, 이메일:
youngju-5@hanmail.net
 
★자치돌이★ 기자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태그

전체댓글 0

  • 42405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연재소설] 천국의 별(11회) - 방영주 소설가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