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2(목)
 
조하식(한광고 교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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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중에 돌아본 <모토마치(元町)> 종교부지. 드라마와 영화를 찍는 거리를 꾸며 길손들을 모은다는데 이국적인 구 하코다테 공회당, 성요하네스 교회, 하리스토 정교회를 지나 큼지막한 절간이 나왔다. 내리 신사까지 합세하지 않더라도 그야말로 혼합종교의 서식지. 그때 아내에게 두통이 일었다. 거의 매번 겪는 통과의례지만 유독 통증이 심한 모양이었다. 비아냥거리기를 루이비통을 누구똥, 구찌를 구짜, 샤넬을 채널이라고 연신 비하하는 데도 일본여성들의 영적 허기는 멈추질 않는가보다. 통 크게 8,000만~1억 원을 호가하는 명품가방을 선호한다니 한심한 일이다. 지갑만 해도 2.000만 원짜리가 있다니 기가 막힌다. 그러나 막상 그 안이 텅 비었다면 무슨 소용이랴. 문제는 그칠 줄 모르는 안개비였다. 커다란 로프웨이에 올라 야경을 보는 순서를 남겨놨기에. 경사진 산길이 수풀에 싸였다 했더니 까닭이 있었다. 태평양 전쟁 당시 집중포격을 받아 불발탄이 많아 1947년 이후 입산을 금지했던 터. 토목학에 기초한 초기 도로를 토목공학에 근거해 개조했다는 해설에 고개를 끄덕였다. 물안개가 시야를 가리는 바람에 세계 3대 야경은커녕(나폴리와 리우데자네이루에 이은) 아무 탈 없이 오르내린 것만도 감사할 제목이었다. 저녁식사는 만족할 만한 질과 양. 만두, 김치, 고기, 해물류에 각종 과일까지 푸짐했다. 양보다 질이라는 일식 메뉴는 이제 옛말이다. 이윽고 하코다테 시내. 아쉽게도 본토를 잇는 해저터널은 구경조차 못했다. 이틀째 머문 숙소는 침실 곁에 다다미방이 있어 숨통은 트였으나 니코틴 냄새가 골칫거리. 아내는 온천욕을 즐기러 가고 나는 동아시아축구를 시청했다. 결과는 한국이 일본에 1:2 패배. 솔직히 기량차였다. 부부가 기도를 드린 뒤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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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저녁으론 제법 선선한 반면 한낮엔 살짝 찌는 날씨. 가이드는 습도가 높아짐에 따라 급발진 사고가 증가한다는 연구를 들먹였다. 그러나 장마전선이 벚꽃과 더불어 위쪽으로 올라간다는 말에 그만 묻혀버렸다. 이어진 경제학 강의. 한 우물을 판 도요타가 일본을 먹여 살리는 사실이 변하는 건 아니라고 강변했다. 덩달아 문어발식 경영으로 시민단체의 항의가 빗발치는 미스비씨 역시 막무가내란다. 차창 밖을 스치고 달아나는 전차처럼. 산줄기마다 울창한 삼나무는 일본의 상징. 편백나무는 목재의 질이 그보다 한 수 위랬다. 희뿌연 노보리베쓰(登別)의 <지옥곡(地獄谷)>은 활화산의 한 자락. 300여 개나 되는 용출구와 분기공에서 거푸 흰 수증기를 뿜어냈다. 뚜렷한 분화구의 흔적. 유황빛이 짙은 골짜기에 비해 냄새는 그리 독하지 않았다. 가이드는 신유년 혐의자들에게 끓는 물을 뒤집어씌운 사달을 꺼냈다. 떠올릴수록 끔찍한 박해. 천주교탄압이 봉제사 거부로부터 촉발되었다면 답은 자명하다. 일시적 삶이 아닌 영생을 택한 결단. 숨어든 신자를 잡아내라는 엄명을 받들어 고안한 꾀인즉 길바닥에 팽개친 십자가를 밟고 가느냐 비켜 가느냐를 엿보라는 터였다. 관동대지진 때만큼이나 치졸한 꼼수. 초기 신앙이 이토록 순교를 마다치 않았거늘 지금은 우상숭배를 문화의 일부로 수용해버렸으니 천주교에 과연 구원이 있을까? 하긴 제2계명을 송두리째 파기한 망발을 생각하면 맥이 빠진다. 되짚건대 일제치하 주재소에서 사건을 취조할 때면 순사들마저 교인들을 신뢰했다는데, 오늘날은? 그런 분위기는 고사하고 갈수록 불신의 벽만 높이 쌓아가는 명목상 그리스도인만 늘어가니 가슴이 아릴 따름이다.
 
  사안별 불공정 수사는 그렇다 치고 엠바고(embargo, 전면적 금수조치)를 운운하는 것이나 언론이 황우석을 난도질했다는 질타에는 쉽사리 동의하기 어렵다. 그는 새빨간 거짓말쟁이였기 때문이다. 가이드의 입담은 통상 수준을 넘어섰다. 귀에 담긴 건 일본의 빈곤한 기록문화. 당연지사 유네스코에 등재될 리 만무였다. 한국과는 아예 비교대상이 아니라는. 자랑스러운 기록유산으로 그녀는 조선왕조실록과 동의보감을 꼽았다. NHK에서 드라마를 방영하지 않음도 그래서일까? 일본 드라마는 중간광고를 허용하기는 하지만서도. ‘겨울연가’를 보고 여태껏 본 적도 들은 적도 겪은 적도 없는 남자의 따뜻함을 욘사마에게서 온몸으로 느꼈기 때문이란다. 사랑에 굶주린 일본 여인들이 한순간 감동을 먹은 바도 그리 무리는 아닐 듯하다. 그에 반해 이들의 노후는 국가에서 책임졌다. 퇴직연금과 후생연금을 합쳐 25만~30만(한화 250만 원 내외) 엔을 받아 안정적으로 생활한다는 것. 참고로 기초생활수급자에게는 6만 엔(우리 돈 55만 원 정도)이 지급된다니 짠 편이다. 침엽수와 활엽수가 적절히 배합된 조림지. 깊은 산속 가파른 도로는 퍽 이색적이다. 모조리 철골구조였다. 개발은 하되 자연보호를 최우선하는 정책은 본받아 마땅하다. 독약은 독으로 끝나지만 극약은 처방일 수 있다는 일갈이었다.
 
※ 다음호(336호)에서는 ‘홋카이도 기행’ 다섯 번째 이야기 ‘오타루에서 삿포로까지’가 이어집니다. 독자, 시민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 조하식 수필가 프로필
 
<월간에세이>를 거쳐 <한맥문학>을 통해 수필가로 등단. 본보에 6년째 ‘세상사는 이야기’를 연재하고 있으며, 신앙산문집<주님과 동행한 오솔길>, <생각만큼 보이는 세상>을 펴냄. (홈페이지
http://johs.wo.to/, 이메일: johas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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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홋카이도 기행, 원정지에서 지옥곡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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