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2(목)
 
조하식(한광고 교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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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화신산(昭和新山, 높이 407m)으로 향하는 길. 놀랍게도 OECD 국가 중에 영아사망률 1위가 일본이란다. 근친결혼에 기인한 유전자의 허약함이 원인일 테지만 가이드 말마따나 선천성 유약체질을 타고나 면역력이 떨어진다는 진단 또한 귀담아 들을 부분이다. 그래서 문학작품이면 심심찮게 등장하는 불치병이라는 낱말이 적이 낭만적이라면 고질병이라는 단어는 왠지 지저분하게 들린다는 그녀의 억설이 재밌다. 응당 소설(小說)은 대설(大說)이라고 고집한 논리에 미약하나마 힘을 보태고 싶다. 누군가의 일갈처럼 꾸며낸 허구(虛構)를 바탕으로 갈급한 심령들을 심히 홀리기는 해도 오롯이 자질구레한 넋두리로 치부하기에는 이미 들인 공력이 너무 가상해서다. 간간이 지나가는 펜션. 그 사이로 가랑비가 오락가락했다. 알고 보니 대기가 맑고 경치가 뛰어나 유명인들의 별장이 많은 곳. 길가에는 키 작은 해바라기 행렬이 이어졌다. 순전히 관광객을 끌기 위해 심었다는데 아닌 게 아니라 심심풀이 땅콩에 버금가는 효험을 나타내고 있었다. <소화신산>은 천연 특별 기념물. 언뜻 보면 벌거벗은 황토산 같았다. 여전히 산은 분연을 내뿜었고 그녀는 조선 근세사를 파고든 인문학 강의를 이어갔다. 자고로 식민지란 원료를 훔쳐다가 제품을 만들어 팔아먹는 장사치라는 판정에 일리가 있다. 기껏 사다리를 걷어차 놓고 뜬금없이 펀드 판매에 실패하는 바람에 수많은 신뢰를 날려버린 장하준 교수의 실수를 아파한 시각 또한 건전했다. 뿐더러 일제시대나 왜정시대란 용어에도 대뜸 반기를 들었다. 어디까지나 강점기란 표현이 적절하다는 주장. 지구촌을 휩쓰는 보호무역 장벽이 신자유주의 물결에 반한다는 풀이에도 나름 설득력이 있었다. 이른바 문사철(文史哲)을 묶은 끈일랑 끈질긴 구석이 있어 끄집어내면 낼수록 끈적끈적한 궤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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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이 노벨문학상을 받은 건 일종의 촌극이랬다. 주제가 도무지 무슨 내용인지를 쉬이 감지하기 어려워서였다. 나중에 관련서적을 들추니 시각적이며 주관적으로 재창조된 현실을 새로운 묘사를 통해 신감각이라 포장하고 지고지선의 미적 세계를 추구함으로써 독자적인 서정문학의 장을 당차게 열어젖혔다는 촌평이었다. 나아가 요즘 한창 뜨는 하루키의 신바람을 두고는 시원스레 웃기는 신종 개그라 했다. 이야말로 담대한 비평이다. 차라리 오이지 겐자부로가 낫다는 게 그녀의 의견이다. 그 지적은 매우 날카로웠다. 상당 부분 동의할 가치를 낚았기 때문이다. 도무지 알아차릴 수 없는 축들의 넋두리를 읽고 흥분하는 모양새가 가소롭다는 대언(對言)이다. 이를 두고 필자는 모든 걸 상대화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아류쯤으로 제쳐둔다. 단지 세계 50개 국어로 번역하는 노력이나 세계 제3위의 국력을 이용한 로비까지 일인들의 약삭빠른 발걸음으로 비꼬지는 않겠으나 더불어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다분히 정치적인 이유로 종교를 탄압한 건 그가 가진 깜냥의 정점을 드러낸 게 적실하다. 그나저나 일본은 공무원들을 세금도둑이라 불렀다. 국가의 녹을 먹는 주제에 밤늦게까지 남아 전기를 축내고 도대체 무슨 일을 벌이는지 불투명해서였다. 고로 관공서 건물은 유독 후줄근하고 공복의 복장은 늘 허름하단다. 이따금 유럽풍의 바로크양식이 눈에 띄지만 어디까지나 고건축에 속한다.
 
  우리네 도립공원에 해당하는 <오누마(大沼)국정공원>. 한눈에 실망스러웠다. 고인 물이 맑지 않았고 관리 소홀이 눈에 띄었다. 고마가다케의 분화활동으로 생겨나 여의도 면적의 10배라고 자랑했지만 그들의 전통문화와 흘러든 외래문화를 접목시켜 이룩한 일본의 3대 절경이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때마침 열린 오누마호수축제현장. 무려 7개의 채널을 움켜쥔 NHK에서 마스코트를 동원해 유치원생과 청년들의 집단극을 촬영하고 있었는데 힘차게 외치는 구호 속에 군국주의 냄새가 물씬 묻어났다. 뭇 사람을 선동하여 마치 출정을 앞둔 병정처럼 비장감이 남아돌 지경. 차제에 순혈 아이누족에 대한 실상이 궁금했다. 이제 달랑 한 사람만 남았단다. 그마저 지금은 사할린에 산다는데 너나없이 그 노파의 증언에 매달려 어렴풋한 추억의 부스러기라도 붙잡으려는 몸부림이 홋카이도의 현주소란다. 절개지에 자연미를 가미한 건 당장 벤치마킹할 솜씨. 키 큰 나무와 납작한 산죽이 한데 어우러져 잔잔한 수풀을 이루는 산야는 이네들의 자산이다. 짙푸른 대지에 늪지가 조화를 이룬 경관도 한참 앞서가는 문화다. 모처럼 건널목을 지나가는 화물기차를 보았다. 최초의 개항인 하코다테(函館)로 향하는 길. 거지반 가서 <곤부관>에 잠시 들렀다. 튀김, , 젤리, 차 등 시식코너를 마련해 하나씩만 입에 집어넣었는데도 배가 부를 지경이었다. 다시마를 비롯한 각종 해초를 친근한 군것질거리로 만든 정성과 아이디어는 가상했으나 막상 사고픈 먹거리는 없었다.
 
다음호(335)에서는 홋카이도 기행네 번째 이야기 원정지에서 지옥곡까지가 이어집니다. 독자, 시민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조하식 수필가 프로필
 
<월간에세이>를 거쳐 <한맥문학>을 통해 수필가로 등단. 본보에 6년째 세상사는 이야기를 연재하고 있으며, 신앙산문집<주님과 동행한 오솔길>, <생각만큼 보이는 세상>을 펴냄. (홈페이지 http://johs.wo.to/, 이메일: johas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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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홋카이도 기행, 소화산에서 오누마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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