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30(화)
 
조하식(한광고 교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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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항 가까이 갈수록 연무가 자욱했다. 30분 연발이란다. 기다랗게 늘어선 대기 줄을 빠져나오는 데만 25분. 제아무리 본격적인 휴가철이라지만 이번 경험은 낯설다. 집 지키는 딸내미에게는 ‘양극화의 현장’이라고 적었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인천국제공항은 빼곡한 주차장. 이륙한 지 불과 2시간 만에 비옥한 갈빛 대지가 눈동자 안으로 빨려 들어왔다. 비스듬한 하천 둑을 따라 펼쳐진 수풀과 초원. 치토세(千歲) 신공항 옆 한편에 공동묘지가 있었다. 삶과 죽음의 절묘한 조화. 산야를 갉아먹는 우리네 산소와는 딴판이다. 동네 한 귀퉁이에 자리 잡은 자태가 다소곳하다. ‘홋카이도’의 첫인상은 활달한 청년의 얼굴. 도시 한가운데로 시냇물이 흐르고 가로(街路)는 가지런했다. 남한의 4/5를 넘는 면적(84%)에 고작 520만 명(한국의 12%)이 모여 사는 땅. 일본에서 인구가 유일하게 늘어나는 데였다. 1868년 메이지유신(明治維新 : 가이드는 이를 통까지 뒤집어엎는 큰 개혁이라 했다) 때 강제 합병한 과거는 어디로 가고 청청한 산야가 끝없이 펼쳐졌다. 가이드는 화두부터 심상치 않았다. 알고 보니 폭넓은 독서가. 차 안에서 냄새나는 김치 섭취와 처치 곤란한 아이스크림은 절대 피해달란다. 예의 바른 기사는 여정 내내 성실했다. 일행 22명의 면모는 저마다 중산층 이상의 위상. 그에 걸맞게 시종 흐트러지는 법이 없었다. 수십 번 해외를 드나드는 가운데 가장 차분한 여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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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의 인사는 아침, 점심, 저녁이 다르다. 차례로 “오하이오고자이마스!”, “곤니치와!”, “곤방와!”인데 여성의 경우 특정 음절에 약간의 콧소리를 가미해 애교를 부려야 제 맛이란다. 어쨌거나 언어에서 여성을 비하했던 기류는 일어의 어법에 기인한다는 말이다. 첫 방문지는 치토세에 위치한 <기린맥주공장>. 주말이어서 생산라인(연간 2억 캔 판매, 1907년 설립)은 멈춰 섰지만 예상보다 규모가 크고 구석구석 정갈했다. 상호인 기린(KIRIN)의 뜻은 상상의 새로써 길조 중 영수란다. 시음한 맥주 한 잔. 허기와 갈증을 동시에 풀어준 청량제였다. 음주를 죄다 이렇게만 한다면 누가 탓하랴. 문제는 술이 술을 부르고 사람을 뒤흔드는 데 있다. 직원들의 자세가 인상적이다. 행여 불편할세라 세심하게 안내하는 눈길이 고마웠다. 아예 술기운을 멀리하는 이들마저 언젠가는 기린을 찾아오도록 부추길 만치. 자고로 감동적인 장면이란 맨 끝에 배치하는 법. 저들은 손님을 배웅하며 리무진이 사라질 때까지 두 손을 흔들었다. 비록 장삿속일망정 이네들의 이런 배려심이 뭇 사람을 움직이는 터다. 최저 시급은 한화 13,000원 정도. 우리가 채 5,000원이 안 되니 국민소득 격차가 꽤 나는 참이다. 모든 버스에 센서를 매단 건 의무규정. 이른바 온도 자동 조절 장치를 꼭 부착케 만든 선진제도의 단면이다. 즉 온도가 얼마큼 올라가면 저절로 에어컨이 작동하는 시스템. 주위를 둘러봐도 에너지 절약에 관한 한 일본을 따라갈 데는 없다.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최고의 질서 국가. 북해도(北海島)라고 해서 열외일 순 없지만 만일 혼슈였다면 좀체 찾아보기 힘든 광경도 있었다. 노상에 빗물이 괴어있었던 터. 살펴보니 노면의 마무리 공사가 정밀하지 않았다. 분리수거며 환경보호의 준수 또한 부럽기 짝이 없다. 비록 영적으로는 저만치 뒤쳐졌을지언정 세상 잣대로는 흠잡을 데 없는 민족이다.
 
  음식, 온천, 공기가 좋다는 홋카이도(北海島). 지도를 보면 마치 가오리처럼 생겼다. 일정상 도동(島東)과 도북(島北)은 미루고 주로 도중(島中)과 도남(島南)을 돌아볼 예정이다. 온난화가 불어 닥치기 전까지는 전반적으로 뽀송뽀송한 날씨였단다. 그렇지만 분명히 습기는 머금었으되 짜증나는 무더위는 아니었다. 하지만 본토에 비해 승차감은 떨어졌다. 택시요금은 기본요금이 860엔(한화 8천 원가량), 웬만하면 대중교통을 이용하라는 게 일관된 정책이어서 고속도로 통행료는 상상을 초월한다. 고급도로를 이용하는 대형버스의 경우 1km에 30,000원 가까운 고액을 물린다니 놀랍다. 따라서 자가용 이용을 극도로 자제할 수밖에 없다. 한때 소비를 진작하려 통행료를 단돈 천 엔(거리에 관계없이 전 지역 ‘천 엔’으로 통일)로 깎았더니 아니나 다를까 모든 도로에서 순식간에 꼼짝달싹하지 못한 전력이 있었다. 이곳 특산물은 감자와 옥수수. 열량이 높은 감자는 쌀과 함께 주식 대접을 받지만 옥수수는 사료와 간식으로 취급한다. 가이드는 지나치리만치 원전을 예찬하는 쪽. 한마디로 방사능에 대한 걱정은 기우라고 못 박았다. 예컨대 물고기는 국경 없이 돌아다니니 그렇고 현실적으로 단속할 유통망이 녹록치 않아서랬다. 그도 그럴 것이 다시마, 김, 참조기, 오징어, 가리비, 게 등의 러시아산과 일본산을 가릴 비법은 현재로서는 딱히 없는 셈이다. 육식을 전면 허용한 명치유신 이후 검은 소의 방목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고 전했다.
 
※ 다음호(333호)에서는 ‘홋카이도 기행’ 두 번째 이야기 ‘니세코에서 도야호까지’가 이어집니다. 독자, 시민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 조하식 수필가 프로필
 
<월간에세이>를 거쳐 <한맥문학>을 통해 수필가로 등단. 본보에 6년째 ‘세상사는 이야기’를 연재하고 있으며, 신앙산문집<주님과 동행한 오솔길>, <생각만큼 보이는 세상>을 펴냄. (홈페이지
http://johs.wo.to/, 이메일: johas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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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홋카이도 기행, 한반도에서 북해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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