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3(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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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하식(한광고 교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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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산지대를 지날 때는 조마조마한 마음이 없지 않았으나 지구의 흉터랄 만치 푹 파인 대협곡을 보러 가는 즐거움에 내심 달떠있었다. 귀주성 서부의 <마령하대협곡(馬嶺河大峽谷, Malinghe Gorge)>은 국가명승지급 관광지. 듣던 대로 여태껏 마주한 협곡 중 단연 최고였다. 익룡(翼龍)이 서식했다는 벼랑을 보니 영락없이 이끼 낀 버섯모양. 절벽 양쪽 낙차 큰 폭포가 여럿인데다 산정을 잇는 다리는 아슬아슬했다. 천라만상(天羅萬象)의 폭포수와 절벽화가 가히 조화를 이룬 모습. 고산지대 사이로 비좁고 기다란 계곡이 생겨나 마령하가 흐르고 그 골짜기를 메운 천태만상은 경치의 극치였다. 바로 앞의 웅장한 장관이란 응당 조물주의 솜씨요, 그 연출 역시 신의 몫이었다. 가장 인상적인 코스는 천성화랑 구간. 여러 개의 폭포수가 흡사 한 폭의 산수화를 연상시키는데 문제는 그놈의 담배.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몰상식으로 인해 여행의 묘미가 반감되고 말 지경이어서 나뒹구는 꽁초도 볼썽사납지만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행태에 화가 치민다. 규정이 있으면 지켜야 함에도 후속조치가 전연 없으니 답답하다. 젊은 가이드는 한심하게도 이런 행태를 두둔했다. 여기서는 흡연을 마다하면 사회생활이 안 된다는 궤변을 일삼으며. 안순(安順)으로 가는 길. 끝없이 이어지는 산야 및 산악지대. 때마침 재밌는 알림판이 보였다. ‘구원 12122’였다. 긴급전화를 부르는 용어인데 구호가 아닌 구원도 그랬지만 번호가 이채로웠다. 싱싱한 대나무 군락지. 유독 대나무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세계 어디를 가든 대 이파리에 눈길이 간다. 키 작은 산죽이든 줄기가 큰 대나무든 가리지 않고. 대의 텅 비움과 올곧음이 좋아서이고 사철 파릇하고 거친 점도 나를 늘 사로잡는다. 저만치 묘지가 보였다. 베트남의 분묘와 닮았다. 옥수수가 즐비한 건 여전했고 토란 비슷한 식물도 눈에 띄었다.
 
  중간에 들른 주유소 화장실. 그때였다. 벌판에 갑자기 돌풍이 일었다. 하늘을 보니 먹구름으로 가득했다. 사방이 깜깜해지자마자 자리를 지키던 과일 장수들이 혼비백산했다. 그들이 뛰어든 데는 화장실. 장대비를 피하기 위해서였으나 왠지 과일에 역한 냄새가 배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됐다. 일행은 곧이어 차 안에서 천둥번개소리를 들었다. 시야를 가릴 만큼 세찬 빗줄기. 어쨌거나 보기 힘든 광경이었다. 중국여행이 열여섯 번째라는 노객(老客). 한바탕 대지를 두들기던 장대비가 멎은 가운데 스쳐가는 영봉을 보고 대뜸 대자연의 교향시라고 감탄했다. 그는 그렇게 음유시인이라도 된 양 사계의 파노라마를 나직이 읊조렸다. 작지만 물길에 요동친 흔적. 흩어진 노아홍수의 자취였다. 줄줄이 이어진 ‘성곽산(城郭山)’이었다. 일정표를 보니 중경에서 귀양을 거쳐 안순을 보고는 흥의에서 돌아오는 코스. 어느새 차는 안순시에 접어들었다. 약 300만이 사는 귀양 다음가는 규모. 팻말에는 이곳이 역사문화명성임을 알렸다. 그러고 보니 이상하리만치 소떼가 없고 학교가 드물다. 목장은 그렇다 쳐도 높은 교육열은 어디 갔는가? 대학이야 멀어도 한군데에 모은다지만 초중고의 경우는 등하교의 문제가 있지 않느냐고 가이드에게 캐물었다. 납득할 만한 대답은 없었다. 황과수가 가까운지 주위는 ‘수향 황과수, 매력 황과수’를 홍보했다. 족히 황과수의 위용을 짐작하고도 남는 대목. 이때 가이드가 맥도날드를 들먹였다. 현지화의 모델이라며. 빅맥만 파는 게 아니라 밥도 파는 형태로 바뀌었다고 자랑했다.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 초행길인지 기사가 헤맸다. 아내는 이런 골목투어가 좋단다. 연거푸 차체는 출렁였지만 도시의 가려진 면면을 훔쳐보는 게 즐겁다며. 뜻하지 않은 소득이었다. 널따란 안순개선호텔. 침대가 셋이었다. 알고 보니 주점(酒店)은 호텔급, 빈관(賓館)은 모텔급이랬다.
 
  “꼬끼요” 우는 수탉소리에 새벽잠을 깼다. 그래도 피곤기가 풀릴 만큼은 잤다. 창문을 여니 찬 공기가 양 볼을 스쳤다. 호텔 방에서 내려다 본 공원 모습. 손뼉을 치며 삼삼오오 체조를 하고 있었다. 바로 옆은 놀이시설. 주말은 꽤나 붐빌 터다. 시원찮은 아침밥상. 고도성장한 중국도 물가가 비상이어서 먹을거리가 예전 같잖다. 기분 좋은 건 매번 예정보다 10분을 빨리 출발한다는 점. 가이드는 대뜸 관운장을 꺼냈다. 재신(財神)으로 두루 모신다는데 한국의 무당들도 관우를 빠뜨리지 않는다. 하긴 ‘명랑천고(明朗千古)’라고 눈이 밝은 유비가 제갈량을 알아보기 전 관우를 먼저 보았음직하다. 이농현상의 가속화는 우리나 매한가지. 기러기 아빠가 많아 농민공(도시로 나간 농사꾼)들의 가정사가 문제였다. 현지처를 두는 등 부작용이 만만치 않단다. 연변의 경우 남녀 비율이 30:1의 극심한 불균형을 빚을 만치 여자들 씨가 말라가니 큰일이랬다. 뿐더러 조손가정의 실태 또한 심각한 터. 연변 사람이 한국으로 들어가면 빈자리를 탈북자가 메우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형국이다. 대졸 실업자의 폭증도 급선무. 공무원 시험이 직종에 따라 200~500 : 1의 경쟁률을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다. 최근 들어 취업에 유리한 기술 직업학교나 기공학교가 인기를 끄는 건 당연하다. 재밌는 건 화장실 용어 체계. 여기서는 간신히 오물 빠뜨릴 구멍만 내면 변소(便所), 겨우 칸막이만 있으면 측간(厠間), 가림막을 완비하면 화장실(化粧室)이라는데, 차례로 편하게 변을 해결하는 곳, 남몰래 볼일을 보는 뒷간, 내친김에 화장까지 고치고 나오라는 의미로 지어진 이름이란다.

※ 다음호(329호)에서는 ‘중국 탐방기’ 6회 - 천태산 오룡사가 이어집니다. 독자, 시민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 조하식 수필가 프로필
 
<월간에세이>를 거쳐 <한맥문학>을 통해 수필가로 등단. 본보에 6년째 '세상사는 이야기'를 연재하고 있으며, 신앙산문집<주님과 동행한 오솔길>, <생각만큼 보이는 세상>을 펴냄. (홈페이지
http://johs.wo.to/, 이메일: johas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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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중국 탐방기, 마령하 대협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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