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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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하식(한광고 교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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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배로 시작하는 하루. 아침상에 오른 국수가 입맛을 당겼다. 발음도 낯선 흥의(興義)는 쇄락해가던 광산도시 금주(金州)를 일대 쇄신한 신도시. 아파트 값(30평이 억대를 호가)도 예상치를 웃돌았다. 90%의 지역이 카르스트 지형. 가이드는 귀양보다 200미터나 높다(해발 1,700m)고 덧붙였다. 시내에서 3km쯤 떨어진 <만봉림(萬峰林)> 풍경구. 만 개의 봉우리가 무성한 숲을 이루고 있어 붙여진 이름인데 동편 만봉림과 서편 만봉림 중 우리는 서쪽을 보았다. 첫눈에 말이 필요 없는 비경(秘境). 사방을 병풍처럼 두른 봉우리들이 민가를 오붓이 품고 있었고, 소수민족의 삶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산허리를 따라 굽어보니 흐르는 개울이 퍽 정겹다. 전동카에 올라타 연신 눌러댄 셔터. 하지만 그림 같은 풍광을 조금밖에 담아내는 데 그친다. 볼수록 중국에 이런 데가 있다는 게 쉬이 믿기지 않을 지경. 여름빛에 곱게 물드는 벼논하며 출렁이는 수수농사의 풍치를 무엇에 비하랴. 둥근 논두렁을 휘감아 도는 농촌의 곡선이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개울물 물줄기가 유난히 부드러운 곳. 게다가 날까지 선선하니 호사가 따로 없다. 위도는 제주도보다 약간 위지만 수없는 봉우리에 둘러싸여 피부에 와 닿는 바람결이 보드라웠다. 여기저기서 터지는 탄성. 어디에 카메라를 대도 그대로 작품이다. 뾰족뾰족 봉우리가 들솟아 기이한 모습을 한껏 뽐낸다. 봉우리 사이사이 산 너머가 궁금했지만 더 이상 넘어가지를 못하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옹기종기 모여 사는 부이족의 생활상을 엿보며 마을을 돌아 나오는 길에 눈에 띄는 장면이 있었다. 지붕마루에 물을 괴어놓았는데 방수 처리한 옥상을 물로 채우면 여름철 고온이 현저히 떨어진다고 했다. 발군의 지혜였다. 밭농사는 옥수수보다 수수를 선호했다. 그 요리 또한 다양하다는데 유년시절 난 남달리 수수떡을 좋아했다. 아내에게 들으니 내 속이 더워 찬 음식을 즐기는 거랬다. 동네 한가운데 생계를 위한 장마당이 한창이었다. 수요와 공급의 교차로. 사람 사는 세상은 어디나 매한가지였다. 찌든 삶의 노정에서 느끼는 평화는 나만의 감상일까? 벼논의 물꼬는 정겨웠고 자전거투어에 취한 길손은 반가웠다. 멋과 조화를 이룬 만봉림은 단연 지친 심신을 다독이고 풀어준 청량제였다.

  인원검수를 마친 <만봉호> 유람선. 뱃고동소리가 컸다. 벼랑을 지나니 기암괴석이요 물에 기댄 석림은 운치가 있었다. 길이 120km의 5번째 담수호. 물은 그다지 맑지 않았지만 선상에서 펼쳐진 풍경에 이내 흠뻑 젖어들고 말았다. 기회가 온다면 호수를 끼고 조성한 산책로를 아내와 걸어보고 싶었다. 수변을 따라 수놓은 바위며 천연분재를 쳐다보는 묘미. 봄이면 유채화가 만발해 장관을 이루고 여름은 안개를 거름 삼아 푸른 솔을 키운단다. 그런 틈바구니에 점심상을 차렸다. 고추장을 싸온 덕에 오이며 고추는 제격이었고 상추에 밥까지 싸먹으니 성찬이다. 이곳 쌀농사는 2기작, 다른 식물일랑 수시로 심고 거둔다니 부럽기 짝이 없다. 14억의 인구대국이 굶는 이 없이 살아가는 건 이래서다. 자고이래 정치적 위기는 빈익빈부익부를 비집고 몰려왔기 때문이다. 진단인즉 한국이 2:8 사회라면 중국은 1:9 사회라는데 예전에는 모태주를 놓고 상하층을 나누더니 이제는 몹쓸 담배를 권하며 서로를 깔본단다. 이런 폐해를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중국당국은 담배 한 갑에 5,000원~20,000원짜리(99위안으로 제한)로 못 박았지만 빈부격차를 줄이는 일이 뜻대로 될 리 없다. 실제로는 20만 원짜리를 태우는 계층이 실재한다니 말이다. 자본주의 역사가 일본은 180년인데 비해 한국은 60년이요 중국은 고작 40년에 불과하니 무슨 말을 더하랴. 우습게도 옛날 남정네들은 허리띠나 시계로 신분을 과시하곤 했다.

  가는 길에 차안에 퍼진 노래가 심금을 울렸다. 중국가수의 자질을 엿볼 수 있는 기회. 모름지기 가수는 노래로 평가받아야 마땅하다. 춤을 곁들이되 노래가 뒷전이어서는 이미 가수가 아닌 것이다. 티베트는 지금도 일처다부제 사회라는데 남자가 자신을 알릴 때 은금장신구를 문고리에 걸어두고 여인을 꾄다니 가소로운 일이다. 중국은 언필칭 일당독재라지만 실은 형식적이나마 다당제를 운영한단다. 실제 태자당과 공청단의 알력은 알려진 대로다. 중국 공무원이 가장 무서워하는 대상은 따로 있단다. 다름 아닌 인터넷 댓글. 실상 뒤를 캐면 비리 없는 공직자는 없다는 게 정설이라서 수백만의 집중 포화를 받을라치면 살아남을 자가 없단다. 실제 걸려든 축들을 보면 십상팔구 사이버에서 뭇매를 맞고 좌초하는 경우가 대다수. 제아무리 전체주의라 해도 여론을 대놓고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실례로 인터뷰 중 20만 위안짜리 시계가 노출되는 통에 감방 간 사례도 있단다. 이들의 교통문화는 세 가지로 요약된다. 이른바 ‘무조건 들이밀기, 아무데서나 돌리기, 시도 때도 없이 빵빵대기.’ 실제 필자가 서안을 방문했을 때 목격담인즉 교차로에서 서로 먼저 가겠다고 대가리를 디밀기 일쑤였고, 심지어는 지하도에 차를 대놓고 버젓이 오줌을 누기도 했다. 올림픽을 치르며 질서가 눈에 뜨게 개선됐다지만 아직도 중국사회는 무질서의 표본에 가깝다. 다만 음주운전을 다루는 기준은 엄격하다. 등소평 이후 걸리면 징역 6개월, 사망사고는 최고 사형에 처할 만큼 철퇴를 가하는 분위기란다. 아마 지구상에 한국만큼 음주운전에 대해 관대한 나라도 없지 싶다.

※ 다음호(328호)에서는 '중국 탐방기' 5회 - 마령하 대협곡이 이어집니다. 독자, 시민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 조하식 수필가 프로필
 
<월간에세이>를 거쳐 <한맥문학>을 통해 수필가로 등단. 본보에 6년째 '세상사는 이야기'를 연재하고 있으며, 신앙산문집<주님과 동행한 오솔길>, <생각만큼 보이는 세상>을 펴냄. (홈페이지
http://johs.wo.to/, 이메일: johas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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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중국 탐방기, 만봉림 풍경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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