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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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수근 학예연구사(평택문화원)
 
 
 
 매년 봄의 기운이 완연해지면 청북면 고잔리 고잔묘에서는 문충공 신숙주 추모대제가 열리는데, 올해는 4월 29일에 열린다. 평택과 신숙주 사이에는 어떠한 연결고리가 있어 이렇게 매년 추모대제를 열까? 신숙주의 본향은 의정부시로 묘 역시 의정부시에 있지만 신숙주의 신주를 모시던 의정부시의 사우가 퇴락하면서 옮겨와 고잔묘에 함께 봉안하게 되어 평택과의 인연이 되었다.
 
 고잔리 마을 뒷산에는 신항의 비가 있고, 신항의 아들인 신경의 일곱 번째 아들인 신부의 후손들이 살며 고령 신씨의 집성촌을 이루고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고잔묘는 신항(신숙주의 증손자로서 성종의 부마)과 신의(신숙주의 현손으로 중종의 부마)를 모시는 사우였기 때문에 신숙주의 신주가 옮겨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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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숙주에 대해 살펴보면 세종에서 성종에 이르기까지 여섯 명의 왕을 모신 조선전기를 대표하는 학자이자 정치가이다. 그리고 지난번 동국문헌록에서 봤듯이 세조의 집권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면서 네 차례 공신의 반열에 오른 인물이다. 특히 그는 문장력이 탁월하다고 알려져 있으며 중국어, 일본어, 여진어, 몽골어 등의 외국어에 능통하였다. 뛰어난 학문적 자질과 언어에 능통했던 사실 때문에 세종대왕이 주도한 훈민정음 창제에 참여하여 공적을 세웠으며, 고잔묘 앞에는 한글창제 사적비가 세워져 있다. 
 
 이러한 신숙주의 삶과 사상을 알 수 있는 사료가 바로 ‘보한재집’이다. 신숙주의 아들 전, 준 등이 유고를 모아 편찬하였다가 7세손 신숙이 1645년(인조 23) 이식의 발문을 붙여 간행하였고, 1922년에는 신흥우가 신용체의 발문을 첨가하여 간행하면서 『해동제국기』를 속편 부록으로 함께 발간하였다. 평택문화원에서는 이중 1922년 본을 보관하고 있다. 여기에는 시와 문뿐 아니라 신숙주가 후손들에게 당부한 경계의 말인 가훈이 실려 있다. 그 내용은 조심(操心), 근신(謹身), 근학(勤學), 거가(居家), 거관(居官), 교여(敎女)이며, 이를 통해 신숙주와 당대 지식인들이 경계삼은 바가 무엇인지 살펴볼 수 있다. 이외에도 외교활동기록 등 다양한 글이 포함되어 있어 신숙주의 학문과 인간적인 면모를 엿볼 수 있는 소중한 자료이다.
 
※ 황수근 학예연구사는 수원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전)평택교육지원청 우리고장 평택시 교재 감수위원을 지냈으며, 지난 2011년부터 평택문화원 평택향토사연구소에 재직하고 있다. 현재 안전행정부 산하 국가기록원 민간기록조사위원, 경기향토문화연구소 연구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으며 <평택시사> 집필에 참여한 황 연구사는 앞으로 본보에 30회에 걸쳐 '평택문화원 소장사료로 본 평택이야기'를 시민, 독자여러분에게 알기 쉽게 연재할 예정입니다. 시민,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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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문화원 소장사료로 본 평택이야기] 보한재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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