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30(화)
 
"문학은 한 나라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를 아우르는 정신의 집합체입니다"
 
기획1.jpg
  그동안 <소설가 방영주의 세상만사>를 통해 독자, 시민 여러분과 호흡을 함께해 온 방영주 소설가는 본보와의 대담에서 "독자들은 문학의 상업성을 배격하고 정말 좋은 작품을 골고루 찾아 읽어야 합니다. 상업적으로 조작된 가짜 문학을 멀리해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한 작가가 힘을 내서 창작에 매진하고, 출판사도 자부심과 사명감을 가지고 올바른 책을 출판합니다. 그것이 올곧은 정신이 실종된 우리 시대를 진정으로 가꾸고 키우는 방법입니다"라고 말했다. 방영주 소설가에게 한국소설의 위기 및 독자들의 올바른 독서풍토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편집자 말>
 
■ 문학이 정상적으로 발전해야 풍성한 정신을 소유한 '문화선진국'                 
       
 서양 개념의 근대문학이 우리나라에 제대로 이식된 소설은 아마도 1920년대 김동인의 <감자>부터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물론 신소설이나 이광수 등의 계몽문학 등이 있었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우리의 고전소설에서 완전히 탈피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본다면, 우리의 본격적인 근대문학은 100살 가까이 됩니다. 물론 서양에서는 훨씬 나이가 많겠지요. 그것을 직수입한 것이 아니라 동경유학생들에 의해 간접적으로 한국에 들여온 것입니다.
 
 이후, 우리의 문학은 급속도로 발전해왔습니다. 물론 초창기에는 소설가가 별로 없었습니다. 몇몇 소설가들이 작품을 발표하였고, 그래서 작품이 발표되면 많은 독자들로부터 관심을 끌었습니다. 그들은 지금까지도 우리 문학의 선구자들로 추앙을 받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1960년대나 1970년대까지도 소설가, 아니 문인이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몇 백 명 정도가 고작이었습니다. 그러니 소설가는 더 말할 나위가 없었지요. 이때 역시 좋은 소설을 발표하면 작품을 아는 좋은 독자들로부터 호응을 받았습니다.
 
 지금 한국문인협회 회원수가 12,000명을 넘고 있습니다. 시인과 수필가만 만 명을 넘기고 있습니다. 거기에 민족문학작가회의 쪽을 더하고, 이런 문인단체에 가입하지 않은 등단자 수를 합하면 시인과 수필가만 해도 몇 만 명은 좋이 될 것입니다. 인구비율로 봐서 어느 나라에도 뒤지지 않는 문인을 갖고 있습니다. 아니, 일언하여 과열현상입니다. 소설책만 한 달에 600권이 넘게 출간된답니다. 시집이나 수필집은 더 말할 나위가 없을 터입니다.
 
 그러나 좋은 책은 거의 찾아보기 힘듭니다. 오히려 그런 책은 독자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사장되기 일쑤입니다. 문학은 한 나라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를 아우르는 정신의 집합체입니다. 한 나라의 문학이 정상적으로 발전해야 풍성한 정신을 소유한 문화선진국이 되는 것입니다.
 
■ 한국문학, 특히 한국소설은 지금 고사상태에 있다!
 
 한국문학, 특히 한국소설은 지금 고사상태에 있습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게 되었는지 한번 진단해보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우리 문학의 올바른 발전을 위하여.
 
기획2.jpg
 ◆ 첫째, 문학정책이 집권층의 우중화와 맞물려
 
 문학정책이 집권층의 우중화와 맞물려 있습니다. 그들은 국민이 어리석어야 자기들 하고 싶은 대로 해먹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1990년대 초반에 소위 문민정부를 갖게 됩니다. 문학의 진정한 위기는 아이러니하게도 여기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이 문민정부는 문맹정부로 가고 있었습니다. 어용 평론가, 어용 문학 이론가들이 합세하여 소설도 아닌 것을 좋은 소설이라고 추켜세웁니다.
 
 1990대 말 체코 작가 밀란 쿤데라의 <농담>이라는 작품이 ‘참을 수 없는 가벼운 농담’이라는 부제가 박혀 출판됩니다. 사실 이 작품은 어려운 한 시대를 온몸으로 견디며 살아가는 지식인의 고뇌를 담은 모순어법의 무거운 소설입니다. 어용들은 그것의 가벼움만 침소봉대하여 대대적으로 선전하기 시작합니다. 정치의 진로개척병 노릇을 충실히 해내기 위해. 그리고 가벼운 독자들, 즉 대중들에게 더 많은 책을 팔아먹기 위해서.
 
 그것은 어렵고 힘든 것을 생각하기 싫어하는 경박한 시대풍조와 맞물려 갑니다. 문학도, 인생의 깊이 있는 진중한 작품이 외면당하고, 가볍고 분량이 적은 게 대접 받기 시작합니다. ‘좋은 생각’이니 뭐니 하는 책이 그렇습니다. 그리고 권위 있는 지식인들도 서서히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기 시작합니다. 이제 세상은 그런 소리를 아무도 들어주지 않게 변한 때문입니다. 세상은 연예인들이나 스포츠 인들의 그것으로 가고 있었지요.
 
 그러다 보니, 양식 있는 지식인들은 아예 입을 다물게 됩니다. 군사정권에서는 지식인이나 소설가의 말과 글을 두려워했습니다. 때문에 국가에서 원고료까지 지원 해주면서까지 탄압했던 것입니다. 헌데 문민정부는 소설가에게 지원하던 원고료부터 끊어버렸습니다. 본격 순수소설을 쓰던 사람들은 사막 한가운데에 내팽개쳐버린 것입니다.
 
 소설가는 이 천박한 자본주의국가에서 살아갈 방법부터 찾아야 했지요. 입에 풀칠이라도 해야 소설을 쓸 게 아니겠습니까요. 일본은 소설가가 책을 출판하면 정부에서 일정부수를 사들여 각 도서관에 배포하고, 호주는 소설가에게 월급을 주며, 연변 등은 소설가를 부교수 정도의 대우를 한다는 말을 얼핏 들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상업적으로 조작된 몇몇만 빼놓고 원고료 등으로는 전혀 생활할 수 없는 입장이 되었습니다. 때문에 직장을 갖거나 문단정치나 상업화에 열을 올리게 된 것입니다.
 
 소설가는 우선 작업량 때문에 직장을 갖고는 좋은 작품을 쓰지 못합니다. 여기서부터 다른 나라의 소설가와 경쟁이 되지 않습니다. 하여, 좋은 소설을 발표하던 소설가들이 하나 둘씩 붓을 꺾어가고 있습니다. 대신 소설도 아닌 소설을 쓰는 대중 취향의 말초적 흥미위주의 통속적 베스트셀러만 활개를 치고 있습니다.
 
◆ 둘째, 수능에서 문학과목이 특히 문제
 
 수능의 문제입니다. 이 역시 우중화 정책과 맞물려 있습니다. 이 수능이라는 것은 집권층이 필요로 하는 판박이를 만드는 제도입니다. 대학생의 선발은 대학에 맡겨 둬야 합니다. 잡음이나 부작용, 즉 해당 교수의 입시부정은 고쳐가거나 엄격한 법적 제재를 가하면 될 것입니다.
 
 수능에서 문학과목이 특히 문제입니다. 문학은 독서를 통해 마음의 양식을 쌓고 정서를 순화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식이 아닌, 그 이상의 것입니다. 그런데 수능은 그것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한 예를 들면, 김소월의 시 하나를 대고 다섯 개의 문항 중에서 주제 하나를 고르라고 합니다. 김소월이 시를 발표했으면 그것은 책을 산 독자의 것입니다. 거기의 다섯 문항 전체가 다 독자의 주제가 될 수 있습니다. 시는 읽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니까요. 그러나 하나만 정답으로 정해집니다. 역설적으로 말하여 이렇게 훈련 받은 국민은, 국가에서 이것이 정답이다, 하면 다른 것은 모두 오답이 되는 거지요.
 
 김소월 역시 자신의 시를 수능 문제로 내면 반도 풀지 못할 것입니다. 나는 소설을 고등학교에서 10년간 가르치고, 대학과 대학원, 그리고 지금까지 몇 십 년을 배우며 쓴 사람입니다. 나 역시 수능에 소설 문제가 나면 반도 풀지 못할 것입니다. 내가 쓴 소설마저도. 문학을 갈기갈기 찢어놓고 왜 그리 어렵게 만드는지.
 
 그러니 초등학생 때부터 문학이라면 머리부터 아플 것입니다. 게다가 계속되는 입학시험, 입시시험, 승진시험, 토익시험, 토플시험 등 문학에 관심을 돌릴 여가가 없습니다.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인생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할 겨를이 없습니다. 머리를 식히기 위한, 만화나 무협지가 판을 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륜도덕이 사라지고, 삭막해지고, 험악해지는 것이지요.
 
◆ 셋째, 문학이 상업주의에 물들어
 
 문학이 상업주의에 물든 것입니다. 특히 대형출판사 등의 전횡이 문제입니다. 우리 한번 생각해봅시다. 어떤 작가의 책은 나오자마자 몇 십만 부가 팔리고 베스트셀러 목록 1~2위를 차지합니다. 독자들은 책이 나왔는지조차도 제대로 모르는 판에. 이것은 책을 출간하고 매주 일정부수씩 계속 사들이고, 과대광고를 하고, 소속된 평론가들이나 영업을 맡은 사람들이 열을 올려 판매를 조작한 때문입니다. 대형서점에서마저 다른 책은 진열대에 올리지도 못하게 압력을 넣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문학에 대한 소양을 쌓을 기회가 없습니다. 문학이라면 머리부터 흔듭니다. 때문에 인생의 심오하고 어려운 문제를 피하여 머리부터 식힐 대중적 취향의 흥밋거리를 담아야 합니다. 그런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입니다. 스타킹처럼 한 번 쓰고 없어질.
 
 반면 정통문학만을 고집하는 좋은 작가가 피 흘리고 뼈를 녹이며 심혈을 기우려 쓴 작품은, 채 발표도 되지 못하거나, 출간되어도 사장되어 버리는 것이 지금의 우리 현실입니다. 문학을 이해하는 좋은 독자가 없는 까닭입니다. 좋은 독자가 있어야 좋은 문학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 좋은 작가가 발붙일 틈은 없습니다. 상업적으로 조작된 거대한 가짜 소나무 몇 그루만 있을 뿐입니다. 그들 때문에 진정한 작가는 글에서 서서히 멀어져 가고 있습니다.
 
 저는 어디 가서 소설가라고 잘 밝히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은행 등에서 무직자로 분류되는 소설가가 정말 직업인가 의구심이 들어서입니다. 그러다 어쩔 수 없이 내 직업을 밝히게 되면, 세간에 잘 알려진 이 모 소설가부터 입에 올립니다. 그것은 문학 즉, 소설에 대해 무식하다는 것을 광고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에는 우리 소설을 풍성하게 한 정말 좋은 소설가들이 많습니다. 나는 이 모 소설가를 대중에 인기 있는 대중작가로 분류합니다. 물론 이 모 소설가도 초기의 단편이나 중편, 즉 세상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는 좋은 소설도 있습니다만. 어쨌든 지금 날개 돋친 듯이 팔리는 이 모 소설가의 장편소설들은 아닙니다. 저는 웃으면서 말합니다. ‘남진, 나훈아, 이미자, 장윤정 등은 잘 알지요? 대중에게 많이 알려지고 돈도 많이 벌었지요? 그렇다고 그들의 노래가 음악성이 있다고는 안 하지요? 클래식이나 가곡 등을 하는 음악가는 잘 모르지요? 돈도 그들처럼 많이 벌지 못했지요? 그러나 그들은 진정으로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사랑 받고 있지요? 문학도 마찬가지입니다. 헌책방 구석에라도 가서 좋은 작가의 좋은 소설을 찾아 읽기 바랍니다. 오히려 그런 곳에 좋은 책이 많습니다. 그것이 당신의 영혼을 살찌우는 방법입니다.’ 이렇게 말하며 배시시 웃을 따름입니다.
 
 덧붙여, 산에 정일품 소나무 몇 만 있어서는 전체가 황폐해집니다. 잡풀, 활엽수, 침엽수가 어우러져 있어야 많은 생물이 살아갈 수 있습니다. 산 아래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정일품 소나무 몇 그루, 그것도 조작된 가짜 정일품만 계속 양산하고 있습니다. 상업적으로 몇 번 이용하고 버리는. 그래서는 풍요로운 한국문학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독자들은 문학의 상업성을 배격하고 정말 좋은 작품을 골고루 찾아 읽어야 합니다. 상업적으로 조작된 가짜 문학을 멀리해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한 작가가 힘을 내서 창작에 매진하고, 출판사도 자부심과 사명감을 가지고 올바른 책을 출판합니다. 그것이 올곧은 정신이 실종된 우리 시대를 진정으로 가꾸고 키우는 방법입니다.
 
기획3.jpg
 
◆ 끝으로, 문인의 양산과 문예지의 범람
 
 끝으로, 문인의 양산입니다. 지금 너도 나도 시인이고 수필가입니다. 시나 수필가로 등단하기가 그만큼 쉽다는 뜻이겠지요. 소설은 우선, 분량 때문에라도 등단이 쉽지 않습니다만, 소설가 역시 계속 늘어가는 추세입니다. 막말로, 우리 집의 애완견도 제가 등단시킬 수 있습니다. 개가 남긴 발자국을 툭툭, 털어내고 적당히 써서 문예지에 등단시켜 달라고 보내면 됩니다. 그러면 책 일이백 권 사고 문인이 됩니다. 이런 문예지가 지금 몇 백 종류나 됩니다.
 
 문인이 되려면 적어도 십 년 이상 밤잠을 설치며 뼈아픈 습작의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요즘은 그런 것을 생략하고 너도 나도 문인이 되고 있습니다. 뿐만이 아니라, 그렇게 등단한 다음, 자신의 등단한 문예지와 함량미달의 책을 출간해 주위에 돌리고 무슨 대가나 되는 듯 착각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의 노력을 안 합니다. 주위에서 저 사람도 문인인가, 하는 줄도 모르고. 엄밀히 말해 이들은 좋은 독자로 남아 좋은 책을 계속 읽으며 습작을 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들마저 모두 문인이 되었습니다. 물론 그런 것들을 깊이 인식하고 자신의 문제점을 극복한 훌륭한 문인도 있습니다만. 하여튼 지금은 문인과 문학과는 아무 상관없는 사람들로 대별됩니다. 좋은 본격 문학을 읽을 독자가 사라졌다는 뜻이지요. 그리고 이들은 패거리를 만들어서 자신의 성을 쌓고 안주합니다. 서로 추켜 주고 상도 만들어 나눠먹고 하면서. 이것은 권위 있는 문예지에 정식으로 등단한 문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언젠가는 문단에 무슨 자리에 있었고, 어떤 상을 탔다는 자체가, 부끄러워해야 할 때가 올 것입니다. 
 
 신춘문예 역시 다를 바 없습니다. 심사위원들 대부분 힘겹게 정통소설을 쓰는 작가가 아니라, 대중에 잘 알려진 인기작가입니다. 그리고 심사위원이 고정되어 있어, 그들의 입맛에 맞는 소설을 응모해야 합니다. 그로 인해, 다양한 문학에의 지평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심사에 대한 잡음도 만만치 않습니다. 이것은 제가 직접 확인한 것이 아니어서 더 이상의 언급을 회피합니다만.
 
 지금은 이런저런 문제점을 알면서도 입을 다물거나 아예, 그런 것을 모르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것을 극복해야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독자가 문학에 대해 박식해야 합니다. 좋은 책을 스스로 골라 읽어야 합니다. 그래야 가짜들이 활개 치며, 한국문학을 위기로 몰고 가지 않을 것입니다.
 여기까지 우리 문학, 특히 한국소설의 위기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위에 지적한 문제들은 따로따로 독립된 것이 아니라, 서로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문학의 아니, 소설의 총체적 위기라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 외에도 우리 소설이 고사 직전에 간 이유들이 많을 것입니다. 집권층의 우중화나 수능문제 등은 우리가 현실적으로 쉽게 바꿀 수 있는 사안은 아닙니다. 그러나 독자인 국민 개개인이 문학에 대해 올바로 이해하여, 우리 독서 풍토를 올바로 하고, 다양한 좋은 책이 살아남아 사랑받을 수 있게 노력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이는 우리 문학, 아니 우리 소설을 풍성하고 건강하게 키울 것입니다. 그것 또한, 문화적 선진국에 가는 진정한 힘이 될 것입니다.   
 
■ 방영주 소설가 약력
 
 충남 서천 출생. 현, 평택 거주. 국민대 국문과 및 동 대학원. <월간문학> 신인상 소설 당선. 소설집 <거북과 통나무> <내사랑 바우덕이> <카지노 가는 길>, 장편소설 <무따래기>(상, 하권) <우리들의 천국> <카론의 연가> <국화의 반란> <돌고지 연가> <대무신왕> 등.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백서 출간에 따른 문장 강의 등. 한국소설가협회 중앙위원.
 
※ 다음호(327호)부터는 '소설가 방영주의 세상만사' 연재를 마치고 방영주 소설가의 중편소설 <천국의 별>이 8개월에 걸쳐 연재됩니다. 연재되는 <천국의 별>은 배달국 치우천왕의 이야기로, 우리 조상들의 가슴 벅찬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독자, 시민 여러분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정리 김지영 이일호 기자 ptlnews@hanmail.net
★자치돌이★ 기자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태그

전체댓글 0

  • 63340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기획] 평택의 소설가 방영주가 바라본 "한국소설의 위기"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